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에 해당되는 글 246건

  1. 2017.10.29 청소년은 시민이다 -《시민의 확장》
  2. 2017.05.05 18세 선거권과 청소년 참정권 7문 7답 (1)
  3. 2016.09.11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
  4. 2016.07.16 여기에 우리 편이 있었네? -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오자와 마키코)
  5. 2016.07.06 [나이주의와 청소년인권] 우리 사회의 청소년혐오
  6. 2016.06.23 [나이주의와 청소년인권] 청소년 억압의 뿌리, 나이주의를 발견하다
  7. 2016.04.13 평등한 민주주의의 봄을 바라는 청소년 참정권 요구 선언문
  8. 2016.03.24 [공현의 인권이야기] ‘소비자’의 권리를 넘어서
  9. 2015.10.12 [한글날 논평] 이게 한글이 아니면 두글이애오? 청소년 언어문화 그만 까새오
  10. 2015.08.06 청소년신문 요즘것들 제6호 2015.07.16.
  11. 2015.02.12 게임 셧다운이 아니라 학습시간 셧다운!
  12. 2015.02.08 [인권오름] ‘2015청소년활동가선언’을 소개합니다
  13. 2014.12.02 청소년신문 요즘것들 제3호
  14. 2014.11.04 경기도 학원 체벌 토론회 관련 참고 예비 조사 자료 - 관계 법률 및 이전 조사 등
  15. 2014.09.16 청소년신문 [요즘것들] 제2호 (2014.09.10.)
  16. 2014.08.11 한겨레 - [2030 잠금해제] 멸종 위기의 방학 / 공현
  17. 2014.07.02 청소년신문 요즘것들 창간호
  18. 2014.06.02 [논평] 세월호 참사가 교육에 남긴 교훈 - 교육감 선거에 즈음하여
  19. 2014.05.29 세월호 참사에 청소년운동의 대응 방향에 관한 생각들 (3)
  20. 2014.05.14 자꾸 '아이들'을 부르는 것에 대한 투덜거림 (1)
흘러들어온꿈2017.10.29 18:47

청소년은 시민이다

김효연, 시민의 확장, 스리체어스, 2017

 

 

시민의 확장은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정당법센터 연구원인 김효연이 법학적 관점에서 청소년 참정권과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의 문제를 논한 책이다. 먼저 이 책에는 몇 가지 의의가 있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겠다.

첫 번째로, 단지 선거권 제한 연령만의 문제가 아니라 청소년 참정권이라는 틀에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18세 선거권 자체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이슈가 된 문제지만, 국회나 언론 등에서는 그것을 청소년 참정권의 문제로 잘 다루지 않았다. 또한 18세 선거권 외의 청소년 참정권 문제 역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시민의 확장은 청소년의 권리 문제로서 참정권, 선거권 문제에 접근하고 있어 기존에 나온 책들과 차별화된다.

두 번째로, 시민의 확장은 법학적인 개념과 방법으로 논의를 끌고 간다는 점이다. 그동안 청소년 참정권 문제가 주로 (민주주의) 교육의 논리나 세대 간 평등 등 사회학/사회복지학의 논리로 다루어졌던 것에 비해, 시민의 확장은 헌법재판시 기본권 제한의 법리나 인권으로서의 참정권의 성격 논의 등 법학적 관점을 취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등에서 계속해서 청소년 참정권에 대해 보수적인 판결을 내놓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접근이 가지는 의미가 분명히 있다.

세 번째는, 단지 국내법이나 국내 사례에만 머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1, 2장이 세계적으로 아동의 권리 변천사나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대한 연구를 담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시민의 확장의 시야는 국제적이다. 이에 따라 실제 사례들을 검토하면서도 외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청소년 참정권 관련 제도들, 선거권 제한 연령을 16세로 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경우 등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편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아동의 나이와 성숙도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존중받을 권리를 논하면서, ‘연령성숙도를 분리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99)도 저자가 한 연구의 깊이를 보여 준다. 이상의 장점들이 청소년 참정권 이슈에 대해 알고 이야기하기 위해 시민의 확장을 읽어야 할 이유들이라 하겠다.

 

 

사회의 책임

 

청소년의 참정권 문제를 이야기하면(아니, 사실 청소년인권 이야기를 할 때면 거의 대부분) 청소년이 그만큼 성숙한가, 청소년이 그러한 권리를 가질 자격이 있는가를 묻는 경우가 많다. 18세 선거권을 주장하면서 18세면 충분히 성숙하다고 논거를 드는 것도 이미 그러한 틀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장에서 던진 질문, ‘몇 살이 되어야 시민이 될 수 있는가라는 말은 곧 이러한 틀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이 장에서 아동·청소년도 민주공화국의 원리에 따라 그리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원칙을 연역해 낸다. 다만 2008년과 2016년의 촛불 집회를 언급하면서 아동·청소년의 정치 참여가 이례적 현상이었다고 평가한 것은 아쉬운 부분인데, 이는 저자가 법학 전공자로서 아동·청소년의 정치 참여 사례에 밝지 못한 탓으로 이해하겠다.

4‘19세 미만 선거권 제한은 위헌이다에서는 헌법재판소가 19세 선거권 제한 연령이 합헌이라고 결정한 논리를 비판하고 있다. 여기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선거권이 국가 내적인 기본권인지, 인간의 고유한 권리인 인권인지, 그리고 주권 행사의 문제인지를 나누어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국내 학자 소수와 독일 학자는 선거권의 법적 성격을 인권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97)라며 인권으로서의 선거권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제안과 정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나는 청소년 참정권 제한에 반대하긴 하지만, 선거권 제한 연령 설정 자체는 입법자의 재량일 수 있다는 논리에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었기에 저자가 제시한 관점이 더 흥미롭게 느껴졌고 생각을 고칠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현실적으로는 이 문제를 풀 결정권과 책임은 여전히 국회에 있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선거권 등을 제한하고 보장하는 기준으로 청소년이 충분히 성숙했는지 자격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봐야 할까? 4장 소제목의 판단 능력이 미숙하면 권리를 빼앗겨도 되는가?”라는 질문도 적절하긴 하지만, 더 나아가서 시민의 확장은 사회와 제도의 문제를 제기한다. 예컨대, 영국에서 16세 선거권 주장이 나오면서 행한 연구에서 16-17세 아동이 정치에 관심이 적고 낮은 수준의 정치적 지식을 갖고 있고 정치적 태도도 일관적이거나 안정적이지 못했다는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에서는 2007년 선거권 제한 연령을 16세로 한 뒤, 영국의 경우와는 달리 16-17세의 아동·청소년이 정치적 성숙성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6-17세의 아동·청소년의 정치적 성숙성은 선거권 연령의 변화 이후에 성장했고, 즉 선거권 연령이 16-17세의 아동·청소년의 정치적 성숙성에 영향을 주고 있”(122)는 것이다. 정치적 성숙성은 생물학적으로 정해진다기보다는, 제도나 사회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청소년 참정권 요구는 청소년의 성숙성이나 뛰어남을 입증하려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해야 할, 청소년도 민주주의 사회의 예외 지대가 아니게 해야 할, 우리 사회의 책임을 묻는 운동이다. 무엇보다도 청소년 참정권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행정부와 입법부와 사법부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운동이다. 저자의 말대로 입법부는 입법 정책으로 단계적인 선거권 연령 하향이라는 개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127) 또한 연령 제한과 상관없이 청소년의 참정권을 보장할 여러 방법들도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은 시민을 확장하자는 취지로 시민의 확장이란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이 책에 적힌 내용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청소년은 이미 시민이다. 시민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7.05.05 14:25

 

 전에 아수나로 sns팀이 올린 7문 7답 내용입니다.




18세 선거권과 청소년 참정권 7문 7답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SNS팀



'18세 선거권'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되고 있어요. 18세 선거권은 왜 필요할까요? 또는 18세 선거권만 되면 청소년의 참정권이 보장되는 걸까요? 청소년인권의 관점에서 본 18세 선거권 문제, 카드뉴스로 만들어 봤습니다. 아수나로에서는 청소년 참정권의 문제에 대해 계속 목소리를 내고 활동하려고 해요.

 

1) 18세 선거권, 왜 지금 이야기가 나오지?
▶ 18세 선거권 주장은 꾸준히 있어 왔다. 2000년대 초에도 18세 선거권을 주장하는 청소년들, 시민단체들의 운동이 있었고 그 결과 선거권 제한 연령은 2005년 20세에서 19세로 완화되었다. 2016년 국회에도 18세 선거권 개정안이 여럿 올라가 있었다. 최근에 18세 선거권이 새삼 주목받는 것은, 2016년 겨울 촛불집회를 계기로 청소년의 참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커졌고 정치개혁 차원에서도 필요하다는 공감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2) 18세 선거권, 왜 논란인데?
▶ 만18세부터 흔히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10대 청소년, 고등학생 등이 다수 포함되기 때문이다. 반대하는 이들은 만18세 중 일부는 '미성년자', '학생'이라 미성숙하고, 부모·교사 등에게 의존적이며, 공부를 해야 할 시기에 정치에 관심을 가져선 안 된다고 한다. 반면 18세 선거권 등을 찬성하는 이들은 청소년들이 선거권을 가진다는 것이야말로 의미있는 변화라고 주장한다. 청소년도 시민이며 정치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반 민주주의적인 편견이라는 것이다.
 

3) 18세 선거권이 당연한 거야?
▶ 민주주의의 역사는 참정권 확대의 역사이기도 했다. 선거권 등의 참정권은 인권으로서 확대되고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안정되고 현대화된 대의민주주의 국가들은 대부분 선거권 제한 기준이 18세이고, 더 기준이 낮은 곳도 있다. 한국의 18세들만 특별히 무능할 리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18세 선거권으로 하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이다. 꼭 18세만이 아니라, 실제로 16세 선거권, 15세 선거권 등을 시행하거나 이를 논의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다.

 

4) 세금도 내고 군대도 갈 수 있는데 18세가 선거권이 없는 건 불공평하다던데?
▶ 참정권을 비롯한 인권은 의무를 이행했을 때 주어지는 대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는 논리이다. 인권은 의무에 우선하고, 이를 저울질할 수는 없다. 군인으로 복무하거나 세금을 내거나 결혼을 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서 선거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도 시민으로서 참정권을 가지고 있고, 이를 확대하고 실현하는 방법 중 하나가 18세 선거권인 것이다. 보편적인 청소년 참정권을 위해서라도, 권리를 '의무의 대가'나 '어른이 된 보상'처럼 생각하지 말자.

 

5) 18세 선거권이 되면 청소년에게 참정권이 보장된다고 할 수 있나?
▶ 만18세인 사람들 중 '10대 청소년'인 사람은 일부이다. 가령 당장 이번 5월에 열릴 대통령선거에서도 대략 11만 명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18세 선거권만 이루어진다면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여전히 참정권이 없는 상태에 처해 있게 된다. 그래서 18세 선거권만을 가지고 곧 청소년 참정권이 보장된다거나 청소년의 참여가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청소년 참정권이나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 완화의 첫 걸음이라고 의미부여할 수는 있을 것이다.

 

6) 그럼 청소년 참정권으로 어떤 게 돼야 돼?
▶ 법적으로 청소년은 정당 가입도 하지 못하고, 선거운동(선거 때 어느 후보가 당선되거나 당선되지 않도록 발언하거나 행동하는 것 전부)도 할 수 없다. 또한 학교 규칙으로 청소년의 정치 활동이나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을 규제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법과 학교 규칙들을 고쳐야 한다. 무엇보다도 청소년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는 사람들의 편견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적절한 여가 시간을 가지는 등의 변화도 필요하다.

 

7) 18세 선거권이나 청소년 참정권이 이루어지면 뭐가 바뀌지?
▶ 18세 선거권이나 청소년 참정권이 된다고 해서 바로 많은 것이 바뀌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청소년의 의견에 사람들이 좀 더 귀기울이고 청소년의 인권 문제를 좀 더 신경쓰게 만드는 계기는 될 것이다. 청소년을 평등한 시민으로 보도록 하는 긍정적인 변화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학교 규칙이나 정책이나 우리 마을을 바꾸는 등, 청소년들이 힘을 모으면 우리의 인권을 되찾고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도 더 커질 것이다.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6.09.11 15:38

1995년부터 청소년(인권)운동의 역사를, 참여했던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한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가 나왔습니다.


많이 읽어주세요. 저와 둠코 님이 공저했습니다.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청소년운동과 청소년활동가들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
- 과거에 청소년운동에 참여&관여했던 분들
- 앞으로 청소년운동을 하실 분들
- 학생인권조례 등이 만들어진 맥락과 역사가 궁금하고 조사해야 하는 분들
- 소수자 인권 운동이 만들어지고 발달하는 사례와 과정을 연구하고 싶은 분들


YES24  http://www.yes24.com/24/Goods/31090355?Acode=101

알라딘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1320221





청소년 벗


인물로 만나는
소년운동사


저자  공현, 둠코
펴낸 곳  교육공동체 벗
발행일  2016년 9월 12일
정가  15,000원
쪽수  332쪽
책 크기 신국판(152×225mm)
ISBN  978-89-6880-027-6 (03300)
분류  사회과학 》 사회학





+ 목차


들어가는 글 | 시대를 바꾼 청소년들


1부 인간을 꿈꾸다


청소년운동의 여명기 | 김한울·나정훈
1998년 학생 인권 선언


특이한 청소년들, 세상에 말 걸다 | 박준표
2000년 노컷 운동과 2002년 선거권 운동


상처투성이 첫걸음이 남긴 것 | 장여진
2000~2001년 학생 인권 운동


2부 잃어버린 권리를 찾아서


부당함은 본능이 먼저 알지요 | 박정훈
2003~2004년 NEIS 반대·청소년 참정권 운동


자치의 시대, 청소년 정치를 고민하다 | 신정현·김종민
2004년 18세 선거권 운동


기억되지 않는 ‘우리의 촛불’ | 남궁정
2005년 내신등급제 반대·두발 자유 운동


3부 존재감 다지기
 
내 법인 듯 내 법 아닌 내 법 같은 너 | 조만성(따이루)
2006~2007년 학생인권법 제정 운동


청소년이 여기 있다는 걸 잊지 말아요 | 한지혜(난다)
2008년 촛불 집회·2010년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운동


일제고사만 나쁜가요? | 윤가현(꽥쉰내)
2008~2009년 일제고사 반대 운동


학교의 중심에서 인권을 외치다 | 성상영(밤의마왕)
2007~2009년 경남 지역 학생 인권 운동


4부 진도 나갑시다


간도 쓸개도 빼 주고 얻어 낸 학생인권조례를 넘어서 | 전혜원
2010~2011년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 발의 운동


날 도태시키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 김동균(어쓰)
2011년 대학/입시 거부 운동


낮추자 아니, 내놔라! | 정재환(검은빛)
2012년 청소년 참정권 운동


나가는 글 | 청소년이기 때문에


청소년운동 단체 소개
청소년운동사 연표

 


Posted by 공현
흘러들어온꿈2016.07.16 02:39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 10점
오자와 마키코 지음, 박동섭 옮김/서현사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오자와 마키코 지음, 박동섭 옮김, 서현사, 2010 (2015년 2판3쇄)




"생명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법인데, 그 변화의 방식에 소위 과학적인 잣대를 들이대 어린 시기에는 월 단위로 변화의 양상이 측정된다. ‘생명의 변화’에서 ‘발달’이라고 말이 바뀐 순간에 삶의 모습은 왜곡되고, 축소되고, 경직되어버렸다. 생명에 가격이 매겨지고 합/불합격, 적응/부적응, 정/부정이라고 하는 시점에서 ‘상품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에 따라 우열과 경쟁이 우리 의식에 착 달라붙기 시작하였다."(34쪽)


"논리성·합리성을 몸에 익히는 것을 ‘성숙’이라 이름 붙여 상위에 두고, 감정·직관을 ‘미성숙’이라 부르며 하위에 놓는 현대사회에서는 언어를 통해서 명쾌한 표현을 하지 못하는 사람의 주장은 상대해주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존재가 아이다."(138쪽)


"법률은 아이를 한 사람 몫을 해낼 수 없는 사람으로 보호하는 부분에서는 충분히 배려하고 있다. 헌법 제27조 ③의 '아동은 혹사당해서는 안 된다.'와 같이. 그러나 '법 아래의 평등'에서 아이는 배제된다. 제14조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아래서 평등하고 인종, 신념, 성별, 사회적 신분에 따라서 정치적, 경제적 혹은 사회적 관계에서 차별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연령에 의한 차별은 묵인된다.

