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참을 수 없는 체벌 논의의 가벼움 - 체벌 금지, 대안이라거나

공현 2010. 11. 8. 15:30



참을 수 없는 체벌 논의의 가벼움
- 체벌 금지, 대안이라거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공현



서울, 경기 등부터 시작해서 체벌 금지가 속속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십수년 동안 이어져온 체벌 반대 운동이 맺은 성과라는 생각에 조금은 기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체벌 금지에 대해 공격하고, 대안이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체벌은 금지되었는데 그걸 대체하는 '상벌점제'(그린마일리지, 생활평점제)가 더 힘들다고 호소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뭐 이미 체벌이 왜 금지되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숱하게 다루어왔으니, 이 글에서는 체벌 금지가 지향하는 그 의미랄까, 체벌의 대안이랄까, 그런 이야기를 짧게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원론적으로 : 체벌과 체벌 금지 사이



체벌과 체벌 금지를 다루면서 교육관료들(쉽게 말해 교육청 공무원들이라거나, 교장 교감이라거나, 아니면 때로는 교육감이나 교사들 등도...)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는, 체벌을 단지 일종의 '행위'로만 본다는 것입니다. 즉 그 사람들은 곧잘 이 문제를 '때리느냐 안 때리느냐', '기합 주느냐 안 주느냐' 정도의 문제로만 봅니다. 그 결과 체벌 금지를 앞두고 "그럼 때리는 것보다 더 약발이 잘 받는 통제 수단이 뭔가?"에 골몰하는 것, 지금 그들이 말하는 '체벌의 대안' 논의입니다.

그러나 체벌과 체벌 금지 사이의 차이는 단지 '때리느냐 안 때리느냐'의 차이가 아닙니다. 그 사이에는 좀 더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체벌은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통제할 대상으로 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자발적으로나 주체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학생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행동에 대해 칭찬을 해주거나 보상을 해주면 이 행동이 좋은 행동이라고 학습하고, 그 행동에 대해 벌을 주거나 고통을 주면 이 행동이 나쁜 행동이라고 학습한다는 식입니다. 교육은 사회화가 덜 되어서 뭐가 좋은 행동이고 나쁜 행동인지 구별할 줄 모르고 좋은 행동이 몸에 배지 않은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질서를 지키도록 사회의 틀 안에 넣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벌', '고통'으로 체벌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게 필요하구요.
(대개 이런 걸 '행동주의'라고 하는데요. 뭐 행동주의의 이론이나 방법론이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고 행동주의가 딱 이런 내용인 건 아닙니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행동주의를 극단적으로 적용한 거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_-)

체벌을 반대하면서 학생들의 인권 보장을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학생들을 좀 더 주체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육은 힘과 지식과 도덕을 가진 교사가 미성숙한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사회 속에 살며 삶의 과정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스스로 인격적으로나 지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육은 학생들의 그러한 성장을 도와서 학생들이 더 좋은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비고츠키이론 등등) 이러한 관점에서는 학생들의 자발성과 참여가 좀 더 중시됩니다.


이에 따라 교육 방식에서도 차이가 생깁니다. 체벌을 옹호하는 쪽은 교육에서 어떤 가치관이나 지식을 주입하는 게 좋다고 믿습니다. 배우기 싫어하는 학생에게도 강제로라도 지식을 외우게 해야 합니다.(한국에서는 입시를 위해서인 경우가 많지요.) 그런 과정에서 체벌 등의 폭력이 동원되겠지요.
반면 체벌을 반대하는 쪽은 어떤 가치관이나 지식을 주로 경험하고 참여하는 활동을 통해서 익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믿습니다. 교육에 참여하기 싫어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이 필요성과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설득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체벌을 얼마나 중요하게 보느냐 자체 또한 이러한 교육적-철학적 입장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체벌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체벌은 여러 가지 '벌' 중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어쨌건 학생들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고통을 느끼고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부적강화'나 '처벌'의 수단이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체벌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학생들이 체벌에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에 더 주목합니다. 체벌을 당하거나 혹은 체벌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는 학생들은, 체벌로 인해서 사람의 몸에 대한 존중이 약해지고 폭력에 익숙해지며 자존감이 낮아집니다. 때문에 어떤 교육적 목적을 위해 체벌을 하든 체벌은 반교육적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보면 오히려 체벌을 '중요하게' 보는 사람들은 체벌을 반대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 체벌의 대안?



