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아이들에게 꼭 맞는 세상(A World Fit for Children)

공현 2008. 3. 21. 01:43



[인권문헌읽기]

아이들에게 꼭 맞는 세상(A World Fit for Children)


“당신들은 미래라 부르지만 우리들은 현재랍니다”

류은숙
아이들의 실종과 끔찍한 살해, 가난한 아동의 증가, 영어천국의 선포, 학원 24시간 개방설로 들쑤셔놓고 슬쩍 들어가는 정책, 1등부터 꼴찌까지를 파악하여 네 위치를 확인시켜주겠다는 일제고사의 부활 등 아이들의 현재를 어둡게 만드는 일들을 보면 미안하다는 말로는 풀 수 없는 감정이 든다.

게다가 요즘 듣기만 해도 한숨이 나오는 광고들은 왜 그리 많은가. 학교, 학원, 독서실, 집, 하루 15시간을 책상에 앉아서 37권의 문제집을 풀고 20권의 연습장을 다 쓰고도 대학에 떨어지는 교육 구조 속에서, 재수를 통해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실패로부터 성공신화를 쓰는 것이라고 귀띔하는 광고, 아이에게 좋은 모든 것을 갖춘 아파트 단지에 살게 하는 것이 아빠의 도리라고 충고하는 광고, 그런 데 살지 않으면 친구보고 놀러오라고 말하기 어려울 거라고 암시하는 광고, 아이의 안전을 위해 왕따 피해까지 보상해주는 보험을 들어두라는 광고의 홍수 속에 정작 아이들이 원하는 세상과 세상살이가 있을까?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아이들이 원하는 세상에 관한 것이다. 이 선언에서 아이들은 “당신들은 우리 아동을 미래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또한 현재”라고 외친다. 너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어른들이 계획하고 행한 것들에 반기를 들며 “우리는 단지 어린 사람들이 아니라 이 세상의 인민이고 시민”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 선언은 2002년 열린 아주 특별한 회의의 결과물이다. 아동의 권리를 주제로 한 유엔특별총회에 앞서 3일 동안 18세 미만의 아동만이 참여하는 아이들끼리의 총회가 열린 것이다. 세계 150여 개가 넘는 나라에서 400여 명의 아동이 유엔아동특별총회에 모였다. 10대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열 살 정도의 아동들도 있었다.

이들은 조를 나누어 자신들에게 중요한 문제들을 토론했다. 아동의 권리와 아동의 참여, 착취, 전쟁, 건강보호, 환경, 가난, 교육 등이 여기에 해당했다. 아동 대표들이 표현한 생각들을 잠깐 들어보자.

“아이들은 대통령의 생각보다 더 깊은 미래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어요. 우리는 모든 문제를 전 세계적 차원에서 봐요. 우리는 해야 될 일이 뭔지 더 잘 볼 수 있어요.”

“아이들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 우리는 그 기회를 위해 싸워야 해요.”

“폭력이 만연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살아간다는 걸 알아요. 난 폭력 말고 다른 대안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가 보는 건 죄다 전쟁, 모든 곳이 전쟁터예요. 더 평화로운 미래를 찾아야 하기에 우리는 희망을 잃어선 안돼요. 희망을 잃는다면 살 가치가 하나도 없잖아요.”

“빈곤퇴치 프로그램에서 내게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나의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이러한 토론의 결과들을 모아서 성명서를 채택했는데 그 제목이 ‘우리(아동)에게 꼭 맞는 세상’이다. 이 성명은 유엔총회에서 아동대표에 의해 낭독됐다. 이 선언을 듣는 유엔총회의 분위기는 여느 때와 달랐다고 한다. 코피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은 “여러분이 여기 있다는 것은 유엔 역사의 새장을 열었습니다. 지금까지 어른들은 총을 외쳤지만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세상을 건설할 때입니다. 여러분의 목소리를 잘 듣겠다고 약속합니다.”라는 말로 총회를 열었다. 아이들의 등장이 국제회의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신선함과 솔직함을 불어넣었다고 하나 그 진정성은 이 선언의 실천에서 확인될 것이다. 유엔특별총회에 참석해 실천을 다짐한 한국 정부도 당연히 그 진정성을 확인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아이들에게 이런 선언을 쓰라고 하면 뭐라 할까? “이거 시험에 나와요?”라고 자동적으로 묻진 않을까, 모범답안을 준비하는 사교육강의가 먼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부터 든다. 아이들이 이런 걱정을 실컷 비웃어주길 기대해본다. 아이들에게 꼭 맞는 세상은 모든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일 텐데 왜 바보짓들을 하고 있느냐고 많이많이 꾸짖어주길 희망한다.

