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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나로 논평] 교과서, 니들 맘대로 좀 하지 말라고! - 역사교과서 논란, 학생 참여와 교육의 다양성을 위한 계기가 되어야

공현 2014. 1. 8. 14:25
[논평] 교과서, 니들 맘대로 좀 하지 말라고!
- 역사교과서 논란, 학생 참여와 교육의 다양성을 위한 계기가 되어야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문제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교학사에서 만든 고등학교 역사교과서가 있다. 이 교과서는 학술적 오류와 부실한 출처 등의 문제로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의도적으로 이승만 등 특정한 정치인을 과대포장하려 했다거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덜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점, 국가에 의한 학살 사건을 축소 서술했다는 점 등으로 욕을 먹고 있다. 일단 학술적인 면에서 기준 미달의 교과서가 만들어지고, 정부가 이를 제대로 검증하기보다는 진영적 계산에 따라 특혜를 주고 ‘밀어주는’ 듯한 모습은 참으로 어이없고 걱정스러운 사건이라 할 것이다.



1. 학교운영위원회, 교육과정결정 등에 학생의 참여를 보장하라

  이미 여러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이 역사교과서를 비판하고 있다. 이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들에는 시민단체, 교사, 학부모, 학생 등이 강력히 항의하면서, 채택을 철회하는 학교들도 늘어나고 있다. 수원 동우여자고등학교, 전주 상산고등학교처럼 학생들이 나서서 대자보를 붙이고 행동을 하며 교과서 채택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이 이처럼 교과서 채택 등에 대해 의견을 밝히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지금껏 교육과정을 결정할 때는 교실 수업의 단계에서든 국가적인 정책 결정의 단계에서든 학생들의 참여가 배제되어 왔다. 교사는 교육의 주체, 학생은 교육의 대상이라는 구도 속에서 학생을 수동적으로 교육을 받는 존재로만 아니면 기껏해야 서비스의 ‘소비자’로만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은 교육활동에 참여하여 함께 교육을 만들어나가는 교육의 주체이다. 학생은 자신이 경험하고 함께하는 교육활동에 관해서 의견을 제시하고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은 교과서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면서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교육을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며 자신들이 배우는 교육의 내용과 방식에 대해 충분히 의견을 제시하고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배울 교과서도 학교가 정한 대로만 따라야 하는 현실, 학생들이 민주주의의 사각에 방치된 현실에 맞서서 목소리를 냈다. 우리는 이번 일을 계기로 학생들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보장, 교육정책 결정 참여 보장을 위한 방안이 논의되길 기대한다. 학생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학교 자치와 학교 민주주의의 필요성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계속 주장해온 것이다. 교과서 채택을 결정하는 학교운영위원회가 제대로 민주적으로 운영이 되었다면, 학생들이 학교운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면, 교과서를 섣불리 채택했다가 나중에야 문제가 커지는 그런 모습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학교운영위원회만이 아니다. 교육정책의 모든 단계에서 학생들이 참여하고 의견을 제시할 권리는 중요하게 보장되어야 할 인권인 것이다.




2. 정답 주입식이 아닌, 진정한 교육의 다양성을!

  교학사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문제점은 너무나 여러 사람들이 말해왔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열거하지는 않겠다. 그중에서 일부 논란들에 관해서는, 다양성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이런 교과서도 만들어질 수도 있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교사, 학생, 시민 등이 그 교과서를 비판하거나 교과서 사용을 거부하는 것 역시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함을 뜻한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특히 베트남전쟁 파병을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서술하거나 국가의 폭력, 학살 사건을 미흡하게 서술하는 등의 부분은 인권과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에 비춰볼 때 강하게 비판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같이 대통령과 집권 정당이 다른 교과서들이 이념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등의 억지를 부리며 한 교과서를 밀어주고, 여러 압력 때문에 교사들이나 학생들의 뜻과 다르게 교과서 채택이 이루어지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다. 그야말로 교육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해치는 행태이다.

  교학사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상황에는, 그 서술의 의도부터 정권의 개입까지 문제들이 많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현재의 다른 역사교과서나 역사교육들은 그럼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지 좀 망설여진다. 문제의 뿌리는 학생들에게 ‘교과서대로’만 역사를 배우게 하려는 교육방식 자체가 아닐까? 현재 역사교육은 교과서에서 제시하는 역사적 사실과 해석들을 교사가 가르치는 대로 달달 외워야 하는 방식이다. 입시와 결부되면, 학생들은 교과서가 제시하는 ‘정답’을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 이런 식이라면 교육의 다양성은 아무리 교과서가 다종다양해도 확보될 수 없다.

  우리는 역사교육을 포함하여 우리 교육이 ‘정답주의’ 주입식 교육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교육은 여러 가지의 교재와 자료를 활용하며 역사를 읽는 다양한 방법을 익히는 장이 되어야 한다. 역사를 학생들의 삶과 현재의 사회와 연관지으며, 역사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해석을 나누는 장이 되어야 한다. 좀 더 인권과 평화와 다양성의 관점에서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 과정이 되어야 한다. 더 재미있고 의미있는 역사 교육을 위해서는, 교과서나 교사의 이념이나 해석 역시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하나의 참고 사항이 되는 수평적인 관계에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교과서나 교사의 편향성이나 비정치성 문제 같은 소모적이고 답도 없는 논란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입시 중심 교육의 개혁, 교육의 주체로서 학생들의 권리의 보장, 교육 방식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학문적으로 기준 미달인 교과서는 채택뿐 아니라 교과서로서의 인증 자체가 철회되어야 할 것이다. 해당 학교의 학생들이 반대하는 경우는 특히 그렇다. 나아가, 우리는 이번 역사교과서 논란이 단지 ‘문제가 심각한 교과서를 퇴출시키는’ 일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정답 주입식 역사교육 방식의 문제, 학생의 교육과정결정 참여권 등에 관해 더 나아간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는 단지 당장 이번에 기준 미달인 교과서를 걸러내는 문제, 또는 학생을 어떻게 가르칠 것이냐를 놓고 여러 세력들이 주도권 다툼을 하는 문제 정도에서 멈추고 말 것이다.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 학교와 교육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것. 정치권력의 압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진정으로 다양성이 숨쉬는 교육을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진짜 과제일 것이다.



2014년 1월 8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