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들어온꿈 133

도덕을 요구하는 나약한 것들의 천박한 투정 따위는 무시해.

"염병할 붓질은 한 번에 끝내야 한다. 일필휘지야, 갈로텍. 나는 괜찮은 삶을 살았다. 주퀘도 사르마크의 삶은 찬란했다. 그래. 나는 죽음의 거장이었다. 내 최고의 순간이 언제인지 아나? 그것은 내 존재의 모든 시간이었다. 나는 항상 최고였다. 내 마지막 실패는, 그것이 내 실패이기에 이미 소중한 것, 최고의 것이었다. 그것은 완전무결함에 난 흠집 같은 것이 아니었어. 그것까지도 포함해서 완전무결한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소중한 실패를 망쳐버렸다. 스스로 구축한 작품을 망쳐버렸지." "주퀘도." "갈로텍, 갈로텍." 주퀘도는 회한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갈로텍은 자신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동요했다. "고집이라면 너도 나만큼 부릴 줄 아는 녀석이지. 마음껏 고집을 부려라. 집념을 발휘해라. 도..

흘러들어온꿈 2016.02.17

권력의 본질은 이해받고 싶은 것

"인간이 인간을 거느리고 싶어하는 건, 결국 자신이 생각하는 걸 상대방도 이해해주길 바라서입니다. 말하는 걸 들어주길 원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란다.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명령이란 형태로 위에서 아래로 의지를 강요하는 거지요.... 그런데 여기서 모순이 발생합니다. 본래 자신을 이해해주길 원해 상대방을 이해하고 명령했는데, 정작 그 상대방은 자신에 대해 전혀 이해해주려 하지 않는 겁니다. 그게 권력의 기본 구조예요. 위에 누군가 있으면 그가 자신을 이해해주기 때문에 안심이다, 라고 사람들은 권력에 따르려 하지만, 권력자 본인을 이해하려는 백성 따윈 없으니까요. 단지 명령만 해주면 되고, 그 명령이 자신을 이해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길 바라죠. 만약 이해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을 때 반..

흘러들어온꿈 2015.12.27

『대학거부, 그 후』 : 행복하냐고 묻기 전에

대학거부 그 후 - 한지혜 외 지음/교육공동체벗 『대학거부, 그 후』 : 행복하냐고 묻기 전에 나 역시 대학거부선언에 참여했던 대학거부자이다. "대학거부선언"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대학을 거부한 이유였고, 두 번째로 많이 들었던 질문은 부모/가족은 어떻게 반응했는지였으며, 세 번째로 많이 들었던 질문이 바로 이거였다. "대학거부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 혹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으냐"사람들은 사회에서 정해놓은, 주류의 길을 벗어나겠다고, 아니 단지 벗어나는 게 아니라 비판하고 거부하겠다고 선언한 사람들에게 다들 묻는다. 당신들은 과연 그렇게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겠냐고...그 질문의 의도는 아마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너네가 잘 살 수 있겠냐는 비웃음과 비아냥의 의미일 것이고..

흘러들어온꿈 2015.07.30

청소년운동에 영감을 줬던 페미니즘 입문서

페미니스트라는 낙인 - 조주은 지음/민연 『페미니스트라는 낙인』 저는 이 책을 2007년에, 나온 직후에 집어들어서 읽게 됐었습니다. 그때도 꽤 깊은 인상을 받았던 걸로 아는데... 제가 갖고 있는 페미니즘에 관련된 관점이나 센스는 이 책에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큰 영향을 받았더군요. ㅎㅎ; 페미니즘 자체에 대한 관점도 가지게 됐지만, 이 책에서는 아동이나 청소년에 관련된 내용, 사회운동-노동운동 등에 관한 내용들도 많이 다루기 때문에 그런 것들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또한,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으로 가족 문제를 보고 교육 문제를 보고 청소년인권 문제를 유비추론해보자는 생각도 이 책 덕분에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조주은씨가 청소년운동이랑 굉장히 잘 맞을 거 같단 ..

흘러들어온꿈 2014.11.15

새움출판사 『이방인』 번역 사태 돌아보기

원래 좀 다르게 편집해서 언론사에라도 기고해보려 했으나 도저히 여유가 나지 않아서그냥 초고 쓴 그대로 올린다. 이방인 -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새움 새움출판사 『이방인』 번역 사태 돌아보기 올해 봄, 반짝 주목을 받았다가 지금은 거의 잊힌 사건이 하나 있었다. 이른바 『이방인』 번역 논쟁. 2014년 3월, 새움출판사에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새로 번역해서 내면서 지금까지의 『이방인』 번역이 ‘오역’이라고 대대적으로 마케팅을 한 것이다. “우리가 읽은 은 까뮈의 이 아니다.”라고 책 띠지에 크게 써넣었고, 출판사는 “25년간 속아온 번역의 비밀”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새움출판사의 『이방인』은 소설 본문만큼의 분량을 들여 ‘역자노트’를 덧붙였는데, 이 ‘역자노트’란 김화영씨의 번역본을 자신..

