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시 - 발자국

공현 2008. 1. 13. 22:40
발자국

새벽 가까운 데 서있다
긴 그림자 나무 아래 붉은 땅 위
비치는 발자국
꼭 내 발만 한
발자국

누구의 것일까, 되짚는 새에
발자국은 구두가 되고
손바닥이 얼굴이 되고
목소리가 되고 체온이 되고
어느새 내 발보다 커지고

무릎 꿇고 쪼그리고
손끝으로 핏줄 같은 결을
하나하나 읽어본다
눈을 깜빡이며 읽어본다

검버섯 핀 단풍잎처럼
하얀 곰팡이가 슬어 있는
길게 뻗은 햇살에
곪은 상처처럼 젖어 오는
발자국

얼마 안 있어 데워진 태양이
잠 깬 얼굴로 남중할 테지만
얼마 안 있어 연둣빛 잔디가
붉은 땅을 덮으며 자라올 테지만
구름에 실려온 찬 숨소리

발개진 눈으로 손으로
비치는 발자국을 만지작거리고
그림자가 짧아지도록 잔디에 가리도록
만지작거리고

바싹 말라 가난해진 단풍나무
구름에 가려 자라지 않는데
녹슬고 오그라든 단풍잎이
발자국에
오래된 화석처럼 박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