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BIYN 청년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공현

공현 2014. 11. 27. 13:02





[BIYN 청년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 공현


  경제성장률은 바닥을 향하고 불황의 기운이 만연한 가운데, 활발히 치솟는 수치들은 다음과 같다. 고시 응시율, 대기업 입사 경쟁률, 청년 실업률, 청년 부채율. 주거비를 비롯한 생활비는 나날이 오르는데, 제대로 된 사회 안전망은 미비하고 계층 상승도 기대하기 어렵다. 현 세대의 불안은 윗세대의 욕망을 뛰어넘는 동력이 되어 청년들로 하여금 안정적인 생활기반 선점을 위한 무한경쟁에 매달리게 한다.


 청년 세대의 삶의 조건 자체가 불안한 이 때, 삶을 더 불안하게 만들 것만 같은 '활동'이니 '운동'이니 하는 길을 택한 이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이들은 행복한가? 아니 그보다 일단 힘들지 않은가? 왜 시작했으며 왜 계속하는가? 이들이 탐색하는 세계의 진실은 무엇이며, 이들이 일구어가는 활동의 질량은 세계의 관성에 맞서 달리는 열차의 속력과 방향을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Basic Income Youth Network, 이하 BIYN)의 <2013 청년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각 분야의 청년 활동가들을 만나 지난 활동과 전망을 나누고, 기본소득과의 교차점을 살펴 본 기록이다. BIYN은 각 인터뷰이들이 걸어온 길의 가치를 믿고 이들의 서사와 메세지가 동시대의 친구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이 인터뷰를 기획했다. 또한 이 인터뷰가 늘 활동으로만 설명되어왔던 이들의 고유한 얼굴을 좀 더 자세히 그려내고, 더 나아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활동들을 잇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하필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11월 7일, 2013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험날이었다. 하루 종일 포털 사이트 메인에는 시험의 난이도와 수험장에서 발생한 해프닝에 관한 글이 가득했고, 그 사이에 올해도 어김없이 수험생의 자살 소식이 끼어 있었다. 항공기 이착륙과 증시 개장 시간까지 바꾸는 국가적인 사건에 이 정도 '부작용'이 뒤따르는 건 자연스럽다는 듯이 이제 놀라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리고 그 사이 또 하나의 기사가 있었다. '대학 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 가방끈들의 모임'(투명 가방끈 모임)의 기자회견에 대한 것이었다.

  마치 성역처럼 여겨지는 대학 입시와 그를 둘러싼 흐름 가운데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2교시 수학 시험이 진행되고 있었을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줄 세우기로 무한 경쟁을 부르는 현행 입시 제도를 폐지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1년의 대학 거부 선언 이후 2년 만의 활동이었다. 처음 이 모임을 만들고 본인도 선언에 동참했던 청소년 인권 활동가 공현 씨는 이후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로 1년 4개월의 수감 생활을 마친 후 올해 8월 14일에 출소했다. 그를 '옥바라지'했다던 한 중견 활동가의 제보에 따르면 공현 씨는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만화책 반입, 환경호르몬이 나오지 않는 텀블러 사용 등을 요구하며 재소자 인권을 위해 애썼다고 한다. 지난 10월 말 영등포의 청소년 단체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감옥에서도 계속 생각했다던 청소년 운동에 대한 계획과 그간 깊어진 고민에 대해 들어보았다.


BIYN : 먼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공현 : 저는 공현이라고 하고, 지금 청소년은 아니지만 청소년 활동을 하고 있고요. 대학 거부자, 병역 거부자 정도로 소개를 하겠습니다.


BIYN : 활동하고 있는 단체를 소개한다면요.

공 현 : 저는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굉장히 오랫동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수나로는 청소년 인권을 위해서 활동하는 단체인데요. 되도록이면 청소년 '당사자'들이 직접행동을 통해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나름대로 전국 조직이에요. 지금까지 학생 인권 문제, 두발 규제나 체벌 문제로 여러 활동을 해왔고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나 교육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도 해왔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또 다른 단체가 청소년 활동 기상청 '활기'라는 곳인데요. 청소년들이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잖아요. 그런 것과 관련해서 재정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청소년 활동가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여러 단체가 모여 있는 단체입니다. 활동 기반을 줄여서 '활기'라고도 해요.

