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변화의 기회다

공현 2010. 1. 12. 02:35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소식지 질라라비...에 실을 원고로 청탁 받은 거...
학생인권조례로 이런 식의 글 쓰는 건 이제 질렸어 ㅋㅋㅋ
뭐 솔직히 말해서 인권오름에 쓴 원고의 자기표절 부분이 좀 많긴 하군 ㅠㅠ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변화의 기회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공현


  학생인권조례. 웬만하면 이 단어를 최근에 한두 번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혹시 아직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않으셨다면, 고되고 과중한 노동에 혹사당하고 있어서 신문, 방송, 인터넷 등을 접할 여유가 전혀 없는 분이거나 아니면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무심한 대인배이실 것이다. 최근에 열심히 이야기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는 바로 12월 중순에 경기도 교육청이 초안을 발표한 학생인권조례를 말하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자체는 광주, 경남 등에서 시민․인권․교육단체들이 경기도보다 더 오래 전부터 추진되어왔던 정책이지만, 아무래도 경기도 교육청에서 직접 연구용역을 시행하고 자문위원회까지 구성하여 오랜 준비 끝에 내놓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라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같다. (아니면 나름 ‘진보 교육감’ 명찰 달고 있는 김상곤 교육감이 발표해서 김상곤을 깔 거리를 찾느라 눈이 벌개져 있는 우파적 언론들의 획책일 수도…)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초안 발표 덕분에 이만큼 학생인권 문제가 공론화가 되고 이야기가 된 적을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사실 별로 특별할 건 없고 경기도 지역 초중고등학교들에서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추진되고 있는 조례이다. 그 내용에는 두발복장자유(특히 두발 길이에 대한 제한은 금지한다고 되어 있음.), 체벌금지, 강제적인 자율학습․보충수업 금지, 여러 차별들에 대한 금지, 학생들의 쉴 권리, 급식에 대한 권리, 교육환경에 대한 권리,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학교운영에 참여할 권리 등이 명시되어 있다. 또한 이러한 학생인권의 내용들이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게 하고 실현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의무적인 인권교육, 학생인권심의위원회, 규정개정심의위원회, 학생인권옹호관(구제기구. 옴부즈퍼슨), 학생참여위원회  등을 규정하고 있다.


보편적 인권의 실현을 위해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법적으로는 초중등교육법 제18조의4(“학교의 설립자·경영자와 학교의 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와 유엔아동권리협약 등에 근거를 두고 있는 조례이다. 문화일보나 동아일보 등이 열심히 좌파의 음모라고 몰아붙이고 있는 학생인권조례 중에 집회․결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 학교운영에 참여할 권리 등은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조항으로 대놓고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은 사실 보편적인 인권이 학생들에게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선언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들을 구체화해놓은 것에 불과하다.
  사실 두발자유나,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을 비롯하여 학생인권조례에 명시된 온갖 권리들은 국제협약과 인권선언 등에 근거를 둔 인간의 보편적인 인권이다. 그것은 결코 학생들이기 때문에 특별히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이기 때문에 특별히 없다고 간주되어야 할 것도 아니다. 예컨대 ‘두발자유’와 같은 권리는 1980년대 노동자 대투쟁 때 노동자들 또한 전면에 내걸었던 적이 있는 요구였다. 자본이나 학교 같은 권력기관에게 생활을 통제당할 때 그것이 부당하다고 느끼고 자유를 열망했던 것은 학생들이나 노동자들이나, 나이가 10대나 40대나 아무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은, 보편적으로 모든 인간들에게 보장되어야 할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으로 큰 의미가 있다.
  한국의 학생들은 많은 인권을 당연하다는 듯이 침해당하며 살고 있으며, 그런 과정을 통해 통제와 폭력을 내면화한다. 특히 경기도 지역은 평준화 지역, 비평준화 지역, 부유층 거주 지역, 빈곤층 거주 지역 등이 뒤섞여 있으며, 두발규제, 강제적 자율학습, 체벌 등의 대표적 학생인권 문제에서도 상대적으로 심한 지역 중 하나로 꼽혀 왔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 학생들이 보여준 열렬한 환영의 분위기는 이러한 현실을 보여준다. 또한 경기도 지역에는 한국 전체 인구의 20~25% 정도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으니,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 적용을 받게 될 학생인권에 대한 법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는 학생인권조례