체벌의 대안을 이야기할 때는 이러한 교육철학적인 문제의식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예컨대 상벌점제는 앞서 이야기한 체벌을 옹호하는 입장의 철학이 반영된 대표적인 제도입니다. 학생들을 '상점'과 '벌점'으로 통제하고 학습시키겠다는 거지요. 자기 행동의 의미 등은 생각하지 않고 단지 행동이 점수로 환산되는 비교육성이나 사소한 규정 위반들이 누적되어서 퇴학까지 이를 수도 있는 제도라는 점에서 상벌점제의 폐해는 이미 여러 번 지적되었습니다.

체벌이 없어졌지만 체벌을 대체할 만큼 학생들에게 공포와 폭력을 행사하는 다른 수단이 들어선 학교. 이건 전혀 '대안적인' 모습이 아니고 체벌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원하는 학교의 모습도 아닙니다. 그럼 체벌의 대안은 무엇일까요?


중장기적인 대안은 사실 그동안 여러 차례 제시되었습니다. 학급당 학생수를 줄여야 한다든가, 입시교육이 아니라 좀 더 학생들의 삶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든가, 수업시수를 줄인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지요. 굉장히 중요하고 또 필요한 이야기인데도 왠지 '비현실적인' 주장 취급 받는 것 같습니다만. 이런 대안은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결코 무시해선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일단은 지금 당장의 요구에 따라 더 구체적이고 단기적인 대안을 이야기해봅시다. 우선 체벌이 일어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뭘까요? 중고등학생들의 경우 2010년 수도권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참교육연구소가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체벌의 주된 이유(복수응답)로 "과제나 수업태도"가 56.8%, "두발복장문제"가 41.0%, "지각/결석"이 33.2%가 나왔습니다. 사실 두발복장 문제나 지각 문제 등은 '어떻게 처벌하냐' 차원이 아니라 반인권적인 두발복장규제를 폐지하고 등교시간을 좀 더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조정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됩니다.(-_-) 학교 생활규정이 최소한의 인권을 존중하는 내용으로 개정되기만 해도 체벌의 절반은 없어질 겁니다.(또한 같은 조사에서 학교의 생활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중고등학생들 중 53.4%가 규정이 학생들의 생활 실정과 맞지 않아서 그렇다고 답했다지요.)

여하간, 이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체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역시 수업 운영인 걸 알 수 있습니다. 즉 수업 중에 떠들거나 수업에 잘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과제 포함)을 어떻게 할 것이냐 라는 점이지요. 두발복장규제 등이 없는 초등학교의 경우는 특히 수업 운영이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체벌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뭐 수업 중에 떠들어서 다른 학생의 학습권까지 침해하는 학생들을 어떻게 할 거냐고 이야기하곤 하지요.


*
일단, 그 대안은 어렵지 않습니다. 애초에 체벌 문제를 단기적으로 풀기 어려운 건, 모든 학생들이 그 수업에서 담당 교사의 감독과 통제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그 고정관념을 버리면 대안이 보입니다. 하루 중에 최대 몇 시간 정도는 학생들이 자기 컨디션이나 상태에 따라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게 하는 것입니다.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은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다른 대체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수업 중에 한두 번 떠들거나 잠시 수업에 잘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의 경우까지 모두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정 그날 그 수업에 참여하기 어렵고 싫은 학생들만 선택하는 겁니다. 사실 학생들이 일부러 악의적으로 수업을 방해하고 싶어서 수업 시간에 꾸역꾸역 교실에 남아서 떠들거나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학생들은 거의 없습니다.(-_-)

이렇게 하면 학생들이 다 싫은 수업은 듣지 않을 거라구요? 일단은 한 수업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학생들의 수를 제한하거나 시간을 제한하는 등의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어느 학생이 이 제도를 이용해서 반복적으로 특정 수업을 듣지 않는다거나 너무 많이 수업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 학생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상담을 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일입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는데 강제로 수업에 참여하도록 한다고 해서 그 학생이 그 내용을 배울 것 같나요? 떠들거나 딴짓을 하겠지요. 만일 그 수업의 방식 등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 그 수업이 좀 더 학생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참여하고 싶어지도록, 학생들과 같이 이야기해서 수업을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교사들에게 점수를 매겨서 줄 세우는 교원평가제 따위보다 이게 수업 개선에 훨씬 효과적일 겁니다.)