즉 아이는 부모의 부속물로 취급되며 '모든 국민은'이라는 항목에 포함되는 평등한 존재가 아니다. 아이는 단지 보호되는 것이다."(158-159쪽)


"제멋대로인 아이, 건방진 아이, 아이답지 않은 아이라는 표현은 아이를 비난하는 대표적인 형용사이다. 그 정반대 쪽에는 ‘잘 참고, 순진하고, 아이다운’이라는 형용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곧 힘을 가진 어른에게 종속되는 아이의 이미지이다. 제멋대로라는 말은 자기중심적인 여자에 대해서도 언제나 던져진 비난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제멋대로인 여성, 건방진 여성이라고 불리는 데 저항하면서 여성들은 자신도 한 명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받는 것으로 되지 않았던가?"(160-161쪽)


"부모-아이 관계의 문제는 권력관계 문제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는 부모에게 양육되어 자라는 것이 현실이고,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약자의 위치에 두게 한다. 아이는 양육될 뿐만 아니라 어른에게 보호받고 싶다, 의지하고 싶다, 그리고사랑받고 싶다고 강하게 바란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이는 몸으로 알고 있다."(173쪽)


"아이가 어른에게 의존하는 것은, 어른이 아이를 지배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거래이다."(230쪽)




어느 청소년인권 책에라도 나올 법한 문구들이다. 그러나 이 책을 쓴 사람은 일본의 임상심리학자, 오자와 마키코이다. 그의 책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에 나오는 문구들이다.


언젠가 읽어 봐야겠다고 벼르고 있던 책인데 실제로 읽어 보니 생각과는 많이 다른 책이었다. 나는 심리학, 특히 아동-청소년 대상 심리학을 비판적으로 반성하는 내용을 기대했다. 그러나 웬걸. 학문적인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청소년인권, 청소년해방의 관점에서 심리학으로 표상되는 우리 사회의 청소년관-학교-가족 등의 문제점을 꼬집는다. 심리상담이나 심리테스트 등의 문제점도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그 비판 안에서 느껴지는 관점은 훨씬 더 근본적이다. 우리가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상상하고 만들어가고 있는 '청소년해방론'의 한 조각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책 서문에서 오자와 마키코는 심리학이 인간해방에 기여한다고 믿고 임상심리학자로서 일해왔지만, 실은 심리학이 얼마나 지배자 측의 기대에 맞춰서 역할을 해왔는지를 밝히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아동기의 '발달'부터 '학습', '지능', '심리테스트', '상담', '등교거부', '부모-아이 관계'까지 살펴 나간다. 심리학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청소년억압의 핵심 장치인 학교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자와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오자와 마키코의 책들이 연달아 나오고 있다. 그밖에도 번역된 책들이 있고. 대부분 책들의 문제의식은 비슷한 뿌리를 갖고 있다. 칼럼 모음도 있고, 심리상담 전문가 등을 본격적으로 비판하는 책도 있다. 제목만 나열하면 이러하다.  《아이들의 권리, 부모의 권리》, 《학교란 무엇일까? - 학교밖 아이들》, 《지금 아이들이 있는 곳》,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부터》, 《아이차별의 사회》(미번역) 등.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심리학자가 아니라 청소년인권운동가나 청소년인권 전문가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우리편 전문가'에 목말라 있던 청소년활동가들, 또는 청소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학자이고 책이다.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6.07.06 11:33

[나이주의와 청소년인권] 우리 사회의 청소년혐오

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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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혐오’, 아마 당신이 처음 들어보는 말일 것이다. 소수자 집단에 대한 사회적 대우를 명명하는데 사용하는 용어로는 혐오, 차별, 배제, 폭력, 낙인 등이 있다. 모든 소수자 집단이 혐오와 차별과 배제와 폭력과 낙인을 겪고, 이 용어들의 의미는 종종 중첩되지만, 집단에 따라 그 양상이 미묘하게 다르다. 특히 어떤 집단에 대한 어떠한 대우는 특정한 용어로 명명하는 것이 더 적절하거나 그 본질을 드러내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혐오'로 명명되어 분석된 적이 아직 한국에서는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 청소년을 비하·경멸하고 공포스러운 타자로 간주하는 문화는 청소년혐오로 해석되어야 한다. 청소년에 대한 비하와 경멸은 일상에서 만연하게 드러나며 청소년의 권리를 제한하는 제도를 정당화한다. 청소년을 공포스러운 타자로 간주하는 문화는 청소년이 저지른 범죄에 유독 나이를 강조하여 ’무서운 십대들‘이라고 수식하는 언론, 청소년을 통제하기 위해 폭력적인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들, 청소년이 길에 모여만 있어도 무섭다고 반응하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드러나고 재생산된다. 이 글에서는 청소년혐오라는 용어를 소개하고, 현재 온오프라인에서 청소년을 지칭하는데 사용되는 혐오어와 체벌을 중심으로 청소년혐오 현상을 간략히 분석해보려고 한다.

청소년혐오, 'Ephebiphobia'

청소년운동에 대해 공부하고 이론화 작업을 하는 '청소년운동 우물모임'에서는, '성인중심주의(Adultism)'에 맞선다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미국의 단체 'The Freechild Project'에서 발간한 자료들을 함께 읽었다. 그 중 ‘Ephebiphobia’에 대해 설명하는 자료가 있었다. Freechild Project는 ephebiphobia를 아동 및 청소년에 대한 공포로 정의하고, 미디어와 정치, 그리고 학교 현장 등에서 만연한 아동 및 청소년에 대한 전사회적 공포를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이는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고정관념을 기반으로 하여 거대 미디어가 아동과 청소년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을 통해 강화된다고 그들은 설명한다.

Freechild Project는 이 ephebiphobia가 민주주의, 사회문화, 교육, 그리고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의 측면에서는 청소년의 참정권을 부정하고 공동체의 의사결정에서 배제하는 것, 정치인이나 정치 조직에서 청소년의 권리를 대변하지 않는 결과가 나타난다.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는 청소년을 악마화(demonize)하는 현상, 가족 안에서 부모가 청소년 자녀와 자녀의 친구들에게 공포를 느끼는 현상 등으로 결과가 나타난다. 교육의 측면에서 의무교육제도, 체벌, 학교에서의 나이(학년)구분은 ephebiphobia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19-20세기 많은 청소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자, 그들에게 공포를 느낀 사회와 어른들이 학교를 의무화하여 청소년이 낮 시간동안 거리에 모여 있지 않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을 두려워한 결과가 나이(학년)구분이라고도 설명한다. 경제 측면에서는 청소년이 의미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없도록 하는 구조, 가게들이 ‘보호자 동행 없이 18세 미만 출입 금지’ 간판을 내거는 현상, 청소년이 거리에 많이 보이는 동네를 어른들이 피하는 바람에 상권이 변화하는 현상도 ephebiphobia의 결과라고 말한다.

우물모임에서는 위 자료를 읽고 한국 사회가 청소년을 대우하는 방식을 ephebiphobia 개념을 차용해 분석하는 것이 유의미하며, 한국에서도 미국과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ephebiphobia를 청소년혐오로 번역했다. -phobia는 개인의 병리적인 공포증과 사회적 혐오 현상을 설명할 때 모두 쓰이지만, 비슷하게 –phobia의 결합어인 호모포비아의 경우 한국의 맥락에서는 ‘공포증’보다는 ‘혐오’로 번역되는 것이 적절하고, 실제로도 동성애 혐오나 성소수자 혐오로 번역되어 쓰인다. 공포증으로 번역하였을 때는 폐소공포증이나 첨단공포증처럼 개인의 병리적 증상을 나타내는 뉘앙스가 강해, 그것이 일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전사회적 현상이라는 맥락이 옅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 혐오어의 등장과 확산

다음의 말들을 들어 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고, 어떤 뜻일지 짐작해보라.
1. 급식충
2. 등골브레이커
3. 중2병

위 세 가지 단어는 최근 온오프라인에서 청소년을 지칭할 때 흔히 쓰이는 말들이다. 언어로 드러난 혐오만이 혐오의 전부는 아니지만, 혐오현상을 진단하는 데 특정 집단에 대한 어떠한 용어들이 통용되는가를 지표로 삼을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위 세 가지 단어를 중심으로 이 사회가 청소년을 어떤 존재로 간주하고 혐오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급식충, 너넨 무상급식 먹을 자격 없어!

급식충은 ‘급식’ ‘충(벌레)’의 결합어이다. 급식을 먹는 초․중․고 학생을 경멸하는 말이면서, 무상급식의 맥락에서 (사회에 기여도 안 하면서) 복지의 수혜를 받는 집단이라고 청소년을 비하하는 말이기도 하다. 중학생은 ‘중급식충’, 고등학생은 ‘고급식충’으로 이르기도 한다. 무상급식 먹을 자격 없다는 맥락에서 청소년을 급식충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지만, 이전에도 청소년을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 그러면서 특혜를 누리거나 의무를 면제받는 존재로 간주하는 인식은 만연했다. 형사처벌의 감경을 특권으로 묘사하며, 청소년이 그 특혜를 누릴 자격이 없음을 주장하는 것은 주로 청소년이 위법한 행위를 했을 때 대중이 분노하는 방식이다. 뿐만 아니라 형사처벌의 감경을 근거로 청소년은 ‘책임을 다하지 않으므로’ 성인과 동등한 권리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성립하기도 하는데, 청소년의 참정권을 논할 때도 성인과 동등하게 처벌받지 않는 존재가 참정권을 가질 자격이 있냐는 반응이 되돌아오는 식이다.

부모님 등골 빼먹는 등골브레이커들

(부모의)등골을 부수는 존재라는 의미의 ‘등골브레이커’도 청소년을 지칭할 때 자주 사용된다. 이 말은 모든 청소년이 부모의 부양에 의존해서 살아간다는 편견에 기댄 말이기도 하면서, 청소년이 부모의 부양에 기대어 살아가게끔 만드는 사회구조를 비판하는 대신 청소년을 기생하는 존재로, 기생하면서 고마움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존재로 비하하는 말이다. 청소년의 소비와 관련해서 이 말이 자주 사용되는데, 청소년이 입시공부와 관련 없는 소비-옷, 화장품, 신발 등-를 할 때면 ‘등골브레이커’라는 딱지가 붙는다. 여성의 소비를 사치로 간주하고 남자의 돈으로 그것을 샀을 것이라 간주하며 비난하는 것과 비슷한 메커니즘이 청소년의 소비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것이다.

위 사진:2014년 '취재파일K'라는 시사프로그램에서 중2병이 교실과 교사를 힘들게 하고 있다고 방송을 함.

중2병을 치료하자?!

중2병은 비교적 예전부터 흔히 사용되어온 말이다. 초기에는 주로 남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지나친 진지함이나 ‘오글거리는’ 말과 행동을 지칭하는 데 쓰였다. 하지만 점차 그 의미가 약간 변질되어 쓰이기 시작하는데, 초기의 의미에 더해 부모나 교사에 반항하거나, 우울하거나 염세적인 것, 성적 호기심을 가지는 것,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 공부를 안 하는 것 등 매우 포괄적인 언행에 중2병이라는 딱지를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단어는 은어처럼 쓰이던 단계를 지나 현재는 각종 언론, 심지어는 공공기관이 개최하는 강의명에도 쓰이고, 교육감 후보의 공약에서도 활용되는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중2병이라는 병은 없다. 의학적으로 실증되지 않은 병인데도 이 단어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며 청소년 집단을 병리화하고 있는 상황은 청소년혐오를 이 사회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방증한다.

체벌의 혐오범죄적 특성

혐오범죄는 소수자집단에 대한 혐오를 기반으로, 소수자집단 전체를 위축시키려는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의도를 가지고 소수자집단에 속한 특정 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이다. 혐오범죄 가해자가 목표하는 바는 무엇일까. 가장 큰 목표는 해당 소수자집단이 위축되거나 사라지는 것일 테지만, 자신이 마주한, 구체적인 개인으로 드러난 피해자에 대하여 목표하는 바도 있을 것이다. 짐작컨대 ‘~로서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거나,‘ ~하는 행동이나 특성을 고치도록 만드는 것’일 것이다. 흡연하는 여성에 대한 구타는 여자가 길거리에서 건방지게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고 싶다는 욕망을 기반으로, 레즈비언을 대상으로 하는 ‘교정강간’은 성적지향을 고쳐놓고자 하는 목표 의식적으로 행해진다.

여기서 우리는 체벌의 혐오범죄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체벌은 청소년으로서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 ‘~하는 행동이나 특성을 고치도록’ 만들기 위해 목표 의식적으로 행해진다(물론 단순히 분풀이를 위해 행해질 때도 많지만, 그렇더라도 청소년을 위축시키려는 의도는 관철된다). 때로는 청소년 집단이 특정 청소년이 체벌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함으로써 집단 전체가 위축되도록 하는 의도를 달성하기도 한다. 교사가 굳이 반 전체 학생이 보는 앞에서 특정 학생을 체벌하는 것은 한 명을 때리지만 그 위축감을 반 전체 학생들이 공유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래서 그 반의 학생 모두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고 고분고분해지기를 욕망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체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명확한 이유 없이 감정적으로 행해지는 체벌만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체벌과 혐오범죄의 가장 극명한 형태는 오히려 뚜렷한 목표를 갖고 행해지는 형태이다. 체벌은 비청소년에 의해 (어린이) 청소년에게 행해진다는 점에서, 그리고 앞서 밝힌 그러한 특성들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부모-자식, 교사-학생, 비청소년-청소년 간의 권력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혐오범죄적 특성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청소년혐오, 앞으로의 이론화 작업

청소년혐오는 청소년 억압을 정당화하는 데 근저에 깔린 사회적 감정이며, 나이에 따라 권리와 자원을 차등 배분하는 나이주의의 양상이다. 지면상 이 글은 청소년혐오 현상에 대해 몇몇 혐오어들과 체벌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데 그쳤지만, 앞으로 청소년운동에서는 우리 사회의 맥락에서 청소년혐오의 내용을 채우고 그 개념을 활용하여 사회현상을 분석해나가는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쥬리 님은 우물모임 멤버이자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91 호 [기사입력] 2016년 06월 29일 13:21:56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6.06.23 10:35

[나이주의와 청소년인권] 청소년 억압의 뿌리, 나이주의를 발견하다

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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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청 소년인권운동은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에 ‘나이주의’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해왔다. 사실 나이주의(Ageism)라는 개념은 노인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에서부터, 그리고 페미니즘에서까지 사용되던 개념이다. 청소년운동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며 ‘한 우물만 파는 모임’인 우물모임에서는 지난 1년 여 동안 나이주의에 대해 자료를 찾고 토론하며 청소년운동이 이야기하는 나이주의가 어떤 것인지 정리했다. 그 결과 중 일부를 인권오름을 통해서 공유하고자 한다.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이 사회에 여러 가지 도전을 했던 청소년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학교에서 방과 후 학습을 강요하는 일을 중단시키기 위해 헌법 소원을 내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종교 강요를 거부하며 단식을 했다. 어떤 사람은 머리스타일을 획일화시키는 학교 규칙들을 바꾸려고 서명운동을 했다. 어떤 사람은 미성년자는 밤 10시에 귀가시킨다는 촛불집회 주최 측 방침에 항의하며 청소년에게도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발언했다. 어떤 사람은 청소년들은 밤 12시 이후에 온라인 게임을 할 수 없다는 법에 대해 헌법 소원을 청구했다. 이들이 겪은 차별과 억압은 ‘청소년이기 때문에’ 겪은 것이었다. 이처럼 ‘청소년이기 때문에’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을 없애고자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움직임이 청소년인권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랜 시간 동안, 청소년인권운동은 가장 근본적인 하나의 질문과 씨름해야만 했다. ‘청소년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과 억압은 무엇으로 인해 생기는가?’ 처음에는 구시대적인 학교 문화와 비청소년(어른)들의 편견, 유교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청소년인권운동이 진행되면서는 청소년들에게 참정권이 없기 때문, 또는 경제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청소년들에게 참정권이 없는 것이나 경제력이 없는 것 자체가 청소년 억압과 차별의 결과 중 하나라는 점에서 좀 더 거시적인 사회구조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자본주의와 국가주의 때문, 사회재생산 과정의 문제라는 논의로 나아갔다.

자본주의와 국가주의 등의 사회 체계 자체가 원인이라는 것은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좀 더 세분화하여 청소년 억압을 규명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제 우리는 이를 위해 ‘나이주의’라는 개념을 제시하려고 한다. (단, 정확히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는 아직 논쟁의 여지가 있다)

나이주의(ageism)는 성차별주의(sexism), 인종주의(racism)와 같은 맥락의 조어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나이주의는 나이에 따른 차별, 나이를 중심으로 어떤 사람의 특성을 섣불리 규정하고 그 규정을 바탕으로 그 사람을 대하는 것을 일컫는다. 여기에는 부정적인 규정 뿐 아니라 긍정적인 규정 역시 포함된다. 또한 나이주의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나 인식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시장, 국가 제도, 사회 구조 전반에 존재한다.

