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인권오름] 전교조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조전혁 국회의원의 막돼먹은 신념

공현 2010. 4. 23. 09:56

[막말의 시대] 전교조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조전혁 국회의원의 막돼먹은 신념

조전혁 의원의 교원단체 교사 명단 공개에 대해

명숙



헌법기관은 헌법기관의 결정을 무시해도 된다고?

한나라당 조전혁 국회의원(인천 남동구 을)이 4월 19일 자신의 인터넷홈페이지에 5개 교원단체 소속 교원 22만 2479명의 명단을 공개하였다. 법원이 ‘교원단체 소속교사 명단 공개는 부당하다’는 결정을 내렸지만, 국회의원이라는 고위 신분을 내세워 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공개했다. 이에 대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 등 교원단체들이 반발하자 조 의원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정부와 사법부에 대한 감시․통제 방법으로 자료를 요구하거나 직무상 얻은 자료를 공표하는 행위는 민사상 가처분의 대상이 아니다”는 발언을 했다. 정말 기가 차는 발언이다. 그동안 정부와 여당이 그토록 내세웠던 법치의 실체를 보여준다. 국회의원이 법원의 결정을 무시하는 것에서 보이듯이 그들에게 법치란 자신에게 유리할 때만 지켜지는, 그렇지 않으면 무시해도 되는 장식일 뿐이다.

법원 판결도 무시하는 무소불위 정치인 등장

조 의원이 말한 대로 국회의원은 헌법기관이므로 직무상 얻은 자료를 공표해도 된다고 하였지만 서울 남부지법 민사합의 51부(재판장 양재영)는 “조의원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제출받은 교원단체 및 교원노조 소속 교사 명단을 인터넷 등에 공시하거나 언론 등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그럼에도 그는 삼권분립은 ‘나발’인지 헌법기관인 법원의 결정을 무시했다. 국회의원이 헌법기관이니까 직무상 얻은 자료를 언제 어디서나 공개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권력을 자의적으로 확대해석한 횡포이다. 더구나 이번 공개는 정부나 사법부에 대한 감시나 통제를 위해 행사된 것이 아니다. 단지 자신의 특정 정치적 성향, 교육 성향을 강하게 밀어붙이기 위한 목적으로 타인의 권리( 개인정보 자기결정권과 결사권)를 고의적으로 침해한 것이다.

입법기관으로서 국회의원의 역할수행은 다른 헌법기관의 결정을 무시할 정도로 막대하거나 무제한적인 것이 아니다. 그가 국회의원의 역할수행을 권력행사로 오인하는 오만방자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역할 수행을 위한 최소한의 정당성의 토대는 바로 헌법적 질서 존중과 다른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는 인권의식 이다. 그가 국회의원의 역할보다는 힘을 가진 자로서 권력행사에 관심이 있고, 시민의 권리는 무시해도 된다는 비상식적 사고를 갖고 있다고 단정할만하다.

교원단체 가입명단 공개가 알 권리라고?

인권을 침해하면서까지 명단을 공개한 조 의원이 근거로 내세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알 권리’이다. 법원이 “교원의 교원노조 가입은 업무 외적인 영역의 개인 정보”로 “전교조 명단 공개는 개별학생이나 학부모의 학습권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며 명단공개 금지 판결을 내렸음에도 부모들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그는 주장한다. 또한 조 의원 측의 행위를 지지하는 보수 일각에서는 ‘전교조 가입 교사만 공개한 것이 아니라 다른 교원단체도 공개했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이야기 한다. 이러한 논리는 마치 조 의원의 행위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알 권리를 보장하는 행위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숨겨진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누가’, ‘무엇 때문에’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인가를 되물어야 한다.



조 의원의 그간 행적과 발언, 조의원의 공표행위를 지지하는 보수단체의 논거를 통해 그의 의도는 쉽게 드러난다. 그동안 조 의원은 『전교조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라는 책 출판, ‘자유주의교육연합’이라는 단체의 대표로서 활동하였다. 2008년에도 교육 분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나는 우파이고, 우파인 것이 자랑스럽다"면서 당시 교육부장관이 개인의 인권문제가 있다고 답변했음에도 교원노조 명단 실명 공개를 주장하였고, 전교조가 그동안 정부 정책에 협조적이었나를 질의하였다.

교원단체 가입 교사 명단공개를 지지하는 보수적인 단체의 성명에도 이번 공개를 ‘전교조 명단 공개’로 한정하여 해석하고 있으며, 나아가 이번 공개가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통제수단이 될 거라고 이해하고 있다. 4월 21일 방송개혁시민연대는 성명서에서 “지난 정권 전교조가 학생을 대상으로 노골적인 친북, 반미, 반정부 교육을 실시한 것은 온 국민이 다 아는 내용”이라며, “명단 공개의 사회적 논란의 발단은 이렇듯 법원과 국민의 전교조에 대한 상이한 판단이 전제돼있다”고 밝혔다.

