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청소년인권운동과 아수나로의 상황에서 - 대중조직이란 무엇인가

공현 2010. 9. 23. 15:31



아수나로의 이예반님이 아수나로는 대중조직이 아니냐고 물어보신 글에 대해 답한 글;
혹시 그럼 전에 제가 썼던 '문제는 조직화다'라는 논지의 글이랑 이 글이 서로 상반되지 않냐, 라고 말하실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문제는 조직화다'는 포괄적, 원론적 차원에서 조직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한 글이었고
또 지금 쓴 이 글은 아수나로가 당장 조직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대중조직적인 모델로 조직화를 하긴 어렵다는 것이지요 @_@;









1. 대중조직이란 무엇인가


대중조직은 단순한 대중화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는 것과는 구분되어 다르게 쓰이는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참여연대라거나 환경운동연합 등은 대중들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지만 대중조직이라고 하기는 어렵죠. (뭐 그렇다고 딱 활동가조직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지만.)
또,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는 대중조직이라고 하지만, 그 대중조직의 의미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는 의미에서 대중조직이 아닙니다.

대중조직은, 쉽게 말해서, '현장'에서부터 상당수의 대중(여기서 대중은 불특정 다수일 수도 있지만, 특정 다수 - 노동자, 여성, 농민, 청소년, 대학생 등등 - 인 경우가 많습니다.)들이 조직되어 있는 형태의 조직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노동조합들의 총연맹 같은 거겠죠. 일하는 노동 현장에서부터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그 노동조합들이 모여서 총연맹(민주노총, 한국노총 등)을 만듭니다. 금속노조나 전교조 같은 산별노조, 분야별노조들도 대중조직의 모습입니다.

정당들도 원칙적으로는 대중조직입니다. 지역 당협(과거 지구당)을 통해 지역 기반의 조직들을 꾸리지요. 한국의 거대정당들은 대중조직적인 면이 좀 약한 경향이 있고 대중조직보다는 혈연이나 지연이나 학연 등에 더 영향을 받는 부분도 있고, 정당 내적으로는 비민주적이고 상층 정치인 중심적인 면이 있지만... (-_-) 원칙적으로는 정당도 대중조직의 형태이지요.

(※ 글을 쓰다보니, 대중조직과 활동가조직의 중간 어디쯤에 '회원조직'들을 둘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예를 들어 여성민우회는 활동가조직처럼 움직이지만 다수의 여성 회원들이 있고 또 이 회원들이 활동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 대중조직과 활동가조직, 회원조직 등의 규정은 완전히 엄밀할 수는 없어요. 어느 정도 개념이 있고 그 개념 중 어디에 가까운지, 아니면 어디를 지향하는지를 판단하는 거죠.)

 대중조직의 가장 큰 장점은, 활동을 할 때 그 생활의 현장(일터, 학교, 지역 등)에서부터 활동을 펼쳐나갈 수 있고 또 현장의 조직들을 이용하여 많은 수의 사람들을 활동에 참여시킬 수[동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아수나로가 왜 대중조직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나


청소년(인권)운동에서 대중조직 만들기는 학교 조직이냐 지역 조직이냐 뭐 이런 논의도 있지만, 일단 그 이야기는 패스하고...
일단 제가 왜 아수나로가 대중조직에 적합하지 않다고 이야기했는가, 하는 배경을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따이루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① 청소년인권운동으로서의 발달
역설적이지만 청소년인권운동이 발달한 것 자체가 아수나로의 대중조직화를 막습니다. 이건 저번 총회에서 "운동의 성과는 없이 담론만 발전했다."라고 평가했던 것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요.
주장의 수위 자체가 높아진 부분도 문제가 되긴 하겠지만, 더 문제가 되는 건 주장/사고방식의 방대함이나 청소년인권 주장이 포괄하게 된 범위의 문제입니다.
쉽게 말해서, 처음에 아수나로에 들어온 사람이 현재 아수나로에서 잔뼈가 굵은 활동회원들의 청소년인권에 대한 주장이나 사고방식을 쫓아오기 위해서는 꽤 많은 양의 공부나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이 주장하는 담론이 학교나 교육에 국한되지 않고 노동, 정치, 가정, 그밖에 사회구조 전반으로 확대되어 있는 현실에서는요.
물론 아수나로는 지금보다 더 이런 주장을 좀 더 대중화시키고, 새로 들어오는 회원들이 더 쉽게 이런 생각들에 익숙해지고 익힐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하지만 문턱을 아무리 낮추어도 거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추가적인 문제는, '청소년'운동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다수 청소년들은 충분한 여가시간을 가지고 있지도 못할 뿐더러, '청소년기'라는 건 (초등학교고학년대부터 쳐서) 길어야 8년, 짧으면 5-6년 정도입니다. 좀 더 긴 시간을 들여 회원들을 교육할 수 있고 운동에 대한 이해와 생각들을 넓고 깊이있게 공유할 수 있는 다른 운동과는 다른 청소년운동 특유의 문제점이죠 -_-;;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인권)운동이 대중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좀 더 주장을 압축하고 단순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학생인권과 교육정책 문제로만 딱 한정한다거나, 노동이나 정치적 권리로만 딱 한정한다거나 해도 대중조직을 만들기는 꽤 벅차요.


