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꿈2014. 11. 24. 17:10

아수나로 10주년을 앞두고, 재미로 쓰는 나의 아수나로 비하인드 스토리 (1)

올해 가을은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 시절부터 따져서 아수나로 10주년이고,
내년이면 내가 아수나로에서 활동을 한 지 10주년이 되고,
내후년 2월이면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로서 10주년이 되네요.


아마도 내년 말쯤에 10주년 행사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냥 재미로 써보는 나의 아수나로 비하인드 스토리.
개인적 기억과 정보들의 조합이고 편하게 일기 쓰듯(?) 쓰는 형식이에요.

시간 날 때마다 짤막짤막하게 써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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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나는 이른바 '자연발생'한 청소년인권활동가였다.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체벌, 단체기합이나 두발규제나 강제야자 등에 대해 문제의식이 계속 있었고 혼자서 비판하는 글 같은 거 복사해서 돌리다가 CCTV(TV는 무슨. 감시카메라지.)에 걸려서 기숙사에서 벌점을 받은 적도 있었다.

자연발생체였던 나는 당연히 조직이고 뭐고 없었고, 내가 학교 다니던 그 지역에도 청소년운동 관련 단체라곤 한 개도 없었다. 2004~5년이 그런 시기였지... 서울에나 희망 뭐 이런 단체들이 있었고, 전국 단위 단체는 남아 있지도 않았고...... 그래서 나는 요즘 아수나로나 청소년운동 현황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는 것 같다. ㅋㅋㅋ



그러다가 2005년 5월에 내신등급제 반대 촛불집회와 두발자유 운동(온라인서명+거리집회)이 다시 일어났다.
나는 언론을 통해 그 소식을 들었고 그때 처음으로 '청소년운동'이란 걸 알게 되었으며 내가 평소 생각하던 문제들을 사회운동으로 다룰 수 있단 걸 그때 알게 됐다.
물론 그 당시엔 그렇게 코가 꿰어서 10년을 올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ㅠㅠ


여튼 내가 학교를 다니던 도시 전주는 그런 운동이고 뭐고 없었고,
나는 2005년 5월 집회 때 서울을 갈지 광주를 갈지 고민하다가 그나마 가까운 광주로 갔다가 집회가 취소되어서 토론회만 갔다가 오고 블라블라... 그때 광주YMCA청소년인권센터라든지, 전북평화와인권연대라든지, 고등학교 동창의 삼촌이 인권활동가였다든지..... 이것저것 또 스토리가 있긴 한데 이건 패스.


아수나로와 처음 만난 건 내가 8월, 여름방학 중에 전주에서 두발자유, 학생회 법제화 등을 요구하는 거리집회를 준비하면서였다. 거의 그냥 혼자서 맨땅에 헤딩하듯이 준비한 거였는데...


그때 노컷아이두(*당시에 두발자유 서명운동이 벌어지던 사이트다.)에 홍보를 했더니 아수나로(당시는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사람이 쪽지를 보내왔던가 메일을 보내왔던가...

그러면서 자기들이 두발자유 뱃지를 공짜로 줄 수 있는데, 집회에 가도 되겠냐고 했다. 서울에서 온다고...

사실 그렇게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그 사람들 뿐이라서 조금 감동했던 것 같음.

아수나로의 무직인꿈틀이, 제엠 등이 집회 전날에 와서 같이 밤을 새며 집회 준비를 해줬고 그때 처음 만났는데 음...

머리 빡빡 민 대머리(=무직인꿈틀이)와 시커멓고 덩치 큰 다 죽어가는 것 같은 사람(=제엠;)이 와서 꽤 당황했던 듯하기도 하고... 겁 먹었던 거 같기도 하고... 음.




집회는 깔끔하게 망했다ㅠㅠㅠㅠ 그때 교육청에서 집회 막고 뭐 하고 하는 것 때문에, 전단지 뿌리면서 종이엔 장소를 안 써놨고 온라인에만 게시했고....(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음. 막을 거면 온라인 보고 막겠지...)

여튼 온 사람은 아는 사람 + 내가 발로 뛰어서 섭외한 지역청소년 무슨 센터의 사물놀이패 밖에 없었음.

거기다가 비까지 쏟아져서 집회 30분만에 접고.

첫 집회, 처음으로 기획해본 운동, 그리고 처음으로 좌절해본 운동이기도 했고, 그래서 나는 "언제나 시작은 눈물로~ 누구나 태어날 때 크게 울듯이" 하는 노래를 들으면 항상 그날이 생각난다.



