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수필 - 깊이가 없고 높이가 없고

공현 2013. 8. 30. 01:49

깊이가 없고 높이가 없고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 중에 자기 바닥을 보았다는 표현이 있다. 나는 그 표현의 의미를 대충 알고는 있지만 그게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른다. 난 바닥이 구체적으로 내 심리의 어떤 부분이나 속성을 가리키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하겠고 그 바닥이 “보인다”라는 것도 어떤 개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건 어쩌면 내가 깊이가 없는 인간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예전부터 계속해서 의식적으로든 습관적으로든 나 자신을 단순화하려고 해왔다. 뭐 그냥 쉽게 말해 솔직하게 살려고 해왔다는 얘기다. 가능하다면 ‘겉’과 ‘속’에 별 차이가 없을 것. 패턴은 가능한 한 단순명료할 것. 그러니까 ‘깊이’라는 걸 표면과 바닥 사이의 거리라고 해본다면 나는 그 깊이를 없애거나 줄여가기 위해 노력했던 셈이다.


  그 결과 나는 내가 깊이가 별로 없는 사람이 됐다고 여기고 있다. 물론 표면과 바닥 사이의 거리는 있지만, 그 거리는 꽤나 짧은 편이라 바닥도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 ‘깊이’라기보단 ‘얕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린달까. 물에 비유하면 찰랑찰랑 흔들이는 접싯물 정도. 비록 완전하진 못해도 나는 내 내면의 자아라는 관념도 버리고 내 그때그때의 언행이 곧 나라는 식으로 인식하고 살고 싶다. ‘속 깊은’ 사람이 아니라 ‘얕은’ 사람이 되고 싶다. 좀 많이 탁할지언정 자주 바닥이 보일 만큼 얕은 사람. 특별히 어떨 때 바닥이 드러날 것도 없이 평상시가 바닥이거나 바닥에 가까운 사람.


  (어차피 다 비유지만) 깊이의 이야기는 높이의 이야기로 변주할 수 있다. 스스로를 단순화하려는 노력은 내 높이를 없앴다. 내 안에 무엇이든 복잡하게 쌓고 짜놓기보다는 흩어놓고 내버려둘 것. 집에 빗대면 고층 빌딩이 아니라 1층 주택이나 야외 거주지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내가 스스로 고(高) 엔트로피라고 부르는 그런 상태는 헝클어지고 산만할지언정, 쉽게 붕괴하지 않는다. 자존심이 됐든 신념이 됐든 기대가 됐든 그것들 각각이 망가지고 부서질 순 있더라도 그것 때문에 심리 전체가 무너지진 않는다. 가라앉는 것도 쉽지만 거기서 회복하는 것도 쉽다. 높게 쌓아올린 건조물 같은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구성이랄지 유연성이랄지 보수․관리의 용이성이랄지 교체․조정 가능성이랄지 그런 속성이 강하다. 높이가 없는 마음엔.


  한편 그 구조의 특성상 내 마음의 수용능력은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위로 쌓지를 않고 여기저기 벌려 놓기만 하니 금방 차버릴 수밖에. 난 편협하고 단순하며 박정하다. 여러 가지를 다 마음에 받아들여서 품고 있지도 관리하지도 못하는 편이다. 한 번에 몇가지를 동시에 활동시키는 건 가능할지 몰라도 애초에 많은 걸 넣어두진 못한다. 단점이라면 단점인 셈이다.


  깊이와 높이, 둘 다 수직적인 개념이다. 수직성을 줄인 내 마음은 그럼 수평적인 마음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얕고 낮은 사람? 그것이 흔히 말하는 ‘평정심’에 이르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까?


  사실 이건 그냥 자기합리화나 허세일 수도 있다. 속 좁고 직설적이고 못된 성격에 대한 합리화 또는 찌질하고 게으른 것을 꾸며보려는 허세. 아니면, 내가 스스로의 깊이와 높이를 없애기 위해 취해온 조치들이 층층이 또 다른 차원에서 깊이와 높이를 형성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뭐, 괜찮다. 그래도 그게 내가 살고 싶은 방식이니까. 꽤 실용적 장점도 많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