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시 - 밤 기찻간

공현 2008. 1. 8. 01:23
밤 기찻간


  알록달록 등산가방 껴안고 문간에서 잠이 든 청년도 있었고 애를 안아 어르고 또 달래는 주름파인 둥근 얼굴 아줌마도 있었고 술냄새를 살짝 입고 웅크린 할아버지도 있었다.
  밤중을 달리는 무궁화호 기찻간, 2호차와 3호차 사이 끼익대며 고무살을 맞비비는 이음샛소리와 바퀴가 자갈에 튀는 소리, 덧붙이자면 담배 냄새만으로도
  서울을 뒤로 하고 도망치는 어둑한 기차 객실 사이는 만원
  사람들은 그 틈새에 어거지로 몸을 밀어 넣고 있을 뿐이었다.

  새우잠을 청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꿈속에 맺힌 이슬은 흐르지 않았다.
  웅크렸다 기지개 펴는 야행성 고양이처럼 일어나서
  창밖을 본다.

  에어컨 바람, 하얀 형광등, 그 아래서는
  탄핵, 비리, 병역, 의문사, 불황, KTX…
  신문의 검은 활자는 선명한 요원
  ―애초에 편히 잠들긴 글른 2호차인 게지.
  혀를 차는 소리는 슬쩍 묻혔다.
  쓸쓸하게 일어난 목소리로 기차소리 헤치고
  객실을 나가 서서 머얼리
  창밖을 본다.

  논 위에 점점이 번지는 노랗고 하얀 인가의 별빛
  창문에 희미히 비치는 낯설고 그늘진 인간의 눈매
  저 뒤론 어슴푸레 쫓아온 웅성대는 도시의 불빛
  문득 반대편으로 달려지나간 기차 한 대, 그 안의 아무와도 눈을 맞출 수 없었다.
 
  덜컹댈 때마다 속으로 이슬 맺힌 눈매가
  흔들리며 불빛을 흐렸지만
  불빛은 지평선에 계속 쫓아왔다.
  처진 눈빛과 불빛들을 노려본다.

  객실 사이 노란 조명등 어둑한 바깥 풍경
  누구의 목소리와 사람 그림자 떠돌다
  허공에 떨어져서
  건널목가, 들꽃봉오리에 겹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