나이는 자연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다. 지구가 일정한 주기로 자전과 공전을 하고 사람이 시간에 따라 성장하고 노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를 나이 개념으로 파악하고 제도화하는 것은 사회이다. 국가가 인구를 관리하고 효과적인 사회적 재생산을 꾀하기 위해서 나이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현대 국가는 사람들의 나이를 셈하고 나이에 따라 학교, 노동, 결혼, 은퇴와 노년생활, 복지 체계 등의 제도를 적용한다. 이에 따라 생겨나는 나이에 대한 관념과 문화, 그리고 제도와 사회 구조가 곧 나이주의이다.

이런 설명에서 알 수 있겠지만 나이주의는 단지 청소년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나이주의는 처음에는 노인차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나이주의는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사회 구조이며, 그 속에서도 도드라지는 것이 노인과 청소년인 것이다. 우리는 나이주의와 청소년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청소년이 겪는 나이주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나이주의는 청소년의 권력을 빼앗고, 청소년을 사회적 소수자로 만든다. 슬프게도, 나이주의는 이견이 없는 진실 내지 상식, 사회적 합의라고 받아들여질 만큼 전 세계적으로 만연한 상태이다. 그만큼 나이주의는 사고방식 속에, 사회 체계 속에 깊숙하게 침투해있고, 지금의 사회를 움직이는 근간이 되고 있다.

나이주의의 사례들

나이주의의 대표적인 예를 살펴보자. 가족은 대단히 나이주의적인 제도이다. 나이에 따른 올바른 행동양식이 있다거나, 청소년은 친권자(법적으로 청소년에 대한 친권을 갖는 사람, 소위 부모 등)의 경제적 사회적 법적 통제 하에 있으며, 친권자의 판단과 지시에 따라야 한다거나, 나이가 적은 사람은 나이가 많은 사람의 생각을 깨닫기에 부족하다는 고정관념이 널리 퍼져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친권자들은 청소년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 “애면 애답게 굴어라”
- “내가 시키는 대로 해” / “나한테 말대꾸 하지 마”
- “너도 나처럼 나이 먹으면 알게 될거야” / “너도 니 자식 키워보면 알 거다”

이는 친권자와 청소년 사이의 관계에서 나이주의로 인해 권력차가 생긴 것이다. 청소년이 이런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친권자는 나이주의로 인해 청소년의 입장보다는 청소년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우선시하며 기존의 관계를 지속시키려 한다. 국가는 친권자가 청소년을 ‘보호’하고 감독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나이주의적인 제도로 기존의 관계를 뛰어넘을 수 없는 환경을 유지시킨다. 청소년의 특성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은 이와 같은 협력(?)으로 계속 단단하게 유지되고 있다.

또한 청소년은 정치로부터 배제되어야 하고, 정치에 물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나이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여기에는 청소년이 아직 미성숙해서 정치적 결정을 함께할 시민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다. 청소년은 미성숙한 존재라는 것은 나이주의 체계 속에서 청소년이 부여받는 주요한 위치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정치를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더러운 것으로 보며 청소년이 정치에 쉽사리 휩쓸려 희생당하거나 타락해선 안 된다는 인식도 더해진다. 청소년이 타인을 속이거나 이용해먹을 줄 모르는 순수한 존재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참정권 문제를 포함하여 청소년이 순수한 존재,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고 하는 것은 청소년을 긍정적인 이미지로 그려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며 정치를 금지시키자는 비청소년들에게, 어떤 청소년이 “배려해 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선거권을 돌려줄 리는 없다. 결과적으로 국가기관에서의 판단이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강제로 막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이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돌려받기를 원한다 하더라도, ‘정치로 인해 물들어버렸다’,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사람이 문제의 근원이다’라는 나이주의적인 판단이 우선되면서 청소년의 요구는 묻힐 것이다. 그래서 청소년은 여전히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고, 국가는 청소년을 기르는 존재로 대할 뿐 청소년을 대변하는 정책을 내지 않고 있다.

이렇게 청소년인권운동은 나이주의를 통해서 ‘청소년이기에 받는 차별과 억압’을 더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나이주의가 무엇인지, 나이주의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통용되고 있는지를 계속 연구하고 고민하고 있다.

청소년을 차별하는 나이주의 개념, Adultism

그런데 이건 한국에서만의 일이 아니었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었다. 미국의 'Freechild project’에서 모여있는 자료들은 나이주의를 ‘Adultism'이나 ’Pedophobia', 'Ephebiphobia’, ‘Adultcentrism' 등으로 부르며 청소년 프로그램 기획자나 유아의 친권자, 학생, 청소년인권 연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나이주의를 설명하고 설득하고 있다. 그 곳에서 발견한 청소년을 차별하는 나이주의(Adultism)의 정의를 간략하게 추리면 다음과 같다.

- 청소년을 어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무시하고 침묵하고 얕잡아보고 탄압하는, 비청소년(이른바 ‘성인’)들의 습관적인 태도·사고방식·생각·믿음·행동.
- 비청소년이 청소년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청소년 당사자의 동의 없이 청소년을 위한 행동을 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
- 비청소년들이 조직적으로 청소년을 무례하게 대하는 것, 청소년에게 귀 기울이지 않고 신뢰하지 않으며 의미 있는 결정과정에서 배제하는 것.
- 청소년들에게 삶의 권력을 부여하지 않는 것.
- 청소년 개인의 권익이 아니라 청소년 집단 전체를 대하는 일반적인 관점을 기준으로 청소년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


Freechild project의 자료들은 위와 같은 식으로 나이주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나이주의의 특징을 분류하고, 나이주의가 끼치는 영향을 소개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Paul Kivel에 의하면 청소년은 자신의 삶에 대한 권력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규제당하고 통제당하고 학대당했고 그것이 청소년에게 무력감과 절망감으로 내면화되어 청소년이 겪는 모든 문제를 청소년 개인의 문제로 여긴다고 한다.

Freechild project를 운영하고 있는 Adam Fletcher는 나이주의로 인한 비청소년 중심적인 시선이 결국 청소년 본인에게까지 옮겨져 “나이 어린 비청소년(little adults, 청소년 본인이 아니라 ‘만들어진 어른’에 가까운 사람)”현상을 일으킨다고 주장했고, 청소년에 대한 차별을 언어 차별, 청소년활동에서의 차별, 학교에서의 차별, 사회에서의 차별로 분류하였다.

청소년 프로그램 스태프로 일하고 있는 John Bell은 청소년을 통제하려 하는 나이주의가 학생을 억압하는 교칙과 법률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어린이 발달문학과 교육담론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또한 나이주의로 인해 존중받지 못하고 잘못된 대우를 받는 것은 점점 그 고통에 익숙해지게 만들고, 결국 다른 억압에도 마찬가지로 무감각해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Freechild project는 나이주의를 뛰어넘기 위한 여러 실천사항들을 풍부하게 제안하고 있다. 나이주의와 청소년에 대한 편견을 소개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교육안까지 마련되어 있었을 정도였다. Freechild project의 자료 중에서 사람들이 청소년에 대한 차별과 나이주의를 줄이기 위한 방법을 찾았더니,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었다.

- 비청소년에게 하는 것처럼 청소년에게도 눈을 맞추며 성의를 다해 이야기하라.
- 비청소년에게는 쓰지 않을 말들을 청소년에게만 쓰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라.
- 타인에게 나이주의를 지양하는 자신의 방식을 드러내고 권유하라
- 나이주의에 저항하는, 특히 청소년 당사자의 커뮤니티를 만들어라
- 비청소년의 나이주의가 어느 수준인지, 어디의 문제인지를 파악하자.
- 나이주의를 고수하는 비청소년에게 청소년을 향해 분노를 표출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자.
- 다른 비청소년들에게 나이주의에 대해 탐구하자고 요청하고 동료를 모으자.


한국에서도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에서 주최한 ‘꼰대와 동지 사이, 나이주의를 고민하다’ 워크숍에서 나이주의 사전을 만들며 나이주의가 무엇인지를 면밀하게 밝힌 적이 있다(이에 대해서는 인권오름에서 기사 <[인권교육, 날다] 허깨비 같은 나이주의, 개념으로 잡아내다>로 다뤄졌고, 이 워크숍에서 만들어진 나이주의 사전은 다듬어 다시 발표되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계속 나이주의에 대한 연구와 조사를 거듭하고 있다. 다음 순서부터, 나이주의의 한 현상으로서 청소년혐오와 한국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나이에 따른 서열과 ‘예의’ 문제 등을 소개할 것이다. Freechild project에서 나온 말처럼, 반(反)나이주의의 가치를 정리하고 전파하다 보면 청소년 억압의 뿌리가 분명 뽑힐 것이라고 믿는다.


* 여기서 말하는 청소년은 주로 0세부터 만 19세까지인, 실질적으로 ‘미성년자’ 취급을 받고 있는 모든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덧붙이는 글
필부 님은 노원지역청소년인권동아리 화야와 청소년운동 우물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권오름 제 490 호 [기사입력] 2016년 06월 22일 13:40:23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6.04.13 20:38

평등한 민주주의의 봄을 바라는

청소년 참정권 요구 선언문


올봄, 축제가 열린다. 피어나는 봄꽃들과 사람들의 소망들이 어우러져 열리는 그 축제는, 우리 사회의 방향을 결정하고 함께 지킬 법을 만들 사람들을 정하기 위한 것이다. 바로 2016413일 제20대 총선이다. 그렇다. 우리는 흔히 선거를 가리켜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한다. 그러나 그 축제에 참가 자체를 불허당한 사람들이 있음을 잊지 말라. 바로 19세 미만의 청소년들이다.

 

어른들만의 정치, 배제된 청소년들

 

19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선거권이 없다. 피선거권도 없다. 그런데 가 없는 걸로도 모자라서 선거철만 되면 손발조차 묶이게 된다. 청소년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는 선거법에 따라서 후보나 정당에 대해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의견 표시를 하는 것조차 불법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어느 후보의 공약이 청소년들을 위해 바람직한 것 같으니 뽑아달라는 호소조차도 위법이 되고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고발을 당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법적으로 청소년은 정당에 가입할 수 없다. 자신의 생각이나 정치적 의견에 따라 정당에 가입하고 활동할 수 있는 결사의 자유조차도 부정당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은 미성숙해서 정치적 의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반민주주의적이고 반인권적인 편견만이 이러한 법을 변호하는 유일한 근거이다.

 

선거와 정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청소년들은 일상 속에서도 정치로부터 눈을 돌리고 입을 다물 것, 그리고 삶의 온갖 결정들에 참여를 금지당하며 명령에 따르기만 할 것을 요구받는다. 학교는 학생들의 생활에 관한 각종 규칙과 사안들을 정하면서 학생들의 참여를 보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학교의 일에 대해 뜻을 모아서 의견을 전달하는 이들이나 학교의 문제점을 학교 밖에 알린 이들은 선동을 했고 학교 명예를 훼손했다며 징계를 당할 위험에 처한다.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거리에서 행동하고자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정부는 청소년들이 말하고 행동하지 못하게 지도하라고 학교에 지시했으며, 학교들은 때로는 징계로 때로는 비공식적인 압박과 폭력으로 청소년들을 막아섰다. 많은 언론들은 청소년들에게 집회사상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자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사설들을 부끄러움도 없이 쏟아냈다. 경찰 등 행정기구들도 청소년의 집회결사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침해한 일이 적지 않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을 민주주의 바깥으로 내몰고 지시에 따르기만 하고 돌봄을 받기만 하는 위치에 묶어놓는 것에 아무런 주저함이 없었다.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오랜 시간 동안 청소년들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왔다. 그리고 많은 청소년들은 비록 나이가 적더라도 청소년도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민주시민임을 인정하고 참정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해왔다. 청소년들로부터 시작된 4.19혁명의 결과 선거권 제한 연령은 20세가 되었고, 청소년들도 함께한 87년 민주화운동과 2000년대에 이어진 청소년들의 ‘18세 선거권운동의 결과로 이는 다시 19세가 되었다.

 

그러나 반복해서 국회와 법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청소년들은 여전히 선거권은 물론이요, 표현의 자유나 결사의 자유조차도 짓밟히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판단능력이 미약", "정신적신체적 자율성이 불충분"하다는 언사와 함께 청소년의 인권을 부정했다. 국회의원들은 선거권 제한 연령의 문제를 민주주의가 아닌 표의 유불리 계산 문제로나 보고 있고, '18세 선거권'을 거론하여 우리가 일말의 기대를 가지게 했던 때조차도 "고등학생은 제외"한다는 등 청소년을 따돌리는 타협안을 논의하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는 국제인권법과 국제인권기구의 권고도 무시하고 학교나 경찰 등을 통해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행사를 방해하기 일쑤이다.

 

그 결과, 2016년의 총선에도 청소년들은 없는 취급을 당하고 있다. "청소년아이들"을 명분으로 삼는 표어는 많지만 청소년과 함께하는 정치, 청소년이 참여하는 정치는 없다. 우리도 함께 말하고 싶다. 우리의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

 

봄은 이 땅의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왔지만, 민주주의의 봄과 축제는 청소년들에게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봄이 왔으나 봄 같지가 않은 우리는, 20대 총선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우리를 따돌리는 정치의 현실을 고발하고, 평등한 민주주의를 바라며 청소년의 참정권 보장을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또한 청소년들의 참정권 보장을 지지하는 이들 역시 이에 함께한다.

 

1. 선거권과 피선거권 등의 제한 연령을 낮춰서 청소년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하라!

1. 나이에 상관없이 선거운동의 자유, 선거기간의 지지와 비판 등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

1. 청소년이 자신의 뜻에 따라 정당에 가입하고 활동할 자유를 존중하라!

1. 학교와 국가 등에 의한 청소년들의 정치적 발언과 활동에 대한 탄압을 금지하라!

1. 청소년을 민주시민으로 인정하고 모든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라!

