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수필 - 꿈을 이룬 삶에 대하여

공현 2015. 12. 24. 11:02




꿈을 이룬 삶에 대하여



  어느새 이십대 후반에 접어들고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서른 즈음에’를 흥얼거리면 면박을 받던 것이 아직도 생생한 기억인데, 이제는 ‘서른 즈음에’를 부르면 다들 어쩐지 짠한 시선을 보내와서 부담스럽다. 그런데 이런 나이가 되어서도 십대 때와 변함없이 받는 질문이 있다. 바로 “꿈이 뭐예요?”, 혹은 “꿈이 있으세요?”이다. 조금 더 뻔뻔하게 발전하면 “꿈을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 같은 질문까지도 받고는 한다.


  물어본 사람에게는 미안하게도 이에 대한 나의 한결 같은 대답은 상당히 김이 빠지는 것이다. “저는 이미 꿈을 이뤄서요.” 묻는 사람마다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꿈’의 개념은 아마도 조금씩 다르겠으나, 나 자신의 사전 속에서 꿈이란 이러이러하게 살고 싶다고 바라는 삶의 목표를 뜻한다. 예컨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든지,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인정받는 삶을 살고 싶다든지,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되고 싶다든지. 직업을 무엇을 갖고 무슨 일을 하는지는 그 대표적인 내용 중 하나일 터이다. 그런 개념으로 본다면 나는 지금 살고 있는 방식이 내가 살고 싶은 목표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나의 개인적인 꿈은 이미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 지금 사는 대로 활동가로 활동하고 글도 쓰기도 하고 덕질도 적당히 하면서 사는 것이 내가 살고 싶은 목표이다.


  물론 추가로 이루고 싶은 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단독 저자로 내가 쓴 책을 하나 내고 싶다든지, 기타를 배워서 노래를 해보고 싶다든지, 개랑 같이 살고 싶다든지. 하지만 그런 것들은 그저 작은 허영심이거나 취향 같은 것이다. 내 삶의 꿈이라고까지 하기에는 어색하다. 그것들은 말하자면 부가적인 소품이나 양념 같은 것들이다. 사나흘에 한번씩 찾아가도 질리지 않는 동네에 있는 단골 맛집처럼 말이다. 그런 것들이 있으면 행복감이 많이 올라가겠지만, 없으면 뭐 그렇구나 싶은 것들. 중요하긴 하지만 꿈은 아닌 것들.


  좀 더 큰 단위의 목표야 있긴 하다. 뭐 인류의 평화라든지, ‘미성년자’의 해방이라든지, 사회의 변혁이라든지…. 한국의 두발자유 같은 경우는 내가 죽기 전에 꼭 보고야 말겠다고 오기와 독기를 품고 다짐한 바 있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 내 삶의 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이상이고 사회적 과제일 수는 있어도 내 인생의 꿈으로 삼기에는 지나치게 거창하다. 나는 내가 그렇게 대단하지 않음을 알고 내 인생이 그렇게까지 큰 것에 걸 만큼 값어치가 높지 않다는 것도 안다. 어떤 이들은 혁명을 자기 꿈으로 삼고 ‘혁명가’로서 존경을 받기도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내가 한다고 상상해보면, 오 민망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다른 이들과 나누고 함께 추구해볼 만한 목표이긴 하지만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라고까지 하는 것은 좀 사기 같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내 꿈의 자리로 올려놓으면 결국엔 너무 나만의 아집으로 빠질 듯싶기도 하다. 여럿이 함께 만들어갈 일이고, 그 과정에서 내 뜻을 숙여야 할 일도 왕왕 있을 텐데, 그걸 '내 꿈'이라고 해버리면 좀 애매해지는 부분이 있다는 느낌이다.


  ‘내 꿈이 아닌 것들’ 이야기에서 ‘내 꿈’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면, 내가 나는 이미 꿈을 이루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다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한다. 마치 꿈이 없이 살면 가치가 떨어지는 인생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하나의 꿈을 이루고 나면 다시 그 다음의 꿈을 정하고, 또 다시 그 다음의 꿈을 정하고…. 마치 학교 진학하고 레벨 올리듯이 끊임없이 꿈을 정해서 좇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꿈이라는 것이 하나의 도달점이 아니라 삶의 모습, 상태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삶이 꿈을 좇는 여정 같은 것이라는 도식적인 생각이 나는 잘 이해가 안 간다. 그래서야 꿈을 이루는 것은 한 순간뿐이고 삶은 계속 불완전한 추구의 과정일 뿐이지 않은가. 그렇게 무언가를 좇고 추구하면서 살고 싶고 그 자체에서 행복을 느끼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그런 삶 자체가 그들의 꿈이라고 불러야 맞지 않을지. 


  굳이 여기서 더 뭘 이루려고 하지 않아도 내가 살고자 하는 모습 그대로 쭉 살아간다는 것은 가장 행복한 삶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 경우에 목표가 있다면, 지금 살고 있는 모습대로 이 삶을 유지해나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경제적인 문제부터 해결을 해야 할 텐데,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