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한글날 논평] 이게 한글이 아니면 두글이애오? 청소년 언어문화 그만 까새오

공현 2015. 10. 12. 13:52

[한글날 논평] 이게 한글이 아니면 두글이애오? 청소년 언어문화 그만 까새오

 

 

한글날, 우리가 전국적으로 다굴*을 당하는 날이다. “요즘 애들의 언어 파괴가 심각하다”, “알아먹지도 못할 은어를 쓴다”, “욕설을 한다”며 까대는 것이다. ‘한국어’와 ‘한글’도 구분을 못하는지 꼭 세종대왕을 들먹이며 학교에서나 인터넷에서나 하루종일 꼰대질을 시전하는데 어이가 1도 없음이다**. 우리가 쓰는 말도 분명 자음 14자 모음 10자로 조합하는 한글이다.

 

말 좀 줄여서 하는 게 어때서 그런가? 자기들도 줄임말로 ‘단통법’이니 ‘이태백’이니 ‘지자체’니 잘도 쓰던데 왜 ‘버카충’만 쓰레기냔 말이다. 그딴 기사 써대는 기자들도 자기들끼리 은어 많이 쓰기로 유명하지 않나. 너네가 하면 유식한 거고 우리가 하면 나대는 거냐.

 

욕 좀 하는 게 어때서 그런가? 우리가 욕하는 건 더럽고 폭력적인데 욕쟁이 할머니는 정감 있다고 하고, 자기들은 친구 만날 때마다 '이새끼 씨발 저년 씨발' 하는 건 이중잣대 오진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욕설 중에 소수자 차별적인 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건 쓰지 말아야 할 이유를 함께 이야기하는 방법이 맞는 거지 무조건 ‘어린 것들은 그런 말 쓰지마’ 하는 건 진짜 아니다.

 

언어파괴가 아니라, 언어문화다. 사람들은 언어를 만들고 변화시키고 사용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많은 세대/집단들이 자신들의 언어문화를 만든다. 우리 청소년들의 언어문화에 대해서만 ‘언어파괴’라고 하는 건 우리가 만만하고 우리끼리 통하는 게 아니꼽기 때문 아닌가?


권력을 가지지 못했고 지배적 문화로부터 먼 사람들일수록, ‘고급진’ 언어가 낯설기 마련이다. 예컨대 빈곤계층이나 미국 흑인들 사이에서 비속어 등이 더 널리 쓰인다. 대부분의 청소년들 역시, 여러 공식적인 논의나 결정에서 배제되고, 발언할 기회도 존중받는 경험도 갖지 못한다. 청소년들은 비청소년들과 평등하게 소통할 기회도 적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고급진 언어를 쓸 일도 별로 없으며 학교에 갇혀서나 거리에서나 청소년들끼리만 지낼 일이 많다. 이처럼 사회적 소수자인 청소년들 사이에서 비청소년들 사이의 주류적 문화와는 다른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건 생각하지도 않은 채 우리의 언어문화가 자기들과 다르다고 손가락질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극혐****이다.

 

이 꼰대질도 참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1970~80년대에도 청소년의 언어생활이 “극히 거칠고 퇴폐적”이라고 우려하는 기사들과 함께 한글날에 청소년들이 “쌤통이다”, “피봤다”, “구라”, “공갈” 등의 신조어나 은어를 쓰고 맞춤법도 제대로 모른다며 걱정하는 기사들이 나온다. 겁나 우려먹은 소재라는 것이다. 새로운 말을 못 알아먹겠으면 검색을 하거나 우리에게 질문을 해라. 그 좋아하는 자기주도학습을 좀 해봐라. 괜히 만만하다고 우리만 까지 말고. 청소년들의 언어문화를 존중하고 소통하는 자세부터 가져라. 이제 한글날에는 새로운 이야기 좀 듣고 싶다. 좋은 문학작품도 한순간에 분석하고 외워야 할 글자더미로 만들어버리는 입시교육부터 같이 어떻게 해보는 게 어떨까? 인정하는 부분?*****




2015년 10월 9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다굴 : 집단폭력, 린치

**1도 없음이다 : 하나도 없다

***오진다 : (감정이나 상태 등의 정도가) 엄청나다. 만족스럽다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 ‘오지다’의 변형. ‘쩐다’와 비슷하게 쓰인다.

****극혐 : 매우 혐오스러움

****인정하는 부분? : 동의하는지 묻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