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2010.09.26 03:08

비어 있는 책꽂이로부터 어떤 친구를 떠올리며


  지금도 내 책꽂이에는 넉넉잡아 50권은 되는 일본 라이트노벨들이 꽂혀 있지만,(현재 사는 서울 집과 대구 부모 집 포함해서...) 과거 내가 모은 라이트노벨은 거의 80-90권 정도에 이르렀었다. 내 라이트노벨 30-40권을 먹고 하늘나라로 튀어버린 녀석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공백이다. 결국 지금 와서 어느 라이트노벨(예를 들면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이라거나...)이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 때에도, 혹시 그 책이 그 녀석에게 준 그 30여권들 중에 있었다면, 나는 책장에서 가볍게 그 책을 뽑아 화장실에 가거나 잠이 안 오는 어느 명절 밤을 보낼 수가 없게 되었다.

  그 친구는 나랑 같은 고등학교 만화동아리에 있던, 나보다 1학년 늦게 들어온 남자 녀석이었다. 그 인간은 전교에서 가장 독특한 인간들을 모아놓은 집단 중 하나였던 만화동아리에서도 단연 그 독특함이 수위를 달렸었다. 일단, "로리로리"를 외쳐대는 오타쿠에 기독교도였으니까 말이다. 그것도 보통 기독교도가 아니라 매-우 독실하고 "내 삶은 하나님에게 바쳤어."라는 닭살돋는달까 엄숙하달까, 그런 말을 진지한 얼굴로 진심을 담아 수차례 말할 수 있는 그런 기독교도였다. 그 녀석은 곧잘, 자기 주체성이나 자유는 없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삶만 있다고도 말했다. 학교에서 특별 과제 같은 걸로 내준 자유주제 논문을, 로리콤(로리타 컴플렉스) 문화에 대한 연구를 가지고 써내는 독실한 기독교도 오타쿠라니. 이건 뭔가 존재만으로도 세상에 금이 가는 느낌이랄까.

  대체로 독실한 기독교도들과는 상성이 잘 안 맞을 때가 많은 나이건만,(아, 빨갱이-좌파-인권운동가 기독교인들은 예외다.) 그 녀석이랑은 은근히 잘 어울려 다녔던 것 같다. 대화도 많이 했고, 서로 책도 많이 빌려줬고. 같이 다니기도 좀 다녔고. 그렇다고 내가 걔를 좋아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던 것 같다. 성격적으로나 취향적으로나 안 맞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럭저럭 같이 있으면서 깊은 속내를 털어놓을 정도까진 아니어도 이런저런 주제로 토론을 한다거나 시간을 때울 정도의 친분은 있었다. 사실 나는 '신앙'에 대한 토론까진 아니어도 신학/철학적 주제에 대한 토론 같은 것을 열어놓고 할 수 있고 나에게 전도하려고 하지 않는 그런 기독교인이라면 그리 싫어하진 않는 것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오히려 그 녀석 쪽에서 나를 약-간 좋아하지 않았나 싶긴 하다. 항상 나를 "윤종 군"이라고 부르면서 조금 신기해하는 것 같은 눈초리로 관심을 보내왔고 때로는 좀 따라다니는 것 같기도 했으니까. 일단 그 녀석도 지독하게 자기 중심적 인간이라서 주위에 그 녀석을 싫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만화동아리 사람들, 그리고 만화동아리 사람들 중에서도 별로 자기를 싫어하는 티를 내지 않는 나랑 어울려 다닌 것 아니었을까.

  그 녀석은 음, 정확한 이유는 기억이 안 나지만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나한테 라이트노벨 몇 종류를 지정해주면서 미국에 가면 이메일로 주소와 보내는 법을 알려줄 테니 보내달라고 했다. 빌렸다가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돌려주겠다면서. 그렇게 2번인가 3번인가를 국제 소포로 대략 10권, 15권 정도씩을 라이트노벨을 바리바리 싸서 보냈다. 물론 착불로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순 없고 또 국제 소포도 낯설어서, 그냥 인심 쓰는 셈 치고 내가 내 돈 내고 보내줬고, 그때마다 그 녀석은 이메일로 고맙다는 답장을 꼬박꼬박 보내왔다. 나도 그 녀석도 붙임성이 그리 좋진 않고 좀 '차가운' 인간들이었기에 주고받은 연락은 그렇게 서로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최소한의 내용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문자 메시지로 만화동아리의 다른 사람에게서 그 녀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국에서 사고로 물에 빠져서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그다지 슬퍼하지는 않았고, 또 애도나 추모의 뜻을 표하지도 않았다. 이미 자기 삶은 하나님에게 바쳐져 있으며 하나님에게 속해있다고 하던 녀석이라면, 그렇게 죽었다고 해도 별로 스스로의 죽음을 슬퍼할 것 같진 않아서였다. 물론, 나는 몹쓸 유물론자라서 사후세계나 하나님 같은 건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 녀석이 그런 걸 진심으로 믿었고 또 내가 그 녀석의 믿음, 신념, 사상, 이런 것들을 존중한다면 굳이 그 죽음을 애도하거나 슬퍼해줄 이유는 무어란 말인가. 일부러 죽거나 삶을 포기할 녀석도 아니었지만, 죽어버린 마당에 거기에 미련을 가질 녀석도 아니었다. 나 또한 그 녀석을 다시 못 만나게 된 것이나 그 녀석에게 빌려준 30여권의 라이트노벨들을 돌려받을 길이 묘연해진 것은 매우 아쉬웠지만 말이다.

  나에게 그 녀석이 죽은 소식을 알려준 사람에게서 내가 슬퍼하거나 애도하지 않았다는 걸 전해 들은 다른 사람(역시 같은 만화 동아리의, 나보다 입학은 늦은 사람이다.)이 나를 비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었다. 내가 비인간적이고 차갑다는 게 대략 그 요지였지만- 글쎄 오히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한 건 내 쪽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인간이 다른 사람의 죽음에 슬픔이나 괴로움을 느끼는 건, 그 사람을 다신 못 만나고 다신 관계맺을 수 없게 되었다는 이별, 그 사람이 죽고 싶지 않아 했을 텐데 죽었다는 데서 오는 안타까움, 그리고 다른 사람의 죽음에서 '나도 저렇게 죽을 수 있겠구나'라는 공포, 뭐 이런 것들 때문 아닐까. 나는 그 녀석의 죽음 앞에서, 이 중에 이별에서 비롯된 감정만 느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그 녀석을 알던 한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였다.


  어쨌건 내 라이트노벨 컬렉션(이라기에도 좀 민망한 수준이지만)에서 비어 있는 30여권은, 본의 아니게 그 녀석을 위해 바쳐진 30여권이다. 분명히 내가 사서 읽은 기억이 있는데 다시 읽어보려고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라이트노벨은 아아 그 녀석에게 보냈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책꽂이의 공백이 그 녀석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 녀석이 죽은 후에 그 가족들이 그 라이트노벨들을 어떤 식으로 처분했을지는 모르겠다. 가족 중에 오타쿠가 없다면 버려지거나 소각되거나 헌책방 같은 곳에 팔렸겠지. 만약에 사후세계라는 게 있다면, 내가 죽고 나면 대출해간 30여권에 대한 연체료는 확실히 물라구. 하림 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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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9.04.26 00:01


2005년 4월에 썼던 수필. 딱 4년 정도 됐구나.




가로수 아래, 주검을 내려다보다가

 

 

 ‘죽음이란 언제부터였을까’라고 묻게 되지만, 아마 그것은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이었을 것 같다. 시체가 굴러다니는 일이 흔한 것이 세계다. 그 진술은 생명이 존재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적용 가능하다.


 현대를 가리켜 불안의 시대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와 비교해 볼 때 현대가 특히 더 불안한 시대인 것은 아니다. 다만 과학기술에 대한 환상이 깨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실망스럽게 느껴지는 것뿐일 터이다. 병사(病死)가 줄어들고 평균 수명이 연장된 대신에 교통사고와 가스 폭발, 전쟁 등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인구가 증가한 것을 보면 객관적인 수치 면에서는 아마 후자가 전자를 대신했다고 하기는 어려울지 모르겠다. 그러나 주관적인 면에서 봤을 때, 곧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는 정도 면에서는, 결국 후자가 전자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길에 자동차 바퀴에 깔려 죽은 쥐의 시체가 있어도 사람들은 특별히 놀라지 않는다. 그것을 자주 보지는 않는다 해도,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그것은 일어날 법한 일의 범주에 들어있다. 사람이라도 치이면 놀라서 119에 신고를 하겠지만. 사람들은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교통사고 소식에 무덤덤하고, 도심에 서있는 오늘의 교통사고 부상자, 사망자 숫자에도 무덤덤하다.

 

 나는 그 녀석을 본 적이 있었다. 비 오는 날 서점 앞에 놓여있던 양철 밥그릇을 조심스레 핥아먹던 모습. 가까이에서 물끄러미 보고 있자 경계의 시선을 보내며 멀리로 도망가던 모습. 사진기를 들이대자 멀뚱멀뚱 쳐다보던 모습. 나는 그 꼬질꼬질한 털의 분위기를 기억하고 있다. 털에 가려 흐릿하게 보이면서도 경계심에 찌들어 있던 그 눈가의 표정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상상도 하지 못 할 정도로 험한 생존의 싸움을 벌여왔을 생명. 그러나 그 저력도 눈먼 자동차 앞에선 별 쓸모가 없었나보다. (마치 개인이 아무리 바둥거려봐야 거대한 경제 체제나 국가의 군사력 같은 것에는 짓밟혀버리듯?) 개미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모습. 털에 덮혀서 보이지 않는 얼굴.
 간밤에 그 녀석을 친 자동차의 운전대를 잡고 있던 사람은 그래도 그 주검을 가로수 아래에 옮겨두었다. 아니, 다른 사람이 옮겨둔 걸지도 모르지. 어쨌건, 죽음의 책임을 그 사람에게 물어야 할까? 어쩌면 그 사람도 희생자일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세상 일이란 다 우연이다. 우연 앞에서 무력한 사람들. 우리는 우연 때문에 책임을 지고, 우연 때문에 이익을 얻고, 우연 때문에 행복해하고, 우연 때문에 불행해한다. 개개인에게 책임이 없다는 식의 도피 논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존재 자체가 우연이라는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는 그 존재의 우연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다만 형법이 과실치사와 고의적인 살인을 구별해서 처리하듯이 우연에도 정도는 있다. 적어도 그 사람이 녀석을 칠 생각으로 차를 몬 것은 아니리라.
 조금 지각할지도 모르지만 장갑이라도 끼고 녀석의 시체를 옮길까 해봤지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체에는 생명으로서의 의미가 별로 없다. 생명이란 활동이자 현상이다. 사실 시체에 의미를 주는 것은 다른 존재들이다. 그 외관상 그것을 바라보는 다른 존재들의 의식 속에서 동일성이 유지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생명 활동의 의미가 별로 없는 그 시체와 생전의 존재가 동일함을 과감히 부정해왔다. 결국 내가 그 시체를 옮기고 싶어한다는 것은 그 횡단보도 옆 가로수 아래 그 자리에 그것이 자리잡고 있음을 내가 보기 싫어한다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생전 그 녀석이라거나 지금 시체에 한창 달려들고 있는 개미들의 입장에서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일이다. 그렇게 자의적인 기분으로 굳이 그것을 옮기는 일이 좋은 일인지, 나는 알 수 없다. 기분 문제를 제외한다면 시체와 다른 쓰레기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다고 해도 좋다. 만화 「기생수」에 주인공이 죽어가는 개를 돌보다가 죽자 쓰레기통에 버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와 비슷해져버린 걸지도. 그렇게, 나는 슬픈 심정으로 그 시체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일주일 전에는 밥그릇을 게걸스레 핥아먹다가 지금은 이렇게 누워있는 몸뚱아리에 대한, 그리고 정지된 생명 현상에 대한 연민과 동정과 공감…. 나도 언젠가는, 불시에 죽을지도 모른다.


 

 흔하게 태어나고, 흔하게 죽어간다. 그것도 우연하게. 우리들은 그런 면에서 비참하고 무력하다. 비참하고 무력한 만큼 우리들은 열심히 살아간다. 우연히 살아남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나는 죽은 후까지 걱정할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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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9.04.21 23:15



굴 속의 전화번호들


1
  살다보니까, 가슴 한켠에 묻어뒀던 것들이 있을 곳을 잃어버리고 더 깊은 속으로 굴을 파고 숨어 버려서, 마음 속에 구멍이 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 구멍은 뚫려 있지는 않아서 시린 바람이 드나들거나 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먹먹하고 허전하긴 하다. 예컨대 몇 년 전에 즐겨가던 식당을 갔는데 식당 대신 부동산 중개업소가 들어서 있을 때, 그와 마지막으로 커피를 마셨던 커피숍이 간판 자국만 남기고 경양식 식당으로 바뀌어 있을 때, 자전거를 타고 달렸던 이 거리가 낯선 간판들로 뒤덮여 있을 때, 유치원 시절 즐겨 봤던 만화책이 절판되어서 구할 수 없거나 제목조차 잘 생각이 안 나서 찾지도 못할 때….

  세상은 참 빨리 변하고 그 속에서 달라져가고 없어져가는 것들은 좀 지나치게 많다. 물론 나도 변하고 있지만… 그래도 간혹 내 기억 속의 것들을 찾아 딛은 발걸음들이 달라진 현실 앞에 고개를 저으며 가슴 속에 구멍만 남겨놓을 때면 좀 쓸쓸함일까 아련함일까 그런 비슷한 감정이 냄새처럼 내 몸에 배어들고 호흡이 느려진다.


