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들어온꿈

서태지, 상술이며 혁명?

공현 2008. 7. 28. 12:52
 


  그러나 서태지는 다르다. 그의 첫 모습이었던 1집을 중심으로 볼 때, 탈사랑타령의 조짐은 충분히 보이고 있지만 3집에서와 같은 적극적인 사회적 발언을 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1집에 관한 한 그는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대중가요의 관행을 따르고 있거나(<난 알아요> 등), 탈사랑타령의 내용은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의 자유로움' 정도에 국한되어 있었다(<환상 속의 그대>, <록 앤 롤댄스>). 당시 TV 가요계에서 심상치 않게 관심의 초점이 되어가고 있었던 랩을 소화하여 댄스뮤직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것이 서태지와 음반기획사의 매니지먼트 감각의 합작품이었다는 것까지 생각하면(서태지에 두 명의 '아이들'을 결합시킨 것이 기획의 산물이었음은 이미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다), 1집 시절의 그는 좀 독특하기는 해도 역시 TV 가요의 댄스뮤직 가수였다.

  그러나 2집부터 그는 언더그라운드적 발상을 적극화하고 이를 히트와 연결시키기 시작한다. 인기를 위해서만 뛰는 평범한 텔레비전 '가수'가 아니라, 작품을 위해 몇 달씩 잠적하는 '아티스트', '뮤지션' 같은 태도를 연출한다. 말하자면 존중받을 만한 고유의 작품 세계가 있음을 과시하는 것이다. 그 정점이 <하여가>라는 (작품 내용과는 상관 없는) 한문투 제목과, 간주부에 들어 있는 날라리 소리였다. 우리 것, 국악에 대한 관심이란, 자기 세계를 가지고 있는 이른바 대중음악 '뮤지션', '아티스트'들이 곧잘 드러내는 특성이 아닌가. 이러한 요소는 보도의 초점이 되고, 그것이 히트로 연결되었다. 이러한 것은 80년대를 거치면서 지나친 미국 지향성에 대한 반성과 우리 것 찾기 의식이 소박하나마 대중적으로 확산될 결과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으며, 서태지는 이러한 대중의 성장과 변화를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서태지는 국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5. <내 맘이야>와 <발해를 꿈꾸며>의 차이

  그런데 3집은 더욱 과감하다. 웬만한 언더그라운드 가수들보다 한 술 더 뜨는, 심지어 민중가요에 맞먹을 정도로 과감한 사회적 내용을 노래한 것이다. 통일과 교육 문제. 나는 이 주제의 선택에 너무도 놀랐다. 어쩌면 이렇게 과감하면서도 정확하게 히트의 핵심을 짚어낼까!
  두 주제는 서태지 작품의 중심적 흐름에서는 확실히 비껴나 있다. 그러나 3집에서는 이 두 별종을 히트의 초점으로 배치하고 홍보도 그 방향으로 해나갔다. 시절이 달라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미 1집이 나올 때와는 달리 언더그라운드는 TV 가요의 인기보다도 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고(수적으로는 열세지만 언더그라운드의 팬들이야말로 가장 적극적인 오피니언 리더들이니까), 탈사랑타령의 노래, 그 중에서도 사회성 있는 노래를 자신의 여러 색깔의 하나쯤으로 열어두는 것이 자신의 인기의 수명을 넓고 길게 하는 비법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른바 운동권 문화 공연에 대중 가수들이 초청되고, (그들이 불이익을 당하기는커녕) 그로써 만들어진 새로운 이미지로 더욱 높은 상품 가치를 획득하게 되는 예가, 이선희나 송시현, 김종서나 '인공위성'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대중 가수 매니저들은 개런티를 받지 않고서라도 자기 가수가 운동권 집회에 나가기를 원하고 있고 가수가 매니저에게 등 떠밀려 이런 집회에 나오는 예도 있다). '강산에'의 인기를 주도하는 것이 분단의 아픔을 노래한 <라구요>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런 변화를 서태지는 간파하고 있다. 새로운 내용에 대한 요구가 이제는 대중가요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대세로 드러나며, 생명력 있는 인기의 요소가 되는 엄청난 변화를 말이다. 10대들이 <난 알아요>를 좋아하는 것에 비해, 대학생들은 탈사랑타령인 <환상 속의 그대>나 <수시아> 같은 언더그라운드적 내용을 좋아한다는 것에서도 그런 마음을 더욱 굳게 했을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3집이다. 대학생을 겨냥한 <발해를 꿈꾸며>와 10대를 겨냥한 <교실의 이데아> 두 곡이다. 게다가 <발해를 꿈꾸며>는 10대들이 부르기에는 꽤 어려운 화성과 선율을 구사하여 지적인 수용층을 겨냥하고 있으며, 대신 <교실의 이데아>는 10살 짜리도 따라 부를 수 있는 직선적인 랩을 양식으로 쓰고 있다. 23세 짜리의 계산치고는 너무도 정교하다.
  그러나 1, 2, 3집 음반 전체를 놓고 보면, 역시 그의 작품 세계의 일관성이 찾아지는 작품은 <내 맘이야>나 <제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작품들이다. '바로 지금 여기 있는 나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면서도 내면적 자아 분열을 경험하는 바로 그 내용이야말로, <환상 속의 그대>로부터 이어지는 그의 고유한 작품세계인 것이다. 그래서 <내 맘이야>가 얼마나 서태지적인지 모른다. 이 내용은 앞으로의 음반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그에 비해 <발해를 꿈꾸며>는 (비록 히트는 하고 있을지언정) 서태지의 절실한 경험과는 가장 거리가 먼 작품으로 보인다. <내 맘이야>나 <교실의 이데아>만큼도 진심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생생한 표현이 없기 때문이다(<교실의 이데아>는 사회적 내용을 담겠다는 계산적 의도와 자신의 절실한 체험이 일치한 경우이다>.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가사가, 천재 서태지치고는 너무도 상식적인 수준이고 사랑타령의 대중가요 잔재가 부조화하게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 작품은 대학생들에게 히트하며, 대학가에서 음반 판매고가 눈에 띄게 증가한다. 자신의 고유한 작품 세계와 히트의 요소를 나누어 생각하고 이를 통제해내는 능력, 고도의 매니지먼트 감각이, 작품 창작에 간여한 결과이며, 이것이야말로 서태지의 TV 가수적 면모이다.
  그렇다. 서태지는 언더그라운드의 작품 성과를 매니지먼트 능력으로 TV 가요계로 끌어올림으로써, 10대로부터 30대 초반에 이르는 넓은 대중층을 자신의 팬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언더그라운드의 성과를 그냥 베껴먹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식으로 소화하고 오히려 그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과감함과 높은 예술성을 보인다. 그는 아류가 아닌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90년대의 수퍼스타일 수 있다. 후제의 한국 대중가요 연구자들은, 트로트로부터 60년대 풍 이지리스닝을 거쳐 록에 이르는 당시 대중가요 전 장르를 완벽하고 수준 높게 소화하고, 때와 장소에 따라 정확하게 이미지 변신을 해낼 정도로 고도의 매니지먼트를 구사했던 조용필이야말로, 80년대에 10대로부터 60대에 이르는 전 계층을 팬으로 삼았던 수퍼스타였음을 짚어내면서, 그 뒤를 잇는 90년대의 수퍼스타가 서태지였음을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이영미. 『서태지와 꽃다지 - 대중문화 시대의 예술의 길찾기』. pp.168-171. 도서출판 한울. 1995. 에서 발췌.

