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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성명] 청소년에게는 과연 민주주의가 있는가

공현 2014. 4. 30. 17:45
[성명] 청소년에게는 과연 민주주의가 있는가
- 헌법재판소의 청소년 참정권 침해 제도 합헌 판결 앞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선거'를 가리켜 민주주의의 꽃이자 뿌리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말이 청소년들에게는 다른 나라 이야기다. 청소년들은 선거권도 피선거권도 없다. 선거운동도 금지당하며 이에 따라 선거에 관련된 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한다. 정당에 가입할 자격조차 부정당한다. 학생인권조례를 만들 때에도, 무상급식이 논란이 될 때에도, 청소년들은 주민발의 서명 하나, 주민투표 하나 하지 못했다. 선거에 대해 어떠한 발언도 참여도 할 수 없다. 이런데도 이 땅의 청소년에게 과연 민주주의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여기에 더해 2014년 4월 24일, 헌법재판소는 청소년들이 민주주의의 예외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판결을 내놓았다. 청소년들이 "정치적 판단능력이 미약"하고, "정신적·신체적 자율성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선거권/피선거권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도 침해하는 법률들이 죄다 합헌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이 판결은 헌법재판소가 ‘청소년 온라인게임 셧다운제’가 합헌이라고 판결한 같은 날에 함께 나온 것이어서 더욱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청소년 참정권 박탈은 명백한 인권침해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은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리고 당연히 청소년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그러나 공직선거법은 청소년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청소년들은 선거를 앞두고 어떤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라며 지지의 뜻을 밝힐 수도, 낙선하기를 바라며 반대의 뜻을 밝힐 수도 없다. 후보나 정당의 정책을 비교하고 평가하여 발표할 수도 없다. 자신에게 좋은 정책을 내건 후보를 칭찬하거나 알릴 수도 없고, 자신에게 나쁜 정책을 내건 후보를 욕하거나 비판할 수도 없다. 이것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은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리고 당연히 청소년에게도 결사의 자유가 있다고. 특히 정당의 자유는 우리 헌법에 특별히 더 명시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정당법은 정당 당원 및 발기인이 될 자격을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자'로만 제한하면서 청소년들의 정당의 자유를 완전 부정하고 있다. 청소년은 자신의 생각과 뜻에 맞는 정당에 참여할 수도 없다. 청소년은 정당에 가입하여 자신의 의사에 따라 정치활동을 할 수도 없다. 이것이 결사의 자유와 정당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은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참정권이 있다고. 청소년에게도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의견을 표현하고, 그 의견을 적절하게 반영하도록 할 권리가 있다고. 청소년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에 대해 의견을 말하고 참여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그러나 공직선거법과 지방자치법, 주민투표법 등은 이를 거부한다. 청소년들은 선거에도, 주민발의나 주민투표에도 전혀 참여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 밖의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청소년의 참정권은 법적으로 거의 보장되지 않고 있다. 그 근거라고는 고작 애매모호한 '성숙', '미성숙'  구별밖에 없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은 이런 명백한 인권침해가 모두 괜찮다고 해버린 것이다. 이 사안에서 헌법재판소는 기본권을 지키는 국가기구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않았고 기존 편견과 제도의 정당성을 변명해주기에 급급했다. 특히 헌법재판소가 판결을 3년이나 끌다가 이제 와서 다음 선거 때는 청구인들이 만19세를 넘으므로 각하한다는 부분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위헌확인소송을 제기한 2012년에 바로 심의를 해야 했을 것을 뒤늦게 판결해놓고서, 이제 나이를 먹어서 구제할 권리가 없다는 논리 앞에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마치 사람을 구해달라고 했더니 죽을 때까지 질질 끌다가 이미 죽어버려서 구할 수가 없다고 손을 놓는 뻔뻔한 태도와 무엇이 다른가. 소수의견조차도 표현의 자유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인정하거나 청소년의 참정권 보장을 위한 입법을 권고하기보다는 상당 부분 '대충 18세 정도면 성숙한 거 같으니까…'의 논리를 취했으니, 말 다했다.


청소년에게 민주주의를!

  국회는 청소년에 대한 편견에 차서 법을 만들었다. 이 역시 청소년들의 의견은 안중에도 없었다. 헌법재판소는 이것이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그 앞에서 유엔아동권리협약과 헌법 등이 선언한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정당의 자유, 참정권 등은 지켜지지 않는 약속이 되어버렸다.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민주주의는 그저 듣기 좋은 환상일 뿐 청소년들의 현실이 되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살고 있는 현실은 여전히 민주화가 덜 된 독재의 현실과 다름없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이런 실망스러운 판결에도, 우리는 단지 실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제 할 일을 다하지 않는 국가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한다. 어차피 우리 사회가 일구어온 민주주의도 재판장에서 법관들에 의해 이루어져 온 것은 아니었지 않나. 우리는 민주주의를 청소년들의 현실로 만들기 위해, 청소년들의 보편적 권리로서의 참정권을 보장받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할 것이다. 헌법재판관이든, 국회의원이든, 이 사회의 어떤 사람이든,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이며 청소년도 거기에서 예외가 아니라면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라. 민주주의는 나이 먹음에 따라 주어지는 생일 선물도, 성숙에 따라 주어지는 자격증도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반쪽짜리 그들만의 민주주의일 뿐이다.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보편적 권리를 박탈할 권리가, 당신들에게는 없다. 그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도 그것은 단지 인권침해이고 차별이고 독재일 뿐이다. 청소년에게 모든 인권을. 우리에게 진정한 민주주의를!





2014년 4월 30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