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2018.04.28 16:59

우리의 항해


홀로 새벽을 표류할 때면
무얼로 알 수 있을까 나의 경도를
별도 지워진 골목에 서면
별로 까닭도 없이 불안해진다

부지런한 걸음들이
부질없는 구름으로 감춰질까봐
지켜보던 나침반도
지쳐버린 침묵 아래 멈춰질까봐

햇빛이 눈썹까지 번져올 때야
입술로 기억해낸다 너의 번호를
널 부를 순 없지만
함께 탈 차편을 예매하기엔
우리의 예정이란 애매한 일이지만

외워둔 번호가, 외롭다고 말할 상대가 있다는 것
바라볼 사랑이 있다는 그 사실로
나는 출범할 수 있는 것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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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꿈2018.04.18 19:30

감옥 안에서 청소년 참정권과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 인하에 대해 썼던 글이 생각나서 뒤적여 보니까, 그때 18세 이하로의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 인하나 청소년 참정권 확대에는 우선 두 가지 정도가 필요할 것 같다고 적었었다.



- 먼저, 4.19 혁명 이후 1960년에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이 인하되었고, 2005년 법 개정도 1987년 시민혁명 이후 지연된 민주화 이행 과정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1987년 6월 항쟁후 보수적 이행을 거쳐 2004년 이후에야 정치적-제도적 민주화가 달성된 것으로 평가하는 견해를 받아들여서.)... 그래서 어쩌면 만18세 이하로의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 인하는, 1987년에 준하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사건이 있어야 가능할 수도 있다고.
(*물론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 변화가 반드시 그런 시민혁명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청소년운동이 자체적으로 대중적 투쟁 역량을 갖추지 못한 상태라면 그런 정치적 사회적 배경이 필요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 두 번째가 국회의원 설득, 국회 대응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대사회적 설득과 홍보를 통해 지지를 만들어 가는 청소년 참정권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18세 선거권만 해도 2012년 당시에도 여론조사를 해보면 반대비율이 찬성비율보다 더 많이 나오는 의제였고 그런 상황에서 국회만 바라봐도 잘 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민사회운동의 지지를 더 폭넓게 모아내고, 시민 대상 홍보도 더 많이 하고, 가능하면 청소년들의 직접 행동도 많이 만들어내는 게 선행해야 한다는...





그리고 지금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이 있었고, 그동안 내놔라운동본부나 18세선거권공동행동네트워크나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활동을 거쳐서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18세 선거권 찬성이 60% 정도가 나온다. 물론 아직 '청소년 참정권'에 대한 일반적 인식으로까지 충분히 확대되지는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나는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을 18세로 낮추는 게, 2013년에 감옥 안에서 바라보던 때보다는, 이제는 좀 더 가능해 보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당장 올해 안 되더라도 2-3년 안에는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다.


어쨌건 우리가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Posted by 공현
울것같은꿈2018.04.02 18:16

안녕하세요, 언젠가 죽을 여러분.

돌이켜보니 제가 병역거부로 수감되어서 강제적으로 1년 이상 쉬는 기간을 가졌다가 출소하고, 다시 활동을 시작한 지가 만으로 4년 반 정도, 5년째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 6년 정도를 활동하다가 2011년 12월 정도부터 쉬었으니까, 긴 휴식 전에 살아왔던 만큼의 시간의 80% 정도의 시간을 또 어느샌가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일이라는 게 그렇지만, 오랫동안 활동을 해온 사람일수록 과거 자신이 했던 일들이 지금의 자신을 또 옭아맵니다. 요는 2013년 이후의 5년의 활동의 밀도가 훨씬 높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과거의 이야기를 공유하거나 정리할 사람이 나밖에 없구나 하는 고독감과는 별개로 나밖에 할 수 없는 역할들이나 내가 쌓아올려서 그 앞을 또 내다봐야만 하는 성과들을 앞에 두고 좀 질리기도 합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할 여력을 과거의 연장선에 다 빼앗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만큼 했으면 충분히 많이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자꾸 듭니다. 하고 싶어서 마음속에 모셔둔 기획들이나, 대중조직(청소년인권연대 추진단) 관련해서 하고 싶고 해야 하고 요청받는 몇 가지 일들이 있는데 도무지 손을 못 대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최근의 저는 좀 너덜너덜한 상태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요구받는 해내야 하는 일들을 어거지로 해내고 있는 것에 가까울까요. 체력의 문제도 있을 테고 심리적으로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떠올릴 에너지가 남아 있질 않아서 그렇습니다. 에너지가 조금 돌아올 때마다 눈앞의 일들을 없애는 데 모두 쓰고 마는 기분이에요. 작년 하반기부터 이런 상태였는데, 도중에 추석 연휴로 일주일쯤을 쉬고 또 2-3일쯤 쉬고 오고 하면서 그런 힘으로 어떻게 지나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이른 것 같아요. 요즘 저는 무엇을 할 때건 죽는 것에 대해 생각합니다. 지금의 삶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만, 그저 지금 여기서 멈추고 더 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무책임한 사람들, 지능을 쓸 의지가 결여된 사람들, 진부한 인간들, 착하고 유순하고 싶은 사람들, 상처입은 인간들을 생각할 때마다 정말 진절머리가 나서 세상을 끝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언제나 슬펐으니 딱히 슬픈 것은 아닙니다만, 지친 것이지요.


말할 것도 없이, 죽음은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해 언제나 논리적으로 정합적인 해결책입니다. 그것은 즉자적이고 유물적인 존재의 속성상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은 이후나, 나의 연속성이라거나, 삶의 의미라거나, 나의 고통은 절대로 함께할 수도 없는 타인의 입장까지 생각하는, 그런 존재이기도 하니까 그 해결책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단지, 지금 저는 의미를 만들어내거나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있는 힘이 다 떨어져서 거기에서 눈을 돌리기가 어렵네요.



서설이 길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본론이 더 짧습니다. 그렇다면 어쩌면 서설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네요. 드리고 싶은 말씀은 좀 쉬겠다는 것입니다. 대략 4월 6일 정도부터 한 달쯤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 기간 동안에도 완전히 쉬지는 못할 거예요. 농성도 챙길 것이고 그 외에도 벌려 놓은 일들도 있고……. 그러나 2주 정도는 직장(벗)도 무급 휴가를 신청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달 정도는 꼭 참가하고 챙겨야 하는 일들 외에는 모두 취소하거나 거절하려고 합니다. 그러는 동안에 조금 힘이 돌아오면 마음속에 모셔둔 글들과 기획들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 이영도 신작이 연재되고 있습니다. 이영도를 읽읍시다.

Posted by 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