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들어온꿈

[참세상] 6.10 섞이지 못한 구호와 민주주의

공현 2009. 6. 11. 10:17

6.10 섞이지 못한 구호와 민주주의

"수권정당을 만들어 달라"고 돌아온 대답

이꽃맘 기자 iliberty@jinbo.net / 2009년06월11일 1시34분

장면 1. 10일 오후 5시 경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적힌 노란색 손수건을 든 쌍용차 노동자들이 버스에서 내린다. 방금 공장을 나온 듯한 작업복 차림. 서울광장에 선 노동자들의 목소리에서는 설레임마저 느껴진다. 핸드마이크를 든 한 여성이 “정리해고 반대한다”를 외치자 노동자들은 한 글자 씩 쪼개어 팔박자 구호를 외친다. 정.리.해.고.반.대.한.다. 서울광장 주변을 한 바퀴 돈다.

장면2. 같은 시각 서울광장 중앙에는 천막이 쭉 쳐있다. 햇볕이 닿지 않는 천막 아래에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앉아있다. 그들 뒤로는 “국민이 주인이다. 대통령은 사죄하라. 광장 없이 민주 없다”고 쓰인 플랑카드가 걸려있다. 경북에서 왔다는 민주당 관계자가 “반드시 전국정당이 되어서 경북에서도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외친다. 정범구 전 의원이 ‘광야에서’를 함께 부르자고 제안한다. 박영선 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며 손을 흔든다.
장면3. 집회가 시작되고 쌍용차 노동자들은 무대 앞 쪽에 자리를 잡았다. 무대 왼쪽 스크린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라크에 파병된 군인들과 포옹을 하며 웃는 사진이 뜬다. 구호를 외칠 때 마다 노동자들은 “해고는 살인이다”를 있는 힘껏 든다. 노란 손수건 무리가 섬처럼 하늘로 떠오른다.


87년에서 22년이 흐른 서울시청 앞 광장. 쌍용차 노동자들의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외침은 ‘민주회복’이라는 구호에 섞이지 못했다. 용산에서 죽어간 철거민들과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 열사의 죽음은 성명서 한 귀퉁이에 담겼지만 결론은 “2012년 민주개혁정부를 다시 수립하자”는 것이었다.
“직선제가 없었다면 이명박도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정치인의 말은 “수권정당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는 말로 돌아왔다. 서울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민주주의 쟁취하자”고 외치자 무대로 오른 정치인은 “그러니 야당에 힘을 실어 달라”는 고백으로 답했다.
서울광장을 연 공은 밤새 천막을 쳤던 국회의원들에게 돌아갔다. 사회자의 “국회의원들에게 박수를 보내주십시오”라는 요구에 시민들은 순간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 모든 영광을 국민들에게”라는 정치인들의 말에 위로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한 활동가는 “들러리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광장에 사람들은 많은 데 광장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다”라고도 했다.
“왜 나오셨어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친다는 한 선생님은 “저항정신을 기억하기 위해”라고 답했다. 그 선생님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이명박 대통령이 분명히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그럼 대안은?”이라는 질문에 “계속 거리로 나오는 거죠”라며 웃었다.
이광일 성공회대 교수는 “시청 앞이 아니라 용산에 민주주의가 있는 이유는 다양한 사람들이 삶으로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이광일 교수는 “비대칭적인 힘들이 평등해 지는 것,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여성과 장애인들이 서로 평등하게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국민대회 1부가 끝나고 2부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문화제가 시작하자 깃발 밑에 있었던 노동자들이 술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화제를 마치고 “살인정권 물러나라”를 외치던 시민들은 전경들의 강제 해산에 다음 약속을 잡지 못하고 헤어졌다.
2009년 6월. 야당들의 지지율이 올라갔다는 소식은 들려도 쌍용차 노동자들의 정리해고가 백지화 되었다는 소식은, 용산에서 죽어간 철거민들의 장례가 치러진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