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시 - 유령

공현 2008. 1. 13. 22:31
유령

 하얗게 차가운 시멘트벽을 더듬자 톡 튀어나온 모난 스위치가 닿았지만 불은 켜지 않았다
 형광등 속을 어렴풋이 낮이 뛰놀지만은 불은 켜지 않는다

 줄이 맞지 않는 책상들
 제멋대로 구석에 쌓인 빗자루와 대걸레
 약간은 검고 약간은 흰, 동강난 분필들

 녹색으로 흔들리는 비상구 표시 하얀 사람이 그 속에서 달리지만 뛰쳐나오지 못한다 창틀 그림자가 앉는다
 멀리서 복도가 울린다

 제목은 다 지워지고 푸르스름한 실루엣
 색을 알 수 없는 얼룩이 묻어있는 덩어리
 형광등 없는 자리에 뛰어든 밤 가로등

 복도 우는 소리 다가온다 귀를 막는다
 째깍째깍 초침소리도 이내 들리지 않겠지, 그렇겠지
 눈을 감고 유령이 앉는다 녹아버린 서리처럼 투명하게 소리 없이 무게 없이 부푸는―

 타타탁!
 튀기듯 밤이 쫓겨간다 햇볕에 탄 얼굴 낮을 들고 수위가 화를 낸다
 가방을 메자 발소리가 쿵, 복도를 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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