2
  내가 그런 감정을 느낄 때가 또 있는데, 바로 전화번호들 때문이다. 내가 알던 전화번호가 사라졌을 때, 나는 그 전화번호와 관련된 기억이 아련한 추억이 된 것을 실감하곤 한다. 예를 들어, 아주 나이가 적을 때 나는 서울에서 외가와 같이 살았는데, 그 집 전화번호는 6355로 끝났다. 그러다가 전북으로 이사를 왔고, 외가도 장미원(아마도 수유4동)으로 이사를 갔다. 그래도 한동안 6355라는 번호는 할아버지의 휴대전화 번호에 남아 있었고, 할아버지의 휴대전화를 잠시 빌려 썼던 내게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외가도 대전으로 이사를 했고 부모도 우여곡절 끝에 대구로 또 이사를 했고 나는 서울에 자취를 하는 지금은, 이제 6355라는 번호는 나와 아무 관련이 없는 번호가 되었다.

  그밖에도, 나는 내가 좋아하거나 나랑 어느 정도 이상 친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내 휴대전화에 저장하지 않는다. 휴대전화 메모리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도록 외워둔 것이다.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사람들이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게 되었고 휴대전화를 잃어버리거나 휴대전화가 꺼지거나 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조차 할 수 없는 불안한 인간이 되고만다, 뭐 이런 류의 이야기도 해볼 수 있겠다.

  뭐, 하지만 사실은 실용적 의미보다는 심리적으로 부여하는 의미가 더 크다. 일종의 차별인 셈인데, 난 사적인 관계에서 이런 식의 친소(親疎)에 따른 차별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 예외적인 경우도 있기는 있어서, 별로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저장해두지 않고 외운다거나 하는 경우도 한두 건 정도 있긴 있다. 여기에서 공개하자면, 저장하지 않고 외운 번호는, 집 전화 번호 같은 걸 제외하고 이야기하면, 어디 보자… 대략 10건 정도는 되는 것 같다.

  휴대전화를 열고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 때, 전화번호부 창을 뛰워서 검색을 누르지 않고 내 손으로 직접 숫자의 조합들을 누르다 보면 특별한 애정이 생기는 것 같다. 문자메시지를 받거나 전화를 받을 때도 저장되어 있어서 곧장 이름이 뜨는 게 아니라 익숙한 수열을 보고서 누군지 인식해내는 그 짧은 순간이 즐겁다. 그게 그냥 자기만족일지, 일종의 구별짓기에서 오는 쾌감일지… 뭐 여하간에.

  그러나 이 10건의 번호 중에는 지금은 유효하지 않은 번호도 포함되어 있다. 과거에 사랑했던(그러니까, 연애감정을 가졌던) 사람들의 번호를 나는 모두 외웠었다. 고2 때 처음으로 짝사랑해봤었던 사람의 번호건, 고3 때 같이 활동하면서 짝사랑했던 사람의 번호건, 바로 재작년에 사랑했던 사람의 번호건,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번호건 모두 외우고 있다. 이 중 두 사람의 번호는 지금은 다른 번호로 바뀌어 있고, 내가 외웠던 번호는 죽은 번호가 되고 말았다.

  이미 수 년 전에 번호가 바뀌었다는 알림 문자메시지를 받았고, 새 번호를 메모리에 저장했었다. 그렇게 새 번호를 저장하면서 나는 내가 한때 사랑했던 그 감정과 기억이 과거의 것이고 현재에는 이미 다른 의미로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됐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이 번호가 그 사람들의 아이덴티티 중에 하나였던 그 어느 짧은 시점에만 있었을 뿐, 나도 그 사람들도 모두 변한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외웠던 번호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가끔 헷갈릴 때도 있지만 잠깐만 굴 속을 뒤적여보면 금방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그 번호들을 가끔 되뇌일 때마다 나는 그때의 기억들을 다시 되새기게 되고, 내 호흡수를 떨어뜨리는 어떤 냄새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3
  쓰다 보니 마치 그런 느낌이 통증인 것처럼 읽을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깊은 구멍 속에 들어앉은 추억들은 아픔은 아니다. 그런 추억들이 나라는 인간의 퇴적층의 깊이를 만들어주고, 복잡한 감정과 생각들을 뒷받침해줄 테니까.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의 현재를 더 풍부하게 해줄 테니까. 그러다가 그 깊은 굴 속에서 좀 숙성되고 발효되면, 어느 술자리에선가 꺼내서 안주로 먹을 수도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좀 같이 나눠먹자고, 요리를 해서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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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수필, 추억
흘러들어온꿈2009.02.11 02:47

2004년에, 장그르니에 씨의 "어느 개의 죽음"을 읽고서 썼던 글이네요.


옛날 블로그에서 발견하고 집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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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전에도 말했다시피, 장 그르니에 전집이 나온 바 있었으나 현재 절판된 상태.

그래서 4개, 일상적인 삶, 까뮈를 추억하며, 어느 개의 죽음, 섬, 을 뽑아서,

장 그르니에 선집, 이란 이름으로 나온 녀석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지요.

장 그르니에 책은, 적당히 어려우면서 적당히 이해할만하고, 적당히 사색적이면서 적당히 감성적이고..(그만해!)

여하간 수필로서는 귀감 중의 귀감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전형적인 프랑스 수필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들이 많긴 하지만, 형식이 전형적이라고 해서 훌륭함이 그리 퇴색되진 않겠지요. 소설에 맨날 대립구도가 나온다고 대립구도가 등장하는 어느 명작의 가치가 퇴색되진 않잖습니까. (예가 참 너무 일반적인 것 아냐..;;)

장 그르니에 씨 것,

수필 외의 다른 장르 쓴 건 읽어보질 못해서 말 못하겠고..-_-

 

 

 

 

 

(음.. 아래는 숙제랍시고 두들긴 녀석을 조금 각색(?)한..)

 

 

 

 

 

 

경계를 넘나드는 인간적인 시선

 

 

 실존주의적으로 말하자면 존재에게는 그 자신만의 죽음이 있기에 그 자신으로 성립할 수 있다. 존재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부재를 통해서이다. 사실 살아가는 주위,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죽음이라는 사건은, 그에 대해 그 전에는 생각하지 않던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들고 빈 자리를 통해 존재를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된다. 존재는 죽음을 통해 소멸하지만 그 흔적은 그 후에도 남는다. 우리는 그 흔적 - 그림자를 붙들고서 비어있는 자리를 재구성해보려고 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런 시도 끝에 이르는 것은 부재라는 현실 앞에서의 어떤 종류의 체념, 망각 - 무뎌짐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녀석의 삶을 정리해 보고 싶"어서, "또 하나의 삶을 마련해 주고" 싶어서 글을 쓰면서도, "사랑했던 존재의 그림자 밖에는 드러내지 못"한다며, 필자는 글을 쓰면서도 다시 한 번 자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소중한 것을 잃고 살아남는 일


 소중한 것을 잃는다는 것은 누구나 경험할 법한 일이다. 만남은 헤어짐을 내포하고 존재는 파괴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존재한다는 인과가 있는 이상 그 인과가 끊어져서 사라질 가능성도 필연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랑, 벗, 가족, 선물, 아끼는 책. 우리가 애착하는 것이 많을수록 우리는 상실도 많이 겪을 수밖에 없다. 나의 경우에도 사소하게는 어머니가 사주신 모자, 목걸이, 아끼던 책부터 크게는 내 주위의 생명들까지, 지금까지 소중하게 여겼으나 잃을 수밖에 없던 것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것은 어쨌건 간에 "살아남는" 일이고, 또 괴로운 일이다. 과연 소중한 것을 잃고도 살아남은 우리들의 삶은 정녕 사는 것인가? 하여, 필자는 "소유한 것에 대한 초연함에 그치지 않고 사랑하는 대상들에 대해서도 초연함을 지녀야 한다."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곳곳에서 그에 대한 애착을 보이고 있다.

 

 

 

개의 진실


그렇기 때문에 이 텍스트들이 개에게 주는 지위는, 그것이 '있는 그대로'라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지금은 없는' 존재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 우리는 종종 과장과 단정을 일삼는다. 그러나 필자는 사라진 존재에게 장점들을 갖다 붙이는 것을 그에 대한 의무를 벗어나기 위해 치르는 값싼 대가이자 위선이라고 말한다. 글에 드러나는 개에 대한 찬양은 죽어버린 그의 개 - 타이오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개 전반, 혹은 동물 전반에 대한 것에 가깝다. 그리고 그러한 긍정적인 서술의 바탕은, 개들이 인간보다 우월하다는 데에 있지도 않다. "개들은 우리와 똑같다."라는 서술은 개를 신화로 만들지도, 개를 격하하지도 않는다. 그저 계속 물으면서, 살아있는 실존으로서 개를 인간과 같은 지위에 놓을 뿐이다. "하지만 녀석과 같은 동물도 기다림 속에서, 즉 번민 속에서 살지 않았을까?" 갑자기 이런 질문을 던지는 식이다. 그것이 필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여기 담긴 진실의 핵심이다.

 

 

 

보편성 + 개별성 -> 인간성


 여기서는 개에 대한 사회적인 태도를 말하는 듯싶다가, 갑자기 자기 개의 살아생전 이야기를 하고, 또 개가 죽은 지극히 개인적인 슬픔의 정서를 넋두리처럼 늘어놓더니, 어느 순간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이야기에 이르는, 이 많은 단상들은 산만하지 않다. 그것은 그 전체를 관통하는, 바로 그 하나의 진실과 죽음이라는 하나의 사건 때문이다. 이 진실과 사건이 보편성과 개별성을 모두 아우를 수 있기 때문이며, 또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어느 개의 죽음"("타이오의 죽음"이라거나 "내 개의 죽음"이 아니다!)이라는 보편성과 사건적인 개별성을 모두 갖춘 제목을 달고 있는 것이리라.
 소위 인간적인 모습이란 어떤 것인가. "그리스도의 수난사", 중 "고난을 받아들이기에 앞서 행한 미약한 반항"인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반항 속에서도 "당신 뜻대로 하소서"라고 말하기에 반항의 모습이 인간적인 '사랑'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모든 존재가 개별성과 보편성의 양면을 모두 지니고 있어야 하고 또 그렇다는 점을, 우리는 자주 간과하곤 한다. 그러므로 이 책에 드러나 있는 시선이야말로 인간적, 아니 존재적이라고(인간이 소위 짐승보다 나은 게 뭐가 있겠나! 이런 용어가 오히려 더 타당할 것이다.) 할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이 이 책이 지닌 매력의 실체다.
 

 

시선의 미묘한 거리감

 

 소중한 것을 잃은 상황에서 필자가 진실을 논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필자의 직업 탓일지도 모른다. 철학자라는 직업은 회의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그러나 그의 말들이 밑도 끝도 없는 회의와 차가운 철학적 사유 이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여기에서 그가 유지하는 미묘한 거리감각 때문이다. 사건에서 멀리 떨어지지도 않았고, 또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은, 그 둘을 조금씩 오가는 단 한 발자국의 거리감, 그것이 인간의 온기와 철학적인 오묘함을 모두 놓치지 않게 해준다. 여기에 서술된 "개의 죽음"은 일회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이 텍스트가 보편적인 곳까지 이르는 사유가 되는 것은, 그가 그것들을 붙잡고 질문하려는 자세를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며, 그 질문이 독자의 마음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두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구체적 삶과 추상의 만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적절한 시점에서의 시선이 갖가지 상반되는 것들, 영원과 덧없음, 삶과 죽음, 행복과 슬픔을 모두 논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그것들을 뛰어넘어서 신적인, 초연한 자세를 취하지 않을 것. 그는 초극을 바라지 않는다. 서술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이 책의 글귀들이야말로 그리스도의 기도와 같은 성질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 결국 하려던 말은?

 

결국 이 모든 단상 끝에 제시된 마지막 단상(90)에서 그는 말한다. 우리는 외로우므로 사랑하자, 라고.

 

"우리를 사랑하는, 또는 사랑할 마음을 지닌 대상을 사랑하자. 보잘것없는 설득력을 이용하려 들지 말고, 우리가 보다 나은 존재라고 믿지도 말자.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놀라운 은총을 기꺼이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우리들을 고립시키는 커튼을 걷고 누군가 우리에게 손을 뻗는다. 서둘러 그 손을 붙잡고 입을 맞추자. 만일 그 손을 거두어들인다면 당신의 수중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테니까. 오직 사랑이란 행위를 통해서만 당신은 당신 자신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가 말하는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종교적인, 오만한 사랑도 아닐 것이고 추상적인 사랑도 아닐 것이다. 다만 그는, "우리와 똑같"은 존재들, 똑같이 살아있는 실존들 사이의 사랑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시선이 이런 저런 영역을 넘나들고 나서 얻은, 다소 식상해보이지만 또한 솔직한, 이 책의 맺음말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제시된 단상들이 이 하나로 귀결된다는 것은 아니다. 이 텍스트들은, 하나의 주제를 향해 치달아가는 글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중심을 놓고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글들이다. 따라서 그 자체들은 각각 독립된 방향으로 나가는 하나의 걸음이 될 수 있으며, 따라서 이것은 어떤 잠언집, 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뭐, 어떻게 읽는지는 그 사람에게 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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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8.11.24 03:43


 옛 친구들과의 만남에 대한 두려움


  예전에 동창회 가입을 거부하는 이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글을 쓴 적이 있다. 그간 몇 번 동창회니 동문회니를 오라는 연락이 왔지만 전부 다 가지 않았다. 한 번은 계속 연락을 해오는 담당자(누군지도 모르지만)가 안쓰러워서 어차피 저는 안 가니까 문자를 안 보내시는 게 절약일 듯하다는 답장을 보냈지만 그 이후로도 계속 문자가 오던 걸로 봐선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성격이신가보다. 고등학교 때 친구를 우연히 만났는데 동창회 이야기를 하기에 적당히 벗어나려고 "나도 가고 싶은데, 바빠서 시간이 영 안 나네."라고 립서비스를 한 적이 있는데, 약간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여기에서라도 말해둔다.

