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박근혜가, 그래서, 뭐 어쩌라고?

공현 2016. 11. 2. 16:53


박근혜가, 그래서, 뭐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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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화제다. 집회가 열리고, 시국선언들을 하고, 수많은 공간들이 박근혜와 최순실(최서원)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사람들이 화를 낸다. 어이없어 한다.
나도 화가 난다. 어제는 답답하고 자꾸 화가 나서 방에서 혼자 끙끙거렸다. 그런데 박근혜에게 화가 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박근혜와 최순실에게 이렇게 화를 내고 나오는 것이 마음에 안 들어서 화가 난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우습다. 새삼 그게 뭐 화낼 일이라고. 내내 그랬는데.
누군가가 트위터에서, 공중파방송 등에서 박근혜를 풍자하는 내용을 직간접적으로 담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기보다는 "(방송인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구나. 그런데 왜 그동안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하다는 말을 남긴 것을 보았다. 그것과 내 느낌이 비슷한 것일 수도 있고, 비슷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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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물론 처벌을 받고 책임을 져야 한다. 최순실은 부당한 이득을 얻었고 부당한 권력을 휘둘렀다. 박근혜는 최순실에게 부당한 이득과 권력을 주었고, 행정부 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민주성, 보안성을 훼손했다. 이러한 일들이 사실이라고 명확해진다면(나는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명확하다고 생각하지만) 박근혜가 대통령직을 사퇴하는 것이 옳고 정의에 부합하는 일일 것이다.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고 법을 어겼을 때 마땅한 처벌을 받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전례는 많을수록 좋다.
그런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박근혜가 사퇴를 하는 것이 옳지만, 세상에는 곧잘 옳지 않은 일들이 벌어진다. 박근혜는 사퇴를 해야 하지만, 사퇴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아니 일단은 우리라고 해두자. 이 말이 가리키는 범위는 불명확하지만) 우리가 박근혜를 사퇴시키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수많은 옳지 않은 일들이 있다. 학생들의 두발복장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학생들이 두발복장규제를 당하고 있다. 옳지 않은 일이지만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뛰쳐나가야 한다고는, 나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장애인의 이동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위해 내가 당장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이 지연되고 무산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내가 당장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투쟁을 하지는 않는다. 나는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살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 하려 하는 일, 될 법한 일 등을 우선 순위에 따라 해나간다. 그래서 이렇게 자문한다. 대통령의 비리는 내게 우선순위가 높은 일인가? 글쎄,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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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사건으로 박근혜가 사퇴하면 내 삶이 나아지나?' '- 청소년인권 문제가 개선되나?' 나의 이 질문에 어떤 이는 그렇게 냉소적인 태도는 안 좋다는 평을 했다. 아니, 정치에 대한 냉소나 혐오 같은 것이 아니다.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당장 내가 맡고 있는 상담소에 들어온, 방과후교실을 자유 선택으로 해달라고 했더니 선택하게 하고는 불참한 학생들을 강제로 남겨놓고 자습을 시킨다는 고등학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충남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추진한다고 하는데 내용과 가능성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청소년 참정권 운동을 어떻게 해야 가장 효과적일지 고민하는 것이, 학습시간 줄이기 운동 내부 평가 일정에 대해 준비하는 것이, 대통령이 저지른 비리 사건에 대한 행동에 나서는 것보다 나에게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상대주의적 가치관을 설파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것이 더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이라고 믿으며, 다른 사람들도 이러한 가치관을 공유하기를 바란다. 대통령에 관한 것으로 한정한다면, 나는 대통령이 공공부문 민영화를 추진하거나 해고를 쉽게 만드는 것이, 규제완화를 외치는 것이, 대통령의 비리보다도 더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정유라가 대입에 특혜를 받은 것보다도, 대학을 기업화하는 정부 정책들과 입시경쟁과 차별을 해결할 생각이 없는 정부의 입장이 더 청소년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통령의 비리에 더 화를 내는 것이 오히려 정치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정치가 아닌 정치인들의 도덕성이나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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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박근혜 지지율이 곤두박칠치고 수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퇴진을 말하는 지금 상황을 특수하게 인식한다. 그리고 청소년들도 거리에 나와서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대자보를 붙이는 상황을 좀 더 심정적으로 수긍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특별하게 잘못을 한 것이, 박근혜의 정치적 권력이 추락한 것이 그렇게 '새로운' 일이 아니다. 특별한 상황은 많은 경우 일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가 바꾸어야 하는 것은 어쩌면 일상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한국의 정치와 사회가 부족한 점을, 그리고 민주주의가 일상적으로 취약한 현실을 폭로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박근혜를 보고 다시 일상을 생각한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데 크게 기여한, 민주주의에 대한 전제도 합의되지 않은 채 함께 사는 동료 시민들에 대해, 분절된 집단들에 대해 생각한다. 청소년들의 시위와 선언이 '예외적인' 특별한 것이 되지 않고 일상적인 권리 행사이자 삶이 될 방법을 생각한다. 실제로 시위를 하고 선언을 하고 대자보를 붙이는 것으로는 그런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기묘한 현실을 몇 번을 겪었던지... 그것은 '이 특수한 시국'에 모두들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특수한 시국에서 우리는 무언가 대처를 해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특수보다는 일상에 대해 생각하고 일상을 바꾸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 믿는다.
나에게는 박근혜가 사퇴하는 것보다 당장 청소년이 학교 안이나 거리에서 평등하고 자유롭게 정치적인 행동과 발언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더 관심이 가는 문제다. 박근혜 사퇴보다도 학교 운영의 민주화나 참정권 실현이 우리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퇴진, 혹은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는 물론 그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뭐 단적으로 말해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버틸 수 있는 사회에서는 아마도 청소년 참정권도 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우리의 목표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은 숱하게 많다.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그런 문제들에 한눈을 파는 사람이 되지는 않겠다. 우리 모두는 혹시 한눈을 팔지 않고 있는가? 한눈을 팔 수도 있다. 우리는 다층적이고 복잡한 존재니까. 하지만 혹은 한눈을 팔더라도 그것을 합리화하지는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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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시국선언과 민중총궐기에 대해 생각한다. 자신들의 삶보다도 대통령의 비리에 분노하는 많은 정의로운 청소년들, 미조직된 청소년들이 행동하고 있고 거리로 나오고 있다. 청소년들도 시민이므로 이는 놀라운 일도 아니고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이 청소년운동의 기반이 되는 일은 아마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 사건이 남긴 흔적이, 사람이, 경험이, 이야기가, 청소년운동에 또한 남을 것이다. 그리고 다수의 청소년을 만나고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시국선언과 민중총궐기에 참여하거나 할 일을 생각한다. 홍보물이라도 만들어볼까? 관심을 가질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하교길에 찾아가듯이 집회 현장을 찾아가는 게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우리가 좀 더 이런 태도로 상황을 바라보고 대화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박근혜를 끌어내릴 궁리보다도 청소년운동에 보탬이 될 부분을 궁리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이런 시국'임에도, 박근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질 방법, 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방법을, 그런 정치를 염두에 두고 생각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