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들어온꿈

인권을 억압하는 자들을 숙청하라 (다산인권센터 박진 씨 글)

공현 2009. 4. 18. 15:36

 


인권을 억압하는 자들을 숙청하라


박진


 


대뜸 전화기 너머로 격앙된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거기 인권단체죠?"

감정이 철철 흘러넘치는 목소리다. 이런 류의 질문을 대뜸 던질때 우리는 긴장한다. 너희같은 것들이 무슨 인권이야. 로 시작되는 욕설일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그럴때는 아무리 마음을 가다듬고 정중히 경청하더라도 감정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어서, 재수 없게 전화기를 잡았던 활동가는 그날 하루, 우울모드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목소리가 젊다. 대부분 나이 꽤나 잡순 남성 어르신의 목소리는 일단 아니다. 그나마 다행이다. 짧은 순간 스치는 생각. 학생인권캠페인을 나갔던 학교의 열혈보수 오른쪽 학생인가. 그런 경우도 가끔 있으니까...그럴때는 정말 슬프다. 자신들의 아픔과 반인권적인 상황을, 공부라는 이름으로 모두 덮어버리는데, 그런 일에 학생 스스로가 나서면 정말 정말 속상해 버린다. 그런데 이어지는 대화는 그게 아니더라. 다행이다.

"학생한테는 인권이 없는건가요?' 마치 비명같다.

우리가 캠페인을 나가는 학교도 아니란다. 속사포 같이 쏟아진다.
"선생님이라고 우리한테 마구 욕해도 돼요?"
"머리를 자르라는데, 공부하고 머리길이하고 무슨 상관이예요?"
"부당하다고 하니까, 안경 벗으라고 때리려고 해요. 아니 사실은 끌려 가서 맞았어요"

그래, 맞다. 듣고 있자니, 고대 노예제 사회도 아니고, 억울하고 억울하고 분통터질 일이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저당잡힌 자유와 권리가 너무 많다. 이유는 오직 하나, 학생이기때문이다.

"우리 애들 지금 백명 모여있습니다. 모두 화가 많이 났어요. 가만 두고 싶지 않아요. 도와주세요."

벌점제로 자퇴한 친구들은 없냐고 물었다.

"왜 없어요. 작년 우리반에서 다섯명이나 벌점제로 자퇴했어요."

백 명의 반란군은 왁자지껄 시끄럽기 그지없다. 저항의 의지를 모으는 중인가 본데, 대견하기도 하고 딱하기도 하고 마음만 어지럽다. 도대체 이 사회는 왜 이토록 하나부터 열까지 엉망이 아닌 곳이 없나 말이다. 사람답게 살자고 하는 사람이 어린 학생부터 노동자, 농민, 기자, 선생님, 철거민, 가족을 먼저 보낸 유가족 할거없이 백방이다. 안타깝다.

"일단 이럽게 합시다. 우선 백명이 서로를 믿고 함께하겠다는 게 중요합니다. 알겠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미안하게도 아무도 학생들 편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믿지 않으면 안됩니다.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해서 조목조목 반인권적인 사례들을 모으세요.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지도 정리해 보세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우리는 이걸 실현시키기 위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도 의견을 나누세요. 그리고 저녁에 다시 통화합시다."

학생에게 인권이 있냐고? 어떤 대답을 원하는가, 학생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보되어야 한다고 대답하고 싶은가? 아니면 당연히 인권이 있지...라고 대답하고 싶은가. 나는 모든 대답이 다 우둔한 답이라 생각한다. 현실에 학생에게 인권은 없다. 다만 그것을 얻기 위해 쟁취할 때만 인권은 있다. 그것이 인권의 오랜 역사이기도 했다.

내 머리에 다른 사람이 함부로 가위질을 가져다 대는 한, 어른이라는 이유로 어린 사람에게 욕해도 된다는 뻔뻔한 답이 거침없이 돌아오는 한, 매질과 폭력이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허용되는 한, 경쟁질서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야, 일단 경쟁력 있는 사람부터 되라고 부추키는 사회가 있는한, 당연, 인권은 없다. 그래서 당신들의 몫? 당연히 싸움과 저항밖에 없다.

인권을 억압하는 자들을 숙청하라. 답은 그것이다.


*박진님은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입니다.


*사진은 메이데이출판사에서 나온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 ㅋㅋ"의 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