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비주류적 소수자 운동 입장에서 본 민주노동당 논란

공현 2008. 2. 2. 12:14
비주류적 소수자 운동 입장에서 본 민주노동당 논란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
윤종
 
 
  일단, 이 글은 청소년위원회 공식 입장이라거나 전체 입장에서 쓰는 게 아님을 밝힌다. 청소년위원회는 여러 단체, 여러 생각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부문 위원회라서 이 문제에 대해서도 각자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혹시라도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봐 미리 밝혀둔다.
  하지만 이 글이 '청소년'운동 또는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한 사람의 입장에서 쓰는 글이긴 하다. 사실 나는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 청소년위원회 활동을 한다기보다는,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한 명의 활동가로서 정세적 판단으로 민주노동당에 가입해서 청소년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글도 그런 위치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들을 정리한 것이다. (실은 정당운동이 성격에 잘 맞지 않는다고 느껴서 청소년위원회 활동도 줄이거나 정리하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이런 일들이 발생해서 함부로 활동 정리한다고 말도 못하겠고, 눈치를 보는 중이다.)
 
  먼저 이른바 '자주파'와 '평등파'의 갈등이 내게 어떻게 보이는지, 간략하게 설명하고 들어가겠다. '평등파'에서는 종북주의, 패권주의 등등을 제기하고 있지만, 나 같은 정파도 없이 노는 비주류가 보기에는 패권주의란 건 어느 정도 힘을 가진 정파들이라면 모두 자신들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어느 정도 보여 왔던 모습들이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인 것 같다. '종북주의'라거나 기타 등등의 비판들은 사상의 차이와 정치노선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인데, 결국 지금 분당/혁신 논란은 대선 실패라는 상황과 맞물려 있긴 하지만 사상의 차이, 정치노선의 차이가 그 밑바닥에 있는 듯하다. 이른바 '자주파'가 무능해서 대선에 실패한 것인가, 하고 생각해보면 글쎄 그건 민주노동당 모두의 책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민주노동당 문제의 핵심은 어떤 운동 어떤 사업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고 어떤 주장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의 차이일 것이다.
 

정당과 소수자 운동
 
  거칠게 이야기하면, 내게는 이른바 '자주파'와 '평등파'의 싸움이라는 게 민족주의&통일&반미운동과 노동&계급운동 사이의 갈등 정도로 보인다. 물론 '평등파'나 '자주파'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정파들도 있고, 이른바 '평등파'나 '자주파'의 입장에 동의하는 사람 중에 장애인위원회나 성소수자위원회나 청소년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어디까지나 거칠게 말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민족주의나 이른바 '종북주의' 등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동시에 계급모순에 중점을 둔 계급혁명이나 노동자계급중심성, 또는 자본-노동 관계에 중점을 둔 자본주의 분석 방식에도 동의하지 않으니까, 사실 둘 모두에게 별로 우호적이지는 않은 입장인 셈이다.
 
  민주노동당은 소수자들의 이익을 가장 잘 반영하는 정당이라고 해왔으나, 실제로 민주노동당 사업에서 '대중적이지 못한 소수자' 사업들, 비주류적인 사업들은 일반적 우선순위에 놓이지 못해왔다. 정책은 있을지언정 집중된 사업은 없는, 관련 활동은 부문 위원회에만 전담시키는 방식을 많이 취해왔던 것이다. 장애인운동처럼, 장애인운동을 하는 분들의 끊임없는 투쟁과 문제제기와 활동이 있는 경우에만 민주노동당은 힘을 실어왔고 비중 있는 사업을 펼쳐왔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민주당계열의 당들(열린우리당, 대통합민주신당, 창조한국당 등)보다 민주노동당이 이런 문제들을 더 성의 있게 다룬다는 것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다른 당과의 비교를 하지 않고 당 사업들로만 보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란 이야기다.
  이런 방식이 반드시 문제란 것은 아니다. 정당운동의 특성상 역량의 집중과 통합, 그리고 효율성을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쩌면 당연하기 때문에 나는 이른바 '진보신당'이라거나 '제2창당'이 과연 소수자운동들과는 얼마나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지 회의를 가지고 있다. 많은 표를 얻기 위해 어느 정도 효율성을 추구해야 하고 집중과 통합을 요구하는 게 정당운동의 숙명이라면, 소수자운동의 비중이 크지 않은 부분에 있어서 현재의 민주노동당이건 '진보신당'이건 '혁신 민주노동당'이건,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정당은 어쨌건 어느 정도 덩치를 가질 수밖에 없고, 일정 부분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대의제나 민주집중제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일부 간부들의 토론을 제외하면 투표와 다수결이라는 방식이 통용될 수밖에 없다. 그런 속에서 다수의 조직을 가질 수 없는 소수자운동에 관련된 사업들이 얼마나 무게를 가질 수 있을지는 고민이 된다.
 

