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논평] '강력처벌'이 전부가 아니다. 가정에서 청소년 인권 보장부터!

공현 2014. 4. 14. 11:49

[논평]
'강력처벌'이 전부가 아니다. 가정에서 청소년 인권 보장부터!

- '아동학대', '청소년에 대한 폭력'을 진심으로 없애길 원한다면



최근 잇달아 가정에서 ‘학대’로 인해 청소년(=아동)들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사람들의 입과 손가락 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언론을 통해 사건이 알려지고 법원에서 관련 사건에 대해 판결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폭력 가해자가 '친모가 아님'에 초점을 맞추고 자극적인 사건 묘사로 내용을 채우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사람들의 반응 역시 가해자에 대한 빡센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청소년에 대한 폭력/학대’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부모가 유전적으로 50%가 같으냐 같지 않느냐, 폭력의 정도가 어느 정도냐,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몇몇 가해자들이 감옥에 10년을 갇히느냐 20년을 갇히느냐 하는 문제들이 아니다. 그 밑바탕에는 청소년이 신체적·사회적 약자라는 권력관계, 그리고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청소년에 대한 폭력문제 및 청소년의 인권에 둔감한 현실이 있다. 가정에서 청소년에 대한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가정에서 청소년의 인권을 보장하고 기존의 친권자-청소년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청소년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애들은 잘못하면 맞아야 한다”라고, “사랑의 매가 필요하다”라고,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매를 들 수도 있다”라고. 이렇게 청소년에 대한 폭력을 허용하는 것이, 바로 ‘학대’가 아주 쑥쑥 자라날 수 있는 기름진 토양이 된다. 어른이 청소년에게 자신의 뜻을 따르게 하기 위해 ‘팰 수도 있다’는 생각, 그게 바로 청소년의 인권을 무시하고 청소년을 평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동폭력에 대한 유엔 연구(The United Nations Study on Violence against Children: A/61/299)」(2006)는 도입부에서부터 “아동에 대한 폭력이 ‘전통’ 또는 ‘훈육’이라는 명목 하에 성인들로부터 정당화되어 일어나는 것을 중단”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는 가정에서 청소년의 인권을 보장해야 할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신체적 폭력, 사생활이나 진로결정에 대한 억압, 차별, 그밖에 여러 유형으로 가정에서 청소년 인권 침해가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를 ‘인권침해’로도 잘 생각하지 않는다. 청소년 인권은 가정 현관 문 앞에서 이중의 벽 앞에 가로막혀 귀가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는 가정은 사적인 공간이고 사랑으로 아이들을 길러내는 곳이며 함부로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다. 다른 하나는 청소년은 친권자(부모, 보호자, 때로는 어른)에 의해 어느 정도 폭력이나 자의적 간섭을 당해도 되는 존재라는 생각이다. 그래서일까. 친권자의 권리를 폭넓게 보장하는 제도는 여럿 있지만, 가정 안에서 약자인 청소년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제도는 빈약하기만 하다.

가정에서 청소년에 대한 폭력을 없애는 일은, 청소년도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가지며 가정에서도 무효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청소년이 친권자의 소유물이 아니라 평등한 인격체라는 것을 확실히 하자는 것이다.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라 평등한 인간임을 밝히고 이에 근거해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아동학대’, ‘청소년에 대한 폭력’ 근절을 위한 첫 걸음으로 가정을 포함하여 모든 곳에서의 체벌 금지를 선언하는 것부터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이미 유엔아동권리위원회도 가정, 학교 및 대안양육기관 등 모든 기관에서 체벌을 금지할 것을 1990년대부터 여러 번에 걸쳐 대한민국 정부에 권고해왔다. 마땅히 해야 할 청소년 인권 보장의 의무를 오랜 시간 방기해온 대한민국 정부야말로, 폭력으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상처를 받은 청소년들에 대해 저지른 잘못이 크다.


가정을 바꿔야 한다

청소년에 대한 폭력이 잘 드러나지 않고 반복되는 것은, 청소년의 삶이 친권자에게 달려 있고 청소년이 가정을 떠나게 되면 마땅히 살아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동보호기관 등도 개입하다가 가정을 ‘깰까봐’ 두려워하게 되고, 청소년들이 친권자를 떠나서 살아갈 마땅한 길이 없을 때는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경찰 등의 국가기관들은 가정에서 폭력 때문에 가출을 단행한 청소년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뿌리부터 해결해야 청소년에 대한 폭력이 일찍부터 발견될 수 있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다행히, 반복되는 사건들과 관련 단체들의 노력으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되어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은 ‘아동학대’를 폭넓게 정의하고, 친권상실, 임시보호조치 등의 제도를 강화하고 있어서 과거 아동복지법에 비해서 더 적절한 대처가 가능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실질적으로 보호조치를 실행에 옮길 기반과 예산이 부족한 실정이며, 처벌과 사후 대처 부분을 강화했을 뿐 예방적인 접근이라는 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있다. 그리고 청소년이 친권자에게만 생활을 의존해야 하는 현실을 바꾸고, 양육 방식 등을 변화시키는 정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실효성 있게 시행되기 위한 예산과 인프라 확보가 있어야 하며, 이와 함께 더 근본적이고 예방적인 대책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에 대한 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비폭력적인 양육 방식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친권자들에게 교육해야 한다. 또한 가정에게만 전적으로 양육의 책임을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 사회적으로 함께 양육을 책임져야 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청소년의 삶을 사회가 함께 책임지고 지원해야 한다. 나아가서는 청소년이 친권자에게만 삶을 의존하는 선택지 외에도 다른 방식으로도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가정·가족은 신성불가침의 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하나의 제도이다. 우리 사회가 가정을 어떻게 변화시키느냐에 따라 가정에서 청소년의 인권 현실 역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4월 13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