그렇게 집회는 망했지만 나는 그 뒤에도 계속 운동을 했는데, 학교 안에서 모임도 만들고 같이 책도 읽고 어쩌구저쩌구.... 활동을 했고, 집회 때 이어진 아수나로와의 인연도 계속됐다.

아수나로 사람들은 <두발자유화 가이드라인>이라는 전단지를 주기도 하고, 당시 아수나로에서 내던 <청소년의 눈으로>(그래, 지금은 '요즘것들'의 한 코너 이름으로 오마쥬를 하고 있지...)라는 신문을 같이 만들자고 하기도 하는 등 계속 연락을 하고 활동 소식을 교류했다.


그 뒤, 2005년이 9월인가 10월인가에 아수나로 사람들이 "학생인권공동행동"이란 것을 만들어보겠다고 하면서 몇몇을 모았다. 아수나로 사람들은 다 20대였는데, 학생인권공동행동은 전국에서 청소년인권에 관심 갖고 자기 학교나 지역에서 활동을 해나가는 청소년들 몇을 모은 거였지... 그 중에 나도 껴있었고, 그 일을 계기로 온라인으로 여러 소통을 더 활발하게 하게 됐다. 

그래도 수가 많지 않았고, 4명인가 5명인가 됐던가??? 몇 개월 안 가서 흐지부지됐다...

아 맞다. 그거는 기억이 나는데, 11월 26일에 '청소년인권보장거리축제'라는 걸 했었다. 서울, 진주, 수원 등등에서 두발자유 등을 걸고... 캠페인 또는 거리집회 식으로 했는데, 그거 하느라 서울에 와서 당시 아수나로의 혁수 집에서 하루 잤지. 더럽게 추웠고, 집회가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냥 간소하게 했다. ... 한겨울에 괜히 집회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 계기였을지도. 

그때 처음으로 사회당학생위원회의 코이라는 사람을 봤는데, 그때도 막 큰 소리는 치고 말로는 막 엄청 격식 차리고 하는데도 실속 있게 일을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하하;; 나중에 들은 건데, 11월 26일 집회는 코이가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자기가 준비한다고 해서 한 건데 제대로 안 됐다고 아수나로 사람들도 투덜거렸다. -_-



<학생인권공동행동>이 어영부영 흐지부지~ 흘러가고

나는 대학교 진학 등 문제로 서울로 갔는데 그 뒤에 아수나로에 좀 더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됐다.

거기에는 내가 서울을 간 영향도 있었고, 아수나로의 성격 변화도 있었다. 아수나로 사람들은 <학생인권공동행동> 등 몇 번의 청소년운동조직 만들기에 실패한 뒤에, 아수나로는 이론/지원조직이고 청소년당사자의 운동조직을 별도로 만든다는 모델 자체가 비효율적인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2006년부터 청소년과 비청소년을 인위적으로 나누지 않고 아수나로를 청소년들이 주축이 되되, 비청소년도 참여하는 운동조직으로 만들기로 했다.

나는 그 타이밍에 맞물려서 아수나로에 참여하게 됐다가 그대로 슉~ 빨려들어온 거지, 뭐... 에 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계속 운동을 했을까 생각해보면, 이 운동 자체가 재미있기도 했고, 고등학교 졸업했다고 싹 빠지는 것도 영 별로인 거 같았고, 그리고 내가 생일이 빨라서, 아직 2006년까지는 만18세, 연19세니까... 아직 난 10대야! 하는 이상한 오기도 있었던 것 같고.





나 이전의 아수나로 사람들


사실 나는 내가 들어오기 이전의 아수나로,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시절의 아수나로를 잘 모르는 편인데, 그때 활동했던 당시의 결과물은 http://cafe.naver.com/asunaro/303 이런 걸 확인해볼 수 있다.

나를 가리켜 요새 아수나로의 화석이라고 놀리곤 하는데, 내가 화석이라면 나 이전의 사람들은 뭐 삼엽충이란 말이냐...



※ 참고

아수나로가 만들어진 것에 관해서 처음 만든 멤버인 피터의 말을 옮겨보자

처 음에 아수나로는, <전국중고등학생연합>, 진주지역의 청소년운동조직인 <행동하는청소년>, 그리고 <우리스쿨> 등에서 활동했다가 막 20살, 21살이 되어 청소년이 아니게 된 청소년활동가들이 은퇴(?) 이후 청소년운동에 계속 관심 가지고 참여하기에 적절한 성격의 단체로 만들어졌다. 그걸 피터는 "늙어버린 청소년활동가들이 모여들다."라고 적었었다.

