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결혼식

공현 2015. 2. 5. 21:32


결혼식



  지지난 주말에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다. 아니, 친구'들'의 결혼식이었다. 신랑과 신부 둘 모두 친구인 드문 경우였던 것이다. 덕분에 축의금을 낼 때부터 어느 쪽에 내야 할지 난감한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결혼식은 왜 신랑측과 신부측 축의금을 따로 받는 것일까? 누구에게 축의금이 더 많이 들어오는지 경쟁이라도 한단 말인가. 여하간 그 문제는 부모님이 대신 내라고 준 축의금과 내 축의금을 각각 양쪽에 냄으로써 해결했다. 부모님도 그 친구들과 면식이 있는 사이였던 것이다.


  신랑인 친구는 나와 알고 지낸 지가 이제 16년째이다. 지금은 그 이름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모 통신서비스의 포켓몬스터팬클럽에서 만난 사이다. 직접 얼굴을 보고 만난 건 아마 중학교 때였던가? 한때는 MSN 채팅으로 밤 늦게까지 수다를 떨곤 했었고, 함께 보낸 시간의 총합이 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순전히 사적인 관계로 내가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신부인 친구는 내가 고등학교 때 같이 만화동아리에 있었다. 알고 지낸 것을 햇수로 따지면 12년째이다. 그림을 그려달라고 몇 번 부탁을 해서 신세를 지기도 했다. 한때 좋아했어서 고백을 했다가 차였다는 나의 흑역사가 있다. 시간이 흐르고 쌓여 지금은 별로 어색할 것도 없는 사이지만.


  둘이 연애를 하게 된 것은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원천적으로 둘이 만나게 된 것은 나 때문이다. 만화동아리 사람들과 서울코믹월드에 갔을 때 내가 내 친구를 불렀고, 그렇게 해서 여차저차 알게 된 사이인 것이다. 딱히 소개해줬다고 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참 복잡하고 예측할 수가 없다. 어쨌건 10년도 더 전의 일인데, 그때만 해도 오늘 같은 결혼식은 당연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적어놓고나니 무슨 만화 오타쿠들의 인맥 이야기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휴.


  그래, 셋만 놓고 봐도 참 많은 것이 변했다. 포켓몬스터 팬클럽 게시판에서 시덥잖은 글을 쓰던, 그때까지만 해도 꿈이 (자연)과학자였던 나는 대학거부에 병역거부를 했고 청소년인권활동가가 되어 있다. 만화동아리에서 일러스트를 그리던 키가 큰 게 약간 고민이었던 친구는 벌써 교사가 되어 있다. 빨리 돈을 적당히 벌어서 40대에 은퇴해서 적당히 사는 게 목표라던 시니컬하던 친구는 오타쿠 느낌을 숨기지도 않고 있고 수험에서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한의사가 되어 병역 대체복무 중이다. 요즘 만나보면 어쩐지 시니컬하다기보다는 뭔가 열혈적인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재미있다고나 할까.


  그밖에도 이것저것 격세지감을 느끼는 게 있지만, 그들에게도 사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으니 일단 생략하도록 하자. 청첩장을 받았을 때부터, 결혼식장을 나올 때까지, 내내 했던 생각이 그거였다. 아아, 우리가 이만큼 나이를 먹었구나. 결혼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우리가 서로 알고서 지내온 시간은 인생의 대략 절반 안팎이나 되고, 우리 안엔 그만큼의 공유된 시대가 쌓여 있는 것이다.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나이 서른에 우린 무엇을 사랑하게 될까." 이렇게 물을 날이 코앞이다. 워낙 나이 열여덟부터 별로 변화한 게 없이 살아오다보니 잊고 있었다. 아마 결혼이니 뭐니 하는 것으로부터 거리가 먼 세상에 살다보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결혼식장에서는 한번은 신부 친구들(내 고등학교 지인들이 상당수였다.) 틈에 끼어서 사진을 찍고, 한번은 신랑의 "포켓몬 및 취미생활 관련 친구들"(신랑 본인의 표현) 틈에 끼어서 사진을 찍었다. 결혼식을 올 때마다 했던 생각이지만, 결혼식이란 과정은 참 신랑과 신부를 피로하게 하는 의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각종 절차와 의식과 소개와 인사와…. 피로연이라고 하던가 여튼 그 밥 먹는 곳에 와서도 여기저기에 인사를 하고 다니던데, 앉아서 쉬고 이야기할 틈도 없이 그렇게 여러 테이블을 도는 것도 피곤할 터이다. 그래서 참, 나는 역시 결혼식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다.


  아마 신혼여행도 이제 끝났을 테고, 그 둘은 이것저것 바쁜 시기일 듯싶다. 그래도 결혼식 준비하던 때보다는 조금 한가하고, 재미있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이야기는 나중에나, 이제는 '부부'가 된 둘을 만나서 나눌 수 있겠지. 애초에 나도 워낙에 바쁘니까 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알고 지낸 시간보다, 앞으로도 더 긴 시간을 알고 지내야 될 테니, 잘 부탁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