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수필 - 예외와 반례 사이

공현 2008. 2. 8. 16:31

예외와 반례 사이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내 자신이 우리 주변의 여러 일들에서 ‘예외’적인 존재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도 그런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도 대략 실존감각의 문제 때문에 내가 나 자신을 특별하게 여긴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또 그렇게까지 평범한 삶도 아니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나는 1988년 4월 11일 생임에도 주민등록에는 1988년 2월 25일로 신고가 되어있다. 학교를 일찍 들어가기 위해서 같은 이유가 아니다. 나 태어난 날 기분 좋아서 약주 몇 병(?) 하신 할아버지께서 음력 날짜로 올렸다고 한다. 생일을 앞당겨 신고하는 것이 그렇게까지 드문 것은 아닐지 몰라도, 의도성 같은 것도 없이 단지 술에 취해 음력으로 생일을 올리시고 벌금을 내셨다는 건 상당히 드문 일이 아닐까 한다. 내가 예외가 되기를 좋아했던 건지, 아니면 어쩌다보니 자연스레 곧잘 예외가 되었던 건지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문제다. 초등학교 때는 점심시간에 BB탄을 주워 모으며 돌아다녀 1000개 달성! 같은 짓을 했다거나, 볶음밥에 과일 넣기를 시도했다거나(사실 이건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지만), 기숙사의 선배라는 자들이 기합을 줄 때 혼자 대들어서 방 밖으로 쫓겨났다거나, 축제 때 여장을 한 이후로 “치마 입겠어!”를 주장한다거나, 점심시간에는 베돌이 짓을 한다거나, 심지어는 등교시간에 걷는 속도조차 나 혼자 뒤로 처지니 원.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예외가 되어 주목받고 싶은 욕망이 있답니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솔직히 나로서는 그런 마음이 전혀 없다고 부인하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런 마음이 내 동기가 될 정도로 강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종종 느끼는 건, ‘일반론’은 무섭다는 것이다. 일반론이 무서운 건 오히려 그것이 법칙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법칙은 반례가 나타나면 거짓으로 증명된다. 반면 일반론은 그저 “일반적으로, 대체로 그러하다.”란 소리기 때문에 그것을 반증하는 사례가 발견되어도 “그건 예외야.”라고 치워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일반론이 일으킬 수 있는 폐해 중 하나는 그것이 사람들을 강제하고 억압하는 수단이 될 때가 있다는 점이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이성애자다.” ― 그럼 동성애자는? “대중은 일반적으로 어리석다.” ― 엘리트주의적이고 오만한 발언이다. 솔직히 “대중”이란 말로 사람들을 묶어서 군집지능을 평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일 뿐더러, 그건 사안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여자는 일반적으로 소극적이다.” ― 페미니스트들이 들으면 분노할 명제다. “남자는 일반적으로 치마를 입지 않는다.” ― 나는 지금 왜 치마를 입고 돌아다닐까나? (확실히 아까 나갔을 때도 달라붙는 시선이 간질간질해서 거슬리긴 했다.)
  일반적인 명제들에 대한 반례는 종종 나타난다. 그러나 일반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런 반례들을 모두 ‘예외’라고 해버린다. 예컨대 최근에 들은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의 한 선생님이 “학교에 비판적이면 입시에 망한다. 유일한 예외는 유○★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즉, 나는 “학교에 비판적이면 입시에 망한다.”라는 명제의 반례가 아니라 예외로 치부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그놈 본받지 말고 학교 비판하지 마! 그놈은 예외일 뿐이야!” 그런 소리가 아닌가, 대략. 나름대로 입시라는 분야에서 반례가 되고 싶어 한 나의 꿈을 무참히 짓밟는 주장이다.
  내가 일반론은 입 밖으로 내서도 안 된다고 하려는 것은 아니다. “통계적으로 보니 대체로 그렇더라.” 같은 이야기는 물론 할 수 있다. 거시적으로 세계를 이해하려고 할 때 그런 일반론은 많은 도움이 되며 극소수의 반례들을 “예외일 뿐.”이라고 하는 것도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그런 일반론에서 항상 주의할 점은 그것이 미시적인 차원으로 왔을 때 실존하는 개개인이나 집단의 행복에 대한 억압이 되어서는 안 되며, 따라서 반례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거시적일 때와 미시적일 때 일반론을 말하는 사람의 태도가 달라야 한다는 것을 나는 지적할 따름이다.

  따라서 나는, 적어도 한 개인으로서는, 일반론들에 대한 예외로 치부될 바에는 반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