어설픈꿈

시 - 비가 내리면

공현 2015. 9. 1. 01:52




비가 내리면

비가 내리면 모든 것이 빨라진다
피할 곳을 찾아서 뛰어가는 사람들
떨어져 내리는 낙엽들 바람들
새겨진 발자국과 조각들의 자취도
빈틈없는 비에 맞아 빠르게
희미해진다

비가 내리면 모든 것이 느려진다
물을 먹어 무거워진 신발들 바짓단들
습기속을 헤쳐가는 벌레의 날개짓
말려놨던 아픔들과 추억들의 망각도
가라앉는 비에 맞아 느리게
희미해진다

둔탁해진 세상 속에
씻겨 내려가는 많은 것들
때로는 자취가 떠내려가고
때로는 망각이 떠내려가고

비가 내리면
나의 마음이 남는 것이 아니고
남은 것이 나의 마음이다
차마 씻기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많은 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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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없는 비에 맞아 빠르게 / 빠르게
가라앉는 비에 맞아 느리게 / 느리게
라고 쓸까, 희미해진다로 통일할까 하다가 이렇게 갔는데 더 나은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원래 처음 시작은 비가 내리면 옛날 기억들이 떠오르고 망각이 느려진다 하는 생각과, 비가 내리면 많은 흔적이 지워지고 흘러내려가고 깎여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면서 시작된 거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