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학교폭력? 학생간 폭력? 학교의 폭력? 사회의 폭력?

공현 2009. 3. 3. 17:14
아수나로북, 학생간 폭력 글로 새로 쓴... 거의 마감에 빠듯하게 맞춰서 썼는데 정작 원고에 안 넣어 보냈다가 다시 넣고 이러쿵저러쿵..............

요즘은, '솔직함'이 중요한 가치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많이 한다.





“학교폭력”? 학생간 폭력? 학교의 폭력? 사회의 폭력?



  어쩌면 부끄러운 고백일 수도 있지만, 소위 “학교폭력”이라고 이름 붙여진 인권침해 문제는 청소년인권운동에게는 취약한 부분 중 하나였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며 싸우는 청소년인권운동에게 청소년들이 폭력의 ‘가해자’의 위치에 있는 사안을 다루는 것에 곤란함을 느껴왔다는 것이다. 다른 사안들과는 성격이 많이 달라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잘 모르겠달까….
  두 번째 이유는 좀 더 복잡한데, “학교폭력”을 정부라거나 이 사회가 청소년들을 억압하는 빌미랄까 도구로 이용해먹은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것을 신중하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학교폭력”은 일진회 사건 등이 이슈화된 이후로 청소년들의 미성숙성, 충동성을 나타내는 상징처럼 사용되었고 청소년인권침해를 정당화하는 심정적 근거가 되기도 했다. 청소년들을 너무 풀어놔줬기 때문에 “학교폭력”이 발생하며, 청소년들을 더 빡세게 두들겨 패가며 학교 교육에 붙들어놔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나왔던 것이다. 학교 안에 CCTV(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것도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서라는 명분 하에 시행되고 있으니….
  사실, “학교폭력”은 그 명칭에서부터 문제가 있다. 이 “학교폭력”이란 말은 1990년대 중반에 유통되기 시작한 말이다. 1990년대 중반이면 청소년인권운동이 그 첫발을 내딛던 시기이기도 하다. 처음에 “학교폭력”이 심각하다는 말이 뉴스에 나왔을 때 거의 최초의 온라인 청소년인권모임이었던 ‘중고등학생복지회’ 사람들은 “드디어 선생들이 학생들 패는 게 뉴스에 나오나보다!”하고 TV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그러나 웬걸, 거기서 나온 건 학생들 사이의 폭력만 나오고, 선생들이 학생들에게 행사하는 폭력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아서 좀 벙쪘다고 한다.
  이처럼 “학교폭력”은 실제로는 “학생들 사이의 폭력”을 가리키면서 “학교폭력”이란 명칭을 쓰고 있으며, 이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다른 수많은 폭력들 ― 교사의 체벌, 언어폭력, 입시경쟁과 강제적 교육시스템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구조적 폭력 ― 은 ‘폭력이 아니’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 물론 반대로 긍정적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다. “학생간 폭력”은 학생들이 나쁘고 악독해서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라, “학교”라는 시스템 속에서 구조적으로 일어나는 문제라는 의미로.
  어찌 되었건, 이런저런 어려움과 곤란한 점들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인권운동은 ‘학생간 폭력’ 문제에 대해 나름의 입장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학생간 폭력에 대해 청소년인권운동이 이런 입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라는 100% 완성된 정답을 제시하지는 못하겠지만 나름 이런저런 고민들을 풀어놓으려고 한다.


일부 날라리 양아치들의 문제?