흘러들어온꿈 2014.11.11

결함제품, 인간실격

"저기, 잇군. 자신이 인간으로서 결함품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 없어? 나는 있어." "말하자면 타인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거랄까. 그러니까 동정할 수 있고 연민을 느끼고, 그리고 동조할 수 있어. … 중요한 건 나에게 그 브레이크가 없다는 사실이야. 타인의 마음이 티끌만큼도 이해되지 않아. … 말하는 김에 나에 대해서도 알아 줬으면 싶었어. 내가 어느 정도로 망가진 결함제품인지를. … 결함제품이 아니라면 인간실격이고." (『목조르는 로맨티스트』, 니시오 이신.)

흘러들어온꿈 2014.09.25

김기전 소년보호, 소년수양이 아닌 소년해방

"소년 문제를 운위하는 이에게 우리는 지금 민족으로 정치적 해방을 부르짖고 인간적으로 계급적 해방을 부르짖는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하되 우리가 먼저 우리의 발밑에 있는 남녀 어린이를 해방치 아니하면 기타의 모든 해방운동을 사실로써 철저하지 못하리라 한다. (......) 해방의 도는 그 끝에 어린이를 해방함에서 지어지리라고 한다. 혹 소년 문제를 말하는 사람 중에 해방 문제를 뒤에 두고 금일 이 현상 그대로의 위에서 소년 보호 문제를 말하고 소년 수양 문제를 말할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틀린 생각이다. 가령 여기에 어떤 반석 밑에 눌린 풀싹이 있다하면 그 반을 그대로 두고 그 풀을 구한다는 말은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말이다. 오늘 조선의 소년은 과연 눌린 풀이다. 누르는 그것을 ..

흘러들어온꿈 2014.09.01

비블리아고서당사건수첩 5권 프롤로그 의문

비블리아고서당사건수첩 5권 프롤로그 의문 비블리아고서당사건수첩 5권에서는 다이스케와 시오리코가 드디어 사귀게 되는데... 그런데 5권에는 다이스케의 고백에 대해 시오리코(또는 시오리코로 추정되는 사람)가 대답하는 장면이 2개가 있다. 하나는 프롤로그이고 5월 31일 날짜로 되어 있으며 다이스케가 먼저 대답을 들려달라고 한다.다른 하나는 에필로그에 나오고 5월 26일이 날짜이며("5월이 끝나려면 앞으로 5일이나 남았다.) 시오리코가 먼저 말을 꺼낸다. 이 두 장면은 분명히 다르고- 그러므로 프롤로그 장면은 독자에게 처음에는 착각을 유도하고 있지만, 현재의 시오리코와 다이스케가 아니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사실 살펴보면 프롤로그에는 시오리코란 이름이 안 나오는 것이다... 292쪽을 보면 지에코가 시오리코의 ..

흘러들어온꿈 2014.08.28

이방인 번역 논란, 출판사와 역자 등의 태도 변화를 바라며

일전에 새움출판사의 『이방인』 이정서역본의 논란에 대해서 http://gonghyun.tistory.com/1057 이런 관전평을 남겼던 적이 있습니다. 이후 더 진척된 여러 가지 상황들을 종합해서 역시 한 독자로 의견을 적고자 합니다. ● 이정서씨의 『이방인』 번역(또는 해석)에 관한 주장은 몇 단계, 몇 갈래로 나눠서 분석해볼 수 있습니다. 크게 논쟁이 되었던 것 중에 하나의 예를 들어보면 ① 『이방인』에서 레몽의 애인은 무어인("Mauresque")이라고 나오는데 이는 아랍인과는 인종적으로 다른 것이며 따라서 둘은 혈연관계의 남매일 수 없다. 둘은 실은 비밀 애인 관계인 것이다. (이른바 '기둥서방'설) ② 왜 다들 ①과 같은 해석을 도출하지 못했냐 하면, 그것은 김화영씨 등의 "오역" 때문이다. ..

흘러들어온꿈 2014.05.21

실수할 기회가 필요한 이유 - 겨울왕국 리뷰

오늘의교육 19호에 쓴 겨울왕국 리뷰 http://combut.maru.net/xe/journal_list/2168 실수할 기회가 필요한 이유 (또는 '나이를 먹으면 자동으로 성숙해진다는 신화에 대한 반박') - 『겨울왕국』(크리스 벅/제니퍼 리, 108분, 3D 애니메이션) 1000만 관객이 극장에서 본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원제 Frozen). 내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느낀 것은 일단 순수한 감탄이었다. 3D 애니메이션 기술이 이정도로 발전했다니! 머리카락 한 올, 눈송이 하나하나를 보다보면, 『겨울왕국』의 캐릭터들과 장면들을 표현하기 위해 제작진이 얼마나 많은 그래픽적인 노고를 들였을지 상상도 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캐릭터들의 표정은 풍부하고 눈짓 하나 미묘한 입가의 움직임으로 감정이 전달된..

흘러들어온꿈 2014.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