「다시 서태지를 이야기하며」(《사회평론 길》 1994년 11월호). )




이 글이 발표된 건 1994년 11월이고, 그 이후에 서태지가 발표함 음악 중에서 사회적인 발언이라고 할 만한 건, 글쎄 내가 서태지의 음악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어서 그럴지 모르지만 <시대유감>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다.
이후의 서태지의 음악 경향 같은 것을 볼 때, 이런 분석은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발해를 꿈꾸며>가 당시에는 화제가 되었을지 몰라도 분명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더 오래 살아남은 건 절실한 경험과 마케팅 기획이 일치한 <교실이데아> 쪽이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좋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약간의 힌트가 되어주는 것 같다.

사실 이 글을 굳이 발췌해본 것은, 서태지 자체를 비판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나는 이영미 씨가 서태지가 "혁명이냐 상술이냐"하는 이분법으로 재단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한 것에 대해 동의한다.
서태지의 경향성은, 차라리 상술을 위해 혁명을 차용하고, 그런 상술도 어떤 의미에서는 혁명에 차용되는 시대를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을 개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내가 굳이 이 부분을 열심히 타이핑하며 발췌한 것은, 서태지는 음악의 천재였고 동시에 사회적 비판 의식도 킹왕짱 있었다는 그런 서태지에 대한 신격화에 가까운 환상을 고집하는 서태지 팬들에 대한 심술성 태클에 가깝다.

예컨대,
서태지, 신화가 되어버린 아웃사이더
이 글을 쓰신 분은 "서태지와 그런 잔머리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하시지만,
글쎄... 오히려 나 같은 경우는 서태지의 음반에서 그런 것들을 느껴왔다.
 (그리고 그게 어울린다는 게 욕이라는 쪽이 이상한 건 아닐까.)
혹은, 서태지 씨 본인의 방식과 매니지먼트의 방식이 여러 가지 형태로 공존하는 것일 수도 있고.



솔직히 <시대유감>도, <발해를 꿈꾸며>도 이 글을 쓰면서 모두 들어봤지만,
지금 와서는 이건 대체 뭘까, 하는 느낌이 들 따름이랄까, 조금은.
그건 발췌한 글의 표현으로는 절실성의 문제일 수도 있고
비판 혹은 표현의 깊이의 문제일 수도 있다. (<시대유감>이 <발해를 꿈꾸며>보다 낫지만)




* 서태지 15주년, 그리고 대선을 맞이하여 과거의 정치적-사회적 변화들을 돌아보다가.


(라면서 2007년 12월에 썼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