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시 - 새벽녘, 방에서

공현 2008. 1. 10. 14:54


새벽녘, 방에서


째깍 얼핏 들었던 잠이 초침 소리에 깼다
꿈속에 떠돌던 귀가 시계에 머문 때문이다
자리에 일어나 앉아 두리번대다 습관적으로 뻗은 손
깜빡대는 형광등
파르르 숨을 떠는 방

창 밖을 본다
북향방도 내일에 설렜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잠겨진 창문으로 내다본
어슴푸레 풍경은 희미한 얼굴에 가려질 뿐
거울이 된 유리창,
방이 흘린 웃음이 나가지도 못하고
잔향만 속삭이며 간질거린다

물러나서 몸을 기대면
등에 닿은 벽이 하얗게 시리다
벽에는 꽃들이 피어 있지만
꽃들도 떨고 있다

내가 잠들던 방은 이 방이 아닌가
내가 한숨을 내쉰 방은 이 방이 아닌가
내가 코를 풀고 뺨을 닦던, 자꾸만 나를 삼키던 그 방은
이 방이 아닌가
내 방은 이제
개미 같은 귀울림과 아련한 기시감에서만
겨우 엿볼 수 있는가
그래서 내 주머니의 열쇠는 문에 맞지 않는가

접힌책 부러진샤프심 지우개가루
헝클어진 책상 앞에 앉아보지만
이 방엔 손수건조차 휴지조차 없다
나는 제대로 쓰지 못한다
일기도 편지도 유서도

창 아래로 누가 지나가는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주먹을 쥐고 유리창을 두드려본다
창 아래로 누가 지나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