 

 

[연명 단체]

 

청소년운동 총선대응 네트워크

(관악 청소년연대 여유 / 노원지역연합청소년인권동아리 화야 /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 정의당)

 

2016총선시민네트워크

(총선청년네트워크 / 경제민주화와먹고사는문제해결을위한을들의총선연대 /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 역사정의실천연대 / 4.16연대 /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 / 한국여성단체연합 / 한국진보연대 / 보육연석회의 / 반값등록금실현및교육공공성강화를위한국민본부 / 화상도박장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 사립학교개혁국민운동본부 / 시민평화포럼 / 전국복지수호공동대책위원회 / 주거권네트워크 / 경제민주화실현및재벌개혁을위한전국네트워크 / 전국살리기국민운동본부 / 환경운동연합 /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경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강원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전북총선시민네트워크 / 전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대구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서울강동연대회의() / 민주주의국민행동 / 민교협 / 민생연대 / 민생국민연대 / 언론연대 / 청년광장 / 서울청년광장 / 사학을바로세우려는시민의모임(사바모) / 강동촛불 / 강동시민연대 / 강동연대회의() / 상지대비상대책위원회 / 촛불을켜는그리스도인들의모임 / 촛불교회 / 예수살기 / 희망정치시민연합 / 대전 기윤실 / 집걱정없는세상 / 인권연대 / 대전충남인권연대 / 인권연대’ / 한국인권행동 / 상가세입입자연대 / 안전사회시민연대 / 천주교인권위원회 / 시사타파 / 서울의소리 / 금융정의연대 / 용산화상경마장추방대책위 / 용산연대 / 화상도박장반대보령대책위 / 화상도박장반대대전월평동대책위 / 나라살림연구소 / 도박규제네트워크 / 도박피해자모임 / 도박피해자가족모임 / 부정선거진상규명시민모임 / 미디어기독연대 / 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동대책위원회 / 통신공공성포럼 / 새로하나 / 강동희망나눔본부 / 강동시민연대 / 이명박박근혜심판행동본부 / 투표소에서수개표실현운동본부 / 전국철거민협의회 / 한국미래연합 / 삶의자리 / 전국개발지역대책연대 / 시민사회청년활동가모임 / 한겨레신문부산주주모임 / 한겨레신문부산독자클럽 / 유한킴벌리피해대리점협의회 / 바른불교재가모임 / 지속가능한사회연구소 / 전국세입자협회 / 서울세입자협회 / 사회연대네트워크 /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국유족회(재경유족회 / 부산유족회 / 산청유족회 / 거제유족회 / 함안유족회 / 함양유족회 / 통영유족회 / 여수유족회 / 보성유족회 / 장흥유족회 / 나주유족회 / 영암유족회 / 청주청원유족회 / 충주유족회 / 화순유족회 / 오산유족회 / 남양주유족회 / 미신고유족회) / 경제민주화민생연대 / 반값등록금학부모모임)

 

교육공동체 나다 / 법인권사회연구소 / 어린이책시민연대 / 원불교인권위원회 / 인권교육센터 들 / 인권운동사랑방 /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 참여연대 / 천주교인권위원회 / 청소년 녹색당 / 청소년참여활동단체 혜욤 / 평등교육실현을위한서울학부모회 /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 / 한국YMCA전국연맹

 

 

[연명 개인] 전체 1242

 

청소년 297

 

송영진(12) 윤진우(12) 김진서(12) 송서현(12) 황준환(12) 이규빈(13) 임나영(13) 노준엽(13) 김태수(13) 박세훈(13) 이서준(13) 김다은(13) 송민재(14) 박재온(14) 이채린(14) 전지윤(14) 이승윤(14) 김지훈(14) 서건우(14) 김지후(14) 김선혜(14) 김미주(14) 이종은(14) 박경석(14) 유세은(14) 김명준(14) 이호준(14) 강민서(15) 유호준(15) 황채연(15) 곽규빈(15) 김도헌(15) 김지욱(15) 하예린(15) 허다훈(15) 임단비(15) 양현서(15) 강민지(15) 김다빈(15) 이지민(15) 조하나(15) 이희원(15) 김은솔(15) 김민지(15) 양동광(15) 박예빈(15) 허립(15) 양현서(15) 유제민(15) 이주현(15) 이창범(15) 박찬혁(15) 허자은(15) 정재현(16) 라혜민(16) 이주연(16) 이현승(16) 조영제(16) 김진규(16) 김경빈(16) 손희연(16) 박은서(16) 김태희(16) 박상헌(16) 모세연(16) 정하연(16) 최유림(16) 복영준(16) 한지민(16) 박연지(16) 정상운(16) 조예원(16) 박유진(16) 조가은(16) 박서영(16) 김민창(16) 서온(16) 최나은(16) 정재언(16) 한민주(16) 정재완(16) 안민주(16) 신재윤(16) 김재석(16) 류주원(16) 김성태(16) 이승민(16) 민서현(16) 민종현(16) 김유진(16) 이조슈아(16) 김다빈(16) 박재형(16) 정민진(16) 조규원(16) 최윤지(16) 서정화(16) 정보경(16) 전수련(16) 이호현(16) 정성훈(16) 모세연(17) 유은지(17) 김민재(17) 나수빈(17) 조정묵(17) 구예슬(17) 강연진(17) 정우재(17) 이재준(17) 김지원(17) 김주원(17) 안수현(17) 정현흔(17) 김현경(17) 박재현(17) 배희재(17) 김민규(17) 황은지(17) 이태웅(17) 이세림(17) 오하연(17) 문성효(17) 이주희(17) 박혜연(17) 강성모(17) 김현정(17) 전민석(17) 이민혜(17) 김주영(17) 강서희(17) 이현민(17) 김정현(17) 김지연(17) 최여정(17) 박종오(17) 김욱(17) 한 채림(17) 정희원(17) 최민규(17) 김수진(17) 홍혜린(17) 김재인(17) 김덕원(17) 오예진(17) 윤지운(17) 박은주(17) 김진혁(17) 김도현(17) 공준표(17) 우예은(17) 임영규(17) 김도균(17) 민은식(17) 하선민(17) 박금주(17) 이주희(17) 조민(17) 조장희(17) 전진우(17) 이하솜(17) 육재서(17) 강민욱(17) 심재민(17) 김희진(17) 정다연(17) 오다은(17) 이지영(17) 주신원(18) 최지현(18) 노현영(18) 박원영(18) 정미나(18) 김용현(18) 권민재(18) 이정찬(18) 박미현(18) 노유진(18) 서준영(18) 김한률(18) 이하영(18) 이찬진(18) 이경은(18) 김수민(18) 녹갱이(18) 이정우(18) 김민석(18) 최주형(18) 남상백(18) 박주영(18) 왕정훈(18) 강진욱(18) 강진구(18) 위은서(18) 윤쓰리(18) 유태호(18) 홍소영(18) 김범수(18) 이용진(18) 백아름(18) 장어진(18) 남주현(18) 송진욱(18) 이윤형(18) 박민수(18) 김주영(18) 이건우(18) 서동현(18) 전예슬(18) 김창민(18) 서주용(18) 유휘영(18) 정다혜(18) 이보은(18) 김정희(18) 하대현(18) 장은채(18) 전대훈(18) 이예원(7) 한지원(13) 정찬영(13) 노서진(13) 강선우(13) 신시현(14) 함상현(14) 박은지(15) 서주영(15) 손지원(15) 안지우(15) 진현지(15) 임호민(15) 손문성(16) 이예빈(16) 박주연(16) 권예지(16) 김서윤(17) 송현솔(17) 김지영(17) 유진현(17) 고요한(17) 조민수(17) 김지원(17) 김지선(17) 이정민(17) 오유경(18) 이한우(18) 김소이(18) 조찬휘(18) 김태훈(18) 이가연(18) 이예슬(18) 신희승(18) 황용연(18) 김수성(18) 권나연(18) 양정우(18) 김태준(18) 임성훈(18) 김채원(18) 이다영(11) 심예림(13) 김민주(14) 박재훈(14) 김하영(14) 김미주(15) 최세진(15) 김하린(16) 최상인(16) 임규헌(17) 서우열(17) 이승현(17) 김가현(17) 남경진(17) 김주형(17) 진성민(17) 최진(18) 조예림(18) 남종덕(18) 박예원(18) 유진(18) 박지수(18) 장다미(18) 원서영(18) 이주영(18) 박혜민(18) 신은재(18) 김유연(18) 성영준(18) 송민선(17) 박재형(16) 오성용(17) 윤해정(18) 홍시몬(15) 서수현(15)

 

 

비청소년 945

 

이학인(19) 이종환(19) 김대영(19) 송성윤(19) 김현우(19) 박상현(19) 박예진(19) 차주원(19) 최영리(19) 최준호(19) 윤석웅(19) 함이로(19) 박마리(19) 이시헌(19) 오준승(19) 전주원(19) 조희은(19) 김민수(19) 박원영(19) 김지아(19) 류황원(19) 유진웅(19) 강석현(19) HarryP.Yoon(19) 서청범(19) 이찬영(19) 송승헛(19) 이연주(19) 유길릴(19) 한혜주(19) 장한열(19) 전미란(19) 강민진(20) 정인(20) 박건진(20) 정재환(20) 송은비(20) 타시야(20) 이수림(20) 김재현(20) 김소영(20) 이상희(20) 김다은(20) 김수민(20) 최훈민(20) 김진주(20) 고우리(20) 위영서(20) 정현민(20) 김은빈(20) 강윤정(20) 곽정화(20) 라온범(20) (20) 조민기(20) 강한새(20) 유승현(20) 김지후(20) 박진희(20) 이다은(20) 이희진(21) 김도균(21) 김정화(21) 장수빈(21) 김유진(21) 김지윤(21) 신재솔(21) 박서연(21) 정연성(21) 연학(21) 서미경(21) 최효재(21) 황혜송(21) 김승순(21) 정지용(21) 김도영(21) 김노엘(21) 정윤서(21) 노현정(21) 민현창(22) 미지(22) 우현길(22) 권우현(22) 양은정(22) 이장원(22) 정상인(22) 김한별(22) 한소영(22) 전누리(22) 정진리(22) 이수민(22) 장옥진(22) 박혜민(22) 이세린(22) 이지숙(22) 정보근(22) 양미리(22) 성수안(22) 이영민(22) 김자유(22) 황희재(22) 김한석(22) 윤동식(22) 손유나(22) 이찬우(22) 윤소영(22) 정소희(22) 윤미희(22) 둠코(23) 강한새(23) 채준열(23) 이현욱(23) 황덕기(23) 서교원(23) 홍수연(23) 조정현(23) 박세원(23) 권순부(23) 박준우(23) 강민구(23) 오탁근(23) 서가원(23) 최혜린(23) 이찬우(23) 양다혜(23) 박건호(23) 김수경(23) 신현빈(23) 루블릿(23) 김수정(23) 한지혜(24) 이길성(24) 박수영(24) 김태호(24) 노푸름(24) 배건준(24) 최나라니라(24) 서홍일(24) 호야(24) 길한샘(24) 이규리(24) 박문수(24) 김서현(24) 김동욱(24) 이은혜(24) 전수진(24) 김태윤(24) 이가영(24) 김상윤(24) 원정하(24) 김주희(24) 김지현(24) 노형래(24) 선우영교(24) 이다솜(24) 김혁(25) 최민석(25) 김연은(25) 유수진(25) 정민수(25) 김준(25) 용윤신(25) 홍지유(25) 이윤주(25) 김보민(25) 길수정(25) 김수정(25) 남승우(25) 김수환(26) 한민호(26) 방이슬(26) 김지연(26) 정다예(26) 박선영(26) 가다(26) 이혜림(26) 최종민(26) 조휘연(27) 김유미(27) 전시은(27) 김현지(27) 김대현(27) 이문영(27) 양종훈(27) 김진(27) 김나래(27) 정하경(27) 김수민(27) 우니(27) 도영원(27) 박상민(27) 조민정(27) 오세요(27) 국종애(27) 조은진(27) 공현주(27) 에리카(27) 하윤정(28) 김서린(28) 김주아(28) 왕복근(28) 공현(28) 이수현(28) 김희진(28) 남궁정(28) 서우혁(28) 이택준(28) 정휘아(28) 고우현(28) 김소망(28) 정윤주(28) 김진환(28) 박의호(28) 김현이(28) 이택준(28) 박종주(29) (29) 김예찬(29) 황동주(29) 오희진(29) 소은지(29) 강수지(29) 최원석(29) 김규리(29) 안광일(29) 정영은(29) 이은정(30) 무이(30) 박한희(30) 김미선(30) 김상국(30) 최근우(30) 조석영(30) 황인성(30) 이혜정(31) 정의석(31) 권중도(31) 박재현(31) 이덕현(31) 오윤택(31) 김혜란(31) 남화성(31) 강지은(31) 허건(31) 이미선(31) 조영국(31) 박민진(32) 박중권(32) 지승(32) 박철균(32) 곽영화(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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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6.03.24 13:34

[공현의 인권이야기] ‘소비자’의 권리를 넘어서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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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소비자여야 하는가 아닌가

“우리가 교육의 소비자인데 학교/교사가 우리를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거야?” 학생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만나는 학생들 사이에서 간혹 듣게 되는 말이다. 사실 그렇다. 교육을 ‘서비스’로 보고, 학교도 ‘교육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수요자(소비자)의 요구에 맞추라고 하는 시장주의적인 교육정책 속에서 학생들이 겪는 현실은 모순적이다. 어느 서비스에서 소비자, 고객을 그렇게 막 대한단 말인가.

물론 답은 명확하다. 어느 대학 총장이 “학생은 피교육자일 뿐”이라고 밝혔듯이, 교육의 그림 속에서 학생들은 소비자가 아니다. 그 친권자‧부모들이 소비자일지는 모르겠지만. 학생들은 차라리 ‘상품’에 가까운 위치다. 교육의 결과물로 Before(이전) After(이후)를 보여줘야만 하는 존재들. 노동자처럼 밤늦게까지 학교나 학원에 붙잡혀 공부를 해서 ‘스펙’을 높여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임금이나 노동3권을 보장받지는 못한다. 나중에는 자신들의 성적을 입증하고 전시해야만 한다. 그래서 학생들은 “제발 소비자 정도의 대우만 받아도 좋겠다.”라고 하소연한다.

그런데 다른 면에서는 과연 학생이 소비자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냐는 의문을 제기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시장주의적인 교육정책을 반대해온 사람들은 교육소비자니 교육수요자니 하는 말 자체에 경계심부터 가지고 보고는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교육을 시장적 모델로 보게 되고 경쟁과 차별이 만연하고…’ 하는 이야기 말고, 학생의 입장에서는 어째서 소비자이면 안 된다는 것인지 이해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구매력에 따른 차별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공교육은 일단은 많은 부분이 무상이라서 와 닿는 소리는 아니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 고객으로서 서비스를 제공받는 경험은 대개가 ‘제법 괜찮은’ 것이다. “손님은 왕이다” 같은 말로 대표되듯이 많은 감정노동자들의 친절과 봉사도 받을 수 있다. 물론 불량한 제품과 서비스 제공, 알 권리 무시 등 고통을 받은 경험도 있겠지만 수는 적은 편이며, 소비자는 그런 서비스를 선택하지 않을 권리도 가지고 있다. 결국 ‘학생인권 보장’이라는 게 학교가 학생을 고객처럼 모시는 것, 또는 학생이 소비자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오해도 생겨난다.

시장주의적 접근, ‘소비자’ 모델이 가지는 한계를 나는 이렇게 한 마디로 말하곤 한다. “소비자가 기업 경영에 참여하고 의결할 수 있나요?” 소비자는 구매력이 있다면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고 봉사를 제공받을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들 중에서 고르는 것밖에 할 수 없다. 소비자는 기업의 바깥, 결정과 생산 영역의 바깥에 있다. 만일 학생이 소비자라면, 학생은 학교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교육과정은 어떠해야 하는지 알고 참여할 권리도 없을 것이고, 학교의 편의에 따라 소비자 의견을 제시하는 정도밖에는 하지 못할 것이다. 바로 지금 정부가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듯이. 우리가 민주적인 학교를 요구하고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미 그것은 ‘소비자’의 위치를 뛰어넘은 것이다. 애초에 ‘교육’이라는 과정은 교사에 의해 제공되는 서비스를 학생이 받기만 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도 ‘소비자’라는 개념에는 한계가 있지만 말이다.

위 사진:교육청의 시각을 보여주는 홍보포스터

소비자에 머물지 말아야 할 이유

운동을 하다보면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할 때도, 정부가 인권이나 복지를 이야기할 때도, 사람들을 ‘소비자’처럼 생각하는 많은 경우와 마주치게 된다. 여러 복지정책이 그렇고, 심지어 정치를 이야기할 때조차도 이제는 ‘정치 소비자’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람들이 소비자로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과 소비자로서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를 보면, 학생들이 소비자 대우라도 받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연상된다. ‘정치소비자협동조합’을 표방한 조직이 직접민주주의와 능동적 참여를 주창하는 것을 보면 약간 역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문제점도 명확하다. 먼저 구매력이 적은 사람들은 제대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일례로, 거대 정당들의 주류 정치인들은 이번 총선에서 상대적으로 ‘표가 적을 것 같아 보이는’ 성소수자보다는 혐오세력에 동조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그리고 그밖에도 많은 소수자들, 표가 안 될 것 같은 사람들의 문제에는 침묵하고 있다. 아예 정치구매력이 없는 청소년들은 논외가 되어 버린다. 경쟁은 ‘공급자’만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 표로 정치를 사고, 정치인들이 표를 받고 정책이나 정치적 행위를 ‘판매’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보편적 인권 보장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4.13 총선 인권올리고 가이드>에서는 이런 문제를 지적하며 “표의 주인을 넘어 정치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적고 있다.

또한 앞서 말했듯 ‘소비자’는 함께 참여하고 만들고 책임지는 주체가 아니다. 주어진 상품들 중에서 선택할 권리는 있지만, 함께 만들고 결정을 내리지는 않는다. 일견 소비자는 많은 권리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은 선택할 권리 말고는 많은 권리를 제약당하고 있다. “손님은 왕”이라고 하지만, 본래 왕은 단지 좋은 대접을 받고 호화로운 의전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국가의 주권자이며 결정권자이다. 왕은 ‘고객’이 아니라 ‘주인’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소비자’와 ‘왕’은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 많은 경우 인권 보장을 위해서는 소비자의 권리 이상으로 주인의 권리가 필요하고, 평등한 참여와 공동의 연대(책임)가 필요하다.