그러니까 한 1년 반 남짓 되었던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 시절의 의미를 찾아본다면 말이지... 비록 연구조직으로 별도로 만든다는 생각 자체는 잘못된 그리 현명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래도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얻은 경험과 교훈들을 숨고르며 정리하고 이론화하는 그 시간을 가졌기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로도 만들 수 있던 것 아니었을까 

   --- 라는 게 피터의 생각.




아수나로의 초기 멤버, 그러니까 나보다 전에 들어왔던 멤버들 중 내가 자주 만난 건 피터, 무직인꿈틀이 둘이었던 듯.

제엠이랑은 오타쿠로서 많은 취미(대전지역에 두발자유 캠페인을 준비하러 갔던 나에게 '쓰르라미 울 적에'를 영업했던 것도 제엠이었다!)를 나눴지만 생각의 차이는 다소 있었지 않았나 싶다.



피터는 영화 데스노트에서 라이토 역을 맡은 일본 배우, 후지와라 타츠야(배틀로얄에선 슈야 역)랑 닮았는데... 음 타츠야의 얼굴을 좀 홀쭉하게 만들면 정말 비슷함. 날 자꾸 카페로 불러내서 수다를 떨던 게 기억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청소년운동에 대한 자기 생각이나 경험들을 최대한 빨리 나에게 전달하고 싶어 했던 듯싶기도 하다.

쓸데없는 형식이나 절차를 싫어하면서도,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멋있어 보이는 것,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 그런 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처음에 우리가 만든 두발자유 전단지에 관해서 내가 너무 글이 많고 설명조이고 그래서 처음부터 관심이 많고 공부 잘 하는 그런 학생들이나 읽을 것 같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을 때는, 뭐 그런 사람들만 읽으면 된다는 식으로 대답을 해서.... ㅋㅋ 음 정말 대중성 그런 것에 대해 어느 정도로 생각했는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달변이었는데, 글을 차분하게 잘 쓰진 않았다. 말이 많았다. 여튼.

본인의 옷 입는 것 등도 (아마) 상당히 멋쟁이였다.  (아마) 인 이유는, 내가 그런 패션 등을 평가할 줄 모르거든.



무직인꿈틀이는 지역이 멀어서 자주 보진 못했지만 서울도 자주 와서 그럭저럭 봤다. 그리고 온라인에서 대화를 많이 했지. 글을 많이 썼고...

두피에 문제가 있어서 머리를 빡빡 밀었다고 했는데, 음 미안. 지금도 꿈틀이 하면 대머리가 먼저 떠올라... 하하 처음 만났을 때 인상이 강렬해서;;

아수나로에 초창기 멤버 중 가장 오래 남아 있었던 사람이기도 하고, 지금도 계속 직간접적으로 연락은 하고, 그리고 아수나로 관리 아이디가 이 사람 명의인 걸로,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이론적인 것? 문자로 정리된 정보? 그런 건 무직인꿈틀이를 통해서 많이 전달을 받았고, 청소년운동에 대한 관점, 청소년운동의 과거 등등도 많이 배웠다. 채팅방이나 카페 게시물이나 등등을 통해서.... 생태주의와 정치경제학 뭐 이런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다고 들었고 지금은 진주 지역에서 지역운동 등을 하고 있다. 최근에 봤을 땐 살이 많이 쪄서 무슨 부처님 같았음. 아수나로 초창기 멤버 중엔 거의 유일하게 아수나로나 청소년운동에 현재도 계속 관심과 애정과 기여를 보내고 있다. 2010년 부산 총회 때도 왔음.



에또-

그때 아수나로는 처음 만들 때부터 대중운동, 대중조직을 지향한다고 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참 그게 뭔 소린지 스스로 알고는 있었나 모르겠다.

나 자신도 그렇지만, 일단 아수나로 초창기 멤버들이 말이지.


무직인꿈틀이가 썼던 글 같은 걸 보면, "대중운동"을 뭐 특정계층에게만 해당하지 않는 의제를 가지고, 다수의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지지와 행동을 끌어낼 수 있는 운동... 정도로 생각했던 거 같다. 더 단순하게 보면 그저 많은 청소년이 참여하는 운동으로 생각했고.

대중조직화나, 대중조직/활동가조직의 조직 운영 문제 같은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다.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아수나로를 지금 같은 식으로 조직 디자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의 대중조직에 대한 논의에서 참고할 만한 건 크게 없을 듯...


그렇게 뭔가 허술했던 조직인데도 어째 그럭저럭, 용케도 안 망하고 왔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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