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청소년 의회 운동 방식의 선결 조건

공현 2014. 10. 19. 16:28

청소년 의회 운동 방식의 선결 조건


청소년 의회 형태의 활동을 통해서 뭔가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청소년 의회 또는 그와 비슷한 기구/행사도 여럿 존재합니다.
돈 을 들여서 '스펙'을 쌓기 위한 기회로서이든, 청소년들에게 의회 정치나 국제기구 등의 역할을 학습하는 경험을 주기 위한 수련활동 성격의 행사로서이든, 그런 걸 만들고 여는 것은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보면 될 일입니다. 다만 청소년 의회 방식의 활동이 과연 청소년들의 권익 향상에 도움이 되는 운동적 방법인지에 대해서는 청소년운동에서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런 청소년 의회 방식의 운동이 의미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을 간단히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청소년 의회 형식의 운동 : 참정권이 없는 청소년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한 청소년 의원들로 의회 형태의 기구를 일시적/상시적으로 만들어서 토론하거나 입법(?)을 제안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운동



1. 과거 역사

청소년 의회 형식의 활동을 추진하려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과거의 사례들을 참고해야 할 것입니다. 당연히 조사해보고 하는 거겠지만- 과거 사례들을 아는 저로서는 왜 청소년 의회를 만들고 싶어지는지 잘 이해가 안 갈 정도입니다.

특정 단체 내부의 청소년 의회 형식을 제외하더라도, 이미 한국에서는 2~3번 정도 청소년 의회가 만들어진 전례가 있습니다. 흥사단교육운동본부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이 추진해서 만들어졌던 '대한민국청소년의회'가 대표적이고요.

그 리고 그 여러 청소년 의회 운동들이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일시적으로 관심을 받고 많은 참여를 이끌어낸 적은 있지만, 지속적으로 이어가면서 참여가 매우 저조해졌고 의회 의원들의 역할이나 활동도 상당히 불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입법 청원을 제기하는 것 이상의 활동을 했다고 보기 어렵고, 사실 입법 청원이란 형태라면 굳이 의회 형태로 선출과 운영 등의 낭비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청소년의회'는 처음에는 시범적으로 운영하며 법제화를 시켜서 제도적 권한을 가진 의회 기구로 만들려던 목표가 있었으나, 법제화가 안 되자 그 의미를 잃었고 그 활동은 운동 단체라고 부르기 어려웠습니다.

따지 고 보면, '의회'는 문자 그대로 다양한 대중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선출을 통해서 멤버가 빠르게 교체되는 편이고, 의회 소속이라는 멤버쉽이 강할 수도 없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나는 의회 소속이라고 소속감을 가지는 경우는 드물죠. 어느 정당 소속, 어느 지역구 소속이라고 생각할지언정...) 구성원들의 성향이 쉽게 달라지고 또 내부의 의견도 다양한 게 정상이며 소속감을 부여하기도 애매한 의회 형태의 조직이, 하나의 자발적 결사체처럼 운영된다는 게 애초에 아귀가 안 맞는 일일 것입니다.

(여담으로, 아수나로 안에도 과거 '대한민국청소년의회'에서 의원을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ㅎㅎ 저도 2대, 3대 선거 때 유권자로 투표했었고...)


2-1. 제도적 지위


결 국 이렇게 여러 각계각층의 의사를 대표하는 의회가 구성되는 목적은 제도적으로 어떤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서입니다. 국가 단위에서라면 입법부 역할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청소년 의회도 의미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지위를 가져야 합니다.

여 기서 제도적 지위란 건 단순히 법인이나 정부의 산하 기구 이런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정책을 심의하고 정책에 대해 의미있는 발언을 하고 입법 발의를 하는 등의 권력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청소년들의 삶과 이 사회의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청소년 의회가 청소년의 권익 향상에 의미 있는 참여 형식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가 있어야만 그런 데 관심을 가지는 다양한 청소년들이 모일 수 있을 것입니다.

권한이 없는 청소년 의회는 일종의 '모의' 의회가 되는 셈인데, 이런 모의 의회가 자족적 의미나 학습 의미 외에 운동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을지 저는 전혀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저 정치나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거나 스펙을 원하는 일종의 엘리트 청소년 개개인들이 들어오는 장이 될 뿐입니다. 물론 제도적 지위를 가지게 된다 하더라도, 의회라는 형식상 엘리트 청소년들의 비율이 의원 중 많겠지만, 적어도 실질적 조직이라면 다수 대중들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호소하고 참여하는 의미는 생기겠죠.


2-2. 조직화된 청소년 : 정당 역할

두 번째 조건은 바로 '정당'입니다. 정당이 없이 의회는 의미가 없습니다. 의원 개개인들의 성향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대중의 관심사와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집단적으로 의회를 운영해나가는 정당이 필요합니다. 꼭 무슨무슨 당이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요. 정당 역할을 하는 조직화된 청소년들의 집단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정당 역할을 할 청소년 조직의 기반이 마련되기 전에 의회를 만드는 것은 운동으로서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는 이미 제도적으로 존재하는/존재했던 청소년참여위원회나 청소년특별회의 같은 참여 기구들을 보면 알 수 있는 점입니다. 이런 기구들이 의미가 없었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런 기구를 통해 일정하게 정부의 청소년 정책에 관해 참여하고 목소리를 냈던 역사가 있고, 또 거기에 참여했던 청소년 개개인들의 의식이 변화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조직적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행동할 아무런 집단적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그런 참여 기구들은 너무 쉽게 일회성이 되어 버리거나 기관 등의 추천을 받아 들어간 청소년 개개인들의 활약의 장이 되었습니다.

'청소년 의회'라는 게 단순히 자문단 내지 추첨을 통해 참여한 민간 청소년의 의견 제시 과정 정도가 아니라, 청소년 집단의 의사를 반영하는 기구가 되기 위해서는 조직화된 정당 같은 기반이 필요합니다. 그런 기반이 있어야 청소년 의회 안에서 의미 있는 논의와 갈등과 협상이 이루어질 것이고, 또 청소년 의회가 대외적으로 청소년 대중과 같이 움직이는 기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3. 그래서?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면, 저는 이 두 가지 선결 조건이 해결되기 이전에 청소년 의회 같은 것을 '운동 방식'으로서 시도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아 니면 적어도 2-2번이나 2-1번 둘 중 하나라도 해결이 되고 나서 다른 하나의 해결을 위해서 노력을 들일 수는 있습니다만-  사실 청소년 참여 기구가 실질적 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청소년 참정권을 전면 부정하는 사회에서는 꽤 요원한 일이고, 청소년 대중에 기반을 둔 조직들이 만들어지는 것도 몇 개월 안에 이루어질 일은 아니지요. 그래서 저는 차라리 청소년 의회는 청소년 운동의 부산물이나 성과로 만들어져야 하지, 운동의 수단으로 만들어질 수는 없다고 보는 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