상품이나 노예, 없는 존재 취급을 받는 사람들에게 소비자의 자리는 신분상승처럼 느껴지기 쉽다. 모든 것이 시장화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의 위치는 익숙하고 편안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권은 ‘소비자’의 권리와는 다르다. 인권운동이 ‘소비자 마인드’를 경계하는 것은 단지 시장이나 자본주의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 아니다. 그 걸로는 인권이 제대로 보장될 수 없으며, 우리가 이야기하고 추구하는 인권은 그 이상을 꿈꾸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공현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78 호 [기사입력] 2016년 03월 23일 18:37:31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5.10.12 13:52

[한글날 논평] 이게 한글이 아니면 두글이애오? 청소년 언어문화 그만 까새오

 

 

한글날, 우리가 전국적으로 다굴*을 당하는 날이다. “요즘 애들의 언어 파괴가 심각하다”, “알아먹지도 못할 은어를 쓴다”, “욕설을 한다”며 까대는 것이다. ‘한국어’와 ‘한글’도 구분을 못하는지 꼭 세종대왕을 들먹이며 학교에서나 인터넷에서나 하루종일 꼰대질을 시전하는데 어이가 1도 없음이다**. 우리가 쓰는 말도 분명 자음 14자 모음 10자로 조합하는 한글이다.

 

말 좀 줄여서 하는 게 어때서 그런가? 자기들도 줄임말로 ‘단통법’이니 ‘이태백’이니 ‘지자체’니 잘도 쓰던데 왜 ‘버카충’만 쓰레기냔 말이다. 그딴 기사 써대는 기자들도 자기들끼리 은어 많이 쓰기로 유명하지 않나. 너네가 하면 유식한 거고 우리가 하면 나대는 거냐.

 

욕 좀 하는 게 어때서 그런가? 우리가 욕하는 건 더럽고 폭력적인데 욕쟁이 할머니는 정감 있다고 하고, 자기들은 친구 만날 때마다 '이새끼 씨발 저년 씨발' 하는 건 이중잣대 오진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욕설 중에 소수자 차별적인 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건 쓰지 말아야 할 이유를 함께 이야기하는 방법이 맞는 거지 무조건 ‘어린 것들은 그런 말 쓰지마’ 하는 건 진짜 아니다.

 

언어파괴가 아니라, 언어문화다. 사람들은 언어를 만들고 변화시키고 사용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많은 세대/집단들이 자신들의 언어문화를 만든다. 우리 청소년들의 언어문화에 대해서만 ‘언어파괴’라고 하는 건 우리가 만만하고 우리끼리 통하는 게 아니꼽기 때문 아닌가?


권력을 가지지 못했고 지배적 문화로부터 먼 사람들일수록, ‘고급진’ 언어가 낯설기 마련이다. 예컨대 빈곤계층이나 미국 흑인들 사이에서 비속어 등이 더 널리 쓰인다. 대부분의 청소년들 역시, 여러 공식적인 논의나 결정에서 배제되고, 발언할 기회도 존중받는 경험도 갖지 못한다. 청소년들은 비청소년들과 평등하게 소통할 기회도 적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고급진 언어를 쓸 일도 별로 없으며 학교에 갇혀서나 거리에서나 청소년들끼리만 지낼 일이 많다. 이처럼 사회적 소수자인 청소년들 사이에서 비청소년들 사이의 주류적 문화와는 다른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건 생각하지도 않은 채 우리의 언어문화가 자기들과 다르다고 손가락질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극혐****이다.

 

이 꼰대질도 참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1970~80년대에도 청소년의 언어생활이 “극히 거칠고 퇴폐적”이라고 우려하는 기사들과 함께 한글날에 청소년들이 “쌤통이다”, “피봤다”, “구라”, “공갈” 등의 신조어나 은어를 쓰고 맞춤법도 제대로 모른다며 걱정하는 기사들이 나온다. 겁나 우려먹은 소재라는 것이다. 새로운 말을 못 알아먹겠으면 검색을 하거나 우리에게 질문을 해라. 그 좋아하는 자기주도학습을 좀 해봐라. 괜히 만만하다고 우리만 까지 말고. 청소년들의 언어문화를 존중하고 소통하는 자세부터 가져라. 이제 한글날에는 새로운 이야기 좀 듣고 싶다. 좋은 문학작품도 한순간에 분석하고 외워야 할 글자더미로 만들어버리는 입시교육부터 같이 어떻게 해보는 게 어떨까? 인정하는 부분?*****




2015년 10월 9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다굴 : 집단폭력, 린치

**1도 없음이다 : 하나도 없다

***오진다 : (감정이나 상태 등의 정도가) 엄청나다. 만족스럽다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 ‘오지다’의 변형. ‘쩐다’와 비슷하게 쓰인다.

****극혐 : 매우 혐오스러움

****인정하는 부분? : 동의하는지 묻는 말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5.08.06 00:51




청소년신문 요즘것들 제6호 2015.07.16.


커버이미지 :: 찜통교실 & Intro




  학교 끝나고 학원에 가기 전 편의점에 들렀다. 음료수를 사고 자리에 앉아, 폰으로 웹툰을 보려고 포털사이트에 들어갔는데 한 기사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학교 10곳 중 8곳 공공요금 지출 줄어...찜통교실 무대책"
  엥? 뭔솔? 읽어보니 공공요금이란 수도, 전기, 가스 등을 이용하고 내는 돈이라고 한다. 특히 전기요금을 아끼려고 학교들이 에어컨을 제대로 안 틀고 있다고. 더워서 도저히 못 참겠다고 행정실에 하소연을 해도 에어컨을 안틀어주던 이유가 이거였구만. 아니 그럼 교무실, 교장실, 행정실부터 솔선수범해서 안틀어야 되는 거 아냐? 교실은 따닥따닥 붙어 앉아서 더 짜증나고 더운데.
  편의점의 에어컨 바람 덕분에 겨드랑이에 났던 땀이 마르면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 입고 있는 교복이 한심스러워 보였다. 얇은 흰색 천으로 만들어져 비치기는 다 비치면서, 바람도 안 들어오는 블라우스, 땀 차서 다리에 붙는 치마. 교복을 편한 걸로 안 바꿀 거면, 다른 옷이라도 입고 다니게 해주든지. 체육복도 안되고 학교 안에서든 등하굣길이든 오직 교복만 입으라니 참 깝깝하다. 오늘은 땀 좀 말리려고 블라우스 단추 하나 풀고서 목 깃 좀 펄럭거리고 있었다고 교사에게 "여자애가 다 보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핀잔을 들었다. 내가 지 보라고 펄럭거린 줄 아나. 여자인거랑은 또 무슨 상관인데.
  땀이 다 마르고 나니 조금 서늘했다. 편의점은 에어컨을 튼 채 문을 활짝 열고 있었다. 어디서는 있는 에어컨도 못 틀고 헥헥거리고, 어디서는 펑펑 틀고. 참 불공평하다. 그런데, 요즘 발전소 때문에 환경오염 되고 위험하다고 난리던데 이렇게 전기 펑펑 써도 되는 건가? 그래도 우리 학교는 좀 너무한 것 같다. 어떻게 바깥보다 안이 더 덥담. 에어컨 안 틀고도 안 덥게 지낼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옷이라도 좀 편하게 입었으면... 꼭 필요해서 에어컨 틀 때는 짧게 적당한 온도로 틀고... 방학도 2주밖에 안되던데 좀 길게 하면 좋겠다. 근데 이 이야기를 누구한테 해야 하지? 쌤한테 얘기하면 교육청 홈피에 올리라고 하고, 교육청 홈피에 올려도 아무 반응 없던데.
  뭐 다들 그냥 사는데, 나도 참아야지 별 수 있나. 편의점을 나오면서 문을 슬쩍 닫았다. 몇 발짝 걷자 등 뒤로 문을 다시 여는 소리가 들렸다.




청소년신문 [요즘것들] 제6호 순서



특집 : 찜통교실



[Special]


1. 에어컨도 못 트는 학교의 주인?


2. :: 더운 학교, 어쩔 수 없는 걸까 - 건물 설계, 일정 조정 등 해결책은 쉬운 곳에



[극한직업 청소년]


교복러



[소식]


한국 학생들의 학습시간은?


저항하자, 사랑하자, 우리의 레볼루션 




[청소년24시]


1. 인터넷을 막아라! - ㅅ홈스쿨센터의 반인권적인 규칙 등

2. 학교에서 세월호 추모 행동 탄압

3. 대법원, 학생인권조례는 정당하고 유효하다고 판결




[인터뷰]


핵발전소 없이, 입시경쟁 없이 살 수 있을까?

- 청소년 녹색당 준비모임 '녹갱이'씨





[청소년의눈으로]


학교, 수시가 중요해, 내 목숨이 중요해?




[만평]


불타는 교실



[광고]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5.02.12 20:53
게임 셧다운이 아니라 학습시간 셧다운!
학생에게도 휴식을…<아수나로>의 다섯 가지 제안
<여성주의 저널 일다> 묵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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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학습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학생들의 현실을 지적하며,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학습 시간 셧다운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습니다. 청소년의 삶과 권리에 대한 고민과 제안을 담은 이 기사의 필자 묵은지님은 아수나로 활동가입니다. –편집자 주]

 

‘낯섦’조차도 허용되지 않는 공간, 학교

 

모 든 것이 낯설어야 했다. 0교시 시작 시간에 늦지 않으려 새벽부터 일어나는 것도, 가파른 등교 길을 힘겹게 오르는 것도, 턱없이 짧은 점심 시간 안에 배를 채우려 먹을 것을 꾸역꾸역 밀어 넣는 것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 수업에 졸지 않으려 제 손으로 뺨을 찰싹 찰싹 때려가며 앉아있는 것도, 밤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교문 밖을 나서는 것도.

 

인문계 고등학교라는 공간에 처음 들어온 신입생들에게 그 모든 것은 낯설어야 했다.

 

하 지만 나에겐 낯섦을 느낄 귄리조차 없었다. 부족한 수면 시간에 하루 종일 눈 밑이 퀭해도, 급하게 먹다 체한 속이 부글부글 끓어도, 학교는 ‘왜 아직 적응하지 못했느냐’고 도리어 나의 낯섦을 타박했으니까. 결국 신입생들 대다수는 생존하기 위해 모든 것에 순응하며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그리고 곧 그들이 처한 모든 부조리에 무심해졌다.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 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못했다. 그 ‘낯섦’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본인이 적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책을 느끼며 괴로워하거나, 교실 한 구석의 이방인이 되거나, 적응해야 한다는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학교 밖으로 탈출해야 했다.

 

나도 그러한 이유 때문에 탈학교를 결심해 지금은 학교 밖 청소년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새삼 학교 안에서 받는 고통을 해결하는데 가장 편리한 방법은 ‘학교에 있지 않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매우 씁쓸하기도 하다. 학교 밖으로 나온다는 건 그만큼 많은 것을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학교 안에서 고통을 감내하고 있으니까.

 

과잉 학습으로 채워지는 학생들의 시간

 

학교가 이렇게 끔찍한 공간이 된 이유 중 하나는, 학교가 우리의 시간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   2010년 발표된 통계청의 생활 시간 조사 ‘학생의 학습 시간’ 통계  © 아수나로 제공

 

2010 년에 발표된 통계청의 생활시간 조사 ‘학생의 학습 시간’ 통계에 따르면, 한국 고등학생의 평일 평균 학습 시간은 10시간 47분이다. 주말의 시간까지 합쳐 계산하면 학생들은 주당 약 64시간을 오로지 학습만을 위한 시간으로 쓰고 있다.

 

또 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실시한 ‘2013년 한국 아동.청소년 인권 실태 연구’에서는 일반/특목/자율고에 다니는 고등학생들의 평균 수면 시간은 5.5시간이었다. 이들 중 절반에 육박하는 48.4%가 평일 여가 시간이 1시간이 채 안 된다고 답한 것으로 발표됐다.

 

▲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와 전교조에서 실시한 ‘2014 전국 학생인권 실태 조사’   © 아수나로 제공

인 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실시한 ‘2014 전국 학생인권 실태 조사’ 결과도 살펴보자. ‘방과후학교, 보충수업, 야간자율학습 등을 강제로 하게 하는 것’에 대한 응답으로 ‘자주 있다’가 37.8%, ‘가끔 있다’가 16.1%로, 총 53.9%의 학생들이 강제 학습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실태 조사들의 결과를 묶어 요약하면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오로지 학습을 위해서 소비하고 제대로 잘 수도, 쉴 수도 없으며 이중 절반이 넘는 학생들은 이를 강제적으로 하고 있다’ 라고 할 수 있다.

 

휴식 시간이 부족한 게 게임과 스마트폰 탓?

 

사실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휴식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 런데 기성 세대가 이 문제에 대해 파악한 원인과 해법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학생들의 휴식 시간이 부족한 것은 밤 늦은 시간에 게임을 하고 스마트폰을 너무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니,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게임 셧다운제’를 시행하고 스마트폰 규제 앱을 만들어 학생들을 통제하자는 것이다.

 

학생들이 처한 환경을 손톱만큼이라도 생각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해결책이다. 학생들의 휴식 시간이 지켜지기 위해서 규제해야 할 것은 게임도, 스마트폰도 아니다. 바로 ‘과도한 학습 시간’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는 ‘학습 시간 셧다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입시경쟁 교육 속에서 폭주하는 학습 시간을 사회적으로 규제하자는 운동이다. 노동 시간에 제한을 두듯이, 적절한 학습 시간에 대한 사회적 약속을 만들고 학생들의 시간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 아수나로가 주장하고 있는 요구를 소개한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진행중인 ‘학습 시간 셧다운 프로젝트’ 

①  오전9시 등교 오후 3시 하교, 하루 6시간 학습!

 

‘별 보고 학교 갔다 별 보고 집에 온다’는 말은 이미 익숙한 문구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학교는 학생들을 하루 온종일 한 자리에 붙잡아 놓고 학습만을 강요한다.

 

2009년 OECD 국가들의 15-24세 평균 학습 시간은 1주일에 33.92시간이었다. ‘하루 6시간 학습’은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루 13-14시간을 학교에 붙잡아두는 것이 이상한 일로 여겨져야 한다.

 

②  방학일수 늘리고, 수업일수 줄이고!

 

길어봤자 4주가 조금 안 되는 방학, 그조차도 보충이다 뭐다 하면 방학이 1주일이 채 넘지 않는 학교도 굉장히 많다.

 

방학은 쓸모 없는 시간이 아니다.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여유롭게 쉴 수 있는 꼭 필요한 기간이다. 법에 정해진 수업일수 역시 현재의 ‘190일 이상’이 아니라 180일~185일로 줄여야 할 것이다.

 

③  보충, 야자, 학원 등 강제 학습 금지!

 

대 부분의 학생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도, 하고 싶지 않은 보충 수업과 학원 수업을 듣도록 강요당한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인 학생보다 부모나 교사의 의견이 훨씬 더 중요시되는 일도 부지기수다. 학생의 시간은 학생의 것이다. 학생의 의견에 반하는 강제 학습은 사라져야 한다.

 

④  야간, 주말, 휴일엔 학생들도 휴식을!

 

밤 10시가 넘어가도 온통 환하게 빛나는 학교 건물들, 주말에도 어김없이 등교하는 학생들…. 이런 풍경들은 부지런함의 상징이 아니라 슬픈 교육 현실의 상징이다. 모두가 쉬어야 할 야간, 주말, 휴일에는 학생들 역시 쉴 수 있도록 학교와 학원의 문을 닫아야 한다.

 

⑤ 과잉 학습으로 밀어 넣는 경쟁교육 개혁!

 

위 의 요구들을 들은 사람들은 대체로 이렇게 말한다. ‘학습 시간을 줄인다고 학교를 일찍 마치게 하면 사교육이 더욱 횡행할 것이다’, ‘학습 시간이 줄어들면 그만큼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그렇다. 입시경쟁 교육, 학력 차별과 학벌 차별, 무한 경쟁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수업을 줄이고 사교육을 규제한다 해도 학생들의 실질적인 학습 시간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경쟁 교육을 바꿔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최종적이고 근본적인 목표이다.

 

청소년에게 밤과 휴일의 시간을 보장하라

 

▲  아수나로 광주 지부에서 진행한 캠페인  © 아수나로

< 학습 시간 셧다운 프로젝트>는 사교육과 공교육을 특별히 구별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한국에서 교육의 문제에 대해 말할 때는 ‘과도한 사교육’이 단골처럼 불려 나왔다. 그리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강화하는 것이 주된 해법 중 하나로 제시되어왔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 청소년들의 삶과 학습 부담에 대해 간과한 접근이 아니었을까?

 

공 교육 역시 입시경쟁 체제 속에서 학생들에게 공부할 것을 강요하고, 과도한 학습 부담을 지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습 시간 셧다운 프로젝트>는 이미 너무 긴 학교 수업 시간과 수업일수를 줄이자는 주장을 중요하게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공교육과 사교육을 막론하고 야간 학습, 휴일/주말 학습을 없애서 학생들이 밤과 휴일만은 자유로운 여가 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한다.

