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비어 있는 책꽂이로부터 어떤 친구를 떠올리며

공현 2010. 9. 26. 03:08

비어 있는 책꽂이로부터 어떤 친구를 떠올리며


  지금도 내 책꽂이에는 넉넉잡아 50권은 되는 일본 라이트노벨들이 꽂혀 있지만,(현재 사는 서울 집과 대구 부모 집 포함해서...) 과거 내가 모은 라이트노벨은 거의 80-90권 정도에 이르렀었다. 내 라이트노벨 30-40권을 먹고 하늘나라로 튀어버린 녀석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공백이다. 결국 지금 와서 어느 라이트노벨(예를 들면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이라거나...)이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 때에도, 혹시 그 책이 그 녀석에게 준 그 30여권들 중에 있었다면, 나는 책장에서 가볍게 그 책을 뽑아 화장실에 가거나 잠이 안 오는 어느 명절 밤을 보낼 수가 없게 되었다.

  그 친구는 나랑 같은 고등학교 만화동아리에 있던, 나보다 1학년 늦게 들어온 남자 녀석이었다. 그 인간은 전교에서 가장 독특한 인간들을 모아놓은 집단 중 하나였던 만화동아리에서도 단연 그 독특함이 수위를 달렸었다. 일단, 오타쿠에 기독교도였으니까 말이다. 그것도 보통 기독교도가 아니라 매-우 독실하고 "내 삶은 하나님에게 바쳤어."라는 닭살돋는달까 엄숙하달까, 그런 말을 진지한 얼굴로 진심을 담아 수차례 말할 수 있는 그런 기독교도였다. 그 녀석은 곧잘, 자기 주체성이나 자유는 없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삶만 있다고도 말했다. 학교에서 특별 과제 같은 걸로 내준 자유주제 논문을, 로리콤(로리타 컴플렉스) 문화에 대한 연구를 가지고 써내는 독실한 기독교도 오타쿠라니. 이건 뭔가 존재만으로도 세상에 금이 가는 느낌이랄까.

  대체로 독실한 기독교도들과는 상성이 잘 안 맞을 때가 많은 나이건만,(아, 빨갱이-좌파-인권운동가 기독교인들은 예외다.) 그 녀석이랑은 은근히 잘 어울려 다녔던 것 같다. 대화도 많이 했고, 서로 책도 많이 빌려줬고. 같이 다니기도 좀 다녔고. 그렇다고 내가 걔를 좋아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던 것 같다. 성격적으로나 취향적으로나 안 맞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럭저럭 같이 있으면서 깊은 속내를 털어놓을 정도까진 아니어도 이런저런 주제로 토론을 한다거나 시간을 때울 정도의 친분은 있었다. 사실 나는 '신앙'에 대한 토론까진 아니어도 신학/철학적 주제에 대한 토론 같은 것을 열어놓고 할 수 있고 나에게 전도하려고 하지 않는 그런 기독교인이라면 그리 싫어하진 않는 것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오히려 그 녀석 쪽에서 나를 약-간 좋아하지 않았나 싶긴 하다. 항상 나를 "윤종 군"이라고 부르면서 조금 신기해하는 것 같은 눈초리로 관심을 보내왔고 때로는 좀 따라다니는 것 같기도 했으니까. 일단 그 녀석도 지독하게 자기 중심적 인간이라서 주위에 그 녀석을 싫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만화동아리 사람들, 그리고 만화동아리 사람들 중에서도 별로 자기를 싫어하는 티를 내지 않는 나랑 어울려 다닌 것 아니었을까.

  그 녀석은 음, 정확한 이유는 기억이 안 나지만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나한테 라이트노벨 몇 종류를 지정해주면서 미국에 가면 이메일로 주소와 보내는 법을 알려줄 테니 보내달라고 했다. 빌렸다가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돌려주겠다면서. 그렇게 2번인가 3번인가를 국제 소포로 대략 10권, 15권 정도씩을 라이트노벨을 바리바리 싸서 보냈다. 물론 착불로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순 없고 또 국제 소포도 낯설어서, 그냥 인심 쓰는 셈 치고 내가 내 돈 내고 보내줬고, 그때마다 그 녀석은 이메일로 고맙다는 답장을 꼬박꼬박 보내왔다. 나도 그 녀석도 붙임성이 그리 좋진 않고 좀 '차가운' 인간들이었기에 주고받은 연락은 그렇게 서로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최소한의 내용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문자 메시지로 만화동아리의 다른 사람에게서 그 녀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국에서 사고로 물에 빠져서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그다지 슬퍼하지는 않았고, 또 애도나 추모의 뜻을 표하지도 않았다. 이미 자기 삶은 하나님에게 바쳐져 있으며 하나님에게 속해있다고 하던 녀석이라면, 그렇게 죽었다고 해도 별로 스스로의 죽음을 슬퍼할 것 같진 않아서였다. 물론, 나는 몹쓸 유물론자라서 사후세계나 하나님 같은 건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 녀석이 그런 걸 진심으로 믿었고 또 내가 그 녀석의 믿음, 신념, 사상, 이런 것들을 존중한다면 굳이 그 죽음을 애도하거나 슬퍼해줄 이유는 무어란 말인가. 일부러 죽거나 삶을 포기할 녀석도 아니었지만, 죽어버린 마당에 거기에 미련을 가질 녀석도 아니었다. 나 또한 그 녀석을 다시 못 만나게 된 것이나 그 녀석에게 빌려준 30여권의 라이트노벨들을 돌려받을 길이 묘연해진 것은 매우 아쉬웠지만 말이다.

  나에게 그 녀석이 죽은 소식을 알려준 사람에게서 내가 슬퍼하거나 애도하지 않았다는 걸 전해 들은 다른 사람(역시 같은 만화 동아리의, 나보다 입학은 늦은 사람이다.)이 나를 비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었다. 내가 비인간적이고 차갑다는 게 대략 그 요지였지만- 글쎄 오히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한 건 내 쪽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인간이 다른 사람의 죽음에 슬픔이나 괴로움을 느끼는 건, 그 사람을 다신 못 만나고 다신 관계맺을 수 없게 되었다는 이별, 그 사람이 죽고 싶지 않아 했을 텐데 죽었다는 데서 오는 안타까움, 그리고 다른 사람의 죽음에서 '나도 저렇게 죽을 수 있겠구나'라는 공포, 뭐 이런 것들 때문 아닐까. 나는 그 녀석의 죽음 앞에서, 이 중에 이별에서 비롯된 감정만 느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그 녀석을 알던 한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였다.


  어쨌건 내 라이트노벨 컬렉션(이라기에도 좀 민망한 수준이지만)에서 비어 있는 30여권은, 본의 아니게 그 녀석을 위해 바쳐진 30여권이다. 분명히 내가 사서 읽은 기억이 있는데 다시 읽어보려고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라이트노벨은 아아 그 녀석에게 보냈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책꽂이의 공백이 그 녀석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 녀석이 죽은 후에 그 가족들이 그 라이트노벨들을 어떤 식으로 처분했을지는 모르겠다. 가족 중에 오타쿠가 없다면 버려지거나 소각되거나 헌책방 같은 곳에 팔렸겠지. 만약에 사후세계라는 게 있다면, 내가 죽고 나면 대출해간 30여권에 대한 연체료는 확실히 물라구. 하림 시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