  여하간에 동창회야 그렇다쳐도, 내가 예전에 한 번 친한 친구들의 모임이나 내가 친하게 지냈던 동아리 사람들의 모임이라면 갈 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최근에 내가 그나마 친하게 지냈던 만화동아리 사람들이 12월에 모인다는 소식을 친구의 블로그를 통해서 봤는데도, 나는 갈지 말지 좀 심란한 마음으로 고민을 하고 있다.

  사실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다고 해도 만화동아리 사람들이 딱 마음, 성격, 사상 등이 맞는 사람들이었던 건 아니었다. 개중에는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 사람도 있고,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문제야 뭐 어떠랴. 친구라는 게 딱 나와 마음, 성격, 사상이 맞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닌 게 어쩌면 당연한 것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두려움일 것이다. 내가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때의 친구들 중에서, 만나고 나서 어느 정도 곤욕스럽지 않았던 친구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예외가 있는데, 고등학교 때 친구만 만나지 않고 그 친구와 고등학교 때 친구가 아닌 다른 친구를 같이 만났던 경우, 그리고 비록 나와는 다른 분야이더라도 사회운동을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던 경우이다.) 그런 자리에서 오가는 이야기는 고등학교 때 누구 기억 나냐, 그 누구는 어떻게 산다더라, 삼수한다더라, 군대 갔다더라, 뭐 그런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곤 하는데, 도통 내가 관심 없어 했던 다른 사람들의 삶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나에게는 그런 화제가 지루하기만 하거나 아니면 일방적으로 듣는 입장이 되어버리곤 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뭐 그런 이야기들도 주요 화제 중 하나로 오를 텐데, 아무래도 내가 별종 취급받게 될 것 같은 것이다. 별종 취급받는 것은 익숙한 일이지만 그래도 친했던 만화동아리 친구들에게 그런 느낌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미 고등학교 만화동아리 때부터 나는 어느 정도 별종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받게 될 별종 취급은, 굉장히 정치적인 뉘앙스를 띤 것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미 내가 인권운동을 시작하고 만화동아리 활동에 덜 관심을 갖게 된 고3 때부터 약간 그런 느낌들이 있었으니까.

  거기에 더해서 나 자신도 다소 걱정스러운 것이, 물론 나는 제법 귀차니스트인 탓에 많은 경우에 마음 속에 있는 말들을 숨기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내가 그 자리에서 있을 가능성이 높은 여러 가지 불편한 이야기들에 단 한 번도 시비를 걸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것이다. 군대 이야기라거나 정치적 이야기라거나, "병신"이라는 사소한 장애인 비하적 표현 등등. 그런 자리에 가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 또한 운동의 일부라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친했던 친구들과 그런 식으로 충돌하고 싶지 않은 것이 또 내 소박한 욕망이라면, 평소에 내가 차갑다고 말해온 사람들은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요컨대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지금에 와서 우리가 공유할 것이라고는 고작해야 우리가 친했던 옛날 일에 대한 추억이나 그 추억에서 파생되는 인간관계들에 대한 화제들뿐이다. 좀 더 현재의 삶과 고민들을 나누기 위해서는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야 하는데, 마치 물리학이나 컴퓨터 전문가들의 세계를 비전문가들이 공유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활동가의 삶이란 것도 활동가가 아닌 사람들과는 공유할 부분이 많지 않다. 특히나 활동가라는 족속들은 그 전문성이 일종의 '정치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정치성은 많은 경우에 활동가의 삶 전체에 지배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단순한 직업적 전문성과는 다르다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정치적인 전문성은 비정치성의 신화가 횡행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별종 중에서도 특별한 별종으로 취급받을 가능성도 높다.


  같이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적지 않은 수가 동창회 자리나 뭐 옛날의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거리감을 느낀다고들 한다. 내가 특별한 감흥 없이 사람 관계에서 스쳐지나가지 않는 것들이 오히려 소수니까 뭐, 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나의 인간관계 방식의 문제인 걸까. 어쨌건 이미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우리가 만나서 어떤 이야길 할 수 있을지, 나는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다. 옛날에 친했던 사람들은 친했던 사람들로 추억 속에 남겨두고 싶다고 하면 너무 이기적인 걸까. 내가 그 자리에 나가지 않으면, 그 사람들은 나에 대해 서운한 기억을 가지게 될 것이고, 추억 속에 남겨두네 어쩌네 이야기하는 건 나만의 일일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만나서 으르렁대며 싸우고서도 "우리의 우정은 변함 없어"라고 말할 만큼 끈끈한 인간도 아니고, 하물며 혼자서 속으로 곤욕스러움이나 불편함을 숨겨두고서 그 자리에 웃으며 앉아 있는 걸 자청하고 싶을 만큼 착한 인간도 아니다. 우리의 만남이 기분 좋은 즐거움이 될 거라고 낙관할 만한 낙천가도 아니고. 그래서, 나는 아마도 내가 이번 12월 모임에 가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내가 가고 말고 하는 건데 이건 무슨 이상한 표현이냐고? 하지만 스스로를 이정도로 객관화시켜봐야 스스로를 알 수 있을 때도 있다.)

  사실 12월 23일이 일제고사라서 일제고사 거부 투쟁 일정 때문에 빡빡한 12월에 시간이 날지 자체가 미지수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게 가장 큰 이유다. 왜 하필 모임을 12월 20일로 잡아서- 이 역시 일반적인 대학생들의 삶에 맞춘 날짜라고도 할 수 있겠다.)


* 여기까지 쓰고 나니 문득 생각나는 게, 언젠가 모 단체 사무실 벽에서 동창들을 만나서 후원을 받아내자는 뭐 그런 말을 본 적이 있는데, 나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CMS 후원해달라고 브로셔를 내미는 그런 관계가 되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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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8.03.17 09:35



이웃 거미 씨

(2006.08.)

  내 기숙사 방 바로 앞에는 커다란 거미 씨 세 명이 집을 지어놨다. 잘 눈에 띄지 않는 이웃들이다. 처음에는 잘 모르고 거미집 일부를 건드려서 부숴버리기도 했다. 주로 벽 쪽에 붙어 있는 거미1(편의상의 이름) 씨의 집을 부수곤 했는데, 그럴 때면 나와 거미1 씨 둘 다 그리 기분이 좋지 않은 듯했다. 한두 번 그러고 난 후에는 거미1 씨의 집을 파악하고 움직이다가 거미2 씨나 거미3 씨의 집을 부순 적이 있는데, 그 부분은 그쪽에서 타협을 보았는지 언제부터인가 내 머리에 안 닿는 위치로 옮겨져 있었다. 만일 거미 씨들이 없어지기 전에 내 방에 올 일이 있다면, 그 집이 어떻게 절묘한 대각선으로 배치되어서 내 통로를 만들어 주고 있는지 관찰하시기 바란다.


  사람들은 흔히 실내나 자기 거주공간 근처에서 거미집을 보면 부숴버리기 일쑤이다. 거의 사람의 실제 생활공간인지 어떤지도 의문스러운, 방 모서리 구석진 곳에 지어둔 거미집까지 눈에 띄면 부숴버린다.

  거미집 부수기…. 내 생각에는, 얼마 전부터 기숙사 현관에 붙어 있는 안내문 내용과도 유사한 문제인 것 같다. 그 안내문은 한 마디로 그리마의 종에 속하는 자를 보면 잡아죽이라는 소리였는데, 거기 써있는 게 참으로 이상해보였다. 그리마는 해충이라 할 수 없고 어쩌면 익충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 모습이 사람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기 때문에 보이면 죽이라던가 뭐라던가. 보기 싫다고 그냥 죽여도 된다니…. 좀 지나치게 폭력적인 세계관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혐오감을 느껴 비명을 지르며 반사적으로 발로 팍 밟는 거는, 그래, 용납하긴 어려워도 심정적으론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예 명시적으로 보이면 어떻게 죽여야 하는지를 써놓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리마 정도라면, 되도록이면 안 죽이고 공생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나는 거미 같은 자들과도 되도록이면 공생을 해야 한다는 그리 투철하지는 않은 신념을 표방한다. 나의 생활이 다른 개체와 충돌하는 일은 살다 보면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인 나는 나의 생활을 관철시켜 다른 개체의 생활을 방해하고는 한다. 항상 그런 건 아니고 내 쪽에서 양보를 할 때도 있기는 하지만, 원칙적으로 나도 내 생활을 그리 쉽게 양보할 순 없으니깐. 그러나 충돌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영역도 분명히 있다.

  예를 들어 내 기숙사 방문 앞에 집을 지어놓은 거미 씨들과의 공존 조건은, 그 거미집들이 내가 방을 드나드는 것에 크게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거미 씨들은 자기 집을 옮겨서 지을 수 있지만 나는 기숙사 방을 옮길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거미 씨들보다는 힘이 강한 강자인 내가 내건 내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나도 약간 허리를 굽히고 들어간다거나 술을 마시고서도 벽 쪽에 있는 거미 씨들의 집을 부수지 않도록 조심하며 신경쓰는 정도의 양보를 하고 있다.


  나는 만일 충돌하지 않을 수 있다면 공존하고 싶다. 세상을 공존과 타협만으로 살아선 안 된다. 그리고 세상을 충돌만으로 살아서도 안 된다. 신념과 똘레랑스의 그 모호한 경계선을 고민해봐야 할 때는 많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계속 고민하고 대응방식을 선택해나간다. (그런데 적어도 나는 미적인 문제를 다투는 자리가 아니라면 외관에 대한 혐오감을 신념의 영역으로까지 봐주고 싶진 않다. 이것도 내 아집일까나?)

  이용악 씨의 낡은 집이라거나 이육사 씨의 교목 등 일반적으로 시에서 거미줄은 죽음의, 버려진, 쓸쓸한, 을씨년스러운 이미지라고 하지만, 내 방문 앞에 쳐둔 거미 씨들의 집을 보면 꼭 그런 느낌이 들지만은 않는다. 그냥 살아가고 있다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 뿐이다. 우리는 서로 특별히 간섭하지 않으면서,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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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8.02.17 09:32

동창회 가입을 거부하는 데 대한 변명

 

 고등학교 3학년 시절도 얼마 남지 않은 때이다. 내가 재학 중인 고등학교의 동창회에서 1만 원씩을 내라고 하고 있다. 동창회 가입 명목이라고 하던가. 나는 그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그 돈을 내지 않겠노라 다짐했으며, 지금은 한 발 양보해서 돈을 내더라도 적어도 그 돈을 냄으로 인해 내 이름이 동창회 명부에 오르는 일만은 거부하겠노라고 굳게, 굳게 다짐하고 있다. 공동체의식이 부족하다든가 혼자 튄다든가 모교를 우습게 안다든가 하는 식으로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나 나는 나의 어설픈 생활 원칙과 알량한 기분을 위해서 그 돈을 내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릴 수밖에 없다.


 그놈의 원칙이 대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업무상의 경우를 제외하면 내가 사람을 사귀는 기준은 어디까지나 얼마나 마음이 맞는지, 얼마나 친한지, 얼마나 그 인격이 좋은지와 같은 것들이라는, 대단히 간단한 것이다. 따라서 지인(知人)들에 대한 나의 심리적 거리에 이런 기준들에 의해 차등이 생기는데, 단순하게 말하자면 친구 아닌 지인과 친구로 사람들이 분류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 중간 어디쯤에 위치하는 사람들도 꽤 많긴 하다.) 이 원칙의 무엇이 동창회와 충돌하는지 의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꼼꼼하게 ― 또는 깐깐하게 정신을 챙겨가며 살려는 사람이 동창회에 가입하는 것은 사실상 나의 지인들이라는 집합에 ‘동창’이라는 새로운 부분집합을 만드는 것이며 이 동창이라는 부분집합의 기준은 같은 학교를 나왔는지가 되어버린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그러한 기준을 추가할 하등의 이유를 느끼지 못하며 같은 학교를 나온 사람이라 해도 어디까지나 내 마음 속의 친소(親疎)에 따라 대할 따름이다. 고로 나는 친구를 소중히 여기지만 동창을 소중히 여기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친구를 차별화하는 효과도 있는데, 아무래도 동창이라는 집단을 내 마음 속에 형성시키게 되면 친구에 대한 충실함이 아무래도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뿐더러 내 원칙을 훼손시키는 듯하여 상당히 기분이 찝찝할 듯하다.
 이 원칙은 프롬이 『건전한 사회』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로 그 소외 현상에 대한 내 나름의 대응이다. 나는 내 인격적인 면이나 개인적인 부분을 사회적 지위나 상품으로서의 가치에 팔아버리지 않을 것이며 그런 경향에 대항하여 내 내부에서부터 싸워나갈 것이다. 대학교에 자기소개서를 내면서도 그렇게 끙끙거린 이유는 나라는 상품의 카탈로그를 만드는 일 같았기 때문이었다. 실로 구닥다리 사고방식이며 살아남기 힘든 방식일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것이 나 삶이며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으니. 너 자신이 되어라, 아멘.

 따지자면 내가 동창회 가입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히게 된 것은 모 선생님의 발언 때문이었다. 그 선생님께서는 수업시간에 동창회비 1만 원을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것보다 더 많이 내는 사람들도 많다든가, 동창회 운영에 3천만 원이 넘게 든다든가하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은 나중에 가면 동창들이 다 사회적 재산이기 때문에 1만 원은 투자로 생각하라는 데였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성격이 비뚤어진 나는 기분이 나빠져서 가입하지 않겠노라고 한층 더 다짐하게 되었다.
 이는 나의 원칙과도 관련이 깊은 이야기인데, 나는 지금까지 내 이익을 고려해가며 친구를 사귀어본 적은 없으며 앞으로도 없게 하고 싶다. 그리고 꼭 친구가 아니라 하더라도 나는 업무상, 사무상의 관계가 아니라면 인간관계를 이익이나 도움 같은 것을 생각해가며 맺을 생각은 없다. 그러므로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에 동창회에 나오라는 주장은 나 같은 이에게는 실로 모욕적인 말이다.


