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차라리 강정구 교수를 손가락질해라

공현 2008. 2. 8. 16:26

차라리 강정구 교수를 손가락질해라

(2005년에 한창 국가보안법과 강정구 교수 사건이 이슈가 될 때 썼던 글)

 강정구 교수 사건이 말썽이 된 지도 꽤 되었다. 강정구 교수의 글을 두고 검찰이 사법처리 입장을 내놓은 것도 충분히 말썽거리였건만,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둘러싸고 또 한바탕 정치권이 격동하고 있다. 일부 보수 신문들은 열린우리당측이 검찰 중립성 문제가 핵심인데 논지를 흐리고 있다며 비판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국가정체성을 꺼내가며 논지를 흐리고 있는 것은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결국 수사지휘권 발동 문제는 여야 이념대결로 치닫고 말았다.


 그러나 이 사건의 핵심은 검찰중립성 문제가 아니다.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인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되어버렸지만, 강정구 교수 사건이라고 일컬어지는 사건의 진짜 핵심은, 강정구 교수의 글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여부다. 그리고 몇 년을 끌어온 국가보안법 폐지 여부다. 애초에 이 문제가 이념대결로 비화할 수 있었던 것은 강정구 교수의 발언 내용이 국가보안법이 적용되는 사상·이념과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관해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는 존 스튜어트 밀의 이론에 기대어 강정구 교수의 발언을 규제하는 것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중앙일보에는 또 민교협의 입장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서울대학교 교수인 송호근씨의 칼럼이 실렸다. 과연 강정구 교수의 글이 학문적 자유를 방패로 삼을 수 있을 만한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강정구 교수의 글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특히 다른 부분은 어찌어찌 동의하거나 최소한 인정할 수 있다 해도 당시 국민의 77%가 사회주의를 원했다는 통계자료는 문제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너무 크다. 그 자료의 내용이 문제라는 게 아니라, 그 통계의 신뢰도가 문제란 이야기다. 그래서 "혹시, 어떤 실없는 미국인이 전쟁 중에 전국 조사를 했다고 가정합시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요?"와 같은 반문을 송호근 교수 등으로부터 듣게 되는 것이다. 강정구 교수는, 신뢰도도 떨어지는 편향된 통계를 의도적으로 사용한 게 아니냐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걸 예견했어야 했다.


 헌데 그런 점이 강정구 교수를 학문적 자유의 방패막이 밖으로 밀어낼 이유가 될까? 잠시 다른 나라 이야기를 해보자. 미국의 모 언론들은 1987년 중앙아메리카 평화조약이 서명된 직후,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니카라과가 엘살바도르를 군사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기사를 냈다. 미국 정부가 그런 주장을 하면서 믿을 만한 증거를 제시한 적도 없으며, 국제사법재판소에서는 미국 정부가 내놓은 증거들을 모두 기각했다는 사실은 쓰지도 않은 채. 중앙아메리카 문제에 대한 그런 식의 편파적인 왜곡 보도는 하나둘이 아니었다. 사실 자체를 반대로 보도한 경우조차 있었다. 그러나 그 보도들은 미국 정부의 입장과 일치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언론의 자유'로 보호받을 수 있었다. 촘스키의 말을 빌려와보자. "당신이 강령에 따라 행동한 것이라면 어떤 것도 증거를 제시하며 입증할 필요가 없다. 당신 기분대로 말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교조체제에 순응한 덕분에 당신이 얻을 수 있는 특권의 하나이다. 그러나 당신이 표준화된 견해를 비판하자면 매 구절마다 증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경향이 한국에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기득권자들의 이해관계, 기존 '상식', 혹은 정부의 의도와 맞아 떨어지는 내용 ― 여하간 힘을 가진 집단의 이해관계와 맞는 주장을 발표하면 그 안에 아무리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인 용어가 사용되었더라도, 아무리 신뢰도가 의심스러운 통계조사가 인용되었더라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그에 대한 비판은 일각에서 있을 수도 있지만, 사법적 문제까지 가는 경우는 당연히 없다. "침략전쟁"이나 "통일전쟁"이나 모두 사실을 바라보는 시각 ― 이념을 어느 정도 담고 있는 용어이지만("내전"이란 용어가 그나마 좀 더 객관적인 것 같다.) 전자는 문제가 되지 않고 후자는 문제가 된다. 송호근 교수는 "역사를 바라보는 예의"를 말했지만, 그렇다면 강정구 교수와는 반대되는 입장에서 이념적 용어를 듬뿍 써가며 편향된 역사관을 퍼뜨려온 사람들은 역사에 대한 예의를 제대로 지켰다는 이야기인가? 가끔씩 접하게 되는 왜곡 투성이인 '반공교육' 자료들에 비하면 차라리 강정구 교수의 글이 중립적인 것처럼 보인다.


 학문이 최소한 사실에 대해서만은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옳은 이야기이고 바람직한 이야기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학문의 객관성을 따져서 처벌하는 법이 절대 아니며, 학문으로서의 객관성이 부족하다고 해서 국가보안법을 적용할 근거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국가보안법과 학문적 자유를 이야기하면서 객관성이니 예의니를 따지는 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국가보안법으로부터의 학문의 자유'를 보장받을 근거는 객관성이 아니다. 객관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차라리 강정구 교수의 주장을 가리켜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라. 차라리 강정구 교수의 글에 오류가 있다고 손가락질하라. 다만, 제발 법을 휘둘러 학문의 장을 상처입히는 짓은 하지 말아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