아이들에게 꼭 맞는 세상
우리는 세상의 아이들이어요.
우리는 착취와 학대의 피해자이고,
우리는 거리의 아동이고,
우리는 전쟁을 겪는 아동이고,
우리는 HIV와 에이즈로 인한 피해자와 고아이며,
우리는 양질의 교육과 건강보호를 받을 수 없고,
우리는 정치·경제·문화·종교·환경 차별의 피해자여요.
그런데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아요. 이제 우리들 아동을 고려해야만 할 때예요.

우리는 아동에게 꼭 맞는 세상을 원해요. 우리 아이들에게 맞는 세상은 모든 사람에게도 맞는 세상일 테니까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아동의 권리 존중을 생각해요.
• 정부와 어른들은 아동의 권리 원칙에 대해서 진심어린 실천의 약속을 하고, 유엔아동권리협약을 18세 미만의 모든 아동과 청소년에게 적용해요.
• 가족과 지역사회와 국가에서 아동에게 안전하고 안심되며 건강한 환경을 마련해요.

우리는 착취와 학대와 폭력을 없앨 걸 생각해요.
• 착취와 학대로부터 아동을 보호하는 법률이 실행되고 모든 사람이 그런 법을 지켜요.
• 착취와 학대로 상처받은 아동이 삶을 추스르도록 돕는 센터와 프로그램을 만들어요.

우리는 전쟁의 끝을 생각해요.
• 세계 지도자들은 무력을 쓰는 대신에 평화로운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해요.
• 아동 난민과 전쟁의 피해자들을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호하고, 다른 아이들과 동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해요.
• 군축을 하고, 무기거래를 없애고, 아동 군인은 쓰지 말아야 해요.

우리는 건강보호의 제공을 생각해요.
• 모든 아동은 생명을 구하는 의약품과 치료를 감당할만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해요.
• 아동에게 더 좋은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은 강력하고 책임성 있는 협력관계를 만들어요.

우리는 HIV와 에이즈를 없앨 걸 생각해요.
• 예방 프로그램을 담은 교육 시스템이 있어야 하고,
• 무료로 검사하고 상담할 수 있는 센터가 있어야 하고,
• HIV와 에이즈에 대해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정보가 있어야 하고,
• 에이즈로 인한 고아와 HIV와 에이즈에 감염된 아동은 돌봄을 받아야 하고 다른 모든 아이들과 동등한 기회를 누려야 해요.

우리는 환경 보호를 생각해요.
• 자연자원을 보존하고 구하며,
•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건강하고 좋은 환경에서 살 필요가 있다는 걸 알며,
•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있어야 해요.

우리는 빈곤의 악순환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 투명하게 지출하고 모든 아동의 필요에 관심을 기울이는 빈곤퇴치위원회가 있고,
• 아동의 발전을 방해하는 부채를 없애줘야 해요.

우리는 교육의 제공을 생각해요.
• 무료이면서 의무적인 좋은 질의 교육에 동등한 기회를 갖고 접근할 수 있어야 해요.
• 학교 환경은 아동이 배우는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해요.
• 평생에 걸친 교육은 학문적인 것만이 아니라 상호이해, 인권, 평화, 타인에 대한 수용과 적극적인 시민이 되는 것을 포함해야 해요.

우리는 아동의 능동적인 참여를 생각해요.
• 모든 연령의 사람들이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담긴 정신처럼 아동의 완전하고 의미 있는 참여에 대한 생각을 향상시키고 존중해야 해요.
• 아동은 자신의 권리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모든 단계의 의사결정에 그리고 그런 일을 계획하고 실천하고 점검하고 평가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해요.

우리는 아동의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동등한 협력관계를 약속해요. 당신들이 아동의 편에서 취하는 행동들을 지지할 것을 약속해요. 또한 우리 아동들이 취하는 행동에 대한 당신들의 헌신과 지원을 원해요. 세계의 아동들은 오해받고 있잖아요.

우리는 골치 덩어리(문제의 근원)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열쇠(해결의 자원)예요. 우리는 단지 어린 사람들이 아니라 이 세상의 인민이고 시민이어요.

다른 사람들이 우리들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기까지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위해 싸울 거예요. 우리에겐 의지와 지식과 감수성과 헌신이 있어요.
우리는 약속해요. 어른들처럼 우리는 같은 열정을 갖고 우리가 아동으로서 지금 갖고 있는 우리의 권리를 지킬 거예요.
우리는 약속해요. 각 사람을 존엄성과 존중으로 대할 것을요.
우리는 약속해요. 우리들의 다름에 대해 열리고 신중한 태도를 가질 것을요.

우리는 이 세계의 아동들이예요. 우리의 배경은 다양하지만 우리는 공통된 현실을 같이 갖고 있어요. 우리는 이 세상이 모든 사람에게 더 좋은 곳이 되게 만들려는 투쟁으로 뭉쳤어요. 당신들은 우리 아동을 ‘미래’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또한 ‘현재’랍니다.

유엔아동특별총회에 참석한 18세 미만 대표자 회의
2002년 5월 5-7일 뉴욕

덧붙이는글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95 호 [입력] 2008년 03월 19일 11:3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