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속의 전화번호들 1 살다보니까, 가슴 한켠에 묻어뒀던 것들이 있을 곳을 잃어버리고 더 깊은 속으로 굴을 파고 숨어 버려서, 마음 속에 구멍이 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 구멍은 뚫려 있지는 않아서 시린 바람이 드나들거나 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먹먹하고 허전하긴 하다. 예컨대 몇 년 전에 즐겨가던 식당을 갔는데 식당 대신 부동산 중개업소가 들어서 있을 때, 그와 마지막으로 커피를 마셨던 커피숍이 간판 자국만 남기고 경양식 식당으로 바뀌어 있을 때, 자전거를 타고 달렸던 이 거리가 낯선 간판들로 뒤덮여 있을 때, 유치원 시절 즐겨 봤던 만화책이 절판되어서 구할 수 없거나 제목조차 잘 생각이 안 나서 찾지도 못할 때…. 세상은 참 빨리 변하고 그 속에서 달라져가고 없어져가는 것들은 좀 지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