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3.1운동, 유관순, 청소년

공현 2015. 3. 1. 15:13


3.1운동, 유관순, 청소년



- 보통 3.1운동의 상징으로 유관순을 꼽고는 하는데, 유관순에 관해 기획으로 만들어진 유명세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죠. 일단 유관순이 10대이면서 3.1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자기 고향에 돌아와서 만세운동의 중요한 역할을 한 건 분명합니다. 다만, 유관순이 만세시위를 하자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독립선언문이나 태극기 등도 가져오는 등 활동가로서 했던 모습들보다는, '감옥에서 죽어간 모습', '순국', '순수성'으로 주로 기억되는 것은 유관순이 어떤 맥락에서 얘기돼왔는지를 알려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만일 유관순에 대해 재점검이 필요하다면 그건 유관순이란 인물과 그 행동에 대한 평가라기보단 기존의 '유관순 담론'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나 평가가 필요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인물을 어떻게 보고 어떤 점을 강조하느냐 하는 것들은 현재 시점의 이야기니까요.


당시 3.1운동에 참여한 10대 청소년은 드물지 않았습니다. 유명한 독립운동가인 박헌영도 19세에 3.1운동에 참여했고, 임시정부에 참여한 이규태도 10대 때 목천보통학교시위를 주도했던 경력이 있죠. 전동보통학교 학생들은 학교가 노예를 만드는 곳이라며 유리창 깨는 시위를 하기도... '열두세살'의 청소년이 졸업식 때 단상에서 만세를 외치며 졸업식장이 시위현장이 되는 모습을 목격한 외국인의 기록도 있죠. 일본 경찰도 "보통학교 학생들이 독립운동에 가담하거나 또는 목격함으로써 …장래 교육상 큰 화근을 남겼다"는 보고서를 남길 정도였으니까, 상당히 일반적인 현상이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시는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도 10대 청소년뿐 아니라 20~30대도 같이 다니는 등, 연령에 따른 구분이나 청소년/아동이라는 관념이 확립된 시기가 아니었기에 가능했던 장면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여러 청소년들이 3.1운동의 적극적인 주역이었는데 유관순만 주로 이야기되는 것은,

뭐 광복 이후에 역사 발굴이나 언론보도 과정에서 여러 가지 우연성과 이화학교라는 일종의 학연(...)과

'소녀', '순국'이라는 상징성 등이 다 겹쳐 있는 문제 같아요.



여하간 이런 청소년들의 3.1운동 참여 등을 포함해서, 한국 현대사 속의 주인공인 청소년을 다루는 책이 얼마 안 있어 나올 겁니다. 제가 지난해부터 쓰고 있고 원고는 70~80% 정도 마무리됐어요 ㅎㅎ;(기승전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