 나도 나중에는 동창회가 아쉬워질지도 모른다. 나 자신이 나약해져서 뭔가 도움 줄 만한 곳을 찾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그때일 것이며, 또 나는 내가 그렇게 되지 않기를 열렬히 바라고 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젊은 혈기와 몸에서 끓어오르는 신념에 힘입어 싹을 잘라놓는 게 나을 것이다. 후에 가서 연락 끊긴 친구의 연락처를 찾고 싶어진다거나 하면 다른 친구를 통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는 상당히 낙관적인 녀석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돈은 내고 동창회에 안 들겠다는 것은 내가 담임 선생님 등과 지은 타협인데, 남들은 가입비로 돈을 낼 때 나는 가입을 안 하기 위해 돈을 내는 셈이니 뭔가 좀 억울하긴 하다. 사치스럽다. 안 그래도 이래저래 벌이는 일 때문에 금전적 압박이 심한데... 한숨을 조금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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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8.02.08 16:31

예외와 반례 사이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내 자신이 우리 주변의 여러 일들에서 ‘예외’적인 존재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도 그런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도 대략 실존감각의 문제 때문에 내가 나 자신을 특별하게 여긴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또 그렇게까지 평범한 삶도 아니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나는 1988년 4월 11일 생임에도 주민등록에는 1988년 2월 25일로 신고가 되어있다. 학교를 일찍 들어가기 위해서 같은 이유가 아니다. 나 태어난 날 기분 좋아서 약주 몇 병(?) 하신 할아버지께서 음력 날짜로 올렸다고 한다. 생일을 앞당겨 신고하는 것이 그렇게까지 드문 것은 아닐지 몰라도, 의도성 같은 것도 없이 단지 술에 취해 음력으로 생일을 올리시고 벌금을 내셨다는 건 상당히 드문 일이 아닐까 한다. 내가 예외가 되기를 좋아했던 건지, 아니면 어쩌다보니 자연스레 곧잘 예외가 되었던 건지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문제다. 초등학교 때는 점심시간에 BB탄을 주워 모으며 돌아다녀 1000개 달성! 같은 짓을 했다거나, 볶음밥에 과일 넣기를 시도했다거나(사실 이건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지만), 기숙사의 선배라는 자들이 기합을 줄 때 혼자 대들어서 방 밖으로 쫓겨났다거나, 축제 때 여장을 한 이후로 “치마 입겠어!”를 주장한다거나, 점심시간에는 베돌이 짓을 한다거나, 심지어는 등교시간에 걷는 속도조차 나 혼자 뒤로 처지니 원.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예외가 되어 주목받고 싶은 욕망이 있답니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솔직히 나로서는 그런 마음이 전혀 없다고 부인하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런 마음이 내 동기가 될 정도로 강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종종 느끼는 건, ‘일반론’은 무섭다는 것이다. 일반론이 무서운 건 오히려 그것이 법칙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법칙은 반례가 나타나면 거짓으로 증명된다. 반면 일반론은 그저 “일반적으로, 대체로 그러하다.”란 소리기 때문에 그것을 반증하는 사례가 발견되어도 “그건 예외야.”라고 치워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일반론이 일으킬 수 있는 폐해 중 하나는 그것이 사람들을 강제하고 억압하는 수단이 될 때가 있다는 점이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이성애자다.” ― 그럼 동성애자는? “대중은 일반적으로 어리석다.” ― 엘리트주의적이고 오만한 발언이다. 솔직히 “대중”이란 말로 사람들을 묶어서 군집지능을 평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일 뿐더러, 그건 사안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여자는 일반적으로 소극적이다.” ― 페미니스트들이 들으면 분노할 명제다. “남자는 일반적으로 치마를 입지 않는다.” ― 나는 지금 왜 치마를 입고 돌아다닐까나? (확실히 아까 나갔을 때도 달라붙는 시선이 간질간질해서 거슬리긴 했다.)
  일반적인 명제들에 대한 반례는 종종 나타난다. 그러나 일반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런 반례들을 모두 ‘예외’라고 해버린다. 예컨대 최근에 들은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의 한 선생님이 “학교에 비판적이면 입시에 망한다. 유일한 예외는 유○★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즉, 나는 “학교에 비판적이면 입시에 망한다.”라는 명제의 반례가 아니라 예외로 치부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그놈 본받지 말고 학교 비판하지 마! 그놈은 예외일 뿐이야!” 그런 소리가 아닌가, 대략. 나름대로 입시라는 분야에서 반례가 되고 싶어 한 나의 꿈을 무참히 짓밟는 주장이다.
  내가 일반론은 입 밖으로 내서도 안 된다고 하려는 것은 아니다. “통계적으로 보니 대체로 그렇더라.” 같은 이야기는 물론 할 수 있다. 거시적으로 세계를 이해하려고 할 때 그런 일반론은 많은 도움이 되며 극소수의 반례들을 “예외일 뿐.”이라고 하는 것도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그런 일반론에서 항상 주의할 점은 그것이 미시적인 차원으로 왔을 때 실존하는 개개인이나 집단의 행복에 대한 억압이 되어서는 안 되며, 따라서 반례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거시적일 때와 미시적일 때 일반론을 말하는 사람의 태도가 달라야 한다는 것을 나는 지적할 따름이다.

  따라서 나는, 적어도 한 개인으로서는, 일반론들에 대한 예외로 치부될 바에는 반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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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8.02.02 00:20

순수를 망가뜨릴 때


 눈의 이미지 중 하나는 순수함이다. 새하얗기 때문일까. 그 눈이 산성이든 아니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래, 내게 눈은 순수한 시간이다. 특히 조금밖에 내리지 않은 눈은 소중할 수밖에 없는 순수한 순간이다. 더욱이 그것이 몇 줌 남지 않은 첫눈이라면. 눈은 순수하기에 망가져야 한다면 순수하게 망가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애초에 그리 오래 머무르는 것도 아니고 길어봐야 겨울의 한복판 일부에나 머무르는 눈인데, 그나마 있는 눈마저 순수하지 못하게 파괴된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인 것이다. 온전히 순수한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기 어렵단 것, 그리고 그 순수가 세상 속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것 자체가 슬픈 일이건만.


 

 눈을 가장 순수하게 망가뜨린다는 것, 그건 바라보고, 생각하는 일이다. 눈을 보며 그 눈에 의미를 부여하고… 생각하고… 추억하고… 미래를 꿈꾸고……. 공상에 잠긴다거나, 시를 쓰는 일,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면서, 음악을 만드는 일. 그런 것들은 내 의식 속에서 눈을 눈 자체가 아닌 다른 의미로 환원함으로써 눈을 망가뜨린다. 그러나 그 방법은 눈의 상태를 다만 내 영역에서만 망가뜨릴 뿐 다른 사람의 영역에서는 처음 내린 상태 그대로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순수한 것이다. 그래, 눈을 다른 사람이 재활용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에. 또한 그 일들은, ‘나’로서 행하는 일이기에 순수한 것이다.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자식, 어느 직장의 사무원… 그런 식으로 나를 묶고 있는 굴레들 이전에 뭐라 규정되지 않은, ‘나’ 자신으로서 하는 일이기에 순수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가장 흔한 경우이자 그 다음으로 순수한 망가뜨리기는 아마 그 위를 지나가고, 그 위에서 뒹굴고, 뛰놀고, 그러면서 그 위에 흔적을 남기는 일일 것이다. 그것은 소박하기에 순수하다. 그리고 또한 그 ‘나’로서 하는 일이기에 순수하다. 내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가는 데 내가 가진 여러 사회적인 자리들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서 뒹구는 데에는 그저 몸뚱아리 하나만 있으면 되는 일이다. 그렇게 남는 흔적들은 나 자체의 것이요, 자연적인 것들이다. 그것이 사회적인 면에선 익명이기에, 오히려 그것은 자연적으론 본연의 고유한 흔적들이다. 다만 그것이 자신의 영역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영역과 공유하고 있는 눈의 존재를 망가뜨리는 일이어서 가장 순수한 행위는 될 수 없을 따름이다.


 

오늘 아침, 일어나 보니 밤새 내린 첫눈이 나무 위와 지붕 위에 약간씩 남아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창문 앞엔 몇 평도 안 될 듯한 눈이 어쩐 일인지 그곳에만 남아있었다. 눈이라는 순수와 때로는 대립하는, 순수한 태양이 이미 눈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로 없애고 있었는데도, 그렇게 남아있는 걸 보면…. 요행히 태양 볕이 그곳만 비껴간 것일까. 하지만 감동도 잠시, 아래층으로 내려가 좀더 자세히 그 장면을 보았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안타까움과 울분, 슬픔, 그리고 동정이 뒤섞인 듯한 조금 미묘한 충격이었다. 겨우 겨우 살아 남아있던 그 자그마한 화폭엔 갖가지 이름들이 수식어와 함께 새겨져 있었다. 지우개로 지울 수도 없는, 칼자국. 내가 그걸 인지한 순간, 죄책감마저 느꼈다면 그건 과장된 감정일 것인가. 여하간, 그렇게 눈은 인간 사회의 ‘이름’들로 파괴되어 있었다.
 그렇게 그 날 아침 겨울 북서풍이 성난 듯이, 상처받은 눈밭을 얼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 첫눈 위에 이름을 남기는 것은 첫눈에 대한 이기적인 기념의 마음인가? 자신의 존재를 그렇게 증명하고 싶은 것일까? 그 소중한 순수 위에 이름을 쓰고, 자찬하는, 혹은 남을 비방하는 문자를 새겨놓는 그 의도를 나는 알 수가 없다. 아마 거기엔 나름대로 소중한 소망들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 남지도 않은 소중한 첫눈 위에 그런 짓을 하는 건 “너무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법한, 정말 욕심이 과한 행동이었다.
 그 ‘이름’이 사회인으로서의 나이지, ‘나’라는 보다 본연의 자아에 바탕한 일도 아니란 점은 나를 더욱 서글프게 만들고 만다. 어째서 자연의 순수를 그와 같은 급으로 대하지 않고 사회적 인간으로서 대하는 것일까. 이름, 그것은 사회가 우리에게 준 것이다. 그건 일종의 규정이자 저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아, 이름은 모든 사회적인 것들을 함축하는 굉장한 축약어이자 그만큼 많은 규정들을 담고 있는 굉장한 선고이다. 눈을 바라보며 그것을 대할 때 나 자신 또한 그런 것들을 벗어나 순수하길 바라는 것은 그리 사회적이지 못한 나만의 과욕 혹은 괴팍함일까.
 나는 사람들이 우선 인간이길 바랬을 뿐이다. 우선 ‘나’이기를. 이런 건 반사회적인가? 그러나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최소한 그러한 자연의 순수를 대할 때만은 난 여전히 사람들이 자기이길 바랄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사회인이기 이전에 ‘나’이길 바랄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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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8.01.30 23:56
최선을 다하는 것


  우리는 종종 최선을 다한다는 말을 쓴다. 그 말이 언급되는 것은 삶의 지혜를 말하는 자리에서일 때도 있으며, 어떤 일에 대해 변명하는 자리일 때도 있다.

  최선을 다한다. ― 이는 실로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모호한 말이지만, 고3 교실에서 사용될 때는 종종, 고상하게 말하면 현재를 희생하고 미래에 투자하는 것, 대놓고 말하면 사회적․유희적 인간으로서의 여러 가지 욕망들을 최대한 죽이고 입시용 공부에 전념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3 교실에 앉아서 속으로는 죽어라 욕을 해대며 작년 모의고사 문제를 풀어주는 세계사 선생님을 노려보고 있다 보면 "어문 데 신경 쓰지 말고 지금 최선을 다해야 나중에 후회를 안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게 된다. 최선을 다하는 것에 대한 이와 같은 해석은 비단 고3 교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는 어느새 최선을 다하는 것은 오직 하나만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라 여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직접적으로는 분명 온힘을 기울인다는 의미다. 그러나 한 발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본래 최선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인간에게 최선은 아마 행복일 것이다. 그리고 행복의 개념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겠으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 개념을 빌자면, 행복이란 원칙적으로는 삶 전체, 나라고 하는 존재 전체를 두고 판단해야 하는 문제다. 그러므로 (입시) 공부는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최선을 다해 다른 데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공부만 해야 나중에 후회를 안 한다고 하는 이야기에 대한 반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닌데 그 공부조차 제대로 못해서야 쓰겠냐는 얼토당토않은 논리는 대체 어째서 전부가 아닌 공부를 그들이 말하는 '제대로'의 수준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다른 것들을 모두 포기하고 입시 공부에 매달리는 것은, 최선이 아니라 생활의 기형적인 불균형이라고 불러야 옳다. 만약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그런 의미였다면, 나는 몇 달 전에 학교고 수학능력시험이고 때려쳤어야 할 것이다. 내가 더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쪽에만 전념하기 위해서.

  어설프게 안 경제학이 잘못된 인식을 형성했다고나 할까. 경제학에는 가치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것 전부를 가질 수는 없다는 경제 원리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말하자면 논리적인 이야기이며, 그 원리를 생활에 적용하면서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것들을 다 포기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비약이다. 내가 18시부터 19시까지 부산에 있기로 했다면 18시부터 19시까지 부산에 있으면서 동시에 남극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라든가 내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실천하기로 했으면 마음고생을 할 각오는 해야 한다는 것이 이 경제 원리의 예가 될 수 있겠다. 그러나 그것이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하루 종일 죽도록 공부만 해야 한다."라든가 "행복하려면 지금은 오직 공부만 해야 한다."는 식의 극단적인 제한으로 발전할 수는 없다. 경제학에는 실제로 "효과적인 의사결정이란 보통 어떤 것을 조금 더 가지고 어떤 것을 조금 덜 가지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전부 아니면 무(all or nothing)’의 방식으로 결정해야 하는 것은 거의 없다."와 같은 원리도 있다.