그 리고 2011년에 대학 거부 선언을 하면서 모인 투명 가방끈이라는 모임이 있어요. 대학 입시 거부자, 대학 거부자 그리고 그 움직임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이뤄져 있어요. 2011년에 처음 대학 거부 선언을 하고 그 뒤로 활동이 없었는데, 이번 입시철을 맞아서 다시 살려보려고 모임을 굴리고 있어요.


사회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

BIYN : 공현 씨가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공 현 :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딱히 없고요. 고등학생 때는 당사자였으니까 자연스럽게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죠. 학교 안에서 실제로 두발 규제와 같은 불합리한 일들과 부딪히면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거부하게 되는데, 단순히 거부를 한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것을 앞으로 어떻게 바꾸는가 하는 거예요. 혼자 거부하는 것은 그 일로부터 열외가 될 뿐 그 일 자체를 없애지는 못하더라고요. 단순히 내가 만족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피해가거나 그것을 거부하는 데서 나아가 전 사회적으로 이것을 어떻게 바꿀 건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BIYN : 그때 아수나로에 들어가신 거예요?

공 현 : 아뇨. 제가 전주에서 학교를 나왔는데, 그때는 아수나로도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고, 청소년 운동 단체랄 게 거의 없었어요. 청소년 운동이란 것을 인터넷이나 신문을 통해 접하긴 접했는데 다 서울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전주에서는 학교 안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모임을 꾸려서 이것저것 활동하고 '오답승리의 희망'이라는 신문도 냈어요. 그렇게 하다가 다른 지역의 아수나로 사람들이 접근을 했어요. "두발 자유 배지를 주겠다" 이러면서. (웃음) 그 뒤에 서울로 온 후에 아수나로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죠.


BIYN : 전주에서 만든 모임에서는 어떤 활동들을 했었어요?


공 현 : 딱히 체계는 없었는데 모여서 책읽고 토론도 하다가 즉흥적으로 활동도 하는 식으로 했어요. 학교 안에서 두발자유 요구하는 전단지 같은 걸 아침 6시에 등교해서 몰래 뿌리고요. 기숙사 안에서 선배들이 사감의 묵인 하에 기합 주는 것들 문제제기도 하고 이것저것 요구는 많이 했는데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잘 안 됐죠. 처음에 학생들이 자기 의견을 밝히는 게시판이 필요하니 자유롭게 붙일 수 있는 게시판 만들기, 학교 안에서 게시물 부착이나 유인물 배포시 교무실가서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에 항의하고, 그런 것들이 잘 안 되니까 '오답승리의 희망'이라고 사비를 모아서 신문을 만들었어요. 기사가 아니라 하고싶 은 말들을 다 해다라며 기고를 위주로 해서 발간 했었어요. 방학 때는 교육청 앞에 가서 학생회가 학교 운영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1인 시위도 며칠씩 하고요.


BIYN : 비청소년, 즉 성인이 되고 나서도 계속 청소년 운동을 하는 게 쉽지는 않다고 들었어요.

공 현 : 나이를 먹었다고 청소년 운동을 떠나는 건 좋지 않아 보여서 계속 하는 게 있고요. (웃음) 제가 늘 하는 얘기가 있어요. 저한테 청소년 운동을 왜 하느냐고 물으면 '내가 청소년 활동가니까 한다'고 답하고요. 그럼 왜 청소년 활동가냐고 물으면, '청소년 운동을 하니까 청소년 활동가지'라고 답해요. 이렇듯 관성적으로 하는 게 제일 크고요. (웃음) 사실 관성이 중요하죠.

그 리고 저는 대학생 운동 같은 경우를 좀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게 있어요. 청년이나 대학생들의 문제를 전부 다루는 운동이 존재하기보다는 각 대학 안에서 학생회 선거를 해서 어느 정파가 학생회 권력을 잡네 마네가 주요하잖아요. 대자보는 온갖 게 다 붙는데 정작 실천이라는 건 집회에 가는 것 정도밖에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청소년 운동 같은 경우는 설령 역량 부족으로 실천이 미미해도 그게 바라보는 지향이나 사회적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청년 운동(2006년엔 청년 운동이란 말도 잘 안 썼는데), 대학생 운동은 그런 게 별로 없어 보여요.