  학생간 폭력을 바라보는 시선 중에 가장 일반적인 것은, 학생간 폭력이 일부 문제가 있는 ‘날라리’, ‘양아치’들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며 이런 문제가 있는 학생들을 격리하거나 강력하게 처벌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범죄는 사회적인 것이고, 더군다나 그 범죄 행위가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면 그 사회적 원인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일부 ‘문제집단’을 만들어서 그 문제집단에게 부정적인 낙인을 찍고 쫓아내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이런 해결방식은 반인권적이기도 하다.
  학생간 폭력의 유형을 딱딱 나눠서 이야기하는 건 무리겠지만 그래도 몇 가지 예를 들 수는 있을 것이다. 빈곤이나 낮은 성적, 가정 환경 등의 문제로 자존감이 낮거나 차별받는 학생들이 자신들을 표현하고 표출하는 수단으로 폭력을 택하는 경우, 집이 부유하거나 성적이 좋거나 선배라거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학교 안에서 권력이 있는 학생들이 그 권력을 이용해서 다른 소수의 학생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경우, 획일적인 생활 환경에 길들여져서 자신과 다른 차이가 있는(장애, 피부색, 말투, 성적 지향 등) 학생에게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그 소수자 청소년을 괴롭히는 경우, 청소년들 사이에 우발적으로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 등등…. (이 중에서 청소년들 사이에 우발적으로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는 때때로 큰 부상이나 사고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중요하게 다루지는 않겠다. 보통 문제시되는 ‘학생간 폭력’은 일방적이거나 지속적으로 폭력이 가해지는 경우들이니까.)
  학생간 폭력은, 대부분의 경우에 사회적인 요인들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 가해/피해 학생들의 성장사이든 계급적 위치이든 아니면 이 사회의 획일적이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이든…. 특히 빈곤 청소년들은 가정 환경, 사회적 차별, 입시경쟁교육에서의 탈락과 열패감 등의 요인 때문에 가해자가 되기 쉽다. 끔찍한 폭력의 가해자들을 옹호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학교폭력 가해자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은 언뜻 듣기에는 그럴 듯해 보이지만 어쩌면 사회 구조적인 피해자들을 양산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게다가 폭력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보통 퇴학, 징역 등의 처벌을 뜻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보통 가해자 청소년들을 사회에서 탈락·배제시킴으로써 더 많은 범죄자들을 만들어내는 결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역으로 말해서 학생간 폭력은, 일부 정신이 이상하거나 폭력성이 과도한 문제적 개인들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학생들 사이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또 일어나고 있는 문제이다. 학생간 폭력이 발생하기 쉬운 여러 가지 조건들은 그것이 빈부격차이건 가정에서의 폭력이건 수직적 권력 구조이건 경쟁적 교육환경이건,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간 폭력을 이야기할 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폭력의 재생산이다. 학생간 폭력의 가해자들 중 상당수가 어떤 형태로든 폭력의 피해자였던 경험과 상처가 있다고 한다. 가정에서 당한 폭력이건, 교사에게 당한 폭력이건, 다른 학생에게 당한 폭력이건. 실제로 학생간 폭력의 피해자였던 사람이 몇 년 뒤에 학생간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경우들은 몇 차례 보고된 바 있다. (관련해서는 청소년폭력예방재단 등에서 나온 사례 자료들을 참고하시라.) 그리고 선후배 사이에 발생하는 폭력의 형태들은 종종 교사가 학생들에게 ‘기합’을 주거나 체벌을 가할 때의 모습들을 모방한다. 이런 폭력의 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군사주의·군대식 문화 등과도 맞닥뜨리게 된다.
  폭력은 재생산된다. 폭력의 상처를 몸과 마음에 아로새긴 사람들은 그 폭력을 다시 재현하기 쉽다. 학생간 폭력을 이야기할 때 교사의 체벌이나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하는 많은 폭력들, 그리고 가정에서 일어나는 체벌이나 학대 같은 폭력들에 대해 간과하고 갈 수 없는 이유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학생간 폭력은 철저하게 사회적인 폭력이다.


학생간 폭력이 없어지려면…

  학생간 폭력에 대해 우리가 단기적 조치로 요구할 것은 많다. 우선, 문제가 발생하면 ‘학교의 명예’를 따지며 이를 덮고 은폐하려고만 드는 많은 학교들의 태도와 행태는 당장 고쳐져야 한다. 학생들의 존엄성, 인간성보다 학교의 명예(그리고 일부 교장, 교감 등의 승진)를 더 중요시하는 듯한 이런 태도는 계속 문제가 되어 왔다. 지난 2008년에도 강원도 한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학생회장이 폭력을 휘둘러서 다른 학생이 죽은 사건을 축소시키려고 하는 학교 측의 태도에 항의하며 거리로 나온 사건이 있었다. 학생간 폭력 때문에 목숨을 잃은 피해자들의 부모들은 학교 측의 태도 때문에 자기 자식이 학교로부터 버림 받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경우들이 많다. 학교(교장, 교감, 교사들을 포함해서)에서 학생간 폭력 문제 해결에 성의 있게 임하기만 해도 학생간 폭력 문제는 많이 감소할 것이며, 못해도 피해 학생들은 더 적은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또한 피해 학생의 치료에 드는 비용을 국가, 학교가 제대로 부담하지 않고 있는 현실도 문제다. 학교안전공제회에서 규정상 학생간 폭력의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집행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학교측은 학생간 폭력 사건에 책임을 지는 것을 회피하는 일이 많다. 학생간 폭력의 피해자들은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치료하기 위한 치료비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여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곤 한다. 보편적인 건강권 보장의 측면에서라도 이를 이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
  학생간 폭력의 가해자들(때로는 피해자들에게도)에 대한 대응 방식도 문제다. 한국의 형벌 제도는 보통 처벌 위주로만 되어 있고, 이는 청소년들에 대한 형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학생간 폭력 가해자들을 그냥 훈방시키거나 ‘강제전학’ 보내는 정도로 사건을 덮는 것도 문제이고, 가해자들을 ‘소년원’에 처넣는 게 능사인 줄 아는 것도 문제이다. 학생간 폭력이 사회적 요인들로 인해 일어나는 것임을 인정한다면, 가해자들에 대해서도 폭력 재발을 방지하고 가해자들이 처해 있는 사회적 조건들, 심리적 상황들을 개선할 수 있는 실질적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그것이 상담이건 다른 생활 환경의 제공과 치유이건.
 
  그러나 방금 언급한 조치들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학생간 폭력 자체가 완전히 예방되지는 않을 것이다. 방금 이야기한 것들은 모두 사후적인 조치일 뿐이다. 학생간 폭력, 또는 “학교폭력”을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 차라리 그냥 학교를 없애 버리는 게 어떠냐(사실 반 정도는 농담이 아니다.)고 말할 정도로 그 해법은 쉽게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학생간 폭력이 수많은 사회적 모순들이 상호작용해서 나타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간 폭력이 지극히 사회구조적 문제임을 인식할 때, 그리고 그런 사회구조적 문제들을 하나하나 오래 걸리더라도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학교폭력”을 없애기 위해 감시카메라들을 학교에 설치하겠다고 날뛰는 것 이상의 더 좋은 대책이 나오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