  요컨대,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흔히들 쓰는 시쳇말로, 올인(all-in)과 같은 것이라 여겨서는 안 된다는 소리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자기 삶에서 내가 어떤 가치들을 어느 정도로 중요히 여기고 또 그 가치들을 실현하기 위해서 어떻게 살 것인지 적극적으로 성찰하고 치열하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 성찰의 결과가 어떤 한 가치를 위한 다른 가치들의 희생일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며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다. 정말 자신을 혹사시키며 죽어라 해서라도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 하나를 위해 다른 것들을 희생시킬 수도 있는 일이다. 진심으로 그렇게 했다면 그 선택에는 어떤 찌꺼기도 없을 것이며, 그 생활은 괴롭더라도 보람찰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가 반드시 간절히 원하고 싶은 단 하나의 소망을 갖고서 다른 모든 가치들을 희생시키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무언가 하나의 정해진 가치에만 매진하는 것이 아니다. 단 하나의 가치만을 바라보고 사는 인생은 오히려 "나는 경험하기 위해 산다."(홍정훈)와 같은 입장에서는 비판의 대상이기도 하다. 현재와 미래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언제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한다거나 현재를 위해 미래를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삶의 여러 상황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것들에 어떻게 우리 삶의 비중을 배분할지 그 구체적인 결정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이며, 우리는 그 가치관의 차이, 실천의 차이에 따라 각자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관건은 치열하게 사는 것 ― 이는 내가 한 선생님께 들은 이후로 항상 간직하고 살려 노력하는 말 중 하나인데 ― 이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비록 최선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항상 최선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치열한 삶의 자세, 현재에 충실한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대학 학벌에 굉장히 많이 집착하면서도 대학 입시는 보기 귀찮아한다면 당신은 치열하지 않은 자세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며, 나중에 자신이 원하는 학벌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과거의 자신이나 세상에 대해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게 될 것이다. (사회적으로 볼 때, 이런 경우만큼은 치열하지 않은 자세가 차라리 나을 수도 있겠지만….) 만일 당신이 어떤 법안에 반대하는데, 그에 대한 어떠한 항의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진실성과 삶의 치열함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는 여러 가지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지지한다. 왜냐하면 행복도 성공도 어느 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이 여러 가지 가치를 모두 이루어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다. 소중한 것을 위해 다른 소중한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처럼 느껴진다. 현실에서는 종종 그런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지만, 그럴 때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좀 더 나은 선택은 없을까?" 그건 마치, 빠른 경제성장과 민주화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개발독재를 비판하고 둘 모두를 이룰, 좀 더 나은 방법은 없었을지 따져 물어야 하는 것과 같다. 『퇴마록』에 나오듯, 세상이 멸망하느냐 내가 희생하느냐의 기로에서도 둘 모두 살 길은 없을지 생각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길은 언제나 무한히 있다. 어느 한 쪽을 버리는 것은 최후의 최후의 최후에야 선택해도 좋은 차선책이다.


  얼마 전에 어떤 선생님께서 고3 교실인데 점심시간에 공부는 안하고 뭐가 이렇게 시끄럽냐고, 아직 철딱서니가 없다고 얼굴을 찡그리며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소란한 것도 나름대로 즐겁지 않습니까?"라고 되물어주었다. 나는 급우들이 그렇게 떠들어 놓고 떠든 사람 본인이 나중에 오늘도 공부를 못했다면서 불평하는 것은 정말 싫어하지만,(이는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후회'다.) 떠드는 것 자체를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는다. 지나친 소음은 귀에 좋지 않긴 하지만, 적당하게 떠드는 환경이, 바로 옆 공기 중에도 입시주의 담론이 꽉 차있는 듯한 숨 막히는 침묵보다는 낫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단 하나의 가치를 맹신하고 다른 데 눈을 돌릴 줄 모르는 삶과, 여러 가치와 여러 길에 눈을 돌릴 줄 아는 삶 중에서 과연 어느 쪽이 철딱서니가 없는 것일까?





참고


*

http://1318virus.net/modules/news/view.php?id=2516

-야! 바위 한국교육
<칼럼> 잘만뽑으면 인생역전 Look SKY, It's different!
양동훈 기자


*

 “그리고 미야치 나오스케, 너도 이상해. 어째서 불행을 선택하지? 그리고 어째서 결혼 아니면 구보라는 양자택일, 취사선택이 되는 거지?”

 “어째서라니….”

 “미야치 나오스케, 그건 타협이라는 거다.”

 크게 한숨을 쉬며 심호흡을 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잘 들어, 미야치 나오스케. 그리고 도지마 코우도. 난 내 해피엔딩을 의심한 적이 없다. 그리고 자신의 행복에 일말의 타협도 할 생각은 없다. 난 미키와 결혼할 거고, 구보도 구한다. 적군 아군을 불문하고 사람을 죽게 만들 생각도 없고, 언젠가는 나데시코 누나한테도 이 결혼을 인정받을 거다. 난 축복받는 결혼을 할 테고, 최소한 다섯 명의 아이를 낳아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아갈 거다.”

 “엄청난 인생 설계.”

 코우는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다섯 명이나?”

 “다섯 명 이상이다”라고 말을 받는 부장.

 “그게, 그게 내 꿈이다. 그리고 난 그 어느 것도 취사선택할 생각은 없다. 왜냐면 모든 것을 실현할 것이고, 그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난 해피엔딩을 믿고 있으며, 행복해지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미래는 언제나 희망으로 넘쳐나고 있어야 한다!”

 미래를, 가능성을 믿지 않고 대체 무엇을 믿는가?


(우에오 히사미츠 지음, 한나리 옮김, 『악마의 파트너 8 It/'Dog Days'를 보내는 방법』 대원씨아이 中)


*

 “분명히 말했다. 길은 둘 중 하나라고.”
 “뭐?”
 나데시코를 무시한 채 미키에게 말을 거는 부장.
 “속지 마, 미키. 퀴즈도 아니고 시험도 아닌데 길이 둘 중 하나일 리 없어! 길은 언제나 무한히 있는 거야!
 “모토나리….”
 “생각을 멈추어서는 안 돼! 생각해, 미키. 생각해서, 이 경우 제3의 길을 선택해야 해. 거기에 우리 행복이 있어!”
 “제, 제3의 길….”
 “제, 제3의 길이라니!”
 몸을 숙여 부장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대고 새된 소리를 지르는 나데시코.
 “이 상황에 달리 어떤 길이 있는데!”
 ‘바보 같은 소리. 죽어!’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을 필사적으로 억누른다. 이 녀석한테 하나다파의 미래가 달려 있다. 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건 어떨까”하며 개의치 않고 이렇게 나불대는 그를 보고는 방아쇠를 당길 뻔했다.
 “우선 모두 총을 내려놓고 대화를 나누는 거다. 다 함께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필사적으로 참으며 부장을 째려본다.
 그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날 바보로 아나?’
 ‘아니면 이 녀석, 진짜 바보인가?’
 미츠카 모토나리는 진지하게 나데시코를 보고 말했다.
 “당신도 사실은 미키가 행복해지길 바랄 것이다.”
 “그… 그건….”
 고개를 흔든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중요한 건 하나다파의 존속 문제야. 난 하나다파의 당―.”
 “하나다파도 살아남고 미키도 행복해지면 좋겠다고 생각지 않나?”
 “물론 생각해!”
 이젠 절규다.
 “그럴 수 없으니까 이 고생을 하는 거잖아! 넌 정말―.”
 “가능하다.”
 자신감 넘치는 부장.
 할 말을 잃은 나데시코는 본 체 만 체하고 미키를 본다.
 “그게 바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모토나리….”
 “잘 들어, 미키. 우선 총을 놓고 부탁하는 거다. 살려달라고. 서로 돕자고, 그리고 대화를 나누자고.”
 “미쳤어.”
 말을 끊는 나데시코를 여전히 무시하고 말을 잇는다.
 “잘 들어, 미키.”
 “총은, 폭력은 생각을 멈춘 자가 내리는 결론이야. 그리고 생각을 포기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배신 행위다. 생각을 멈추어서는 안 돼. 총은 내려놓고 믿는 거야, 당신 언니를. 미키가 믿어야 상대방도 믿어. 상대를 믿고, 그리고 해피엔딩을 믿는 거다. 그러려면 우선 총을 내려놔, 미키.”


(중략)


 “네게는!”
 이제는 절규하며 미키에게 총구를 겨눈다.
 “나를 죽이고 함께 죽느냐, 자신을 죽이고 결혼하느냐밖에 없다구!”
 ‘그래, 그것밖에 없어.’
 ‘다 함께 행복해질 수는…. 그런 일은 절대로 없어. 미츠카 모토나리, 네 말은 안이한 이상론, 말도 안 되는 헛소리야!’
  그리고 미키는 스스로 희생하는 길을 택하겠지. 그 길밖에 없다. 그래. 나데시코는 땅에 쓰러져 있는 부장을 보았다. 잘 들어, 미츠카 모토나리. 앞으로 네가 살아남아 행복해진다고 쳐도(행복해질 수 있다면 말이지만) 그건 미키가 자신을 희생해서 그런 거다. 다 함께 행복해질 수는 없어. 행복을 다른 사람의 희생 위에 성립하는 거다. 미키가 희생하지 않으면 하나다파가 망하는 것만큼 분명한 일이다.
 ‘맞아.’
 ‘미키가 권총을 버릴 리 없어. 나를 쏠지언정 버릴 리 없어. 절대―.’
 ‘미키는 그 정도로 어리석진 않아.’
 ‘절대―.’

 “미키?”

 “미키?”

 미키는 잠시 자신의 권총을 바라봤다.
 무표정하게.

(우에오 히사미츠 지음, 한나리 옮김, 『악마의 파트너 9 It/'Dog Days'를 마치는 방법』 대원씨아이 中)




(하나다 미키가 과연 무엇을 선택했을지는 직접 책을 읽으시길.

미츠카 모토나리 - 부장. 악마의 파트너 8, 9권에서 너무 멋진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5권 끝부분에서 올라갔던 저의 호감도를 확실하게 높여주는군요. 악마의 파트너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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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8.01.30 23:51

내가 바라는 세상

 (2005.08.)

 사회를 바꾸고 싶어한다지만 그렇게 바꾸어서, 내가 이루고자 하는 세상은 대체 어떤 것인가. EBS에서 제작한 드라마, "지금도 마로니에는"에서 나오는 말처럼 억울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 세상인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바라는 사회, 그건 평소에 누누히 말해왔듯이 '모든 존재가 행복할 수 있는 사회' 다. 사회의 범위가 인간사회라면 모든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다. 행복한 사회가 아니라 행복할 수 있는 사회다. 나는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그런 천국을 꿈꾸진 않는다. 그런 세상이라면 오히려 살 의미가 없는 걸지도 모른다. 그건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것처럼 마약을 돌려도 될 일 아닐까?

 행복할 수 있는 사회란 한 마디로 희망이 있는 사회다. 물론 지금도 희망은 있다. 그 빛이 너무도 미약하기에 못 보는 사람들이 많을 뿐이다. 나는 세상에서 불의라든가 악을 완전히 불식시킬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설령 부당하고 불의한 일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바꿀 수 있다고 느낄 수 있는, 희망있는 세상을 바란다. 나는 달이 없는 밤에도 별 하나를 가리키며 그래도 저기에 별이 있지 않느냐고, 이성의 빛이 인간적인 어둠 한 점 없이 세상을 집어삼키더라도 저기에는 그 빛을 피할 그늘이 있지 않느냐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어째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인간사회를 꿈꾸는가 하면, 나는 결국 주변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나자신도 지속적으로 행복할 수는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내 주변이란 게 좁은 개념이었지만, 이렇게 교통과 통신이 발달해서 전세계의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세상에서, 그 주변이란 전세계로 확장된다. 상당히 이기적인 발상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래서 나는 바쿠닌씨의 "연대적 자유" 개념을 참 좋아한다. "세상에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나도 자유롭지 않다."


 내가 어릴 때부터 학자가 되겠노라 한 것도 역시 같은 맥락의 꿈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학문의 발달과 지식의 증진이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릴 적 내 꿈은 자연과학자였다. 자연과학이 그것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금 나이를 먹은 뒤 다시 본 자연과학은, 과연 그것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의심을 품게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계속 어떻게 살 것인지 질문을 하다보니 철학사에도 손을 댔고 다양한 인문·사회분야에 눈을 돌렸다. 계속되는 질문은 '진리'를 해체한다. 도덕이나 윤리 등을 향해 계속 질문해서 나온 결론은 결국 다분히 결과주의적인 모든 사람의 행복이었다. 인식론을 향해 질문해서 나온 결론은 불가지론이었지만, 나름대로 그 과정에서 여러 결과를 얻었다. 어찌 되었건, 그런 생각으로 학자가 되기로 한 것이니 "실천적 지식인" "유기적 지식인" 같은 것에 눈길을 주게 된 건 당연한 것일지도.


 마찬가지로 지금 내 가치관의 대부분은 그런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내가 나름대로 정당화시킨 것들이다. 예를 들어, 내가 개인주의적인 이유는 내 눈으로 봤을 때 행복을 경험하는 최소단위는 개체이기 때문이다. 내가 공동체주의적인 이유는 개인은 공동체 안에서 여러 가지 행복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체세포의 눈으로 보면 체세포가 단위일지도 모르고, 사회의 눈으로 보면 사회가 단위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 눈으로는 그렇다. 여기에서 나는 나라는 개념을 함부로 상정하고 있다. 사실 이것도 해체하려 들면 못할 게 없는 개념이긴 하다. 그러나 내게 '나'라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일단은. 극단적인 예로 내 오른팔 체세포들은 안전하게 둔 채 왼팔 세포들만 불에 지진다면, 아무래도 나는 행복하진 않을 것 같다.