BIYN : 청소년 운동이 지향하는 바는 뭔가요?

공 현 : 요새는 딱 한마디로 '청소년 해방'이라고 표현해요. 대학생 운동은 대학생 해방을 지향하진 않잖아요. 연령을 기준으로 해서 미성년자, 성년자를 구별하고 미성년자에 대해서 권리를 유예하거나 제한하고 사회 재생산을 위해서 청소년층을 가족이나 학교의 형태로 관리하는데 그런 제도와 구조 자체를 없애고 청소년도 사람답게 사는 것이 청소년 해방이겠죠. 청소년에 가해지는 독특한 억압의 형태가 사라지는 것.

흔히 청소년 억압은 자본주의의 문제와 연결해서 많이 보는데, 저는 청소년 억압이라는 게 여성 억압만큼이나 자본주의와 무관한 보편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고대에도 미성년자에게는 참정권을 안 줬던 것처럼, 아동과 성년을 나누는 기준이 되는 나이는 계속 변해 왔더라도 그 구별과 함께 아동 집단에 대한 억압이나 규제 장치는 계속 있어온 것 같아요.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된 고대 유물에도 학교에 숙제를 안 해가서 체벌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잖아요. (웃음)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서면서 학교 제도나 핵가족과 같은 특정한 양상이 등장한 것은 맞지만, 문명사회가 이루어진 후부터 이런 억압은 줄곧 있지 않았을까요. 가부장제와 좀 비슷하죠.


BIYN :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지금 활동하는 것은 어떻게 연결되나요?

공 현 : 저는 삶에 원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라 '그냥 재밌게 살면 되지' 하고 간단하게 생각해요. 세부적으로 보면 그런 건 있어요. 나 혼자서 좋아하는 일 하면서 즐거울 수는 없고, 내가 재미있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과 관계도 중요해요. 입시 같은 경우를 예로 들면, 내가 성적을 잘 받으면 단순히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라, 내가 성적을 잘 받음으로써 누군가가 성적을 못 받았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쳐버리는 거죠. 그런 게 다 없어져야 내가 마음 편하게 또 재밌게 살 것 같아요.

사람들이 최소한 행복해질 기회는 있어야 하고, 내가 행복함으로써 그만큼의 불행을 감당해야 할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원칙은 가지고 있어요. 활동이랑 그게 연결되는 것 같아요.


BIYN : 활동이 재밌으세요?

공 현 : 재밌죠. 특히 자기를 쥐어짜서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게 재밌는 거 아닐까요? (웃음) 저는 그래요. 게임도 널널하고 여유롭게 하기보다 집중하고 치열하게 해서 뭔가를 해냈을 때 재밌는 거잖아요. 뭔가를 추구하고, 거기에 내 삶의 전력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그만큼 활동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만들어 내는 것도 같고요.


청소년 운동의 딜레마와 전망

BIYN :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특별히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공 현 : 청소년 운동에서 힘든 것은 사람이 떠나는 문제에요. 인적인 교체가 굉장히 빠른 운동이니까 스쳐 지나간 사람들이 수백 명이에요. 그들에게 저나 청소년 운동이 어떻게 기억될지 모르겠지만, 제 입장에선 한자리에 서서 사람들을 받았다가 떠나보내는 셈이 되죠. 또 새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이 사람들 중 한두 사람 빼면 몇 년 안에 안 볼 사람들이지'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 힘든 것 같아요.

어쩔 수 없는 점이긴 한데, 수적으로 이걸 줄일 수는 있다고 봐요. 제가 구상하는 것 중 하나는 청소년 운동에 발을 들였던 스무 살이 넘은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자리, 그런 네트워크를 하나 만드는 거예요. 약간 동창회 느낌일 수 있는데, (웃음) 그렇게 해서 이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돈과 참여를 뽑아내자는 기획을 하고 있어요. 꼭 내가 청소년이어서 청소년 운동을 한다기보다, 이게 의미 있는 거고 할 만한 거라서 한다는 가치가 많이 공유되어야 할 것 같아요.


