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논평] 차별과 혐오에, 청소년 핑계는 좀 그만

공현 2018. 2. 19. 15:44
차별과 혐오에, 청소년 핑계는 좀 그만
- EBS 〈까칠남녀〉 사태에 대한 청소년 단체 공동 논평

최근 EBS 토크쇼 〈까칠남녀〉가 조기종영되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공격을 공공연히 가하는 일부 단체(이하 ‘차별/혐오단체’)들이 〈까칠남녀〉를 공격하자, EBS 측에서 양성애자로 커밍아웃한 출연진인 은하선 작가를 출연 중단시키기로 결정하면서 벌어진 사태이다.

EBS의 행태는 〈까칠남녀〉의 당초 기획 의도마저 훼손한, 잘못된 결정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차별/혐오단체들은 청소년들이 성소수자와 성에 대한 정보를 접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를 들며, ‘교육방송’ EBS에서 그러한 내용을 방영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차별과 혐오를 선동하며 청소년을 핑계로 삼는 부적절한 행동이었고, 차별/혐오단체들의 시위는 청소년의 인권을 부정하는 말들의 대잔치이기도 했다.

이들처럼 차별과 혐오를 주장하며 이른바 ‘청소년 보호’를 핑계로 대는 것은 낡디 낡은 수법이다. 청소년을 원하는 대로 통제하고 싶다는 일부 기성세대의 욕망과 소수자에 대한 거부감에 기대는 악의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아직도 이런 말에 혹하는 이들이 있다면 안타까운 노릇이다. “EBS가 우리 아이들 다 망친다.”, “내 자식 동성애자 될까 무섭다.”라고 말하는 차별/혐오단체들은 단지 성소수자를 나쁘다고 여기고 혐오하는 편견을 내보이고 있을 뿐이다. 만약 자식이나 주변 사람이 성소수자라고 커밍아웃했을 때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상상해보면 매우 걱정스럽다. 그들은 성소수자 청소년의 존재를 짓밟고 있는 것이며, 청소년들에게 자신들의 편견과 반인권적 가치관을 따르라고 강요하려 하는 것이다.

차별/혐오단체들은 또한 ‘교육방송’에서 성소수자나 자위 등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소년은 성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 성소수자 등 다양한 소수자에 대해 알고 차별과 편견 없는 인식을 가지는 것 역시 중요한 권리이다. UN아동권리협약은 교육의 목적을 인권의 원칙을 존중하고,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해, 평화, 관용, 평등, 및 우정의 정신을 가지는 것 등이라고 규정하고 있다.(UN아동권리협약 제29조) 그러므로 EBS가 성소수자에 대해 차별과 편견 없는 내용을 전하려는 의도로 〈까칠남녀〉를 기획한 것은 지극히 교육적인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청소년을 성에 대해 필요한 정보로부터 격리시키려는 것은 오히려 청소년의 정당한 교육권과 표현의 자유, 성적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까칠남녀〉를 가리켜 ‘음란방송’, ‘성인방송’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청소년인권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보여 준다. 성에 대한 토크쇼 혹은 성소수자에 대한 방송은 ‘성인’의 전유물이 되어선 안 된다. 지난 1월 초 EBS 앞 시위 현장에서는 “음란 성인 방송 싫어요!”, “동성애 교육은 받고 싶지 않아요!”라는 피켓 옷을 입은 청소년 시위 참가자들의 모습도 보였는데, 그분들도 성에 대한 정보는 청소년은 몰라야만 한다는 믿음이나 동성애를 혐오하는 태도를 하루빨리 버리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차별/혐오단체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자신들의 편견과 거부감이 방송을 중단시키거나 성소수자들이 보이지 않아야 할 이유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EBS가 은하선 작가의 출연 중단을 결정하고 〈까칠남녀〉를 조기종영시킨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EBS가 출연 중단의 이유로 든 것들은 갑작스런 출연 중단을 해야만 했던 이유라기에는 너무나 궁색했으며, 〈까칠남녀〉를 공격한 이들의 의도가 성소수자와 청소년의 인권 그리고 차별 반대의 원칙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것임은 뻔히 보이는 바였다. EBS의 잘못된 결정이, 차별/혐오단체들이 자신들의 편견과 거부감이 보편적 정당성이 있다고 조금 더 오랫동안 착각할 계기가 되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다. 앞으로 〈까칠남녀〉 외에도, 다양한 청소년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서라도, 더 많은 방송과 언론들, 교육의 현장에서 성에 대한 다양하고 적절한 정보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 없는 이야기들이 당연하게 오가야 할 것이다. 청소년인권을 위해서라도 그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역시 노력할 것이다.


2018년 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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