 

학 생들에게 더 많은 공부를 하도록 만드는 원인 중 하나인 학교, 가정, 사교육 등에서 모든 강제 학습을 없애자는 주장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조치들을 통해 하루 6시간을 기준으로 학습 시간을 실질적으로 줄이자는 것이다. 또한 경쟁교육 체제에 대한 문제 의식도 담아서, 과도한 학습 시간을 유발하는 근본적 원인을 함께 개혁해나가자는 메시지 역시 전하고자 한다.

 

<학습 시간 셧다운 프로젝트>는 교육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학생들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문제인 ‘학습 시간’이라는 이슈를 통해, 학생들의 삶을 중심에 둔 교육 운동을 만들어가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설렘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누 구나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면하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그 순간에 느끼는 감정을 낯섦이라고 표현하지만, 어쩌면 설렘이라고 치환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처음 겪는 것들에 대한 설렘. 지금의 학교는 그러한 감정들이 허용될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저 공부만을 쉴 틈 없이 강요하는 학교가 아닌, 제대로 된 여유와 자유로운 시간을 누릴 수 있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가슴 뛰는 설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꿈꾼다. 우리의 교육 운동이 학교에서의 낯섦을 허용케 하는 순간을. 그리고 상상한다. 그 공간에서의 벅찬 설렘을.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5.02.08 15:02

[벼리] ‘2015청소년활동가선언’을 소개합니다①

검은빛, 공현, 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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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2015 청소년활동가선언'은 청소년 운동이 지금 놓인 현재와 고민, 그리고 새롭게 청소년 운동을 시작하거나 알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안내가 담겨있습니다. 인권오름에서는 선언에 담긴 내용과 그에 대한 설명과 맥락을 다양한 사람에게 들려주려 합니다. 다만 웹으로 글을 읽을 때의 한계로, 부득이하게 하나의 글을 두개의 글로 나누어 담습니다.

2015년 1월 13일부터 15일까지, ‘청소년활동가마당’이 열렸습니다. 지난 2014년에 처음 ‘청소년활동가마당’을 연 뒤 횟수로 두 번째였습니다. 청소년활동가마당은 청소년운동 단체들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청소년운동의 의제나 활동들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여러 청소년활동가들이 모여 교류하고 토론하자는 취지로 열린 활동가대회 성격의 행사입니다. <2015 청소년활동가마당 - 여긴 어디? 나는 누구?>는 그 제목 그대로 청소년운동의 현주소와 청소년활동가들의 현재를 함께 확인하는 자리로, 청소년활동가들 30여 명이 각 단체의 활동을 공유하고, 질문과 고민을 나누고 토론을 했습니다. 2015 청소년활동가마당의 마지막 순서는 ‘2015 청소년활동가선언’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2015 청소년활동가마당 셋째날에 기획단이 미리 준비해온 ‘2015 청소년활동가선언’ 초안을 놓고 수정 및 보완하는 토론을 했으며, 참여자 중 자신의 이름이 이 선언에 명기되는 것에 동의한 활동가들의 연명으로 선언을 채택했습니다.

기획단에서 굳이 선언을 제안하고 채택한 취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개별 단체 소속을 넘어 ‘청소년활동가’로서, 함께 청소년운동의 목표와 현재를 명문화된 형태로 발표하자. 둘째, 새로 청소년운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청소년운동이 어떤 것인지를 안내해줄 수 있는 자료를 만들자. 셋째, 청소년운동과 부대끼고 있거나 청소년운동을 잘 모르는 다른 운동/활동가들에게 청소년운동에 대한 내용을 좀 더 합의된 형태로 제시하자. 청소년운동의 단체와 흐름들이 다양해지면서, 한 단체의 강령이나 운동원칙 합의 정도로 청소년운동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알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선언은 총 11개의 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청소년운동이 그간 논의해온 수많은 의제들과 고민들을 모두 내용으로 담을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청소년활동가들이 운동적으로 함께 인식해야할 중요성이 있는 내용들을 모아 만들게 됐습니다.

선언의 전반부는 주로 청소년운동이 무엇인지 정리하는 내용입니다. 청소년에 관련된 단체나 활동이 여러 종류가 있고 ‘청소년’ 자체의 개념도 모호한 까닭에 대체 무엇이 또는 어디까지가 청소년운동인지 혼란스러운 점이 있었습니다. 선언을 통해서 청소년운동의 정의와 방법론 등 그 중심에 있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식들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청소년운동을 바라보는 시선, 또는 청소년운동과 다른 사회운동 사이의 관계 등을 다루는 내용이 있습니다. 운동의 정체성이란 다른 이들과의 관계나 외부로부터의 시선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청소년운동을 보는 잘못된 관점을 비판하고, 청소년운동의 정치성과 독립성, 연대성 등의 원칙과 성격을 적었습니다.

‘2015 청소년활동가선언’은 그 이름 그대로 2015년 시점에서 청소년운동의 문제의식과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앞으로 청소년운동이 변화하고 발전해가면서 새로운 문제의식과 발전한 내용을 담은 선언이 나올 가능성도 있을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2015 청소년활동가선언’을 통해 청소년운동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게 되길 바라는 한편으로 그런 변화의 여지 또한 염두에 두시길 청합니다.

2015 청소년활동가 선언

지 금 우리의 청소년운동은 새로운 기로에 서있다. 청소년운동은 쌓인 경험과 기억, 그리고 더 깊어지고 다양해진 목소리와 실천을 바탕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청소년운동의 새로운 모습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우리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등과 같은 새로운 과제와 마주하고 있기도 하다. 운동의 존속에만 급급하던 시대를 넘어, 이에 더해 발전과 변화 또한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해방을 위한 경로를 찾기 위해서는 현재 위치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청소년운동이 무엇이며 어디를 향해 있는지,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청소년운동 안팎으로 알리는 언어가 필요하다. 우리는 <2015 청소년활동가마당 - 여긴 어디? 나는 누구?>에 참여하여 청소년운동에 대한 다양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 자리를 마무리하며, 우리들은 각자의 소속 단체를 떠나서, 한 사람의 청소년활동가로서 청소년운동에 대해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우리의 청소년운동이 서있는 위치와 걸어갈 방향, 그리고 걸음걸이를 밝히고자 한다.

1. (청소년운동의 목표)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의 해방을 지향하는 사회운동이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인 억압, 차별, 폭력, 착취에 저항하며, 청소년들이 인간적으로 존중받고 개인들이 자유로울 수 있는 평등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2. (청소년의 정의) 우리가 말하는 청소년은 사회에 의해 ‘미성년’이라고 구분되는 모든 사람들이다. 연령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사회적・제도적․관습적․문화적 구분의 기준이 청소년운동의 당사자를 결정한다. 그 범위는 대개 만18세~20세 미만이 되며, 경우에 따라 더 적은 나이나 더 많은 나이를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3. (청소년의 성격) 청소년은 소수자인 동시에 보편적인 집단이다. 현재 청소년인 사람은 사회적으로 억압과 차별을 받는 소수자의 위치에 있으나, 모든 청소년은 언젠가 청소년이 아니게 되며 모든 비청소년은 한때 청소년이었다. 또한 청소년은 청소년이라는 계급성을 가지지만, 그러면서도 속한 가족의 계급의 영향을 받는다. 청소년은 한 마디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온전하게 인정받지 못한 채 유예된 존재이다. 청소년운동은 단지 현재 청소년인 사람들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해 투쟁할 뿐 아니라, 특정 연령의 사람들을 ‘청소년’으로 구분하고 억압하는 현상과 사회구조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다.
4. (청소년억압의 성격) 이 사회에서 청소년은 국가와 자본을 위한 ‘인적 자원’으로 생각되며,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 이윤을 위한 수단, 또는 미래를 준비하는 미성숙한 존재로 취급받는다. 청소년억압은 신체적・사회적 약자인 청소년들을 억압적인 사회구조에 맞춰 사회화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사회에서 청소년억압의 대표적인 사회구조는 학교와 가족이다. 학교제도는 청소년이 자본주의적인 경쟁 및 차별 논리, 능력주의를 내면화하고, 권력에 복종하는 국민이 되도록 교육하고 있다. 현 가족제도는 청소년을 친권자에게 종속된 존재로 만들고 양육과 생존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며 계급을 재생산한다. 학교와 가족뿐만 아니라 비청소년 중심의 각종 제도와 문화 역시 청소년억압의 중요한 요소이다.
5. (청소년 안의 다양성) 청소년들은 단일한 존재들의 모임이 아니다. 청소년들은 계급, 성(性), 사상 및 이념, 신체적 상황, 그밖에 다양한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각자 다른 억압을 경험한다. 청소년은 여러 차원의 중첩된 억압을 겪는 존재이다. 따라서 청소년운동은 다양한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형태의 억압에 저항한다.
6. (청소년운동의 주체) 청소년운동은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사회의 주인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청소년운동의 가장 중요한 주체는 청소년 당사자이다. 청소년 당사자가 정치적인 힘을 가진 주체로 나서고 연대를 통해 집단적인 세력이 되는 것은 청소년해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방법이기도 하다. 소수의 엘리트나 ‘선한 어른들’이 청소년해방을 대신 이루어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7. (청소년운동과 나이주의) 청소년운동은 ‘나이주의’에 반대한다. 나이주의는 연령에 따른 위계, 나이에 따른 차별 등의 문화와 제도를 가리킨다. 청소년들은 나이주의에 의해 사회 전반에서 차별과 억압을 겪기에 청소년운동은 나이주의를 극복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나이주의는 운동사회에도 존재하며, 그로 인해 청소년활동가들은 동등한 활동가로서 존중받지 못하기도 한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이 나이를 이유로 운동의 참여가 제한되거나 업무에서 배제되는 현상에 문제의식을 갖는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들이 평등하게 참여하고 활동가로서 존중받으며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조직 구조와 문화를 지향한다.
8. (청소년운동의 정치성) 청소년운동은 정치적인 운동이다. 사회를 운영하고 사회적 문제에 대해 결정하는 모든 과정이 정치이고, 따라서 사회의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정치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이 겪는 일상적 억압과 차별의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이며, 이에 저항하는 청소년운동도 정치적인 운동이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을 주장하며, 정치적 활동이 청소년이 접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에 반대한다.
9. (청소년운동의 독립성) 청소년운동은 다른 운동에 종속되지 않은 운동이다. 청소년운동에 ‘배후’가 있다고 여기거나, 청소년활동가들이 다른 비청소년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간주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이자 거짓이다. 또한 청소년운동은 다른 사회운동의 ‘준비과정’이 아니다. 청소년들은 동등한 사회구성원이므로 청소년의 사회적 참여는 당연한 것이지 특별하거나 대견한 일이 아니다.
10. (청소년운동의 고유성)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운동만의 문제의식과 고유한 영역을 가진다. 청소년억압은 다른 구조의 문제가 해결되면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의 관점에 의한 정세 판단과 가치 기준, 우선순위를 갖고 활동한다.
11. (청소년운동의 연대성) 청소년해방은 인간해방과 분리되지 않는다. 청소년억압은 우리 사회의 각종 억압적인 구조와 제도, 문화와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청소년운동은 우리 사회의 인간해방을 위해 함께 투쟁한다. 그리고 인간해방과 우리 사회 전체의 변화를 위해 청소년운동으로서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한다.

우리는 이상과 같은 청소년운동의 지향을 함께 선언하며,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모든 청소년의 해방을 향해 투쟁할 것을 다짐한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와 단체에서 청소년운동을 하면서도, 해방을 위한 단결의 필요성을 잊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다른 운동과 구별되는 고유한 청소년운동을 하면서도, 청소년해방은 전체 사회구조의 변혁과 함께 온다는 것을 잊지 않고 다양한 사회적・정치적 투쟁에 연대할 것이다. 우리는 청소년활동가이고, 우리의 옆에는 청소년해방을 함께 이루어낼 동료가 있다. 우리는 더욱 많은 청소년과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더 많은 청소년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투쟁할 것이다.

2015년 1월 15일
※ 이름 뒤의 단체명은 참여자의 소속 단체를 참고삼아 알리기 위한 것이며,
해당 단체가 공식 입장으로 이 선언에 참여했다는 뜻이 아님을 밝힙니다.
검은빛(관악청소년연대여유), 공현(대학입시거부로삶을바꾸는투명가방끈들의모임․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난다(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델라(관악청소년연대여유), 둠코(청소년활동기상청활기), 루블릿(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마카롱(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목성돼지(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미쁨(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박씨(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별다(청소년활동기상청활기), 선우(노원지역연합청소년인권동아리화야), 윤서(희망의우리학교), 이응이, 자유(대학입시거부로삶을바꾸는투명가방끈들의모임), 쥬리(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쥰(노원지역연합청소년인권동아리화야), 최준호(중고생연대), 치이즈(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플린(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필부(노원지역연합청소년인권동아리화야), 하루유키(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호야(대학입시거부로삶을바꾸는투명가방끈들의모임)
덧붙이는 글
검은빛 님은 관악청소년연대여유 활동가 입니다. 공현 님은 대학입시거부로삶을바꾸는투명가방끈들의모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입니다. 쥬리 님은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425 호 [기사입력] 2015년 02월 05일 14:20:47


















[벼리] ‘2015청소년활동가선언’을 소개합니다②

검은빛, 공현, 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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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2015 청소년활동가선언'은 청소년 운동이 지금 놓인 현재와 고민, 그리고 새롭게 청소년 운동을 시작하거나 알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안내가 담겨있습니다. 인권오름에서는 선언에 담긴 내용과 그에 대한 설명과 맥락을 다양한 사람에게 들려주려 합니다. 다만 웹으로 글을 읽을 때의 한계로, 부득이하게 하나의 글을 두개의 글로 나누어 담습니다.

