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공현의 인권이야기] ‘숙박’은 권리다

공현 2016. 1. 14. 19:58

인권오름의 '인권이야기' 코너에 연재를 하게 됐습니다.


첫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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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의 인권이야기] ‘숙박’은 권리다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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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활동하는 청소년인권단체에서 전국 행사를 했다. 하루를 꽉 채운 길고 긴 일정을 끝내고 밤 11시가 되어서야 예약해둔 여관에 도착했는데, 여관 입구에서부터 “미성년자 혼숙 금지”, “1997년생부터 출입 가능” 등의 푯말이 가득했다. 나이가 지긋한 여관 주인은 앳되어 보이는 활동가들의 얼굴을 보며 “혹시 미성년자는 아니지?” 라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어찌어찌 잘 넘어가긴 했지만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도 방에 온수가 안 나온다거나 무슨 일이 있어도 청소년인 활동가들은 여관 주인에게 얼굴을 보여주기 부담스러워 말하지 못했다. 안 그래도 1인당 숙박비 1만원도 채 안 되는 싼 곳을 잡느라 시설이 별로 안 좋은 곳에 묵었는데, 그런 일까지 있으니 더 부담스럽고 눈치도 보여 편히 쉴 수가 없었다.
우리 단체에서 전국 단위의 행사나 숙박을 하는 워크숍 등을 할 때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계속 반복되는 풍경이다. 그런데 법적으로 따지고 보면 억울한 일이기도 하다. 법률상으로는 청소년이 모텔이나 여관 등에서 숙박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미성년자의 혼숙 등 풍기를 문란하게 하는 영업’이 금지되어 있을 뿐이다. 이것도 갑갑한 노릇이긴 하지만, 같은 성별끼리 나누어서 잔다면 문제될 것은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숙박업소들은 청소년들을 아예 받지 않는다.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가령 처음엔 따로 들어갔다가 나중에 주인의 눈을 피해 혼숙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숙박업소 주인이나 직원이 누가 방에 출입을 하고 누가 어디에서 자는지를 일일이 보면서 체크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아예 ‘미성년자’는 받지 않겠다고 해버리는 것이다. 그들의 편의와 걱정 때문에 청소년들은 법적으로 금지되지도 않은 추가적인 제한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청소년의 혼숙 등 풍기를 문란하게 하는 영업’을 금지한다는 법 자체에도 문제가 많다. 청소년은 다른 성별끼리 같은 공간에 묵기만 해도 ‘풍기가 문란’해진다는 말인가? 심지어 판례상으로는 ‘혼숙’이란 같이 잠을 자는 것만이 아니라 일정 시간을 함께 있는 것을 포함한다고 한다. “남녀간에 친구는 없다”라고 하는 헛소리만큼이나 이성애중심적이고, 청소년을 무슨 잠재적 문란분자로 보는 듯한 사고방식이다. 게다가 청소년들이 이성간에 성관계를 한다고 한들 그게 무슨 잘못이라는 것인가? 현재 법적으로 만 13세 이상의 청소년은 자신이 원할 경우 동의하는 상대와 성관계를 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 청소년들은 성관계를 할 수는 있으나 숙박업소에서 혼숙을 해서는 안 되는, 즉 성관계를 할 법한 상황에 있어선 안 되는 애매모호한 상황에 놓여 있다.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지지하고 안전하고 즐거운 성 인식과 성생활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기는커녕, 청소년의 성을 손가락질하고 규제하려고만 드는 사회의 단면이다.

청소년은 뭐든 허락 없이 하지 마?