이렇듯 알 권리를 주장한 맥락은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인 행위가 아닌 노골적인 ‘전교조 가입 교사들에 대한 공격’을 목적으로 한다. 사실상 노조가입이라는 ‘권리행사’를 문제 삼고 있다. 명단 공개가 알 권리 보장이 목적이라기보다 특정 노조 가입에 대한 반대를 위해 행해진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교사들의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

또한 보수언론의 강한 영향력으로 전교조에 가입되었다는 이유로 교사들이 교직원이나 학부모에게 공격받을 수 있는 현실이 걱정스럽다. 이번 공개로 인해 교사 개인이 위협받는다면 큰일이다. (친절한 동아일보의 서비스로 개개 교사에 대한 공격 가능성은 넓어지고 있다.) 노조에 가입하거나 참여할 권리로서 결사의 자유는 헌법에도 보장된 권리이며, 특정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결사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알 권리와 정보공개

알 권리는 국민이 자신의 이해와 인권에 연관된 정보를 제대로 알 수 있도록 보장한 권리이다. 정보접근을 포함한 알 권리는 다른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실제 정부기관이나 공적 기관, 공적 인물의 행위나 정책은 시민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부기관이 어떠한 일을 했고, 어떠한 정책방향을 세웠는지, 돈은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이러한 사안에 대한 알 권리가 차단된다면,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인권을 침해하는 정책이나 집행에 대해 입하나 뻥긋 못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알 권리가 보장되고 많은 공적인 정보가 공개되어야 정부의 주요 행위나 정책에 대해 지지하거나 비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것은 그동안 정부의 교육정책에서 배제되었던 시민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정부 정책이나 교육예산 집행 내역, 사교육 비리, 뇌물을 받은 비리 학교 교장, 교육감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그저 개별 교사들이 어느 단체에 가입했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명단을 공개했을 뿐이다. 개인정보 보호와 알 권리는 긴장관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보공개를 할 때는 ‘공익적 목적’이 분명해야 하며, ‘본인의 동의’와 ‘정보이용에 대한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공개는 최소한의 공익적 목적(가령, 비리교사 공개를 통한 징계 등)도 없이 조 의원의 평소 신념인 전교조 없는 세상을 만들려는 ‘사익’을 달성하려고, ‘교사 당사자들의 동의 없이’ 진행되었다.

그동안 정작 필요한 알 권리에 해당하는 정보는 공개되고 있지 않다. 한 예로, 지난 3월부터 경북지역에서 시민사회가 교육 비리에 연루된 교장․행정실장․교육 관료들의 명단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으나 교육청은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보접근권은 제한된 영역에만, 그것도 정부여당의 정치성향이나 정책과 다를 때에만 보장된다면 이는 알권리라고 칭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이번 공개는 알 권리라기보다는 ‘반정부성향 파악 목적’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결사의 권리도 딱지를 붙여 빼앗고

이제 결사의 권리는 ‘전교조 아닌 노조’에 가입할 때만 존재하는 것이 되었다. 교사들이 헌법과 각종 국제인권규약에 명시된, 모든 시민의 권리라는 노조가입의 권리를 행사하려면, 행사하고 싶다면, ‘전교조’가 아니어야 한다. 2010년 한국에서는 노동권 중의 하나인 노동조합(단체)가입의 권리를 행사하는 일조차 검열당하고 감시당하고 있다. 유엔 대표적인 인권기구인 자유권위원회 및 사회권위원회는 전교조와 공무원의 노동3권을 보장하라는 권고를 수없이 했으나 한국정부는 이행하지 않고 있다.

조 의원의 노림수는 평소 막돼먹은 신념에서 비롯된 일이기도 하지만, 6월 지방선거와 교육감선거에서 보수층 지지를 모으려는 행위일 뿐이다.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입시경쟁 위주의 학교가 변하기를 꿈꾼다는 이유로 정부는 전교조에 빨간색을 덧칠하였다. 이제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교육의 지향’에 대해서 생각하고 논의하기보다는 ‘전교조냐, 아니냐’를 먼저 판단하게 논쟁 프레임을 바꾸려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명단 공개는 교사들의 권리 침해이기도 하지만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다른 교육을 상상할 권리도 제한한다.

최근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과 초중고 무상급식 필요성이 많은 시민에게 공감 받으면서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 내가 꿈꾸는 학교생활은 무엇인지?’, ‘내 자녀가 어떤 교육환경에서 자라면 좋은지?’를 생각했다. 한국은 고등학생 대학 진학률 85%이지만 대학을 졸업해도 88만원 세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라는 점에서, 이 시대의 입시교육과 경쟁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심을 품고 있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성찰을 무(無)로 돌리는 논쟁 프레임 바꾸기 시도는 우리 사회의 변화가능성을 축소시킨다. 언론과 보수 일각에서 입시교육과 경쟁을 당연시하는 것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전교조 공격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다른 교육’을 꿈꿀 권리를 박탈하는 일이기에 우려스럽다.

덧붙이는 글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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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199 호 [기사입력] 2010년 04월 22일 22:3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