대체교육 프로그램은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체육활동 혹은 예술활동을 하거나, 시사적인 내용에 대해 토론하거나, 인권교육이나 놀이교육을 하거나, 사회적인 문제 해결 능력, 민주적 운영 능력 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들을 마련하면 됩니다. 수업 진도를 잘 못 따라가서 이해가 안 가서 흥미를 잃은 학생이라면 보충 수업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요. 이런 대체교육 프로그램에조차 참여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은 하루에 1시간 정도는 휴게실에서 쉬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쉴 수 있게 하면 됩니다.

아니면 정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은 상담교사와 면담하거나 상담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겠지요. 실제로 2010년 참교육연구소 조사에서 교사들은 68.9%가 "학생에게 맞춘 특별교육, 전문가와의 상담 및 치료"가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있어 체벌을 대체하는 좋은 지도 수단이라고 답했습니다.

이건 그렇게 어려운 대안도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필요한 건 여분의 교실 3-4개와 교사 수를 좀 더 늘리고 외부 강사를 고용하면 됩니다.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예산을 편성하고 추진하면 몇 개월이나 1년 안에 자리잡을 제도입니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휴게 제도"라고 해도 좋고, 학생들이 마냥 쉬고 노는 것 같아서 이런 이름이 싫은 분들은 "대안교실제도" 뭐 이런 식으로 이름 붙여도 좋습니다.

 여기서 좀 더 근본적인 대안이 되려면 학생들이 자기 시간표를 직접 의견을 반영해서 짤 수 있도록 하고 매년마다 커리큘럼을 만드는 데도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만드는 등의 내용이 들어가야겠죠. 학교에 있는 시간 자체를 줄이거나요. 아니면 교과 지식 전달보다 이러한 사회적으로 서로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조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한 교육라는 믿음으로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방해하는 학생들의 욕구와 수업을 듣고 싶어하는 학생들 사이에 즉석 토론/회의/협상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자율적인 교실 정도는 되어야 근본적 대안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이건 그냥 "지금과 같은 수업과 학교 시스템을 크게 바꾸지 않는 속에서 어떻게 수업에 참여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을 교육적으로[인권적으로] 지도하고 관리할 것인가" 정도 수준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이미 이와 같은 사고방식에서 출발한 제도들은 드물지 않습니다. 예컨대 미국의 한 학교에서는 수업 중에 수업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학생들은 제한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에 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올 수 있습니다. 핀란드 같은 곳은 수업 중에 딴 짓을 해도 처벌 대상이 되지 않고, 수업이 어렵거나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 등은 특별지원교육을 받거나 대체 프로그램을 받기도 합니다.(책 『핀란드 교실혁명』을 통해 수학 수업 시간에 뜨개질을 하는 아이 등등 여러 모습이 알려져 있죠.) 애초에 중고등학교인데도 자기 수업 시간표 자체를 학생들이 스스로 편성하면서 중간에 쉬는 시간을 두거나 하는 나라들도 얼마든지 있어요.
(사실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이 세계 최장시간을 기록하는 한국적 상황의 특수성부터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체벌의 대안으로 발표한 '성찰교실제도'도 기본 취지로는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저는 이 성찰교실제가 좀만 교사들 눈밖에 나는 학생들을 가둬두고 격리시키는 용도가 될까봐 우려하고 있지만요. 하지만 어쨌건 "1명의 교사가 이 반의 모든 학생들을 책임져야 하고 수업에 강제로라도 참여시켜야 한다"라는 생각을 깨는 방향이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글은 '성찰교실'을 처벌의 의미가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원해서 갈 수 있는 곳, 그리고 가서 그냥 갇혀 있다가 오는 곳이 아니라 유익하고 재밌는 대체 교육 프로그램을 받는 곳으로 바꾸자고 제안하는 셈입니다.
(근데 성찰교실을 운영하면 교장, 교감 등이 학생들을 책임지는 게 늘어나는데, 이를 꺼려하는 교장, 교감 등은 성찰교실제는 별로 안 좋아하고 상벌점제로 때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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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보충할 다른 대안으로 학생 자치의 활성화 같은 것도, 의외로 단기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학생 자치는 추상적이고 원칙적 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학생들의 자치적인 질서를 의미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이미 지금 교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만, 수업 시간 중에 과도하게 떠들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에 대해서는 다른 학생들이 제지하거나 화를 내곤 합니다. 말하자면 자신들의 '학습권'을 적극적으로 지키려는 모습일까요?

