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꿈

메갤/메갈리아 관련 단상

공현 2015. 9. 13. 04:00

메갤/메갈리아 관련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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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메갤/메갈리아에 관해서 청소년활동가들 사이에 약간의 논쟁이 있는 걸로 압니다.

주로 페이스북에서이고, 게시판에 좀 올려달라고 두 분 정도한텐 말을 드린 적이 있는데 아무도 안 올리네여.

 -_-

그래서 메갤/메갈리아의 존재에 대한 판단이나 태도에 대해서 간단히 제 생각을 적습니다.



2

일단 저는 메갈리아를 하나의 현상으로 봐야 하지, 기획이나 운동으로 보는 건 좀 곤란하다는 걸 지적하고 싶습니다. 우발적으로 생겨났고 그 주체들도 유동적입니다. 일베나 네이버댓글란 같은 느낌이죠.

물론 기획 없이 우발적으로 생겨난 현상이란 건 뒤집어 말하면 구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현상이기도 하지만요...

온라인상에 존재하던 여성혐오-여성차별적 담론들에 대해 쌓여온 불만들이 어떤 계기를 만나서 형태를 띠게 된 거라고 단순화해서 말할 수 있겠네요.



3

사실 '미러링'이라는 방식은 운동 단체들이나 인권교육의 과정 등에서 자주 쓰였습니다.

『이갈리아의 딸들』 같은 고전은 말할 것도 없겠고, 청소년활동가들도 체벌 이야기를 하면서 "예를 들어 교사들이 수업에 늦게 들어온다고 해서 교사들이 엎드려뻗쳐서 학생들에게 맞지는 않는다." 같은 이야길 하잖아요?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이성애자들이 차별당하는 걸로 뒤집어서 보여주는 것이나, 이성애자들에게 "언제부터 이성애를 했나요?" 같은 질문을 하는 것도 그런 예입니다.

현실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현실이 얼마나 잘못된 건지 보여주기 위해 이를 '뒤집어서' 보여주는 것은 굉장히 보편적인 방법입니다.

갑자기 '미러링'이라는 방식의 정당성이나 바람직함에 대해 논쟁이 일어나는 건, 그래서 좀 고개가 갸웃거려지기도 해요.


'미러링'은 그것이 그 구조의 부당함을 보여주기 위한 비유이고 카운터라는 맥락이 공유된 속에서는 별로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굳이 '씹치남'이라는 용어 등에 문제제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치녀'에 대한 미러링인 게 명확하니까요.)

차라리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느끼는 부분은 '미러링'이 아니라, 메갈리아 등에서 <진심으로> 이야기되는 것 같은 부분들이 아닌가요? 가령 "혐오는 지능의 문제다" 같은 담론들이요. 저는 여성혐오나 차별을 적극 옹호하는 사람들은 멍청한 사람들이라는 걸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생각해요. 휴...

메갈리아에는 단지 미러링 형식의 글만 올라오는 게 아니고 본인의 경험담이나 각성의 이야기나 각종 주장 글들도 올라오지요. 그리고 미러링을 하다보면 사람들이 진심으로 그 역할에 이입하거나 동일시하거나, 미러링이 아니라 그 내용 자체에 통쾌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여하간 그런 것들에 대해서 경계하거나 비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미러링은 바람직한 운동방식인가' 같은 질문으로 제기되는 건 핀트가 어긋난 거라고 보지만요.


메갈리아라는 현상, 온라인커뮤니티의 존재가 긍정적인가 하면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나, 그 주변에 긍정적 효과를 낳고 있다고 봐요. 메갈리아 용어로 '코르셋 벗기'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임파워먼트의 과정이라고 해도 될까요?



4

활동가가 일베를 할 수도 있고, 오타쿠 커뮤니티에서 놀 수도 있고, 위키를 할 수도 있는 거죠.

청소년활동가들-아수나로 회원들 역시 메갈리아을 하며 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취미 생활로 메갈리아에서 노는 거가 별로 문제될 거는 없다고 보고요. 그걸 무슨 대단한 운동이라고 생각하며 평가하고 비평할 것도 없겠죠. 그리고 온라인커뮤니티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 안에서 의견을 주고받거나 싸우거나 실망을 하거나 재미를 느끼거나 할 수 있는 거고요. 거기에 운동가의 자세가 어쩌니 하고 말하는 건 좀 과잉된 요구 같아요.



5

그런데 여튼 메갈리아도 하나의 인터넷 커뮤니티이고 그 안에 형성된 주류의 의견이나 정서가 있고 문화가 있을 거예요. 그거에 반하는 의견을 그냥 개인의 의견으로 낸다고 해서 받아들여지거나 변화할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런 주류의 의견이나 정서나 문화는 항상 사회의 주류의 지배적인 관점을 반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걸 염두에 두는 건 항상 필요한 일일 거고...


진지하게 메갈리아에서 어떤 주류의 의견을 바꾸고 싶은 거라면 그냥 의견 표명이 아니라 좀 더 계획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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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리아 안에서의 변화뿐 아니라, 메갈리아를 통해서 뭔가 운동을 하고 싶은 거라면 이야기는 좀 달라질 텐데요. 그런 생각들이 있다면 같이 논의도 하고 기획도 하고, 메갈리아가 홍보 대상 / 조직 대상으로 얼마나 유의미한지 검토하고, 개입해서 우리의 기획을 실현시킬 방법을 함께 고민해봐야겠지요.

저는 뭐, 홍보 글을 올린다거나 후원금을 조직한다거나 하는 건 좀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류의 행사나 명분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고 있긴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렇게 기획적으로 의식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메갈리아에 드나들고 그 안에서 교류하는 게 어떤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어색한 일이란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은 없을 거라고 보지만요.

그리고 메갈리아가 더 나은 운동이 되려면 어쩌구 바람직한 운동 방식이 어쩌구 하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 자기 SNS에 중얼거리느니, 운동적으로 어떻게 활용 가능한 공간이거나 커뮤니티인지 조사해서 들고 와서 같이 논의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