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수필 - 장래희망

공현 2008. 1. 8. 01:40

장래희망

 (2005.04.)

 성장 과정에서 질리도록 받는 질문들로 이름, 나이, 취미, 특기, 그리고 장래희망 등이 있다. 이 중 특히 장래희망 같은 경우는, 대개는 장래에 되고 싶은 직업으로 국한되어 해석하는 듯하지만, 사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한 인간의 인생 설계를 물어보는 포괄적인 질문이다. 그래서 장래희망에 "행복한 사람"이라고 쓰는 나 같은 인간도 나오는 것이다. 직업이건 무엇이건 장래희망은 자기 미래에 대한 다짐의 의미가 있다. 아니면 교육당국 입장에서는 지도의 편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어쨌건, 적어도 '에잇 귀찮게' 하는 심정으로, 대강 칸 채우기로 장래희망란을 채워서 내는 일은 없는 게 좋을 듯싶다.

 교육상 지도의 편의를 위해서 장래희망을 조사한다고 하였는데, 이 교육에 관해 생각해보자. 교육은 사회 성원을 재생산하는 기능이 있다. 따라서, 근로는 의무이자 필수이며,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인생을 결정짓는 일이라고 교육은 가르친다. 이러한 진술은 어느 정도 진실을 담고 있다. 직업이 그 사람의 인생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에는 문제가 있다. 이는 마치 직업 선택이 인생 설계의 거의 모든 것인 양 가르친다. 장래희망에 장래에 되고자 하는 직업을 쓰는 것은 이와 같은 교육의 내용과 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장래희망이란 좀더 가치에 근거한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그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10년 뒤 나의 모습 따위를 쓰면서 직업은 뭘 가지고 집은 어떤 곳에서 살고 자식은 몇을 낳고... 같은 것이나 끄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정의의 문제, 도덕의 문제 등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단지 미래에 무엇을 해서 돈을 벌 것인지만을 묻는 장래희망이란 극히 산업적이며 공허하다. 어떤 구체적인 직업의 모습을 그리는 것은 물론 필요하지만, 그것만을 그리는 일은 그 무언가가 부족하다.

 장래의 직업을 그리는 것이 삶의 가치 또한 반영하고 있다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예를 들면 의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그런 목표를 설정한 것인지, 돈을 벌기 위해 그런 목표를 설정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너무 의심 많고 세상을 겪은 사람의 비뚤어진 생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예도 얼마든지 있다. 여하간, 인간상에 대한 어릴 때의 사소한 경험이 직업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기 때문에, 자기 삶의 방향성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는 아이의 희망 직업이란 모호하고 즉흥적이다. 그 밑바닥에 어떠한 가치가 깔려 있는지는 알 길이 없으며, 또 그 자신도 그에 대한 자의식을 지니지 못하기 쉽다. 무엇보다 교육이 말하는 직업이 생계유지 수단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한, 인권운동가(인권변호사가 아니라면)와 같은 가치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답변은 많이 튀어나오기 어렵게 된다.

 장래희망이 초등학교 - 중학교 -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그 방향조차 계속 바뀌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전체적인 틀을 도외시한 진로 교육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아이들이 자라면서 인생관이 바뀔 만한 경험을 많이 접하게 되는 듯도 하지만. 사람들은 어릴 때는 막연한 직업상만으로 직업을 선택했다가, 크면서 '현실'을 이유로 자신의 진로를 대폭 수정해버리기 일쑤이다. 안정적인 수입, 사회적인 명예 등을 생각하면서. 대학교 면접 때에 너무 모범적이고 상투적이며 뻔한 답은 면접관들에 의해 거짓말로 간주되곤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답변이 곧잘 튀어나오는 것도, 이러한 방향성의 부재 탓이다.

 좋은 아빠나 좋은 엄마, 좋은 남편, 좋은 아내 등의 답변은 다소 낫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이는 적어도 가족애라는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범위 외의 가치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것은 아쉽기도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조금은 당당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학자'가 꿈이었으며, 도덕과 학문이라는 명확한 가치를 세워놓고 있었다. 다만 초등학교 때는 자연과학이 최고의 학문인 줄 알고 과학자를 장래희망에 썼고 고등학교 때는 철학자를 썼을 뿐이다. 지금은 에리히 프롬 씨처럼 심리학과 사회학과 철학을 공부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나는 아직도 나의 장래 '직업'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지 않고 있다. 나는 장래에 무엇으로 벌어먹어야 하는가. 그것은 그 때 가서 생각해볼 일이라고 밀쳐두고 있다. 무엇보다, 한 평생을 예술(특히 언어 부분)과 학문으로 보내리라 작정한 이상, 학과 선택이라는 것만으로 내 삶은 거의 다 결정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분명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어떤 수입원을 얻기는 해야할 것이다. 작가를 생각해보긴 하지만, 작가가 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일 뿐더러 전업작가라는 것은 썩 좋은 선택은 아닌 것이다. 그래도, 그런 것은 지금 생각해도 별 소용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공부부터 한 다음에, 어떤 직업이 적당할지 정할 심산이다.


 아이들이 채우는 장래희망란이 좀더 본질적인 것이 되었으면 한다. 그 저변에 깔린 가치나 생각, 이유 등을 자세히 따지지 않는 것은 마치 결과로 나온 번호만을 묻는 오지선다 객관식 시험과도 비슷한데, 인간의 삶은 오지선다가 아닌 것이다. 어째서? 이것을 물어야 한다. 이를테면 나는 크리스트교의 교리, 불교의 교리를 따라 살고 싶다고 하는 것은 자기 가치의 명확한 표현이다. 인권이라던가, 아니면 전통 등, 지키고 싶을만 한 가치란 수없이 많다. 안정을 추구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진로교육이 산업사회의 부품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이 될 수 있을 때, 사회는 좀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출처 : 네이바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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