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상징적 투쟁을 넘어

공현 2008. 2. 2. 00:19

(2007년 4월에 썼던 글)




재작년(05) 작년(06)에, 청소년인권운동에 이런 말이 있드랬다.
"1만 명이 온라인 서명하는 것보다 1백 명이 학교나 교육부 앞에서 시위하는 게 더 효과가 있다."
온라인 키보드-마우스 투쟁보다 현실적인 직접 행동 투쟁이 훨씬 유효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문구였다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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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지금과 같은 형식의 집회나 시위는, 그 자체만으로는 질적으로, '발언' '선언'이나 '기자회견'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냥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주장한다는 의미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집회가 가지는 '힘'의 본질은 무엇인가?

집회 이후에 어떠한 직접 행동 지침이 집행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집회가 곧장 어떤 직접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집회 자체만 가지는 힘의 본질은 결국, 앞서 언급한 '발언'의 힘 외에는,
다수의 사람들의 가장 근원적인 힘 중에 하나 - 물리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가능성 혹은 그러한 폭력의 행사이다.

그러나 이러한 폭력 또한 다양한 문제제기가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 폭력의 종류와 대상에 대한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며,
설령 당신의 감수성이 이러한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정도라고 하더라도, 결과나 효과 면에서 폭력의 행사는 다수를 배제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때문에 이런 방법을 택하려면 특수한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다면 (예컨대 최소한 1987년 정도의 '혁명적'(?) 분위기) 선택할 만한 방법이 아니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집회 자체가 기존 체제 입장에서는 거대한 소요-공황 사태이며,
어디든 점거하고 어디든 진격할 수 있는 대오가 갖춰진다.
국가폭력 기구(경찰, 군대)의 일원들조차 휩쓸릴 분위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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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명이 집회하는 것보다 1천 명이 불매운동/불복종/거부 운동하는 게 더 효과가 있다."



사자가 사슴 한 마리를 사냥해서 먹고 있는데 다수의 사슴들이 그 앞에서 시위를 벌여도 사자는 눈하나 깜짝 않는다고?

사자를 앞에 놓고 다수의 사슴들이 할 일은
시위가 아니라 다굴 치는 거다.

사슴과 사자의 전제에서는 아무리 사슴들이 다굴을 쳐도 사자가 이길 가능성이 높겠으나,
우리의 경우에는, 상대도 사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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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적이고 상징적(이기만 한) 투쟁을 하면서 애써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려고 하지 말자.
"우리의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
어떤 '힘'인가?
거부하고 불복종하고 직접 체제를 타격할 힘이 아니라면
허구 속에 존재하는 상징적인 '힘'? 그저 심리적인 압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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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참여만 해도 어디냐."라고 말하는 이면에는 결국 상대방의 실천도를,
시험도 해보기 전에 과소평가하는 마음,
주장은 급진화하되 행동은 급진화하려고 하지 않는 안이함,
그리고 어쩌면 (only) 조직화의 욕망만이 있다.

여기서 only 란, 조직화 이후 - 혹은 이유 - 가 빈약한 조직화다.
조직화해서,
직접 행동 직접 거부를 만들어낼 수 없다면
조직화는
담론적 의미 이상은 없다.
그런 조직화라도 절실한 상황은 반드시 있고
그리고 언제나 조직화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건 최소한이지 전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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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이야기]

그래서 민주납부, 납부지연이었던 거 아니었나?
맨날 총궐기니 어쩌니 하는 걸 넘어서서,
민주납부, 납부지연으로 등록금 투쟁하자는 거 아니었나?
이런 젠장, 언론에 립서비스만 하지 말고 실제로 조직을 좀 해보란 말이다.
지원 장학금 나와서 95만원만 내면 되는 나까지도 민주납부 동참했는데
1만 8천 학생 중에 고작 40명이면, 무슨 나는 서울대 0.2%냐?
민주납부가 높은 수위 투쟁이고, 사람들한테 제안하기 부담스러운 건 알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40명은 말도 안 된다.
학내에 있는 단위들 중에 민주납부 하자고 대자보 붙이거나 피 돌리거나, 여하간 홍보 뛰고 조직한 단위가 대체 몇 개나 되니? 1개? 2개?
그래놓고 1만인 서명운동이니 총궐기니,
결국 관성화된 상징적 투쟁을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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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맨날 집회를 하더라도 집회 온 사람들이 집회 이후에 어떤 행동을 벌일지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왜 맨날 예시로 드는 게 두발단속, 체벌 직접 현장 거부인지
얼마나 공유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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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집회만 할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