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시 - 2월 14일 신도림에서

공현 2009. 2. 21. 22:50



2월 14일 신도림에서


0
죽음에 달리는 주석들이
지하철 가판대를 장식하고
말이 필요 없는 죽음이란
사치스럽기만 한 어느 날
한 세입자가 신도림역 앞을 걷고 있네

1
검붉은 아스팔트 위에 늘어서
밋밋하게 으르렁대는 차들은
신도림 영등포 노량진을 지나 용산까지 가고
용산에서 으르렁대는 경찰버스들도
검붉게 도열한 전의경들의 구호도
차들을 밟고 밟고 메아리쳐오네
주석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본문보다도 더 길게 외치고 있네

2
구석진 어디는 축축하게 썩어가는 반지하
닫을 수도 없는 창문 너머로
선명한 발자국 소리가 들릴 때면
죽은 척하는

매년 2월 말이면 골목골목을 떠도는 세입자
벼룩시장을 기웃거리는 벼룩 같은 삶은
500만원 뚜껑 아래서 폴짝이고 있네

3
여기저기 주석이 달린 죽음들과 검붉은 정체
골목골목을 떠돌며 썩어가기를 준비하는 세입자
신도림과 용산 사이보다도 더 가깝게 다가오는 숨소리들









2월 14일에 일단 올려둔 시를 고쳐서 다시 올린다. 아직도 마지막 행은 좀 스스로 흡족하지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