  나아가서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학생인권이 제도화된다는 것은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 판례, 국제기구의 권고, 인권단체의 주장 등을 통해서 개별적으로 제시되었던 학생인권에 대한 기준을 통합된 법제의 형태로 제시하는 것이다. 학생인권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 개인들은 꾸준히 수많은 학생인권들을 주장해왔으나 이러한 주장들이 인권으로 제대로 인정 받지도 못하고 있던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었다. 학생인권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부실한 한국 사회 실정에서,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은 학생인권의 구체적 내용과 최소한의 기준을 공식적으로 확인시키는 효과를 지닐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공식 확인된 학생인권의 기준은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인권침해 문제를 제기하고 싸울 때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의 효력은 일단 경기도지역에만 적용되지만, 간접적으로는 이 조례에 보장된 권리들이 전국에 있는 학교들,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는 것은 좀 더 거시적인 안목에서도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실현시키고자 하는 두발자유를 비롯하여 용의복장의 자유, 체벌금지, 강제적 자율학습, 보충수업의 금지, 학생들의 쉴 권리 보장 등은 학생들에 대한 통제와 학교 간이나 학생 간 경쟁을 강화시켜나가고 있는 교육 현실에서 유의미한 견제장치가 될 수 있다. 인권을 중심에 둔 학교,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학교와 경쟁적 학교, 통제적인 학교, 독재적․권위적인 학교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재 발표된 학생인권조례 초안을 살펴보면 학생들의 학교 운영 참여, 교육 정책 수립에 참여 등을 보장하고 있다. 이러한 통로를 통해 학생들이 일상적인 학교 운영을 비롯하여 교육 현안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교육에 변화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학생들의 참여를 내세우는 짝퉁스런 교원평가제보다는 더 많은 측면에서) 또한 학생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질 조직과 기구 등은 학생들의 조직화, 세력화를 촉진시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학생인권조례가 잘 실현될 경우에는 장기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인권이 더 잘 보장된 학교 교육을 경험하고 성장한 학생들은, 지금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잘못된 법이라도 일단 지켜야 한다, 반인권적인 법도 따른다는 식의 복종의 문화를 개선할 가능성을 더 많이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좀 더 자유롭게 성장한 사람들은 노동현장에서의 노동자 통제나 군대에서의 폭력 등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문제제기를 할 감수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부터 민주적인 참여를 학습해온 사람들은 더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조직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 교육이 통제받는 것에 익숙하면서 소비하는 주체를 길러내고 있는 현실에서, 학생인권을 열쇠로 한 교육의 변화는 많은 변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 학생인권 보장은 결국 사회가 좀 더 민주적이고 인권적으로 변화하는 데도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기회다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인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간혹 받는다. 뭐 뻔한 소리긴 하지만 조례로는 해결할 수 없는 좀 더 거시적인 문제들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입시경쟁, 학교서열화, 학벌, 교육예산 부족, 장애차별, 크게는 자본주의․국가주의 등은 ‘도 차원의 조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학생인권 개선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학생인권조례는 이러한 것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 없이는 그 한계가 뚜렷하다. 예컨대 조례가 아무리 학생들의 참여를 규정하더라도, 학생들의 참여는 공교육․사교육에서 심야까지 공부해야 하는 현실 때문에 활성화되지 못할 것이며 경제력, 성적, 장애여부 등으로 인한 차별도 그 안에 그대로 존재하기 십상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보면 이렇게 말하는 것도 가능하다.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고 통과시키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것인가? 한 지역에서 두발자유, 체벌금지를 명문화하고 제도화하는 것도 성사시킬 수 없는 사회적 조건과 운동 조건이라면 교육과 학교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학생인권조례는 이후 학생인권을 중심에 두고 학교가 변화해갈 가능성을 여러 가지 면에서 열어두고 있는 조례이며, 그렇기에 학생인권을 위해 충분히 유의미한 한 걸음이 될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기회이다. 통과가 되든, 되지 않든,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인권문제에 대해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뭐 지금 경기도의회 등 분위기로는 학생인권조례를 통과 안 시킬 기세지만.) 학생인권조례가 만약 통과된다면, 학생인권조례를 근거로 하여 이를 지키지 않고 학생인권침해를 일삼는 학교들에 맞선 학생들의 학교 현장에서의 저항과 행동의 불씨들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학생인권조례가 만약 통과되지 못하더라도, 학생인권조례 추진 과정과 무산은 학생들이 학생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적, 정치적 참여(학생인권조례를 무산시킨 원흉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서라도)에 나설 충분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어느 쪽이건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가능성들이 열려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