BIYN :  병역 거부를 한다는 건 공현님에게 어떤 의미였어요?


공 현 : 하기 전에는 병역문제가 제 인생에서는 큰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군대를 가는 거니까, 그냥 군대 말고 감옥을 가는 거지 하고 생각했는데 하고 나서는  '소수자가 됐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전에는 제가 갖고 있는 정체성들이 남성에, 이성애자에, 비장애인에, 서울대생의 조합이었는데, 병역거부와 대학거부를 함께 하고 나니 상당히 변한 거죠. 대학거부 경우는 주변에 고졸이 많아서 괜찮은데, 병역거부는 주위에 많지도 않고. 병역거부 관련 주제가 어디에 올라가기만 하면 댓글이나 반응의 6-70퍼센트가 욕이니까요.(웃음)



BIYN :  감옥 안에서 제일 많이 한 생각은 뭐였어요?


공현 : 청소년 운동에 대해 생각 했죠. 청소년 운동 잘 되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잘 안 될까 고민했어요. 이것저것 플랜을 짜긴 했는데, 과연 그것대로 할 수 있는 게 몇 개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BIYN : 일반적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에게 청소년 운동의 위상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세요?

공 현 : 일단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60~70%는 되지 않을까요? (웃음) 학생인권조례 제정했을 때에도 제정됐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 과정에서 청소년들이 어떻게 참여했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고요. 심지어 요새도 학생인권조례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학생들이 태반이니까요.

먼저 청소년 다수에게 홍보하는 게 필요한데, 전단지 1만 장씩 찍어서 뿌리는 수준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알리고 조직하려면 두 가지가 받쳐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언론. 청소년들을 타깃으로 해서 인터넷 언론 말고 직접 손에 쥐어지는 식으로 배포되는 언론이 있어서 몇 만 부씩이라도 나가줘야 하지 않을까. 그게 있으면 '옆에 얘가 신기한 걸 보네' 하고 학교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거고요.

두 번째는 원론적인 문제인데, 결국 대중 조직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아수나로는 대중 조직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요. 대중 조직을 꾸리게 되면 학교별로 청소년 운동을 주제로 하는 동아리가 하나씩 생기는 거죠. 또는 동네별로 그런 게 생겨서 그 지역 기구가 학교든 학원이든 일터든 각 현장에 홍보를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걸 하려면 지역별로 구심점이 될 수 있는 활동가들이 최소한 일정 수 이상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 활동가들을 기반으로 추진되어야 할 텐데, 아예 활동가들이 없는 지역도 많다는 문제가 있어요. 제가 감옥 안에서 대충 계산을 해본 걸로는, 적어도 그런 활동가가 300-400명 정도는 되어야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BIYN : 외국의 청소년 운동 사례도 많이 참고하세요?

공 현 : 관심은 많은데 외국어를 잘 못해서 다른 사람들한테 좀 알아봐 달라고 하는 정도죠. 사례는 꽤 있어요. 프랑스 같은 데도 고등학생 연합이 있고, 칠레에서도 고등학생들이 몇 십만 명씩 시위를 한 경험이 있대요. 대만에도 두발 자유 운동이 있고요.

다 른 곳들 보면 청소년 운동이라는 분야 자체가 은근히 그렇게 강화되어 있지 않았더라고요. 대개가 사회주의 운동이거나 정당 운동의 일부로서 활성화되어 있어요. 노르웨이의 경우는 정당에 청소년이 참여하니까 '어느 정당 청소년 당원들이 숙제 폐지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같은 내용이 박노자 씨 블로그에 올라오고 그러거든요. 의제는 청소년 운동인데 조직 자체는 여러 운동들 내부에 있는 게 대부분이죠. 한국의 청소년 운동이 어떻게 될 수 있을까 바깥을 조사하다 보면 한국 사례는 독특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 때도 있고요.


BIYN : 그러면 한국 청소년 운동의 미래는 어떻게 전망하세요?