학생 자치를 통해서 학생들의 민주적 조직화가 이루어진다면, 어느 정도 일탈적인 학생들은 학생들 내부에서 억제시키는 풍토가 뿌리내리게 됩니다. 학생들이 무력하게 자기 권리를 침해당할 때도 교사가 해결해주길 바라며 침묵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힘을 가지고 자기 권리를 지켜나가는 능력을 가지고 그런 문화가 자리잡히면 학교 현장에서 문제 해결은 쉬워질 것입니다. 학생들은 학교나 교사의 인권침해에 대해서도 저항하고 바꾸려고 하겠지만, 동시에 같은 학생끼리의 인권침해나 불합리한 행동에 대해서도 저항하고 제지할 테니까요. '폭력'을 독점한 소수의 교사가 수백명 수천명의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통제하고 지배해야 한다는 관념은 학생들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힘과 가능성을 무시한 독재적 발상이라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통제할 수 없고 원자화된 수많은 학생들과 그 학생들에게 무한대로 책임을 지는 교사들이라는 모델이 아니라, 함께 책임지고 함께 민주적 자치 능력을 가진 학교 모델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마치며 : 참을 수 없는 체벌 논의의 가벼움

이미 몇 차례 공개 토론회 등에서 언급된 것이니 부담 없이 밝히자면, 이미 조선일보 등의 '보수언론'들은 체벌 금지에 찬성하는 입장으로 내부 논조를 결정했습니다. 체벌을 금지하고 교육을 '선진화'해야 한다구요. 저는 그게 한편으로는 체벌 금지의 당위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체벌을 금지하는 대신 상벌점제 등으로 더욱 비인간적으로 통제되는 학교"를 지지한다고 생각해서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체벌에 대해 논의하면서 빠지지 말아야 할 함정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체벌에 대한 논의는 너무 '가볍'습니다. 체벌이 아니면 뭘로 학생들을 통제하고 억누를 거냐, 라는 식의 논의로는 학생들은 별로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교육이 별로 바뀌지도 않을 거구요.

교사 임용은 줄이고 교육 예산은 줄이는 정부에 대해서는 별 이야기도 하지 않으면서, 교사들 수가 부족하고 교육환경이 열악하니까 체벌 없는 학교가 비현실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화가 납니다.

그동안 교육이-학교가 가지고 있던 모순과 구조적 문제들 등에 대해서는 별 소리도 안 하다가 "현장을 모른다"느니 하며 현재 상대적 약자인 학생들을 통제하는 권력을 계속 가져야 한다고 하는 비겁한 일부 교사들(교총이라거나?)에게도 화가 나구요. (사실 체벌 금지는 교사 개인의 폭력과 책임 속에 학생들을 맡겨놓던 상황에서 학교가 제도가 같이 책임지는 것으로 변하기 위한 것이니까 평교사들에게는 이익이라고 봅니다.)

체벌에 대한 대안을 이야기하면서 아주 구조적, 근본적인 곳까지 뜯어고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학교생활규정의 개정, 예산의 확보, 학교가 학생들을 같이 책임지는 여러 프로그램들의 도입은 피해갈 수 없는 과제입니다. 그런 것들은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학교에 학생들을 정학시키고 퇴학시킬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느니 하는 건 피상적인 사고방식이고 또 더 큰 사회 문제를 잔뜩 낳을 방법입니다. 적어도, 정말로 적어도, 예산과 인력 충원 정도까지는 이야기하지 않으면, 체벌 논의는 너무 '가벼운' 게 되고 말 겁니다.

체벌의 대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중장기적인 것에서부터 단기적인 것까지요. 상벌점제나 퇴학처럼 대안 같지 않은 대안들을 쳐내더라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관점과 의지의 문제일 뿐입니다.





추신 : 그런 의미에서 교사 임용을 늘리라거나 교육예산을 늘리라는 요구는 단지 사범대생/교대생들의 요구가 아니라 학생.청소년들의 이해관계이기도 합니다. 현재로서는 역량이 없어서 청소년운동이 거기까지 개입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나중에 든 생각을 추가로 남깁니다 ::
 1) 교사 임용을 늘려서 수업 시간 중에 한 교실에 교사를 2명 정도 배치해서 1명은 수업을 하고 1명은 학생들의 수업 참여를 독려하고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제지하도록 하는 것도 충분히 단기적 대안입니다.

2) 상벌점제의 경우에, 정 도입을 막을 수 없다면, 수업 시간 중 수업과 관련된 것으로 그 대상, 항목 등을 엄격하게 제한해서 도입해야 합니다. 최소한 상벌점제가 학생들의 생활에 대한 통제가 되지 않게 하려면요.
(2011년 2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