사실 지금 청소년이 모텔이나 여관 등에서 혼자, 혹은 보호자 없이 숙박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놀란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쩐지 청소년은 모텔이나 여관 등에서 보호자 없이 숙박하면 안 될 것 같고, 문제가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인지 몇몇 유스호스텔에서는 청소년들이 숙박하는 경우 ‘보호자(친권자) 동의서’를 요구하기도 한다. 뭐, 친권자에게 민법상 ‘거소지정권’(살 곳을 정할 권리)이란 게 있으니까 아주 이해 못 할 짓은 아니려나. 청소년은 반드시 친권자의 관리와 보호 하에 있어야만 할 것 같고, 청소년이 하는 모든 활동은 ‘어른들’, 주로 부모 및 보호자나 교사 등이 알고 있고 동행하거나 허락해줘야만 된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왜곡된 ‘안전’ 담론 속에서 더 극단적으로 나타나곤 한다. 태안 해병대 캠프 참사가 일어난 이후, 여성가족부와 국회가 청소년이 하는 활동 전반을 국가가 관리하는 방향으로 청소년활동진흥법을 개정하려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개정안의 내용이 매우 황당했다. 숙박/이동형 청소년활동 전체를 정부에 사전 신고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고, ‘신고‧등록‧인가‧허가를 받지 않은 단체/개인은 숙박형 등 청소년활동 금지. 부모 등 보호자와 함께 참여하는 경우 또는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경우만 예외’라는 내용이었다. 문구 그대로 해석하면 이동해서 하거나 숙박을 하는 청소년들의 모든 집단적 활동이 규제당할 판이었다.
이 법 자체는 결국, ‘청소년활동’의 범위가 매우 넓고 모호했기 때문에 대상을 ‘청소년수련활동’(청소년수련활동은 ‘청소년지도자와 함께 청소년수련거리에 참여하는 체험활동’으로 정의된다.)으 로 좁혀서 수정한 안이 통과되기는 했다. 그러나 어쨌든 이런 대책이 논의되는 과정은, 청소년들의 자율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인식을 느끼게 한다. 청소년들의 활동에는 지도자나 보호자가 동행하고 지도해야 하며 문제가 생길 경우 ‘더 큰 어른’으로서 국가가 규제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뭘 하기 위해서는 어른의 허락과 감독을 받아야 하고, 그 어른들은 다시 국가의 허락과 감독을 받아야 한다. 청소년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와중에 실질적인 안전 대책이 진지하게 논의되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숙박의 권리

숙박 이야기로 돌아가면, 숙박의 권리는 단지 청소년들이 숙박업소를 이용할 수 있냐는 소비자로서의 권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청소년들이 친권자의 관리로부터 먼 곳으로 이동해서 스스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느냐, 안정적인 공간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숙박의 권리란 말하자면 이동의 자유이고 신체의 자유이며 주거이동의 자유이고 사생활의 자유이자 사회적 관계를 맺고 활동을 할 자유이다. 이는 청소년들의 폭넓은 사회적 활동, 정치적 활동의 자유를 위해 필요한 전제 조건이다.
예전에 성매매 청소년이 살해당한 사건이 벌어지자 모텔에 청소년 출입을 못하게 해야 한다거나 신분증 검사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기사와 입장이 여럿 나왔다. 이처럼 피해 집단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권리를 제한하여 문제를 ‘근절’하자는 논리가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유독 쉽게 나오고 그런 안이 현실화되기도 쉽다. 좀 더 어렵지만 나은 방법, 안전을 위한 조치나 실질적 지원 등은 뒤로 밀려난다.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의 권리를 하찮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숙박의 자유는 청소년에게도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한다. 아, 그런데 숙박이 ‘자유’롭게 되어도 많은 청소년들에게는 모텔 하나 들어갈 돈도 없는 것이 현실이니 그것을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돈이 별로 없는 이들도 이용할 수 있는 공공성 있는 숙박 공간도 필요할 테고, 청소년들에게도 경제적 권리가 보장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역시 사회권과 자유권은 함께 가는 것이다.

위 사진:YMCA 등의 단체나 언론들은 청소년이 숙박업소를 이용할 때 신분증 검사를 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자주 하곤 한다. (출처: 아시아경제)
덧붙이는 글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70 호 [기사입력] 2016년 01월 13일 18:0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