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142

수필 - 생일

옛-날 한 10년 전에 썼던 글 생일 나는 생일을 1년에 3번은 맞을 수 있는 몸이다. 주민등록번호로는 2월 25일로 되어 있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2월 25일에 축하를 해주곤 한다. 그러나, 사실 2월 25일이란 음력으로 올린 생일이라, 양력으로 하면 4월 11일이어야 맞다. 그래서 가족들 같은 경우 4월 11일로 해준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 중 일부는 음력으로 2월 25일인 날로 해주기도 해서 생일을 3번이나 맞이하는 사태도 가끔은 일어나는 것이다. 생일이란 것은 어릴 적부터 뭔가 굉장한 것처럼 느껴지는 무언가인 걸까. 여하간 내가 태어난 날이니 어쩌니 하는 것보다는 뭔가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고 친구들도 초대할 수 있고 선물도 받을 수 있는 날이라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생일에는 대..

어설픈꿈 2015.03.07

결혼식

결혼식 지지난 주말에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다. 아니, 친구'들'의 결혼식이었다. 신랑과 신부 둘 모두 친구인 드문 경우였던 것이다. 덕분에 축의금을 낼 때부터 어느 쪽에 내야 할지 난감한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결혼식은 왜 신랑측과 신부측 축의금을 따로 받는 것일까? 누구에게 축의금이 더 많이 들어오는지 경쟁이라도 한단 말인가. 여하간 그 문제는 부모님이 대신 내라고 준 축의금과 내 축의금을 각각 양쪽에 냄으로써 해결했다. 부모님도 그 친구들과 면식이 있는 사이였던 것이다. 신랑인 친구는 나와 알고 지낸 지가 이제 16년째이다. 지금은 그 이름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모 통신서비스의 포켓몬스터팬클럽에서 만난 사이다. 직접 얼굴을 보고 만난 건 아마 중학교 때였던가? 한때는 MSN 채팅으로 밤 늦게까..

어설픈꿈 2015.02.05

수필 - 깊이가 없고 높이가 없고

깊이가 없고 높이가 없고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 중에 자기 바닥을 보았다는 표현이 있다. 나는 그 표현의 의미를 대충 알고는 있지만 그게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른다. 난 바닥이 구체적으로 내 심리의 어떤 부분이나 속성을 가리키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하겠고 그 바닥이 “보인다”라는 것도 어떤 개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건 어쩌면 내가 깊이가 없는 인간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예전부터 계속해서 의식적으로든 습관적으로든 나 자신을 단순화하려고 해왔다. 뭐 그냥 쉽게 말해 솔직하게 살려고 해왔다는 얘기다. 가능하다면 ‘겉’과 ‘속’에 별 차이가 없을 것. 패턴은 가능한 한 단순명료할 것. 그러니까 ‘깊이’라는 걸 표면과 바닥 사이의 거리라고 해본다면 나는 그 깊이를 없애거나 줄여가기 위..

어설픈꿈 2013.08.30

시 - 감옥에서 10 - 2013년 6월 20일

감옥에서 10 - 2013년 6월 20일 하늘이 너무 무거운 날이야 쏟아지는 햇살도 1기압의 대기도 삶의 가장자리마다 묻어온 우울의 냄새도 너무 무거워 땀이 나 얼마나 삭혔던지 군내가 나고 시어진 땀 아주 잠깐은, 세상을 용서하고픈 맘이 고였던 적도 있었어 당신이 내 안에 찍어논 발자국엔 나를 속였던 배신의 감촉들도 내게 박혔던 교정의 못질들도 용서할 수 있었던 맘, 세상이 날 용서치 않더라도 그러나, 저토록 좁은 하늘이 너무나 무거운 날이야 발자국의 높이도 뭉개질 만큼, 맘은커녕 땀만 나올 만큼, 귀퉁이마다 묶어논 자유의 매듭도 끊어지고 용서하기엔 하루가 너무나 무거워 하루 아래서 거듭 예리해진 나의 삶