 8.6 학생인권행사를 준비하느라 전단지를 나눠주고 홍보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이런다고 바뀔까요?"였다. 그에 대한 대답은, 여러분이 "이런다고 바뀔까요?"하며 주저하지만 않는다면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을 사는 당사자들이 남의 일인 양 그렇게 생각하면 어떻게 하나. 여러분 삶의 주인공은 여러분 자신이라는 진부한 이야기를 다시 해줘야 하는 건가? 필요한 것은 열정. 희망. 의지. 소망. 제발, 모든 뜨거운 피를 가진 사람들이여,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품자.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사회는 이상이다.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도 이상이다. 어쩌면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희망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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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8.01.30 23:48

기차에 대한 단상들

 2005.07.


KTX에 탈 때면 꼭 역방향석에
 ‘이제 돈으로 시간을 사는 시대일까.’ 역에서 KTX표를 사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것이 특별히 나쁘다거나 좋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저 ‘그럴 수도 있지.’ 정도로 넘길 뿐이다. KTX를 타고 빠르게 다니는 것에 좋은 점도 있고 안 좋은 점도 있을 터.
 KTX가 시끄럽고 의자는 불편하니 어쩌니 하고 또 어느 정도는 사실이긴 하지만, 내가 KTX에서 좋아하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역방향석이다. 내가 역방향석에만 타는 것은 비행기만큼 널찍하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새마을호 좌석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역방향석을 꺼려서 역방향석 좌석이 곧잘 남는 탓도 있지만 역방향석에 앉아서 뒤쪽을 보며 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정방향석을 사더라도 역방향석의 빈 좌석에 가서 앉을 정도다.
 대개 우리는 앞을 보며 살아야 한다. “현자는 앞을 보면서 뒤를 생각한다.”고들 하지만 나는 한꺼번에 두 방향을 보며 살아갈 만한 능력이 없는지라 앞을 보며 걸을 때는 종종 뒤 같은 건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잠깐 멈춰서 있을 때면 뒤를 돌아보다가 문득 한숨지을 뿐이다. 그래서 평소와 달리 오래오래, 달려가면서도 지나쳐온 뒤쪽을 오래오래 바라볼 수 있는 역방향석을 좋아한다.



입석 승객의 무소속감
 무궁화호에 탈 때면 곧잘 서서 가게 된다. 입석을 끊어서 그럴 때도 있고, 좌석을 끊었어도 서서 갈 때가 있다. 좌석을 끊어서 서서 가는 경우는 보통 내 자리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앉아 있을 때다. 그럴 때면 도저히 비켜달라고 말할 수가 없다. 숫기가 없어서 그렇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저 사람 대신 서서 간다고 생각하면 별 불만은 생기지 않는다.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서서 갈 뿐이다.
 객실과 객실 사이의 통로는 입석 승객들의 자리다. 가방을 짊어진 사람, 아이를 앉고 있는 사람, 술냄새가 나는 아저씨... 이런 사람들이 문 앞 계단에 앉아 있기도 하고, 마냥 화장실 앞을 서성이기도 한다. 환한 불이 켜 있고 히터 아니면 에어컨이 돌아가는 저 객실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 문 하나를 두고 공기조차 다르다. 통로의 공기에는 소음과 묘한 냄새가 가득 차 있다. 객실보다 객실 사이의 통로가 더 만원이다.
 그 ‘사이의 무소속’이 최고조에 달하는 곳은 바로 열차와 열차가 부딪는 곳, 검은 고무가 살을 비비는 곳, 그 틈새로 아래쪽 철로와 바깥 풍경이 언뜻언뜻 보이는 바로 그곳이다. 그 위에 서 있으면 발을 타고 전해지는 기차의 진동이 그대로 불안으로 이어진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어중간하게, 불안한 발판 위에 서 있는 불안과 공포, 그리고...
 사람들은 그 불안한 곳을 지나쳐야할 경유지로 삼는다. 입석 손님들도 그곳은 지나칠 곳이다. 하지만 나는 그 위에 서 있곤 한다. 불안을 느끼며. 씁쓸함을 느끼며. 내가 살아가는 곳이란 어쩌면 그와 비슷한 불안한 발판, 떠있는 듯 흔들거리는 발판 위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다. 그것은 일상이란 게 얼마나 불안정한지 알아버린 사람의 자조다.



밤차, 창밖
 나는 기차를 탄다고 하면 보통 밤차를 타게 된다. 낮에 기차를 타는 일이 드물다.
  밤차에서 창문 밖을 보려드는 사람은 자신의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기차 안은 밝은데 그 밖은 어두운 탓에 빛이 반사되어 버리는 것이다. 해서 문득 지어보았던 졸작이 창문이라는 녀석으로, 결국 우리는 바깥(다른 사람)을 보려고 하다가 자신의 얼굴만을 마주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어두운 창밖의 세상에서 보이는 것은 불빛들뿐이다. 외딴 길 가로등의 불빛. 어느 집의 불빛. 도시의 불빛. 기차가 도시를 벗어난 후 뒤를 보면 하늘 한 구석이 희미하게 밝은 것을 볼 수 있어서 그렇게 나는 불야성(不夜城)이라는 단어를 실감했다.
 밖을 보려면 좀더 마음속을 어둡게 해야 함을 깨닫는다. 불이 밝지 않은 객실 밖으로 나가 문에 달려있는 창문에 이마를 기대고 바짝 붙어 선다. 머리에 덜컹거리는 느낌이 전해진다. 문득 밤인데도 선로 곁에 피어서 휘청거리는 꽃들 몇이 눈에 잔상을 남기며 지나친다. 기차는, 그 꽃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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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기차, 수필
어설픈꿈2008.01.27 00:01

나는 조건 있는 사랑을 한다.


(2006년 7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람의 인식에 너무나도 분명한 한계가 있는 이상 여기서 ‘당신’이 대체 무엇인지를 우리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의 얼굴인가. 당신의 성격인가. 돈인가. 성적인가. 능력인가. 목소리인가. 혹은….
  당신이라는 총체.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연결고리들. 그런 것들을 모두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Only God Knows”의 영역. 사랑이 지향하는 이상이 추상적인 총체에 대한 것일지라도 실제의 구체적 사랑이 그렇게 될 수는 없다.
  굳이 사랑이 아니더라도 사람에 대한 모든 감정에서 마찬가지다. 문제는 누군가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점. 즉, 누군가를 누군가로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특질은 어떤 것이냐는 문제. 퍼스널리티의 정의. 요체.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가치판단이 나에게 누군가가 대체 ‘무엇’인지를 결정한다.


  식상한 이야기를 좀 할까 한다. 재산이 누군가의 본질이 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는 될 수 없을 것이다. 재산은 인간이 아니므로. 재산은 인간이 사용하는 것은 될 수 있어도 인간 그 자체로 이해되지는 않는다. 물질적으로 우선 분리되어 있기도 하고, 또 재산은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돈은 돌고 도는 것이기에 고유한 성격이 너무 약하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정략결혼. 그 무엇도 인간적인 입장에서는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인간적이지 못하니까. 정도 차이라고는 해도.
  하지만 돈 같은 것처럼 명확한 경우도 드물다. 예를 들어, 성적이라거나 사회적 인망이라거나 권력이라거나 소위 '능력'. 한 인간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정도와 일치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는 게 반드시 무근거한 것도 아니다. 우리는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누군가를 대하는 것일까. 혹은 대해야 하는 것일까.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보다 하나 낮은 학년의 한 여자아이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여자아이가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고, 내가 물어본 사람은 대충 키도 크고 괜찮은 아이라고 대답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사상이 어때?”라고 이어서 물은 나 자신 때문에. 그 질문을 무심코 던지고 나서 나는 속으로 숨을 삼켰다.
  사상은 분명히 한 사람의 내부에 속한 것으로 간주되고, 또 그 사람의 ‘개성’에 상당한 역할을 차지하는 것으로 통상 간주된다. 은근히 중요하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사상과 밀착된 일을 한다. 그것(청소년인권운동)을 나는 내 ‘본업’이라고까지 종종 부른다. 행동하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사고하는 사람으로서도, 사상은 내 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아무래도 사상은 사(私)적 영역보다는 공(公)적 영역에 속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건 일종의 혼동일지도 모른다. 뭐, 애초에 공사를 딱 구별한다는 게 우스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까지 사상을 먼저 묻는 나의 그 태도에 나 자신이 놀라버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예전이라면 성격은 어떤 애냐고 물었겠지.) 그것은 약간의 공허와 함께 찾아온 전율이었다. 마치 무대포 바보가 하이킹을 하겠다고 자전거를 끌고 산비탈을 올라가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쉬다가 갑자기 자기가 가고자 했던 길이 어떤 길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과 같은 느낌. 우습게 들릴지 몰라도 늘상 입으로만 말하던 공과 사, 일상과 운동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한 것이 바로 그때 그 질문에서 받은 충격이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질문이다. 인류라는 종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고 한 인간을 결정짓는 요소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다. 그것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존재를 해체하고 연기론적인 공(空)의 입장에서 본다면 오히려 답이 없다는 것이 정답일 터이다.
  흔히들 사랑할 때 조건 없는, 조건 따지지 않는 사랑을 하라고 한다. 그것은 대개 상대의 존재를 사랑하고 존재에 옵션으로 딸려 있는 것에 휘둘리지 말라는 소리겠지만, 존재 자체가 모호한 판국에 “조건 없는”이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사랑할 때 조건 따지지 말라는 말은, 아마도 머리로 사랑하지 말고 가슴으로 사랑하라는 말과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겠지.
  그렇게 따지면 나는 머리로 하는 사랑을 하는 사람으로, ‘제대로 된’ 사랑 같은 건 하지 않는 셈이다. (더 정확하게는 머리와 가슴의 경계선을 많이 무너뜨린 거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많이 서툴지는 몰라도 나한테는 내 나름의 감정의 형식이 있고, 그게 틀렸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뭐, 그런 이유로, 나는 조건 있는 사랑을 한다. 이건 긴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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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8.01.13 23:18

에누리

(2005년 8월)


  요즘 세상은 참 이상하다. 규모가 크고 현대적인 가게에서는 손님들이 에누리를 잘 하지 않는다. 각종 할인 상품이 쏟아져 나오긴 하지만 거기에서 할인이란 손님과 가게 주인 사이의 흥정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가게 쪽의 일방적인 판매전략이다. 반면 시장이나 길거리에 앉아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과 거래를 할 때는 곧잘 값을 깎는다. 부유한 자들의 물건을 살 때는 값을 깎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의 물건을 살 때 값을 깎는 셈이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中)


  사람들은 때론 참 잔인하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하다. 커다란 매장에서는 판매자 쪽에서 브랜드네임 같은 것들을 빌미로 에누리 붙이는 것을 손님이 보고만 있는다. 반면 시장 바닥에서는 손님이 에누리한다.(에누리에는 이윤을 남기려고 붙인 것, 즉 마진의 의미도 있고, 가격을 깎는 것의 의미도 있다. 서로 상반되는 두 의미를 지닌 단어다.) 곧 내 돈의 가치를 에누리하고 다른 사람이 파는 상품의 가치를 에누리하는 것이다. 남의 것을 빼앗음으로써 자기 것을 불리는 방식이다. 날강도근성이다.


  나도 얼마 전까진 시장이나 길거리에서 물건 값을 깎지 못하는 내가 어리석다는 생각을 간혹 했다. 그러나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니 또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물건 값 깎는 일을 하지 않는다. 나도 대량으로 복사나 인쇄를 하는 경우에는 깎기도 하고 노래방에서는 흥정도 한다. 단골로 다니는 문구점이나 서점 같은 데는 내가 흥정하려 하지 않아도 깎아줄 때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길거리나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는 에누리하지 않는다. 대신 언젠가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에누리를 하려 들어보겠노라 다짐해보는 건 좀 곤란한 일일까. 기차 삯을 에누리하려던 시골영감님처럼.


  혹자는 에누리야말로 시장바닥에 남아 있는 정(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성이 두드러게 나타나는(예를 들어 시장과 구멍가게와 대형마트가 한 마을에 있는) 현대 사회에서 그런 식으로 남들 사정은 아랑곳않고 자기에게 유리한 점들만 이용해먹으려고 하는 것은 좀 비양심적이지 않은가? 길에 앉아서 직접 캐온 나물을 팔고 있는 할머니께 돈을 더 드리는 것은 사려깊지 못한 동정이겠지만, 적어도 그 사람의 마음씀씀이를 이용해서 값을 더 깎으려 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짓이다. 대개는 값을 깎거나 하지 않아도 푸짐하게 담아주는 인정이 있는 곳인데 말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 떠돌던 "재산 없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란 텍스트를 보면 "서 푼짜리 인정에 약"한 것과 "도덕성이나 인간 관계를 이득보다 우선하는 줄 착각"하는 것을 욕하고 있다. 이젠 아예 그런 식의 노골적으로 돈 벌려면 도덕이나 정 같은 건 버리라는 류의 글들이 떠돈다. 그래도 그 텍스트에 달린 댓글들 중에 그 부분을 욕하는 내용이 많다는 건, 아직 배금주의가 사회를 모두 잠식하지는 않았다는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잠시 막연하게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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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8.01.13 23:14

이건 '수필'이라는 생각조차 거의 하지 않고 휙휙 써내려간 문자 그대로의 수필(?)