선언 해설

먼저, 선언의 앞머리에는 청소년활동가선언이 나오게 된 배경과 문제의식을 담았습니다. 짧게 보면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청소년운동은, 정치적 권리 부재와 경제적 독립의 어려움이라는 청소년 집단의 특수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지속하고 성장시켜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지 않으면 이 운동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결의로 성장해온 청소년운동은, 이제 불충분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지속가능한 운영과 활동가 재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지금이 앞으로 더 많은 청소년들이 함께할 수 있는 운동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시기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전문에서는 선언이 나온 그런 현실 인식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1. (청소년운동의 목표)
2. (청소년의 정의)
3. (청소년의 성격)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운동’이라고 하면, 청소년들을 선도․보호․육성하는 종류의 단체들이 많이 떠오르고 ‘청소년단체’라고 하면 여전히 그런 단체들이 주류입니다. 청소년의 인권을 이야기하고 청소년에 대한 억압에 저항하는 우리의 운동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고 일부 충돌하기도 합니다. 이는 사실 1920년대에 ‘소년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던 운동이 청소년에 대한 보호․교육과 청소년 해방, 두 가지 상이한 입장을 함께 안고 있던 것에서부터 예언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선언 1항에서부터 청소년 해방을 운동의 목표로 명시하며, ‘청소년운동’이라는 이름을 재정립하기를 바랐습니다.
청소년운동에서 청소년이 무엇인가 역시 설명할 필요가 있지요. 우리는 그것이 어떤 자연적인 나이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구분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을 분명히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운동이 특정한 세대의 성격이나 문화(청소년들은 순수하다, 정의롭다, 충동적이다, 발랄하다 등)로 인한 것이 아니라 청소년 억압이라는 사회구조에 맞서는 지속적인 운동이라는 것도 밝힐 필요가 있었습니다. 특히 청소년이라는 정체성은 시간이 흐르면 변할 수밖에 없다는 운명적 특수성이 있습니다. 한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청소년 집단은 소수자이며, 권력에서 배제되어 있는 집단이라는 점에서도 소수자이지만, 청소년기의 경험과 억압은 모든 사람들이 겪고 (보통은 미화되거나 왜곡되곤 하지만) 기억하며 살아간다는 보편적인 성질을 지닙니다. 청소년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폭력을 철폐하는 일은 전체 인간의 해방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4. (청소년억압의 성격)
5. (청소년 안의 다양성)
다음 4항에서는 ‘청소년억압’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했습니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억압이 단지 비청소년들의 고정관념이나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임을 논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유교 문화, 신자유주의, 권위주의 문화 등 다양한 것들이 거론되었었지요. 이번 선언에서는 청소년억압의 원인을 국가와 자본에 의해 수단화되어 자본주의적 구조 하에서 자본을 위한 인적 자원으로 청소년기를 희생당하는 것을 핵심으로 꼽았습니다. 나아가서 억압적 사회구조에 맞춰서 사회화시키는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라고 짚어봤습니다.
청소년기는 특히 지배 이데올로기와 구조를 내면화하도록 요구받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청소년들은 기본권을 억압당한 채 권력에 복종하는 법을 배우고, 경쟁과 차별 등을 내면화합니다. 또한 핵가족단위를 중심으로 한 시스템은 미성년 자녀의 권리를 그 보호자에게 양도하는 친권제도와 청소년의 성과 생활에 대한 통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족제도는 청소년들에게 계급재생산/상승을 위해 사회에 순응할 것을 종용하고, 양육의 책임을 부모 개인에게 떠넘기기도 하며, 여성들은 어머니라는 굴레 속에서 자녀의 삶을 책임지고 관리하느라 가정과 가부장에 종속되게 만듭니다.
5항에서는 청소년들이 여러 다른 조건에 놓여 있기에 여러 중첩된 억압을 겪는다고 적었습니다. 이는 청소년들이 겪는 다양한 억압에 복합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낸 것입니다. 즉 청소년들이 겪는 문제들이 단지 청소년억압에 대한 인식 하나만으로는 설명하거나 대처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5항에 관해서는 무엇을 조건의 예시로 나열할지에 대해 토론이 이루어졌는데요. 초안에서는 일단 청소년운동이 지금까지 다루어온 경험이 있는 계급(경제상황)이나 성(성별, 성적 지향, 성별정체성 등)을 나열하자고 제안했고, 이에 더해 몸과 마음의 문제를 대표격으로 넣어서 사상 및 이념과 신체적 조건(예를 들어 장애, 외모 등이 얘기됐습니다.)을 명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6. (청소년운동의 주체)
6항은 청소년운동의 주체를 다룹니다. 준비 과정에서는 청소년운동의 방법론을 다룬 항과 주체를 다룬 항이 따로 있던 것을 논의 끝에 합쳐서 만들어진 항이기도 해서, 방법론에 대한 언급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청소년운동의 주체는 청소년해방을 지향하는 모든 이들이지만, 청소년 당사자가 주체가 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청소년운동의 가장 중요한 주체는 청소년 당사자인가’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활동가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비청소년으로서 청소년운동을 하고 있으며, 운동에서 늘 가장 중요한 주체가 ‘당사자’인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단체마다 회원 자격이나 운영 방식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청소년 당사자의 주체적 활동은 청소년운동에서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7. (청소년운동과 나이주의)
7항은 ‘나이주의’에 대한 것입니다. 나이주의적 제도나 문화는 청소년이 미성숙·무능력하다는 편견에 따라 많은 억압과 차별을 가하며 보호라는 미명 하에 청소년의 경험과 참여를 차단하기도 합니다. 또한 많은 청소년활동가들이 운동사회 안에서도 이런 나이주의 문제에 부딪히고, 평등하게 대우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동안 청소년활동가들은 이런 문제로 다른 운동에 몇 차례 항의를 하고 사과를 요구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서울교육감 후보를 뽑는 경선과정에서는 청소년들을 배제하는 결정에 반발하여 연대체를 탈퇴했던 적도 있습니다. 우리는 나이주의가 청소년운동이 다른 운동과 함께하는 데 최대의 걸림돌 중 하나라고 보고, 이런 청소년운동의 문제의식을 알리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선언을 기획하던 과정에서부터 반드시 넣어야 할 내용으로 상정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청소년 집단 내의 나이주의에 대해 특별히 더 언급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나이의 차이로 인한 위계가 특히 심각하기도 하니까요. 청소년 집단 안의 나이주의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는 것에 관해서는 대체로 동의가 되었지만, 청소년 집단이 그러한 억압적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는 현상은 나이주의 외에도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일반적 현상이며, 나이주의에 관한 항에서만 특별히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는 의견에 따라 따로 담지는 않았습니다. 청소년운동 단체들의 여러 조건상 이를 바로 적용하기 어려운 단체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점도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8. (청소년운동의 정치성)
청소년운동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에 관한 항 중 대표적으로 들어간 것이 정치성에 대한 것입니다. 청소년운동은 종종 비정치적이어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제도권의 정치 등에 참여하면 순수성을 잃는다는 비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청소년해방의 문제는 정치의 문제입니다. 넓은 의미의 정치도 그렇고, 좁은 의미에서 정부나 국회에서 이루어지는 정치도 그렇습니다. 예컨대 학교에서 벌어지는 체벌 사건 역시 국가의 정책과 법률, 예산 배분 등이 모두 관련된 사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운동의 정치’를 할 것이고, 또 청소년들이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에 반대합니다. 또한 청소년운동이 여러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능하고 필요하다고도 봅니다. 여러 단체와 활동가들은 각자 서로 다른 수준과 방식으로 정치적 문제를 다루겠으나, 적어도 청소년운동이 정치적인 운동이며 또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원칙에 합의했습니다.

9. (청소년운동의 독립성)
청소년운동을 바라보는 관점 중에 가장 힘을 얻는 것은 사실 청소년운동을 다른 데 종속된, 독립되지 못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는 청소년들이 미성숙하고 어른들에게 의존적이라는 편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보수언론 등 한쪽에서는 청소년운동에 어떤 배후 세력이 있어서 청소년들을 조종하고 있다고 함부로 말하는 일이 많습니다.
또한 이른바 진보적인 운동을 한다고 하는 쪽에서도 사실상 궤를 같이 하여 청소년운동을 마치 다른 운동의 준비과정이고 청소년활동가들은 나이가 든 이후에 당연히 (대학생운동이든 청년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뭐든) 다른 운동을 할 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청소년활동가들에 대해 대견하거나 기특하다고 말하며 우리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무례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청소년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독립적이고 평등한 사람이라고 본다면 할 수 없는 이야기지요. 우리는 양쪽 모두에 문제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선언 9항에 이와 같은 내용을 넣었습니다.

10. (청소년운동의 고유성)
11. (청소년운동의 연대성)
선언 중 마지막 항들은 청소년운동과 다른 운동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청소년운동이 좀 더 청소년운동 자신의 이슈에 집중해야 하는가, 또는 좀 더 다른 사회운동들과 연대해야 하는가, 이는 청소년운동 내부에서 오랜 논쟁거리였습니다. 사실 하나의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 그때그때 다른 답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선언에서는 청소년운동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해석을 고유하게 가진다고 했고, 청소년억압의 문제가 독자적인 것이라는 것을 우선 강조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청소년운동이 전반적인 사회의 변혁과 인간해방을 위해 타 운동과 연대해야 할 필요성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선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청소년운동의 고유성과 연대성 중 어떤 것을 조금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에 대해서 활동가마다 판단의 차이가 있었고, 이는 정도의 차이이고 강조점의 차이였기에 명쾌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선언에서 “청소년운동으로서” 고유한 판단을 토대로 하여 연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취지로 고유성과 연대성에 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검은빛 님은 관악청소년연대여유 활동가 입니다. 공현 님은 대학입시거부로삶을바꾸는투명가방끈들의모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입니다. 쥬리 님은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425 호 [기사입력] 2015년 02월 05일 14:30:36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4.12.02 00:54
걸어가는꿈2014.11.04 15:46



경기도 수원 학원 체벌 토론회 관련 참고 예비 자료 : 관계 법률 검토와 이전 조사에서의 통계 등

1. 학원 관련 법
학원에서의 체벌에 관한 판결 등은 최근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을 보아도 학원에서의 체벌 문제를 다루는 조항은 전혀 없습니다.
따 라서 과거 학교의 체벌처럼 이를 정당화하는 조항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반적인 원칙에 따라 학원에서의 체벌은 폭행 또는 상해로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다만 실제 법원에서는 가정체벌처럼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행위라고 가벼이 볼 가능성이 있습니다.

경기도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조례가 있습니다. 이 조례는
“제16조 ③ 학원 설립·운영자 등은 「교육기본법」제12조에 따라 학생을 포함한 학습자의 기본적 인권이 존중되고 보호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④ 제3항에 따라 학원 등에서 교습이나 기타 목적을 이유로 학습자에게 처벌을 가하거나, 신체·정신상의 자유로운 활동을 강제로 제약하는 행위를 할 수 없으며, 제때에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교습시간을 알맞게 안배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⑤ 부모 등 보호자는 그 보호하는 자녀나 아동의 교육에 관하여 학원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며, 학원은 이를 존중하여야 한다.”

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례에 의해서도 학원 체벌이나 각종 인권침해가 금지되어 있다고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2. 아동학대 관련법
지 난 9월 말에 ‘아동학대처벌특례법’이 시행되면서 아동학대 등에 관한 제도와 대처가 정비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동학대’에서 가해자는 부모나 친권자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보호자’란 “친권자, 후견인, 아동을 보호·양육·교육하거나 그러한 의무가 있는 자 또는 업무·고용 등의 관계로 사실상 아동을 보호·감독하는 자”를 말합니다. 또한 ‘아동학대’는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의 행동 전반이 해당합니다.
실제로 근래에 학교 교사, 유아 대상 학원 강사, 어린이집 보육 교사가 모두 아동학대를 적용받아 기소된 사례가 있습니다.
특 히 아동학대처벌특례법에서는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로 “초중등교육법에 따른 교직원, 전문상담교사” 등과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에 따른 학원의 운영자, 강사, 직원 및 교습소 교습자, 직원”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신고의무자가 자기 관할의 아동을 학대한 경우에는 형량의 1/2까지 가중처벌합니다.

다만 여기서도 문제는 법 적용에서의 사회 통념입니다. 법적으로 아동은 ‘18세 미만’이 모두 해당되지만, 기소 사례들을 보아도 모두 영유아이거나, 가장 나이가 많은 경우도 초등학교 4학년 사례입니다. 즉 법 적용에 있어서 검경이든 법원이든 나이가 어느 정도 많은 청소년들은 아동학대범죄 문제로 보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법원은 학대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경우를 주로 인정하고 있어서, 일회적인 체벌은 학대로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동학대처벌특례법에 따르면 아동학대범죄에는 형법상 폭행, 상해, 감금 등의 행위를 한 경우가 모두 포함되므로 폭행죄를 구성할 수 있는 모든 폭력이 당연히 처벌되어야 하겠지만, 현실이 어떨지는...)

또한 아동학대처벌특례법에 따라서, 자신의 자녀가 학원에서 체벌을 당한 것을 알고 있는 경우나, 같은 학원에서 다른 강사가 학원생에게 체벌을 가하는 것을 알고 있는 강사의 경우에도 신고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습니다.




3. 관련 조사 자료
작년에 나온 전국 단위 조사에 따르면, 전체 청소년 중에 13.4% 정도가 학원에서 체벌을 경험했고, 1달에 1~2회 이상 경험한 것은 8.1%입니다.


체벌 경험 빈도는 중학교가 가장 높은데, 1달에 1~2회 이상 경험한 경우는 13.2%이고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13 청소년인권실태조사 연구)

반면 올해에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에서 중고등학생 한정으로 조사한 것에서는,
학원에서의 체벌 및 언어폭력이 전혀 없다고 답한 건 55% 정도이고 45%는 경험을 했는데요.
이는 질문을 체벌 및 언어폭력으로 묶어서 한 것과 표본의 차이로 보입니다. (중고등학생만 하느냐, 청소년 전반을 다 조사하느냐. 그리고 이번 학교+너머 운동본부 조사는 지역별로 인구비에 따른 할당을 하지 않았음.)

이 조사에서 경기도 응답자의 것만 분석해보면

학원에서 강사에 의한 체벌이나 언어폭력의 빈도 (경기도 응답자, 중고등학생)

 

거의매일

일주일에3번이상

일주일에1~2번

한달에1~2번

아주 가끔

전혀 없다

총계

개수

9

13

27

51

40

144

284

%

3.2%

4.6%

9.5%

18.0%

14.1%

50.7%

100.0%


이렇게 나옵니다. 즉 49% 정도의 중고등학생들이 체벌이나 언어폭력을 경험하고 있다고 답한 거고, 35.2%가 한 달에 1~2번 이상 체벌이나 언어폭력을 당한다고 한 것입니다.


추가로 검토하자면, 전국 청소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는 학원을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포함이 될 수밖에 없어서 조사 결과에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비슷하게, 2013년에 경기도 시흥에서 설문조사한 논문에 따르면 체벌 경험 비율은 확실히 적지 않습니다.
경 기도 시흥에서 학원을 다니는 중고생 23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에 따르면 체벌 경험은 41.6%, 언어폭력은 45.9%에 이르는데요. 이처럼 다니는 학생들로 조사 집단을 한정하면 수치가 올라갑니다. 자주 있다는 응답은 적은 편이긴 하지만 무시할 수는 없는 정도입니다.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김용익 석사 논문 사설학원에서의 청소년인권 실태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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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체 청소년 대비 수치로 보면 여전히 학교에서의 체벌 등 경험 비율이 학원에서의 경험 비율보다 높습니다. 이는 학교와 학원의 규모 차이 등에서도 비롯되는 것일 테고요.
2. 학원을 다니는 사람들로만 한정해서 조사하더라도 여전히 학교가 더 경험 비율이 높긴 한데, 학원도 만만치는 않습니다. 빈도로 볼 때 상대적으로 적어 보이더라도요. 그리고 학원의 경우는 중학생이 체벌 경험이 좀 더 많아 보입니다.
3. 학원 체벌은 아무 법적 근거가 없고 완전히 금지되어 있다고 봐야 합니다.
4. 서울시교육청과 광주시교육청 등에서 2011~2013년에 학원에서의 체벌 등을 강력히 금지하고 단속하겠다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작년 시흥에서 조사한 논문이나, 수원에서 조사 등을 볼 때 경기도교육청 역시 이 부분에 집중적인 대처가 필요할 것입니다.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4.09.16 03:27
걸어가는꿈2014.08.11 00:07
걸어가는꿈2014.07.02 14:12
걸어가는꿈2014.06.02 14:57

[논평] 세월호 참사가 교육에 남긴 교훈
- 교육감 선거에 즈음하여
경쟁교육과의 결별과 학생인권 보장 없이 안전한 학교란 없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한 달 보름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그동안 세월호에 과적된 탐욕과 부패만큼이나 무거운, 이 나라의 조직적 무책임과 지독한 반인권성을 목도해 왔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단 하나로 돌릴 수 없듯, 참사로부터 우리 사회가 얻어야 할 교훈이 하나로 수렴될 순 없다. 다만 이틀 앞으로 다가온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들이 앞 다투어 학생 안전을 책임지겠다 호언장담하는 상황에서 세월호 참사가 우리 교육에 남긴 교훈을 환기해본다.


침몰한 세월호는 침몰해버린, 지금도 침몰하고 있는 학교의 모습과 정확히 닮아 있다. 이윤을 위해 각종 안전조치를 삭제해버린 국가의 모습은 입시 효율을 위해 최소한의 학생인권 보장 조치마저 밀어내버린 탐욕의 교육과 겹쳐진다. 심야 학원교습을 제한하는 조례도, 학생인권조례도 불필요한 규제로 공격받고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그나마 있던 안전조치마저 깡그리 무시했던 선박회사는 눈치껏 또는 대놓고 학생인권을 짓밟는 학교의 모습이기도 하다. 올해 우리는 세월호뿐 아니라 순천에서 일어난 교사의 체벌로, 진주 기숙사학교에서 일어난 학생통제형 폭력으로, 그리고 모욕과 절망 끝의 자살로 수많은 학생들을 잃었다. 학생들이 갇힌 채 야간학습을 강요당할 때, 대자보가 찢기고 징계 위협이 뒤따랐을 때, 차별과 모욕으로 휘청거릴 때, 세월호에서처럼 국가는 가해자의 자리에 서 있었다. 이것이 흔히들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이 그토록 돌아오고 싶었다고 말하는 '웃음꽃 핀 교실'의 현재 모습이다. 비극적 일상을 내버려두는 한, 비극적 참사는 이미 예비되어 있다. 학교는 과연 안전한가.

이번 참사는 희생자들 중 학생들의 비율이 유난히 높았다. 이는 학생들을 권력위계 속에 편제하는 현 교육의 무능함과 체계적 훈육의 잔혹한 결과를 만천하에 드러낸 모습이었다. 입시를 위한 허약한 공부만이 허락되는 사이, 삶에 대한 지혜와 사회에 대한 통찰을 일깨울 '삶을 위한 교육'은 학교로부터 추방당했다. 전문가나 권위자의 지시에 복종하는 태도만을 훈육해오는 사이, 정부와 학교가 지시하는 대로 잠자코 가만히 있기만을 강요당해온 사이, 학생도 교사도 질문하는 힘, 판단하는 힘을 빼앗겨왔다. 희생된 학생들은 '어른들의 말만 믿고 얌전히 기다린 착한 학생들'이 아니라, '권위자의 지시와 통제에 무력화된 학생들'이었던 셈이다. 참사 이후 학생들에게는 애도할 여유도, 애도할 자유도 허락되지 않았다. 교사들의 입과 손발에도 족쇄가 채워졌다. 숨은 붙어 있으되 사회적 생명체로서의 존엄은 빼앗긴 공간, '가만히 있으라'는 통제만 넘실대는 공간, 잘못된 지시와 권위를 의심할 자유를 빼앗긴 공간, 학교는 과연 안전한가.