공 현 : 최근에 다른 청소년 활동가들이 학생인권조례 제정 사례를 UN에서 발표했었어요. 거기서 청소년들이 자기 권리 문제를 제기하고 운동을 통해 제도를 만들어내는 사례 자체가 세계적으로 상당히 드물다는 얘기를 들었대요. 다른 사회 운동에 청소년 운동이 참여하면서 문제가 제기되는 식이 아니라, 청소년 인권이라는 문제만 갖고 운동 조직이 만들어져서 독자적인 활동 영역을 만들어나가는 것 자체가 별로 없어서 독특하다는 거예요. 한국 정당 구조와 한국 사회가 청소년들에 대해 워낙에 폐쇄적인 탓에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죠.

이것저것 구상한 건 있어요. 하나는 조직화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조직화 플랜이 있는 청소년 운동이 별로 없어요. 관심 있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들어와서 활동하는 식으로 지금까지 커온 건데요. 캠프든 뭐든 적극적으로 조직화할 수 있는 기획을 하고 그 역량으로 활동 회원들을 한 지역에 최소 10명씩은 늘려야겠다는 계획이 있어요.

다른 하나는 아까 말했듯 청소년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청소년을 독자로 하는 언론을 일주일이나 2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낼 수 있으면 굉장히 힘이 될 것 같아요. 다른 한 축으로는 연구소가 필요해요. 청소년 운동을 주제로 주장하는 내용일 수도 있고 청소년 운동 자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수도 있는 그룹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이 세 가지가 갖춰져서 역량이 쌓이면 대중 조직으로 갈 수도 있다고 봐요.




소수자 배제 않는 기본소득을 위하여

BIYN :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공 현 : 이번에 논란이 되는 스위스의 기본소득안도 그렇고, 청소년을 배제하거나 청소년한테는 적게 주는 기본소득 설계도 꽤 많아요. 기본소득의 원뜻은 모든 이에게 보편적 소득을 보장한다는 거지만, 실제 도입 과정에서 청소년에 대한 편견 문제가 굉장히 크게 걸리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좋겠고 필요하다고 보는데, 청소년 운동이 노력해서 도입시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서 눈치를 보고 있을까 하고 있네요. (웃음)

가령 노인이나 장애인한테 기본소득을 덜 주자는 얘기는 사람들이 못할 거거든요. 소수자 중에서 문제가 되는 건 청소년이나 이주민에 대한 기본소득이 아닐까 해요. 이주민들은 '우리 사회 구성원이 아닌데 줘야 하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고, 청소년들은 '미성숙한데 줘야 하냐'라는 문제제기가 있을 거고요. 경제 활동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도 들 거고요.

BIYN : 활동가로서 삶의 목표가 무엇인가요?

공 현 : 일단 두발 자유부터 해야 되고…. (웃음) 살면서 하나 정도는 바꾼 게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게 두발 자유가 되었건 체벌 금지가 되었건 뭐라도요. 물론 가능하면 입시 폐지도 되면 좋겠지만요. 개인적인 야망 같은 건, 혼자 낸 책 하나 있으면 좋겠다 정도? (웃음)


BIYN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해주세요.

공 현 : 청소년 운동이 지금 한 줌밖에 안 되는데요. 제가 처음 시작했을 때는 한 줌도 아니고 한 톨밖에 안 됐던 것 같아요. 기껏해야 서너 톨 됐나? 그래서 한 줌이라는 말을 듣는 게 욕이 아니라 칭찬이라고 생각해요. 이 한 줌짜리 청소년 운동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2011년에 공현 씨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선언하며 썼던 소견서 '가기 싫어도 가야만 한다는 현실을 바꾸고 싶습니다'를 인용하며 인터뷰를 마친다.

" 저에게 병역 거부는 단순히 윤리적 결단은 아닙니다. 저는 청소년 인권 운동을 시작했던 이래로 항상 저를 활동가로 생각해왔습니다. 활동가란 단지 개인의 윤리에 따라 사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활동, 정치적인 실천을 하는 사람이지요. 병역 거부 역시 뭐, 그걸 비록 청소년 인권 운동으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마찬가지의 실천으로 생각합니다."

 









* 기본소득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보편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을 말합니다.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Basic Income Youth Network, 이하 BIYN)는 기본소득이 실현된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모인 개인 및 단체들의 네트워크입니다.  BIYN는 한국사회에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알리고, 신자유주의의 누적된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당사자인 청'소'년(0세~30대)이 먼저 그리고 같이 기본소득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