( 2005년 9월)



읽고도 알지 못하는 걸까



 『모모』를 읽어보았는가. 그래, 그 얼마 전에 모 드라마에 나왔다고 하여 유명해진 그 책 말이다.  (그 책이 드라마에 나오기 전에 대단히 인상 깊게 읽었던 사람으로서는 좀 씁쓸하다.) 세상에 나온 지 몇십 년 된 미하엘 엔데씨의 동화인지 소설인지 애매한 책 말이다. 그 책에서 첫째로 인상 깊었던 것이 귀기울 줄 아는 모모와 한 번 쓸고 한 번 숨쉬는 청소부 베포, 이야기꾼 기기의 삶이었고, 두번째로 인상깊었던 것이 회색신사들이었다. 회색신사라는 존재는 미하엘 엔데씨가 사람들에게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모』를 읽어도 알지 못하는 듯하다. 자기 안에 얼마나 많은 회색신사들이 기생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기자신이 회색신사에 가까워져 가고 있는지.

 벼슬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수식어, 절대로 거부하고 싶은 허구적인 수식어를 달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인 내 삶을 들여다보자. 예를 들어 고3 담임 선생님들은 요즘 들어 수능이 83일 남았다고 아침 자습 시간에 20분 일찍 와서 공부하고 점심시간에 40분 일찍 와서 공부하라고 성화를 부리고 있다. 시간을 아끼라고 성화를 부리고 있다. 지금 열심히 해서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쉬라고 하고 있다. 이런 태도가 사람들에게 찾아와서 하루에 몇 초를 낭비하고 있는지 아시느냐고, 계산기를 두드려 현란한 숫자로 사람들의 기가 질리게 만든 다음 시간을 아끼라고 하고선 그들의 시간을 훔쳐먹고 사는 회색신사들의 행태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지금 열심히 일해서 저축한 시간을 가지고 나중에 여유롭게 살라는 논리,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는 논리, 무조건 시간 아껴서 열심히 일하고 보라는 논리.

 『모모』가 9주 연속 베스트셀러였다고 하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모모』를 읽었다지만 과연 그 중에 자기 삶을 변화시킨 사람이 몇이나 될지 의심스럽다.『모모』를 읽어도,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읽어도,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를 봐도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항상 오늘이 내 인생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라" 같은 소리를 들어도,(사실 상당히 온전히 실현하기는 어려운 일이긴 한데) 멋진 말이라고만 생각하고 마는 모양이다. 말이야 좋지만 실제로는 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회색신사는 허구나 과장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책을 읽어도, 무슨 말을 들어도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진짜 회색신사는 자기 안에 있는 거라는 사실을. 회색신사와 계약을 맺고, 자기 안에 죽은 시간들을 들여놓은 데는 자신도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 카르페 디엠! 아무리 우리가 급하게 살아야 하는 세상이라고 해도, 그게 불가항력이라고 해도,(나는 불가항력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설혹 타협을 짓더라도 사는 데 꼭 필요한 만큼만 타협을 지으면 되는 일이다. 적어도 자기 자신까지 버리면서 그렇게 될 필요는 아직 없다.


 스스로 말하길 『모모』를 재미있게, 혹은 감명 깊게 읽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여, 제발 그게 사실이라면 『모모』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속삭여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 삶을 반성해보라. 문명비판서는 넘칠 정도로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루한 책도 있지만 재미있는 책도 있고, 어이없을 정도로 책이 있는가 하면 논리적이거나 감명깊은 책도 있다. 진실성이 느껴지는 책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문명비판서들이 나오는데도, 왜 이 사회는 그리 바뀐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걸까. 그나마, 기껏해야 웰빙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음식건강법으로 나온 것이나 효과를 좀 발휘하는 걸까. 사람들은 읽어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 빠진 걸까.

 사람들은 내가 특이하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나는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의 일부나 내가 읽은 책 몇 권들, 인권선언이나 대한민국 헌법 같은 것들을 곧이 곧대로 믿고 있는 순진한 자일 뿐이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면 당위적으로 그래야 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순진한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합리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계에 조화시킨다. 비합리적인 사람은 세계를 자신에게 맞추려고 노력한다. 그러므로 모든 진보는 비합리적인 사람 손에 달려있다."(조지 버나드 쇼) 도덕교과서를 무시하지 말라. 그 안에 있는 말이 모두 맞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유익하다.『모모』가 동화책 같다고 무시하지 말라. 괜히 "내가 정말 배워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고 하겠는가. 나는 저 말이 '우리가 배워야 할 당위적인 것'들만 두고 본다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많은 진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해서 나는 오늘도 자습시간에 학교 주위를 배회하며 학생들을 재촉하고 다음에 여유있을 때 산책하라는 교감선생님에게 당당히 외친다. "틀어박혀 공부하는 시간보다 내가 이렇게 호흡하는 시간이 더 유익합니다. 인생에 다음따윈 없습니다. 지금이 있을 뿐." 교감선생님은 그냥 웃고 가버리신다. 글쎄. 내게 미래는 현재의 일종일 뿐이다. 나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다른 현재를 위해 노력하는 지금이 보람차지 않다면, 다른 현재를 포기해버릴 것이다. 즐겁지 않은 인생, 지금 당장 의미가 있는 게 아닌 인생, 그런 건 무의미하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다보면, 현재의 마음을 보류하다보면, 그 보류된 마음이 쌓여서 미래에는 풀 수 없는 마음의 앙금이 되어버린다. 현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미래. 공허하지 않은가? 직접적인 괴로움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라, 보람과 의미에 대해 말하는 거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지금의 욕심이나 그런 게 별 거 아니고 논 게 후회만 된다고 지금 열심히 공부하라는 담임선생님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따지면 죽고 나서 보면 삶이란 아무 의미 없는 것입니다. 그런 논리를 들이대서 강요할 거라면, 모범을 보이셔서 그냥 지금 죽으시지요." (이런 식으로 말을 하니까 미움 받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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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모모, 수필
어설픈꿈2008.01.13 23:08

본래 2004년 연세대 논술 문제 답안으로 쓴 것이지만... 아무래도 이건 논술이라기보단 수필 같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노년, 죽음이라는 한계상황 앞에서


 늙는다는 말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어휘이다. 그러나 막상 그 뜻을 정확히 하려고 하면 모호한 구석이 많은 어휘이기도 하다. 노화는 분명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는 것이 곧 늙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똑같이 나이 육십인 사람들이라 해도 그 중에서 좀 더 늙은 사람, 좀 더 젊은 사람을 나누어 볼 수 있다. 나이 사십에도 세상 풍파에 시달려 폭삭 늙어버린 사람을 찾아볼 수 있다. 육체적인 노화의 경우에도 상당한 개인차가 있으며, 어느 정도 그에 발맞춰 진행되는 정신적인 노화도 개인차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곧 늙는 것의 개념은 단순히 나이가 얼마인지보다는 개별적인 개체들의 경우 나타나는 모습을 관찰함으로써 이해해야 한다.


 늙는다는 것은 결국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인간이 마모되고 삐걱거리며 고장나려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늙으면서 나타나는 것은 죽음의 징후 또는 그 징후에 대한 반응이다. 전자의 예로는 저하된 운동능력, 골다공증, 주름살, 침침해지는 눈, 폐경, 호르몬 분비 변화에 따른 기분변화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사람이 자신이 늙었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 사람은 임박해오는 죽음에 대해 여러 가지 태도를 취하게 된다. 둘로 나누자면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과 죽음을 부정하는 방식이다. 죽음을 받아들이느냐, 삶에 집착하느냐. 죽음을 받아들이면 늙을수록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경향이 있고 거부하면 마음이 편협해져가는 경향이 있다.


 욕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죽음을 받아들일 때 욕망은 감소한다. 욕망은 현재에 속하며 미래를 지향한다. 그러나 자신이 가까운 시일에 죽는다는 것을 받아들인 사람에게 내일은 없다. 오늘의 반복이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이런 유형의 노인은 무기력하고 욕망을 잘 품지 않으며, 설령 욕망이 생긴다 해도 금방 체념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죽음을 거부하는 경우 욕망은 증가한다. 그런 경우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한계상황에 저항하기 위해 삶에 더욱 집착한다. 내일이 없다면 바둥거려서 내일이 오도록 하겠다는 집착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이런 노인들은 살 날이 얼마 안 남았기에 삶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노인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늙어가는 것을 서글프게 생각할 때, 그는 무엇보다 젊음을 부러워한다. 노인들은 욕망을 품더라도 그 욕망에 매진할 열정이 없다. 따라서 그들의 욕망은 미련이다. 죽음을 받아들인 경우에는 세월의 흐름이 별 문제될 게 없겠지만, 죽음을 거부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세월이 흐를수록 미련만 더욱 커져간다. 미련은 커져 가는데 삶에 지친 노인들은 젊은이들처럼 문을 박차고 나설 수도 없으니 또 젊음에 대한 미련만 커진다. 악순환이다. 탄식과 실망, 후회, 편협함 같은 것만 남게 된다. 어찌 보면 한계상황에서는 조용히 굴복하는 자세가 인간으로서는 지혜로운 것일는지 모른다. 그것이 무기력하고 체념적인 태도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여하간 그 죽음이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닌 한, 인간은 죽음 앞에서 깨끗하게 비굴해지거나 추잡하게 비굴해질 수밖에 없다.


 티치아노의 그림, 「인간의 세 시기」에서 저 뒤편 노인이 해골과 함께 앉아 있듯이, 노년기란 죽음과 함께 하는 시기다. 그 죽음을 긍정하건 부정하건 노인의 화두는 죽음이다. 노인에게 세월이 흘러간다는 것은 죽음과 점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그것을 실감할 수 있는 때가 노년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계상황과 대면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좋은 선택이 되기는 힘든 일이다. 차라리 자기 손으로 의미 있는 일에 생명을 내놓는 게 더 나은 것일 수도 있다. 세월이 흘러서 죽음과 대면했을 때 인간이 그것에 어떻게 대처하고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 다루든 그 결과는 비굴하다면, 아예 그렇게 되기 전에 자기 손으로 세월을 멈춰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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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8.01.13 23:04

비를 맞고


 나는 비가 내려서 기분이 우울해진다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다. 나름대로 감상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지 구름이 좀 꼈다거나 하는 이유로 우울해지는 일은 없다. 구름이 좀 꼈기 때문에 더 우울해진다거나 더 즐거워지는 일은 있지만. 비가 내리기 때문에 더 우울해진다거나 더 즐거워지는 일은 있지만.

 비가 점심때부터 쏟아져 내렸다. 우산을 안 가지고 왔기 때문에 조금 난감했지만 곧 평소처럼 당당하게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내려온 빗방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자, 구름으로서의 삶을 지탱하지 못하고 투신한 빗방울들이여.

 요즘 유명해졌다고 하는 미하엘 엔데가 쓴 『모모』를 보면 비가 워낙 촘촘하게 내려서 산소 호흡기를 써야 할 지경이었다는 장면이 등장한다. 정말 그 정도로 세차게 내리는 빗속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나는 피부를 때리는 빗방울들의 가락을 느낀다.
  전율. 이 정도로 세찬 비를 맞아본 것도 실로 오래간만이다. 몸을 훑고 가는 전율을 느껴본 것도 오래간만이다.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 가슴 한 구석에 쌓아뒀던 슬픔들이 치밀어 오르는 기분. 차가운 타자. 살아 있다는 감촉. 나는 나 자신도 빗방울처럼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왈칵 쏟아져 내릴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어”(김광석, 「사랑했지만」) 사랑을 하면 정말 청승맞은 유행가의 노랫말이 가슴에 절절히 와 닿는다고 한다. 내게는 빗방울 자체가 절절히 와 닿는다. 그것은 내가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 빗방울의 감각에 예민하게 곤두서는 신경은 과거를 건드리고 현재를 건드린다. 쏟아져 나오는 추억, 그리고 현실. 꿈. 이루어지지 않는 미래. 혹은 이룰 수 없는 미래. 사랑, 미움, 아픔…….


 나는 사실 비를 썩 좋아하는 편이다. 몸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되도록 비를 맞고 다니지 말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지만, 틈만 나면 그것을 어기곤 한다. 기분이 우울한 날 비가 내리면 우울한 기분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서 좋아하고, 기분이 좋은 날 비가 내리면 좋은 기분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서 좋아한다. 그리고 그 비를 맞으면 더욱 그렇게 된다. 여하간 비라는 녀석은 청각, 시각, 후각, 촉각을 고르게 자극해줘서 내 정신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우리들은 빗소리 너머에서 누구의 목소리를 듣는 걸까. 구름 끼고 비내리는 흐릿해진 세상의 풍경들 너머에서 누구의 모습을 보는 걸까. 그것은 각자의 추억과 상상력에 달린 일일 터이다.
 피부에 닿는 빗방울의 감촉이 어째서인지 내게 깨닫게 해주는 것들이 있다. 나 자신의 감촉은, 정말 다른 것으로부터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이가 없다면 나도 없다는 것이다. 다른 존재를 느낄 때 나는 나 자신도 느낄 수 있다. 흠뻑 젖는다는 느낌은 항시 자조적이고 처량하면서도, 즐겁다. 옷에서 나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비 냄새도 가끔 반갑다.


 흠뻑 젖은 나를 보고 어떤 사람이 우산을 빌려주겠다고 한다. 나는 별다른 군말 없이 승낙한다. 어쨌건 간에, 그런 거다. 비 맞기라. 조금, 무리를 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시원하게 비를 맞아보는 일도 근래에는 얼마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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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8.01.13 22:51

2005년 6월17일 실시한 2005학년도 전북 중등 문예백일장 및 독후감 발표 도 본선대회에서 백일장 산문 부문 상 받은 녀석입니다. 아니, 그 작품 그 자체는 아닙니다만 최대한 기억을 살려서 복원해본 것입니다;

『공의 경계』까지 인용하면서, 상당히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늘어놨습니다.-_-

주제가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런 글을 써내다니, 나도 참... 어찌 보면 튀고 어찌 보면 평범한 글이지요.