어설픈꿈 2013.08.17

시 - 감옥에서9 - 괜스런 죄스런

감옥에서9 - 괜스런 죄스런 귤껍질을 찢다가 소름이 돋았다 주황색 귤도 살구색 나도 내가 뜯어낸 하얀 살점들의 울음이 목덜미를 훑고 메아리쳤다 귤껍질에 돋아있는 소름의 의민 두려움인지 아픔인지 원망인지 괜히 죄스러워 입을 닫았다 죄스러움은 언제나 괜스러웠다 나는 다음에도 귤껍질을 찢을 테니까 그럼에도 여전히 나에게 사과받을 이들이 저 멀리 어딘가 많다는 소문이 돌았다 귤껍질보단 좀 덜 뜻밖이고 좀 더 나와 닮은 하지만 역시 나와 다른 사과할 이들도 없는 데서 죄인이 돼있다 나 역시 괜스레 찢겨지고 있다 찢겨짐은 대개가 자연스러웠다 사람들은 다음에도 나를 잊을 테니까 그리움이 인삿말이 될 테니까 아파함도 언제나 괜스러웠다 그러니까 내가 사과할 이들도 소문보단 가까이에 여전히 있을 것 같았다

어설픈꿈 2013.08.17

시 - 감옥에서8 - 그립다, 늦잠이

감옥에서 8 - 그립다, 늦잠이 그립다, 늦잠이. 물기 짜듯 몸을 비틀어 잠을 짜내도 폐부 어디쯤 남아있는 잠의 씨앗들이 덜그럭거린다 숨쉴 때마다 이물감 썩어 발효되며 열기가 손발에 머리에 오르고 다시 뒤척인다 아침을 뒤적거린다 괜스레 그립다, 늦잠이. 남이 정한 같은 시간에만 잠을 깨는 일 단 하루의 일탈도 없이 좀 역겨운 일이다 역시 내일과 어제와 오늘이 아파트 단지처럼 도열한다 몹시 혼란스럽게 규칙적이라 울렁이는 보고싶다, 늦잠이. 부드러운 거품 같은 여유가 목마르다 이번명절 특식은 늦잠으로 주시지요 감칠맛 나는 늦잠을 맛보게 안기고픈 사랑 숨쉬고픈 공기를 늦지 않아야 한다고 짧게 당겨진 가늘어진 잠 속에 늦잠을 꿈꾸고 다시 꿈꾸고 그립다, 늦잠이. 햇살의 기척에 이유 없이 문득 눈을 뜰 권리가

어설픈꿈 2013.01.23

시 - 감옥에서7 - 걱정이 없다

감옥에서7 - 걱정이 없다 눈송이들은 무슨 걱정이 있는지 급히 갈길을 재촉한다무수한 걱정들을 연료로 날아가는 희끗한 숨결들걱정이 없다, 나는. 눈이 쌓여도걸을 수 없으니 막힐 길이 없으니 밀어나를 사상도 잡아줄 동지도 없으니비가 퍼부어도 우산을 챙길 필요가 없다난 참, 아무 걱정이 없다그래서 눈송이보다도 느리다그러니 눈송이보다도 하찮다억지로 불러낸 이 모든 걱정들도 나를 날려주지 못한다걸어가지도 기어가지도 굴러가지도걱정을 걱정을 한다 걱정 없는 삶에 대해

어설픈꿈 2013.01.01

시 - 감옥에서6 - 금지된 것은 죽음

감옥에서6 - 금지된 것은 죽음 내가 밥을 적게 먹는 것은 굶어 죽기 위해서다온몸이 맥박치도록 달리는 것은 숨이 차 죽기 위해서고살을 빼는 것은 좁은 창살 사이로 투신해 죽기 위해서고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것은 지겨워 죽기 위해서며겨울에도 찬물로 씻는 것은 얼어 죽기 위해서여름에도 불볕을 쬐는 것은 쪄 죽기 위해서잠을 자는 것도 잠을 깨는 것도수음하는 것도 눈물 흘리는 것도글을 쓰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모두가 다 죽기 위해서다 나는 단지 빼앗기고 금지당한 걸 되찾으려는 것 뿐이다나는 매일 아침 안개 속에 어슬렁대는 죽음을 보며내 안으로 그것을 불러들여올 궁리를 한다몰래, 죽을 수 있는 능력이 내 속에 술렁대게

어설픈꿈 2012.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