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시 - 가을 아침

공현 2008. 1. 8. 01:25

가을 아침


찢어지는 비명이 눈꺼풀을 찢어놔
해가 잠결에 뱉은 뿌옇게 흐린 새벽만 살짝 번졌는데
무표정하게 비명을 지르는 짧은 바늘, 형광이네
두들겨 꺼버리곤 몸을 일으켜, 고갤 돌리니 창틀이야
화분에는 아침이라며 활짝 열린 꽃봉오리,
난 물을 마구 뿌려버렸어

김치가 좀 시었어 빨간 김칫국물이 묻은 손을
대충 닦아서 주머니에 꽂고
고양이처럼 구부정하게
거리로 나가

손끝에서 보푸라기가 굴러
발끝에서 낙엽들이 굴러
나도 굴러, 굴러서 보기가 흉해

호두알 같은 까만 얼굴의 환경미화원이
녹색 비로 쓸어내, 낙엽들을, 끝도 없이 떨어지는 낙엽들을
난 왜 쓸리지 않고 계속 제멋대로 구를까
나도 바싹 마른 다음에야 그만 구를까

살려고 꼬리를 버리는 도마뱀
비늘 같은 타월로 벅벅대도
계속 나오는 때처럼은, 아직은 말야
조금 있으면 까만 호두에 주름이 더 잡혀 계속 계속
으르렁, 검은 차바퀴에 무심코 밟혀

힘이 빠져서 빨간 우체통 옆 벤치에 앉아
우체통은 낙엽을 뚫고 솟았어
하지만, 16시 반에 우체부는 오지 않아
해가 넘어가고서야 오거든
겁먹은 개처럼 아무 말도 못 걸어

또 비명이 찢어져
또 숨결이 깔렸어
그리고 또,
창틀엔 잉잉대며 날던,
어제가 쌓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