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꿈

현재의 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며

공현 2008. 1. 8. 11:56

 논술연습하다가,

2005년 4월에 썼던 것-








현재의 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며



 공자는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정명(正名)의 정신을 제시한 바 있다.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지위와 그 역할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는 이 사상은 전통적인 가족상에도 역시 적용된다. 가족 구성원들에게 정형화된 역할을 부여하며, 그것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전통적인 가족상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가족이란 어떠어떠해야 한다'고 하는 가족 이데올로기는 이러한 가족상에 기반을 두고 성립한다. 이는 이상적인 가족을 위한 역할 행동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행동지향적인 속성을 지니고 현대 사회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이상적인 부모나 부부, 효, 엄부자모 등을 말할 때, 유교적인 가족 이데올로기가 사회 전반에 걸쳐 침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통적인 가족 이데올로기는 이른바 가족해체 현상에 대한 반작용으로 더 강조되기도 한다. 가족해체의 원인은 먼저 과거와 같이 혼인이 강한 구속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지 않는 것이나, 여성의 지위에 대한 인식 변화, 유연해진 가족 구성원들의 지위 등 의식의 변화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사회 구조의 면에서는 근대화 일반을 들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산업화에 따른 잦은 거주 이전, 개인에 비해 거대해진 경제 체제와 사회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렇듯 약해진 혼인관계와 무력해진 개인(특히 가장) 등은 전통적인 가족상을 파괴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데, 이와 같은 가족해체의 극단적인 결과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사회에는 아예 가족이라는 것이 없다. 출산조차 복제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혼인이라는 제도 또한 없다. 모든 가족의 기능은 사회로 이전되어 있다. 이렇게 극단적인 경우는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으나, 이러한 가족의 기능 축소, 지속성의 약화, 가족 내부의 지위와 역할의 모호화 등 가족해체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에, 한편에서는 가족 이데올로기를 지키려는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기도 하다.




 가족의 복원을 외치는 목소리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정서적인 기능이다. 특히, 공동체가 해체되어 가고, 개인이 거대한 국가 · 경제 구조에 종속되는 현대산업사회에서 가족의 정서적 기능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가족은 최소 단위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 구성원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다. 교육이나 노인부양 등의 기능을 사회가 상당부분 부담하는 상황에서 더욱 강조되는 정서적 기능과 함께 전통적인 가족상 또한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전통적인 가족상은 고정된 역할에 충실할 것만을 지시하기 때문에 적어도 안정이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두 가지의 상반된 태도가 존재하고 있다.


 독신 가정의 증가, 낮은 출산율, 높은 이혼율 등은 전통적인 가족상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이는 그 가족상이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의 사회활동 욕구, 높은 교육비, 일정치 않은 거주지, 무능력한 가장 등은 전통적인 가족상이라는 것을 실현하는 것이 지난한 일임을 시사한다. 가족해체라는 현상 자체가 사실 전통적인 가족상에 기반을 둔 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한 부정이며 이는 이데올로기를 강조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족 이데올로기를 긍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가족 이데올로기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에 대한 동경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위 노처녀, 노총각을 보면 혀를 차기도 하고, 편부모 가정이나 이혼한 집에 대해 편견을 갖기도 한다. 사람들은 현실적인 여건을 생각하며 전통적인 가족상을 부정하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서 준거가 되는 것은 여전히 전통적인 가족상이다.


 전통적인 가족상은 그 자체로 여성과 같은 약자들에 대한 억압이 된다. 하지만 현실의 가족과 가족 이데올로기가 제시하는 가족상 사이의 괴리는 한층 큰 억압을 낳는다. 이상적인 가족상에 부합하지 않는 가족은 바람직하지 못한 가족이 되며, 가족 형태 사이에 우열까지 생겨날 수 있다. 그에 부합하는 가족을 구성하려 하는 경우에도,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일그러진 가족이 나타나게 된다. 행복한 가족을 위해 기능해야 할 가족 이데올로기가 억압과 불행을 더욱 심화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경직된 가족 이데올로기가 불러온 폐해이다. 정형화된 역할로 이루어진 고정된 가족상은 좀더 유연한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 실재하는 가족들이 가족 이데올로기가 제시하는 가족상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따라서 하나의 가족상, 어떤 한 가지 가족에 대한 규정만으로 실재하는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평가하는 가족 이데올로기는 비판 받아야 한다. '바람직한 가족'이라는 사회적 준거 자체를 포기한다는 것이 불가능할지라도, 적어도 좀더 다원화된 가족상에 기반을 둔 가족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 혼인 대신 시민결합의 개념을 주창한 데리다의 주장 또한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 현대 사회는 좀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멋진 신세계」에서 그려지고 있는 것처럼 가족이 완전히 해체된 시대가 도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사회의 많은 부분이 가족 제도를 전제로 하고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가 완전히 뒤집히지 않는 한, 가족의 기능과 중요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가족의 기능이 꼭 어느 한 가지 구조만을 통해서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있어온 경직된 가족 이데올로기를 반성하고, 사회 현실에 맞는 가족들, 좀더 다양한 현실의 가족들을 인정하는 일은 가족이 현대사회에서 행복한 공간이 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작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