② 운영방식 또는 인적 구성
아수나로의 운영방식이나 인적 구성도 문제가 되는데요. 예를 들어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지향하고 모두에게 활동회원적인 관심과 역량을 요구하는 운영방식은 대중조직에 별로 적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이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사실 이런 다소 꼬뮌적/아나키즘적인 운영으로는 대중조직 구성은 쉽지 않아요. 수가 늘어나면 다시 그 조직의 단위를 작게 쪼개고 쪼개서 유지시킬 수도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거대해진 전체 조직을 원활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최소한 대의원 같은 형태의 제도는 필요할 수밖에 없겠지요.

어쩌면 여기서는 인적 구성의 문제가 더 클 수도 있는데, @ 활동회원들의 성향  @ 탈학교 청소년 또는 비청소년 활동가의 비율 이 두 가지가 인적 구성에서는 핵심이 되겠지요.
활동회원들의 성향이라는 것은 운영방식에서 좀 더 개인적이고 수평적이고 탈권위적인 형태를 지향하는 성향 자체라거나, 대중조직화에 적합하기보다는 좀 덜 대중적인 (-_-) 왕따스런 인간들이 많다는 거려나요. 이 활동회원들의 성향은 길게 봐서 개선 가능하지만, 지금 당장은 쉽게 바꿀 수 없는 요소입니다.
그리고 뭐 저는 100% 동의하지는 않는데... 따이루는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회원들 중에 탈학교 청소년이나 비청소년 활동가들의 비율이 늘어나는 것 자체가 청소년 대중조직을 만드려고 할 때 어려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슈를 잡는 문제도 그렇고 활동 공간 - 생활 공간의 문제도 그렇고.


③ 지금까지 쌓여온 아수나로의 이미지 등
이것도 장기적으로 볼 때는 개선 가능하지만 바꾸기 어려운 요소 중 하나입니다만-
아수나로가 지금까지 쌓아온 이미지의 문제가 있겠죠.
여기서 쌓아온 이미지라는 건 운동사회 안에서의 이미지나 대중적인 이미지나 모두를 지칭합니다만- 실질적으로는 운동사회 안에서 이미지가 좀 큽니다. 왜냐면 대중적인 이미지는, 뭐 아수나로가 대중적으로 노출되었던 적 자체가 그리 많지 않고 굉장히 얄팍하고 좀 포괄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거라서, 바꾸려고 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운동사회 안에서의 이미지는, 아무래도 지난 5년 동안 형성되어온 거라서 바뀌기 쉽지 않죠-;
일단 아수나로의 까칠한 이미지, 인권감수성이 높고, 어른들에게 고분고분하기보다는 개기고 발칙한 이미지는, 뭐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지를 받을지 몰라도, 운동사회 안에서도 넓은 지지와 후원을 얻기는 쉽지 않아요. 왜냐면 운동사회 안에도 주류는 꼰대들이거든욬ㅋㅋㅋㅋㅋ ㅠ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촛불 때 있던 전청련이나 10대연합이나 촛불소녀 같은 촛불청소년들의 이미지가 운동사회 안에서 지지나 후원을 얻기는 쉽겠지요. 그리고 대중조직 만들기는 지금으로서는 그런 지지와 후원 없이는 참 난망한 부분이 있습니다.
(돈이라거나, 돈이라거나, 돈이라거나, 장소라거나)


(※ 추가로, 따이루는 전국 조직으로는 일단 현재 대중조직 출발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_@;)



3. 그럼에도 왜 아수나로가 필요하냐구?