둘 모두 청소년에 대한 인식은 부재
 
  이번 분당/혁신 논란 상황에 관련해서 나온 지엽적인(?) 얘기들 중에, 청소년운동하는 입장에서 하나만 짚고 가겠다. 이건 그리 핵심적인 이야기는 아니니까 관심 없으면 그냥 넘겨도 된다. 이른바 '자주파'건 '평등파'건, 청소년운동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이 드러난 발언이 있었다. '전진'에서 처음에 종북주의, 패권주의, 분당 문제를 제기했을 때 들고 나왔던 것 중 하나가 당 장악을 위해 12~13세의 '미성년자'까지 가입시켰다는 얘기였다. 그에 대해 반박 논조로 기사를 실은 「진보정치」(죽 읽어온 경험으로 추측건대 '자주파' 입장이 많이 표명되는)에서도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윤리적 문제지만 사실이 아니다, 라는 식으로 글을 썼다.
  분명, 청소년당원들에게 연락을 돌려보면 개중에는 부모의 권유로 가입했다거나 등등 민주노동당에 별 관심이 없으면서 가입한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만 나는 12~13세의 '미성년자'(사실 이 표현 자체가 차별이다.)를 가입시킨 게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 문제가 되는 게 있다면, 그건 민주노동당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인맥이나 혈연 등을 통해서 민주노동당에 가입시키는 행태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태는 '미성년자'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연령대에서 일어나는 문제이다.
  현재 민주노동당 당원 중에서 별로 민주노동당이 어떤 정책을 갖고 어떤 주장을 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친지의 권유로 일단 가입했다거나 한 사람들이 단지 '미성년자'들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아는 '미성년자'가 아닌 사람들 중에도 몇몇 있으니까. 또한, 선거철만 되면 - 가끔씩은 선거철이 아닐 때도, 당에서조차 친구나 친지들을 조직해오라고 당원들에게 압박을 주지 않는가! 이 말이 친구나 친지들을 '설득'하라는 말인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성과위주로 몇 명 명단 작성해오도록 용지를 나눠주고 사람들에게 할당량을 줘서 돌아온 결과물들이 정치적 사상적 설득에 의한 것일지 아니면 인맥, 학연, 혈연에 의한 호소나 권유에 의한 것일지는 한 번 고민해보기 바란다.
  그런데 왜 12~13세의 '미성년자'를 가입시킨 게 특별한 윤리적 정치적 문제라는 식으로 '평등파'와 '자주파' 모두가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건 그들이 청소년들(이른바 '미성년자'들)이 정치적 주체이며 정치적 판단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세간의 차별적이고 보호주의적인 인식을 그대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 대해서는 이런 논조로 발언을 한 모든 단위들이 책임있는 사과를 할 것을 요구한다.
 

운동이나 열심히..?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입장에서만 볼 때, 민주노동당이 혁신을 하건 분당을 하건 신당이 만들어지건, 별로 중요한 변화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변화가 없다는 건 그만큼 민주노동당 전체와 민주노동당의 청소년 관련 사업이 긴밀한 연관성을 가진 비중 있는 사업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앞서 말한 정당운동 자체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진보신당'을 주장하는 분들 중에 간혹 적록연대를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지만, 실제 이 사회에서 이른바 '진보'정당(나는 사실 '진보진영'이라거나 '진보운동'이라는 개념틀도 허구적이라고 생각한다.)이 안고 있을 수밖에 없는 역량의 한계와 부족함, 절박함을 생각해보면 여전히 관건은 대중성일 것이고 대중적이지 못한 비주류적 운동들의 처지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절박함이나 역량의 부족은 새로 창당된 '진보신당'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 '록' 안에도 주류와 비주류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적록연대에 대해 논의되는 것을 보면 '록'에 대해 반전평화 아니면 생태환경에 대한 이야기들만 나오던데, 만일 적록연대가 단지 그런 운동들과 노동운동, 계급운동 사이의 연대만을 의미한다면 거기에서 배제되는 비주류들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문제에 한 분기가 될 대의원대회가 곧인 마당에 굳이 이런 글을 쓰는 것은 그냥 민주노동당에 '자주파'와 '평등파'만 있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도 싫고 '진보신당'은 소수자운동의 이익을 반영할 수 있을 거라는 그런 이야기들도 별로 믿음이 안 가고 그렇다고 지금의 민주노동당이 맘에 드는 것도 아니어서 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 같아서이다.
  개인의 입장에서만 말하자면, 좀 내가 청소년인권운동 안에서 위치를 정하는 데 다른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빨리 민주노동당 분당/혁신 이야기가 정리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냥 녹색당이나 기웃거려볼까, 하는 생각도 드는 요즈음이고, 또 한편으로는 역시 그냥 정당 같은 건 신경 안 쓰는 게 좋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나는 그저 청소년인권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