수학여행을 금지해 학생들의 발을 묶고, 안전 점검과 안전 교육을 아무리 강화한들 비극을 멈출 수는 없다. 이번 세월호 참사가 가르쳐준 교훈은 스스로 판단할 자유,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자유가 안전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사실이다. 지난해 해병대 캠프 참사 역시 학생들에게 원치 않는 캠프를 거부하고 위험한 지시를 거부할 자유가 보장되었다면 피할 수 있던 사고였다. 안전할 자유, 그것의 다른 이름이 학생인권이다. 교육에 의해 목숨을 잃고 상처받는 학생들의 비극적 일상 역시 진정한 학생 안전 대책이라면 학생인권정책을 포함해야 함을 알려주고 있다. 희생된 학생들에 대한 범사회적 애도가 학생인권에 대한 지지로 화답되어야 할 이유다.


학생인권 정책에 대한 국가의 악의적 훼방을 여러 해 목도해 온 지금, 국가를 향해 다시금 학생인권법을 제정하고 학교를 제대로 감독하라 요구한들 먹힐지 의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여전히 국가의 의무를 촉구하는 동시에 스스로 변화를 일굴 자유와 책임이 있다. 경기, 광주, 서울, 전북에서 제정된 학생인권조례는 시민들이 일군 결실 가운데 하나다. 경쟁교육과의 결별과 학생인권 보장 없이 안전한 학교란 없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교육에 알려준 교훈이 교육감 후보들을 검증하고 향후 교육정책을 견인해낼 기준이 되기를 기대한다. 덧붙여 학생·청소년이 아닌 분들을 포함하여 세월호 희생자들 모두에게 깊은 애도를 전한다. 여전히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과 생존자들의 고통을 기억하는 일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2014년 6월 2일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

강원교육연대/ 건강세상네트워크/ 경기학생인권실현을위한네트워크/ 경북교육연대/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관악동작학교운영위원협의회/ 광주교사실천연대 ‘활’/ 광주노동자교육센터/ 광주비정규직센터/ 광주여성노동자회/ 광주인권운동센터/ 광주인권회의/ 광주청소년인권교육연구회/ 광주청소년회복센터/ 광주YMCA/ 교육공공성실현을위한울산교육연대/ 교육공동체 나다/ 국제앰네스티대학생네트워크/ 군인권센터/ 노동자연대 다함께/ 녹색당+/ 대안교육연대/ 대한민국청소년의회/ 대한성공회정의평화사제단/ 동성애자인권연대/ 무지개행동 이반스쿨팀/ 문화연대/ 민주노총서울본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불교인권위원회/ 서울교육희망네트워크/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 서초강남교육혁신연대/ 시민모임 즐거운교육 상상/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양평교육희망네트워크/ 어린이책시민연대/ 원불교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법률공동체 두런두런/ 인권운동사랑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공무원노동조합서울지역본부/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부설 한국아동청소년인권센터/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진보교육연구소/ 진보신당연대회의 청소년위원회/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청소년다함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충북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본부/ 통합진보당서울시당/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학벌없는사회/ 학생인권을위한인천시민연대/ 학생인권조례제정경남본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성폭력상담소/ 흥사단교육운동본부/ 희망의우리학교/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4.05.29 18:02

세월호 참사에 청소년운동의 대응 방향에 대해서


여럿이 이야기하지만 결국 끝내 정리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왜 대응하고 싶다는 사람들은 아무도 나서서 제안하지 않는가에 대한 분노를 안고.



1) 세월호 참사 자체에 대해서

  - 제 생각으로는, 세월호 참사 자체는 학생/청소년인권 문제가 아닙니다. 논쟁의 여지가 없지는 않지만요.
    다만 보편적인 인권 문제의 영역에 속하기는 할 것입니다. 마치 한미FTA가, 신자유주의가, 의료영리화가, 광우병위험이, 지구온난화가, 전쟁 위협이 보편적인 인권 문제이기는 하듯이요.
   굳이 청소년인권이라는 특수성을 강조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입장을 만들 수 있다면 보편적인 인권의 관점에서, 어쨌건 청소년도 사람이라 연관이 되기는 하기 때문에 이러한 안전할 권리의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이 안전할 권리는 인권으로서의 안전 자체의 의미뿐 아니라 안전을 이윤보다 후순위로 미루는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문제 등 여러 가지 복합적 논의가 가능하겠죠.


2) 세월호 참사의 파생 문제에 대해서


 - 세월호 참사는 이 자체보다도 사건의 스케일상 파생 문제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① 보호주의 문제 : 아이들아 미안하다 등 희생자 다수가 고등학생이라는 이유로 나오는 어른 책임 아이 희생자론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2008년 촛불집회나 그밖에 여러 상황에서 겪어봤듯이 이러한 보호주의 문제는 그 운동 내부에서 문제제기하는 것으로 깨지지 않습니다. 특히 그 운동이 조직된 단체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대중적 정서에 기대어 가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문제를 깨고 해결하는 것은 오히려 그 운동 바깥에서 청소년운동 자체의 힘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지적한다면 그것은 이 문제를 현재 이 운동 안에서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청소년보호주의/차별 문제에 대처하는 더 긴 청소년운동의 전망 안에서 하나의 발자취를 남겨두는 의의 정도일 것입니다.

  ② 수학여행 문제 : 이는 안전할 권리 문제와도 비교적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인데요. 수학여행을 현재 금지한 상태이고, 기사에 따르면 6월 말에 재개 여부를 발표한다고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학생 입장에서 학생들의 의견은 듣지 않고 수학여행을 하니 마니 하는 문제, 수학여행 폐지나 대안 주장,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③ 표현의 자유 문제 : 청소년들의 SNS나 인터넷에서의 표현, 그리고 자발적인 집회에 대해 경찰과 학교/교육당국 등에 의한 탄압 사례가 몇 가지 나오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뚜렷하게 연결되는 사례가 없어서 대응은 못하고 있는데요. 청소년의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문제에 대해 전체적인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 문제와 함께 묶어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④ 강제모금 문제 : 아수나로 서울지부에서 이미 사례 수집 등을 시도했었던 문제이고 학교의 강제모금 문제 전반에 관한 문제제기의 기회로 삼을 수 있겠지만 일단 사례가 유의미하게 모인 건 없는 거 같죠? ㅠㅠ

  ⑤ '교육' 문제 : 세월호 참사에서 학생들이 많이 죽은 이유가 교육 때문이다? 뭐 그런 논지와, 그에 반박하는 논지 사이의 논쟁. '가만히 있으라' 문제 같은 것도 넓게 보면 이 맥락에 들어가긴 하는데요. 저는 세월호 참사에서 학생들이 많이 죽은 이유는 교육 때문은 아니라고 보고, 권위자와 권력관계 문제로는 좀 볼 수 있을 거 같긴 합니다. 즉 왜 학생 아닌 승객들은 방송을 무시하고 비교적 많이 탈출을 했는데 학생들은 그렇게 탈출한 비율이 적은가? 이는 집단으로 편제되어 있었고 그 집단을 인솔하는 교사 등이 있었던 것, 그리고 학생들이 교사의 지시를 따르는 위치에 있었던 것('위치'가 문제이지 '교육받은 습성'이 문제가 아닙니다.)에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를 좀 더 심층적으로 (어느 정도는 상상과 추정에 근거를 두는 거지만) 다루는 이야기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⑥ 기타 : 그밖에 뭐가 있을까요?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4.05.14 10:28
(5월 13일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인권단체 간담회에서 '평등한 애도'라는 주제로 발제했던 글을, 한두 줄 보완했습니다.)





자꾸 '아이들'을 부르는 것에 대한 투덜거림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감정


  다른 사람의 일에 대체로 무덤덤하고, 모르는 사람의 죽음에는 슬퍼하지 않는 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며칠간 마음이 무겁고 착잡했다. 끊임없이 소식을 전해오는 미디어 때문일까. 마치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배가 뒤집히고 가라앉고, 사람들이 죽는 장면을 바로 옆에서 목도한 것 같은 착각. 그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행태들에 대한 분노. 그리 슬프지 않은 나도 충분히 안타까움과 암울한 감정을 느낄 만했다.

  그리고, 왠지 그럴 것 같았지만, 참사 이후부터 또 다른 스트레스 요인이 생겼다. “미안해 아이들아”, “채 못 피어보지도 못하고 떨어진 꽃”, “어른으로서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등등, 속이 뒤틀릴 것 같은 말들이 온 사회를 덮기 시작했다. 내 트위터 타임라인만 해도, 도대체 내가 팔로잉한 사람 중에 이렇게 짜증나는 사람들이 많았나 싶을 정도였다. 내 눈에는 무례 또는 오만 또는 차별로 보이는 말들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유통되는 것을 보면서, 웃었다. 야, 이렇게 할 일이 많구나. 하하.

  그래도 간간이 한 마디씩 투덜거린 것을 제외하면 아직까지는 무언가 비판을 하거나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유족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애도하고 참담해하고 있는데 굳이 선을 긋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욕 먹을까봐 무서웠던 것도 맞다. 그렇게 타이밍을 보면서 한 달이 되어가고 있다. 그 와중에 언론에서, 온라인에서, 거리에서, 청소년활동가인 내 속을 뒤틀리게 하는 이야기들을 숱하게 접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6만원을 받고 동원됐다는 허위 주장부터, “미안하다 애들아”하는 현수막까지. 그렇게 참으면서 쌓은 짜증과 분노가 밖으로 폭발을 할지, 속병이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설명


  저런 것이 왜 문제냐고 물으실지도 모르겠다. 이해하기 쉽게 유비추론이 가능한 예시를 들어보겠다. 장애인들이 목숨을 잃은 사건에 대해 “비장애인으로서 똑바로 하지 못해서 장애인들에게 미안하다.”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상당히 기이할 것 같지 않은가? 성폭력 피해 생존자에게 “남자들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라고 하고 성폭력을 가리켜 “꽃이 짓밟혔다” 같은 표현을 쓰면, 거슬리지 않는가?

  본래 “미안하다”라는 말 자체가 너무 이 상황 저 상황에서 쓰이는 것이기는 하다. 어쩔 때는 죄책감, 어쩔 때는 안쓰러움, 어쩔 때는 부끄러움 등, 미안하다는 말이 담고 있고 대표하는 감정은 많다. 그런데 그런 감정들이 어떤 경우에 어떤 틀을 거쳐서 "미안하다"라는 말과 형식으로 표현되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현재와 같은 맥락에서라면, 나는 “미안하다”라는 말이 주체가 객체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책임을 가진 사람이 하는 말이지만, 동시에 권력을 가진 사람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 내가 이렇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말인 것이다. 이것이 실제로 잘못을 하고 구체적인 책임이 있는 책임자가 하는 말이라면 별로 위화감이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추상적인 집단이 집단에게 하는 말이라면 한 번 더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 비청소년들은 더 많은 권력을 가진 만큼, 더 많은 책임이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 거대한 사회 속에서 개개인들의 권능이 얼마나 된다고 책임이 있다고 하겠냐만…. 계량과 비교는 불가능하겠지만, 일단 비청소년들에게 더 많은 권력과 책임이 있다는 평가에는 타당성이 있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평가와 사람들이 “미안하다 아이들아”라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어쩌면 그 간극은 '정치적인' 문제일 것이다. 비청소년들이 더 많은 권력을 가진 것을 긍정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바꿔야 할 문제 상황으로 인식하고 청소년들을 평등하게 간주(가정)하고 대우할 것인가.

  다시 예를 들어보겠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은 분명히 여성보다 권력이 크다. 특히 각종 의사결정 과정인 정부나 의회, 그리고 조직들의 상층부는 남성 비율이 압도적이다. 그러니까 남성들은 더 큰 책임이 있다고 평가해도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여성들이 목숨을 잃거나 폭력에 희생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남성들이 “남자로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라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남성과 여성의 자리에 비장애인과 장애인, 자본가와 노동자(또는 돈이 많은 사람과 돈이 적은 사람), 미국이라면 백인과 흑인을 넣어도 마찬가지이다.>

 ― 이 주장이 이상하게 보인다면,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말에도 위화감을 느껴야 마땅하다. 집단 전체를 볼 때 사회적으로 더 책임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비주체화하는 논리와 맥락을 바탕으로 나오는 말이라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사회적으로 권력이 조금 더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소수자에게 자신이 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것은, 평등을 선언한 관계에서라면 좀 어색한 모양새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이 사회의 이런 문제를 함께 바꿔가자고 말하는 것과 ‘어른들이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나는 ‘어른들’이 뭘 해주고 못 해주고 할 권력이 있기나 한지, 어떤 오만인 것은 아닌지도 의심스럽지만.

  참사 희생자에 대한 구도를 “어른”과 “아이”로 설정하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아이”를 “못 다 핀 꽃”이라고 하는 것도 설령 자연스러운 생각일지 몰라도, 잠자코 수용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선의에 의한 것이라도 문제나 잘못이 있을 수는 있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

(희생된 사람들을 가리켜서 '착한 아이들' 등으로 이름 붙이고 묘사하는 것도 상당히 거슬리는 부분이다.)

  나는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아이들’, ‘미안하다’ 구도가 청소년들을 평등하지 않게 대하는 사회의 산물이고 표출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회 문제에 대해 제대로 문제의식이 공유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운동은 이런 문제의식을 ‘청소년보호주의’ 문제라고 명명하고 논의하고 있다. 이와 연관해서 나이주의나 가족주의 구도도 별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그러므로 이 애도 역시 평등하지 않다.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아마도, 청소년 대중 일반 역시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넓은 의미의 청소년운동 안에서도 과연 이런 문제의식이 공유되고 있는지 묻는다면, 다소 회의적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널리 공유하고 조직화하는 것이 청소년운동의 지난한 숙제이다.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 “미성년자 석방하라” 등의 구호가 튀어나오던 2008년 촛불집회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눈앞에 떨어진 숙제.


첨언

  청소년보호주의는 비청소년들 입장에서도 억울한 면이 있다. 세월호참사의 사망자 중 50여명은 단원고등학교 학생이 아니며, 분명히 비청소년들도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세월호 희생자들이 ‘아이들’로 주로 불리고 기억될 때, 그 많은 사람들은 한 켠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 사건은 더군다나 단순히 청소년들이 많이 죽은 것이 아니고 단원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이 단체로 여행을 가다가 일어난 사건이라서 주로 단원고 학생들만 부각이 되고 단원고 학생이 아닌 사람들은 청소년이든 아니든 다소 밀려나는 경향이 있다. 정부나 언론이나 눈에 띄는 집단을 먼저 챙기고 있는 것이다.

  각기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모두 그냥 ‘희생자’, ‘생존자’, ‘사람’으로만 묶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각각의 다른 역사와 이야기들을 찾아내고 기억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대할 때 “아이”와 “어른”이라는 위치가, 꼭 필요한가? 또는 바람직한가? 그것이 자연스럽고 그대로 수용해도 좋은 것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그런 걸 접할 때마다 부자연스럽고 무례하게 느껴져서 마음이 삐그덕거린다. 다른 청소년활동가들 중 상당수도 그런 마음을 호소한다. 특별히 민감한 것이 아니라, 그 구도에 깔려 있는 차별과 불평등을 읽어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운동의 종착지는 어쩌면 ‘미성년자’, ‘청소년’이라는 말과 구분이 없어지는 세상일 것"이라고 활동가들끼리 이야기하곤 한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 사회의 애도 방식을 보며, 다시 한 번 그 말이 떠올랐다.


(노파심에서 이야기하지만, ‘아이’라는 어휘 자체에는 나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어쩌면 ‘청소년’이라는 말보다 더 포괄적이고 중립적인 느낌의 말일 수도 있다. 사회적 용례에서는 ‘아이’라는 말이 아무래도 더 아래로 내려다보는 듯한 때가 많지만, 쓰임새와 맥락이 문제이지 ‘아이’라는 말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지 않는다. “아이들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이든 “청소년들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이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아니 근데 그러고 보니 왜 저런 현수막 등은 다 반말질이지?)


Posted by 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