 우어, 사실은 쓰면서 기분은 상당히 침체된 녀석이고, 또 쓰고 나니 제가 허가도 받지 않고 사례로 도용한 이야기들의 주인공 분들께 대단히 죄송한 마음이...; 으그..

용서해주세요!



누구누구의 영향으로 저도 요즘 휴머니스트가 되나 봅니다.(笑) 아니, 원래부터 그런 경향은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편은 아니었는데...

정확히 말하면 휴머니스트라기보다는 애니미스트를 지향하고 있지만.(그런 용어는 없어요.)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나는 어린 시절 외가에서 자랐다. 신경질적인 큰이모에게 혼나가며 노래를 배우던 일이라든가 술담배 냄새가 옷에 밴 할아버지와 씨름을 하던 일 같은 것들은 지금도 상당히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으며 외가에서 보낸 유년 시절은 내 성격이나 생각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외가에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려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할머니께서 성경을 옆에 펼쳐놓은 채 눈을 꼭 감고 기도를 하시는 모습이다. 외가 식구들이 다들 기독교 신자로 할머니는 집사, 큰이모는 성가대 지휘자, 그리고 작은이모는 목사님과 결혼한 사모님이셨던 탓에 내게 기독교는 어릴 때부터 가장 익숙한 것 중 하나였고 진리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내가 존경하는 사람은 사랑의 예수그리스도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아버지였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기독교에서 정을 뗀 지도 몇 년은 되었지만 그 영향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무엇보다도 처음 존경했던 존재가 세계의 성인으로 꼽히는 예수였고 그 뒤에는 감히 비교할 대상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전지전능의 절대자가 버티고 있었으니, 세간에 나와 있는 위인전들이 아무리 많다 해도 그 중 내 존경의 대상으로서 하나님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대신해줄 수 있는 위인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위인전에서 그려내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위인’이라는 점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겠다. 사실 요즘 들어 역사적 인물을 ‘영웅이 아니라 인간’으로 그렸다고 하는 소설이나 영화 같은 것들이 유행하고 있는 것도 흔히 나와 있는 위인전이나 상식의 이런 면에 대한 반발로 볼 수 있다. 위인전들은 대개 암살당하기 전날에 여러 애인과 잠자리에 드는 마틴 루터 킹이라든가 신경질적인 이순신 장군 같은 모습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며 미화된 ‘위인’을 만들어내는 데 전념한다. 그들도 인간이며 실수를 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결함도 있다는 사실을 감춘 채 말이다.
  하지만 조금 자라면서 머리가 굵어지게 되면 위인전이 제시하는 지나치게 미화된 모습을 불신하게 되기 마련이다.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게 되면 위인들의 인간적인 면이나 결함 같은 것들도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단점이나 흠들 때문에 그들은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 되어줄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내게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란 흠 하나 없는 완전하고 위대한 존재여야 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런 점은 존경할 만하지만 이런 점은 마음에 들지 않아.”라면서 편식을 일삼곤 했다. 그 당시 내가 그나마 존경했던 것은 도교에서는 태상노군이라며 신으로 받들기도 하는 노자였다. 노자라는 인물이, 그가 실제로 있었는지도 의문시될 정도이며 그 삶에 관련된 구체적인 자료라고는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결국 내가 바라보고 있던 것은 하나님과 별반 다를 게 없는 환상이었던 셈이다.


  방 안에 혼자 틀어박혀서 생각해본다면 노자가 제시하는 추상적인 실체인 도(道)라거나 결함이라곤 없는 완전하고 전지전능한 하나님아버지의 모습 같은 것들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방 밖으로 몇 발짝만 나와 보면 또 이야기가 다르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정수기를 팔러 발품을 파시는, 친구의 집안 사정을 알게 된다든가, 수술을 받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도 넘어져서 까맣게 된 손을 툭툭 털며 1시간 길을 걸어가는 할머니를 우연히 돕게 된다든가, 어머니와 언쟁을 벌이다가 홧김에 실수로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했다는 친구의 고민을 듣는다든가, 어설픈 첫사랑에 어쩔 줄 몰라 하다 혼자 멋대로 실연당하고서는 몇 시간을 눈물로 메운다든가 하는 일들을 겪다보면, 사람들이 열심히 이 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느끼게 된다. 일본 소설가 나스 기노코 씨가 썼듯이, 초월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인생을 더럽다 욕하지만, 사실 그들은 그 더러움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월을 원한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고, 강한 것은 오히려 그 더럽고 비참한 인생을 견뎌내는 사람들이다. 가요 「청계천 8가」에 나오는,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라는 가사에 가슴이 찡하게 울리는 것은, 「청계천 8가」가 기타를 잡은 청년들의 애창곡 중 하나인 것은,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실로 위대함을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은 언제나 이론보다 풍부하다. 나는, 예전에는 위인들을 결함이나 단점이 있다는 점에서 존경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들에게 결함이 있다는 것 때문에 존경한다. 그리고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그 강인함과 위대함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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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8.01.13 22:48

창틀에 걸린 꿈들

( 2005년 6월)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에는 창이 없다."라는 말은 깊은 인상을 주는 말 중 하나이다. 뭐, 모나드(단자)론 같은 복잡한 이야기는 잠시 밀어두고 간단히 비약하자면 "개인은 단절되어 있다"는 소리다.


 헌데 모나드에는 정말 창이 없는 것인가? 각자의 꿈이라든가, 이야기라든가 하는 것들은 결국 세상으로 조금씩은 흘러나갈 수밖에 없다. 그건, 창이 아니라 벽을 통해 전달되는 희미한 소리나 울림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것인가. 애초에 개인의 영혼 같은 것들이 모나드이기나 한 것인지 모호하다. 개인에게 창이 있는지 없는지, 그런 것은 역시 명확히 알 수 없는 영역에 속한 문제이다. 예를 들어, 인간들이 의사소통하는 데 사용되는 언어들(음성, 문자, 신체…)은 불완전하게나마 창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역시 그것도 단절될 것인가.


 기숙사에 살 적에, 아침에 눈을 뜨면 곧잘 창 밖으로 눈길을 주곤 했다. 이중창 너머로 보이는 세상. 나무들, 가게들, 집들, 전신주, 십자가들…. 간혹 아이들이 창문 밖으로 쓰레기를 던진다고 하는, 그런 곳. 나는 한 번도 쓰레기를 창 밖으로 던지지 않았다. 다만 나는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잠에서 덜 깬 내 꿈들을 날려보았을 따름이다. 마음에 창을 내고저. 그것이 우유봉지 같은 걸 날리는 것보다 더 심한 오염이라고 누군가가 지적한다면 하는 수 없이 나는 그것을 수긍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항상 제대로 나있지도 않는 내 마음의 창문을 통해 내 꿈들을 밖으로 날려보내고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내가 창을 통해 날려보낸 꿈들이 죄다 창틀에 걸려버렸음은, 어째서일까. 결국 죄다 창틀을 넘어서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이봐, 어설프게 접힌 종이비행기가 되어 날아간 내 편지들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무엇에 걸려 제대로 날아가지 못한 거냐구."


 그것이 한계다. 내 창문의 한계다.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하건, 나는 이 방에 갇혀 있다. 내 방 창에서 보이는 다른 방의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려 해도, 몸짓을 해보려 해도, 그것을 전달해 줄 정도로 이 창은 명료하지도 투명하지도 않으며, 마음대로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편지를 우체통에 넣을 수조차 없어서 종이비행기로 불특정 다수를 향해 던져보지만, 그것은 계속 창틀에 걸려 떨어진다. 그건 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것도 마찬가지. 모두 만유인력이라던가, 뭐 그런 것들에 걸려서는, 떨어진다. 떨어진다. 떨어진다….

 사랑이라거나, 우정이라거나, 모두 마찬가지다. 법정스님 말처럼 '나는 당신을 죽도록 오해합니다.'에 지나지 않는지 어떤지 누가 안단 말인가. 우리는 서로의 편린만을 알 수밖에 없다. 그것은 자기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일이다. 그것은 우리의 꿈들이 모두 창틀에서 걸려버리기 때문이니.



 그래도 우리는 꿈을 꾸고 있다. 그리고 꿈을 꾸고 있기에 우리는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다. '방 곁에 사는 사람이 혹시, 만에 하나 고개를 들어 이쪽을 봐준다면, 적어도 창틀에 걸려 있는 숱한 꿈들은 볼 수 있을 터이다. 근처에 떨어진 꿈의 조각 하나를 주워 들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런 상상, 그것이 희망이라 불리는 것.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방에 갇혀 있지만, 계속 창문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며, 창틀에 걸려 나가지 못하는 꿈들을 계속 창가에 매단다. 더이상 꿈을 날리는 시도를 하지 못하게 된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경우뿐. 우리가 살아있는 한, 우리는 계속 꿈을 창밖으로 날린다. 설령 우리가 서로를 그 편린밖에 알지 못한다 해도, 그 편린이라도 알게 되어서 행복하다고 하는 연인들이 있고, 친구들이 있고, 가족들이 있다.

 모나드에 창이 있을지 없을지, 누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설령 불투명한 창일지 몰라도 창은 있을 것이라고 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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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8.01.13 22:47

2005년 5월에 전북중등백일장 전주지역대회 예선에서 그래도 최우수상이라고 받게 된 녀석입니다.







지금의 역사를 살며

 

  방학만 되면 학교란 곳은 방학과제물이라는 성가신 것들을 B4용지 한 장에 정리해서 학생들에게 던져주곤 한다. 그 중 특히 성가신 것으로 방학 동안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문화유적답사 후 기행문쓰기 따위의 것들이 있다. 자녀를 통해 그런 관광산업 진흥을 숨은 목적으로 하고 있는 듯한 과제물들을 받은 부모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스스로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핑계로 본래는 있지도 않던 휴가 계획을 짜서 방학만 되면 여행길에 나서는 부모도 있고, 운 좋게도 집 바로 근처에 있는 문화유적에 자식을 산책 보내는 부모도 있다. 좀더 교육적인 부모의 경우에는 꾸며서 글 쓰는 법을 자식이 일찍부터 습득하게 해주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어땠는가 하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그런 부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방학이나 연휴만 되면 참 많이도 돌아다녔고, 그렇게 쌓인 기억들은 머리 속을 조금만 헤집어봐도 떠오르곤 한다. 미륵사지 석탑의 시멘트 발린 침묵, 서정주 묘소의 노란 금국밭, 비에 젖어가는 불국사 오르는 길, 무령왕릉에서 방학과제에 첨부할 증거자료로 샀던 엽서, 변산반도 어느 한적한 절 입구에 있던 도금된 문의 어색함, 몇백 년 된 나무 아래에 놓여 있던 방송국 사람들의 촬영성공기원 기왓장... 그렇게 많이 돌아다녀 놓고도 정작 방학과제물은 제대로 해간 적이 드물어서 좋은 소리를 별로 못 들었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그렇게 숙제를 안 해간 벌인지, 돌아다니긴 많이 돌아다녔어도 내 여행에 대한 기억들은 흐릿하기만 하다. 내가 갔다온 절이나 산, 유적지 이름 같은 것들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가 거기에 무엇이 있었는지 같은 것들도 영 헷갈리기만 하니 손해본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사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역사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으니까 박물관을 가건 유적답사를 가건 제대로 보이는 게 없다. 그렇다면 시중에 제법 많이 돌아다니는 문화유적을 소개하는 책 같은 것을 읽으면 될 것이겠으나, 그런 류의 책들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 성격이라 그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하지만 내게도 나름대로의 감상방법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알지 못해도 느끼긴 한다'는 게 내 멋대로 만들어낸 감상이론이랄까. 그래서 박물관에서도 '사진촬영금지'가 붙어있는 유리창 앞에서 멍하니, 박물관의 어딘지 도서관을 닮은 그 공기와, 유물들의 즉각적인 느낌들을 바라보고 있다. 유적과 유물들이 자아내는 분위기, 그것들이 던져주는 인상들을 느끼고 있다. 그런 식으로 박물관 안에서 숨쉴 때, 유물들은 옛날에 만들어지고 사용된 물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물건들이 된다. 내가 역사를 답사한답시고 가서 얻는 것은 오래 전에 만들어진 물건들 옆에 세워진 안내판에 정리된 과거의 정보가 아니라 현재에 존재하는 물건들의 이미지다. 이런 형편이니 돌아다니긴 많이 돌아다녔지만 기억 속에 정리되지 않은 채 산만하게 어질러져 있는 것들도 불투명 수채화풍으로 채색된 이미지들뿐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여하간 난 역사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최명희 씨의 소설, 『혼불』에 나오는 역사를 교과서에서 찾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서 찾으라는 말이 나를 지지해주긴 하지만, 어쨌건 교과서적 정보 습득을 도외시한 역사 감상법이 내가 역사 과목을 잘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임은 틀림없으리라. 언젠가 어머니께서 내가 고고학자가 되는 것도 좋겠다고 말씀하신 바 있지만, 이렇게 현재를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난 고고학자라기보다는 후세에 뭘 남기는 쪽에 가깝다. 내겐 지금의 역사, 예를 들면 내가 몇 년 전 쓴 일기장에 기록된 강아지 한 마리의 죽음이라거나, 궁항이라고 하는 변산반도에 있는 조그만 항구마을이 "불멸의 이순신"을 촬영하고 나서는 그 한적한 느낌이 많이 훼손된 것 같다거나 하는 그런 일들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요즘도 일기를 쓰면서 '나중에 이게 발굴되면 악필이라고 욕먹을 텐데' 같은 걱정을 한다. 물론 그런 것이 실로 어린애 같은 상상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래도 어릴 때부터 종종 해온 그런 조금은 즐거운 걱정을 버릴 수 없는 것은 사는 것, 그리고 일기를 쓰는 것이 나만의 역사체험이고 지금이라는 역사를 살아가는 내 자세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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