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수필 - 지금의 역사를 살며

공현 2008. 1. 13. 22:47

2005년 5월에 전북중등백일장 전주지역대회 예선에서 그래도 최우수상이라고 받게 된 녀석입니다.







지금의 역사를 살며

 

  방학만 되면 학교란 곳은 방학과제물이라는 성가신 것들을 B4용지 한 장에 정리해서 학생들에게 던져주곤 한다. 그 중 특히 성가신 것으로 방학 동안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문화유적답사 후 기행문쓰기 따위의 것들이 있다. 자녀를 통해 그런 관광산업 진흥을 숨은 목적으로 하고 있는 듯한 과제물들을 받은 부모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스스로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핑계로 본래는 있지도 않던 휴가 계획을 짜서 방학만 되면 여행길에 나서는 부모도 있고, 운 좋게도 집 바로 근처에 있는 문화유적에 자식을 산책 보내는 부모도 있다. 좀더 교육적인 부모의 경우에는 꾸며서 글 쓰는 법을 자식이 일찍부터 습득하게 해주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어땠는가 하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그런 부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방학이나 연휴만 되면 참 많이도 돌아다녔고, 그렇게 쌓인 기억들은 머리 속을 조금만 헤집어봐도 떠오르곤 한다. 미륵사지 석탑의 시멘트 발린 침묵, 서정주 묘소의 노란 금국밭, 비에 젖어가는 불국사 오르는 길, 무령왕릉에서 방학과제에 첨부할 증거자료로 샀던 엽서, 변산반도 어느 한적한 절 입구에 있던 도금된 문의 어색함, 몇백 년 된 나무 아래에 놓여 있던 방송국 사람들의 촬영성공기원 기왓장... 그렇게 많이 돌아다녀 놓고도 정작 방학과제물은 제대로 해간 적이 드물어서 좋은 소리를 별로 못 들었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그렇게 숙제를 안 해간 벌인지, 돌아다니긴 많이 돌아다녔어도 내 여행에 대한 기억들은 흐릿하기만 하다. 내가 갔다온 절이나 산, 유적지 이름 같은 것들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가 거기에 무엇이 있었는지 같은 것들도 영 헷갈리기만 하니 손해본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사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역사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으니까 박물관을 가건 유적답사를 가건 제대로 보이는 게 없다. 그렇다면 시중에 제법 많이 돌아다니는 문화유적을 소개하는 책 같은 것을 읽으면 될 것이겠으나, 그런 류의 책들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 성격이라 그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하지만 내게도 나름대로의 감상방법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알지 못해도 느끼긴 한다'는 게 내 멋대로 만들어낸 감상이론이랄까. 그래서 박물관에서도 '사진촬영금지'가 붙어있는 유리창 앞에서 멍하니, 박물관의 어딘지 도서관을 닮은 그 공기와, 유물들의 즉각적인 느낌들을 바라보고 있다. 유적과 유물들이 자아내는 분위기, 그것들이 던져주는 인상들을 느끼고 있다. 그런 식으로 박물관 안에서 숨쉴 때, 유물들은 옛날에 만들어지고 사용된 물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물건들이 된다. 내가 역사를 답사한답시고 가서 얻는 것은 오래 전에 만들어진 물건들 옆에 세워진 안내판에 정리된 과거의 정보가 아니라 현재에 존재하는 물건들의 이미지다. 이런 형편이니 돌아다니긴 많이 돌아다녔지만 기억 속에 정리되지 않은 채 산만하게 어질러져 있는 것들도 불투명 수채화풍으로 채색된 이미지들뿐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여하간 난 역사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최명희 씨의 소설, 『혼불』에 나오는 역사를 교과서에서 찾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서 찾으라는 말이 나를 지지해주긴 하지만, 어쨌건 교과서적 정보 습득을 도외시한 역사 감상법이 내가 역사 과목을 잘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임은 틀림없으리라. 언젠가 어머니께서 내가 고고학자가 되는 것도 좋겠다고 말씀하신 바 있지만, 이렇게 현재를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난 고고학자라기보다는 후세에 뭘 남기는 쪽에 가깝다. 내겐 지금의 역사, 예를 들면 내가 몇 년 전 쓴 일기장에 기록된 강아지 한 마리의 죽음이라거나, 궁항이라고 하는 변산반도에 있는 조그만 항구마을이 "불멸의 이순신"을 촬영하고 나서는 그 한적한 느낌이 많이 훼손된 것 같다거나 하는 그런 일들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요즘도 일기를 쓰면서 '나중에 이게 발굴되면 악필이라고 욕먹을 텐데' 같은 걱정을 한다. 물론 그런 것이 실로 어린애 같은 상상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래도 어릴 때부터 종종 해온 그런 조금은 즐거운 걱정을 버릴 수 없는 것은 사는 것, 그리고 일기를 쓰는 것이 나만의 역사체험이고 지금이라는 역사를 살아가는 내 자세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