이 이야기들이 사실이라면, 아수나로가 대중조직으로 바로 발전하기 어렵다면, 대체 아수나로의 역할은 뭘까요?
청소년인권운동의 전국 대중조직을 지향하며 출발했던 아수나로의 현재가 이렇다면, 아수나로의 비젼은 무엇일까요?

먼저 제가 앞서 한 이야기는 아수나로가 지금 바로 대중조직으로 발전/전환하기 어렵다는 것이지, 아수나로가 대중조직 만들기에 보탬이 되거나 대중조직의 기반이 되지 못한다는 건 아닙니다. 사실 아수나로가 지금까지 전국 여러 지역에서 해온 일들이나 활동회원들을 계속 만들고 늘려온 것, 주장하고 청소년인권의 목소리를 내온 것 자체가 청소년인권운동의 대중조직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꼭 필요했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앞으로도, 아수나로 활동을 딛고서 대중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좀 더 길게 한 10년 후를 본다면, 아수나로나 청소년운동의 조건이 여러 모로 달라져서 아수나로가 바로 청소년대중조직으로 발돋움하려고 할 수도 있겠죠. 그건 제가 예측하기도 어려운 영역이고... 예측을 내놓는다고 해도 많은 논쟁이 필요한 부분이니까 여기선 생략;;)

결과적으로 이런 한계들이 있더라도, 저는 아수나로가 지난 5년간 해온 활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아니,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수나로는 첫 시작에서부터 청소년인권운동의 이론과 기반을 다질 것과 전국 대중 조직을 만들 것을 주문받았어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둘 모두를 아수나로가 맡아서 한다는 게 세부적으로는 어떤 부분이 모순적이었고 어떤 부분에 한계가 있었나... 평가해볼 수도 있을 텐데요. 그건 이렇게 혼자서 글을 끄적이기보다는 여럿이서 수다를 떨면서 해보고 싶네요 ^^;;

여하간 아수나로를 대중조직으로 전면 개편하려고 하지 않고 별도로 대중조직을 추진하려고 하는 건, 청소년인권운동에서 아수나로의 역할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겁니다.(제...제가 추진하는 게 아니라서 100% 장담은; 제 견지에서는 이렇다는 거지요.) 청소년인권운동으로서 폭넓고 깊이 있는 관점과 내용들을 유지하고, 적극적이고 활동력 있는 활동가들을 만들어내고, 조직화와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은 계속 누군가가 해야 하니까요.
별도의 대중조직을 추진한다고 해서 그게 아수나로와 충돌하거나 배치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뭐 아니면 대중조직 추진과는 별개로 거기에 자극받아서 아수나로의 대중조직화를 추진해보셔도...(??) 그리고, 그렇게 추진한 대중조직 사업이 실패한다고 해도, 그건 그 나름대로 성과가 남는 거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현재 시점에서 아수나로의 형태는, 직접적으로 스스로 대중조직이 되지는 못하지만, 청소년인권을 대중화시키고, 좀 더 폭넓게 (약간은 대중적인) 회원조직 같은 느낌으로 운영되는 거예요. 너무 활동가조직스러운 것도 아니고 말이지요.
아니면 만약 대중조직이 꾸려진다면 그 안의 의견그룹[정파]이 될까요? ㅎㅎ;;;;

물론 이런 구상은 사회적 조건이나 청소년인권운동의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할 거고, 또 아수나로에 대해 다른 회원들이 가진 생각들에 따라서도 달라질 겁니다 ^^;



추신 : 그래서, 여하간, 요컨대, 대중화랑 대중조직화는 다른 문제에요.
민주주의 담론은 대중화되어 있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대중조직화는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욜 -ㅂ- 환경 담론은 꽤 대중화되어 있는 편이지만, 환경운동을 위한 대중조직화는, 뭐 지역 기반으로 좀 되어 있긴 하지만 그렇게 강하게 되어 있진 못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