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인권에 깽판친 현병철 취임식 - 님은 인권위원장도 아님

공현 2009. 7. 21. 21:36


어제, 그러니까 7월 20일 월요일에 현병철 씨의 국가인권위원장 취임식이 있었습니다. 원래 지난주 금요일에 하려고 했었는데 인권단체들의 저지로 무산되었죠.

20일 오후 1시경에도, 13층 위원장실 들어가는 길을 막고 선 인권활동가들로 현병철 씨의 첫 출근은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저를 비롯하여 인권활동가들은
"인권위 독립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떻게 지켜나갈 거냐."
"인권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는데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인권위의 독립성과 인권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가라"
"오늘 아침부터 경찰이 장애인들이 인권위에 들어오지 못하게 입구 경사로를 막고 엘리베이터도 끊었는데, 이런 인권침해와 장애인 차별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옆을 지나쳐서 취임식 하러 들어오는 게 말이 되느냐" 등을 외치며 복도를 막았습니다.

현병철 씨는 인권에 대해 전혀 모르셔서 그런지 거의 말을 안 하고, 옆에 있던 다른 인권위 직원들이 대신 대답을 해주더군요. (-_-)
인권위 직원들은 이 자리에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을 하겠냐고 했는데,
ㅇㅎ 활동가가 "갑자기 물어본 게 아닙니다. 목요일내정 때부터 현병철 씨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금토일 지나면서 월요일에 임명장 받을 때까지 현병철 씨는 뭘했습니까? 이런 우리의 문제제기에 대해 대화하려고 하거나 입장을 밝혔습니까?"라고 따져 물었고, 그러자 인권위 직원들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들은 걸로는, 현병철 씨는 1시 13층 앞에서 딱 두마디를 했습니다.
"이런 자리에서는 대답할 수 없다. 취임사에서 이야기하겠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인권을 존중하지 않고 있다."

특히 두 번째 말(무슨 경찰도 아니고...)에 매우 화가 나더군요 -_-
우리 병철이는 인권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적당히 중립적이고 적당히 온건하게 '대화'하고 걍 서로 '존중'하는 것?



현병철 씨는 13층 위원장실로 가는 걸 포기하고 12층으로 도망갔습니다.







그 다음에는 저는 다른 활동가들이 10층, 13층을 맡고 있어서 1층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평온하고 인권단체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던 인권위 안에 비해서 1층은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깜짝 놀랐죠;;



















사진에 나온 장소는 국가인권위원회 앞입니다... 잘 안 믿어지지만;

오전부터 경사로를 막고 있던 경찰들은 오후가 되고 우리가 기자회견을 한 뒤 취임식 전에 공개질의서를 전달하러 가려고 하자 문을 통째로 틀어막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막고 선 경찰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죠.

참 처절했...습니다.

20명도 안 되는 활동가들과 거의 백 명은 되어 보이는 경찰들

휠체어를 탄 장애인 활동가 분은 경사로를 막고 못 올라가게 하는 건 우리보고 기어서 올라가라는 거냐고 외치면서 휠체어에서 내려서 계단을 기어서 올라가려고 하다가 경찰들한테 막히고... 막히고... 더위 속에서 실랑이하다가 탈진한 활동가들이 주저 앉아서 경찰들 다리와 방패를 붙잡고 밀고 당기고...

저는 옆길로 돌아서 경찰들 뒤에서부터 같이 길을 트려고 하다가, 그리고 다른 경찰들한테 끌려 나오는 활동가를 도우려고 하다가, 경찰들한테 3번이나 들려서 나갔습니다. 처음엔 바닥에 좀 사뿐히 내려놓더니 세 번째 되니까 바닥에 좀 거칠게 던지던데요 -_-;

밖에서 난리가 나고... 장애인들은 못 들어오고... 그러는데도 현병철 씨는 한 번 나와보지도 않았습니다.
인권위 사무총장이 나와서 철수해달라고 경찰에 요청할 때 경찰이 "위원장도 아니고 일개 직원의 의견을 따를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말했을 때도
현병철 씨가 나와서 경찰한테 철수해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전경들한테 던져지고 땅바닥을 구르고 무릎에 찌확실히 알 것 같았습니다. 말만 그럴 듯한 위원장이 될 거란 걸.



금요일엔 경찰도 없고 좀 안 빡셌다고 해서 그냥 저 혼자 오고 다른 활동가들한테 같이 가자고 안 했는데, 좀 후회를 했습니다 ㅠㅠㅠㅠ




그렇게 처절한 싸움 끝에 안에 3명이 공개질의서를 들고 들어갔고,
안에서 13층 10층 등을 지키고 있던 다른 활동가들과 같이 취임식장에서 취임식에 항의하며 공개질의서를 전달했습니다.


어쩌면 인권위 직원들이나 다른 사람들은 인권단체들이 취임식에 깽판을 놓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밖에서 그런 인권침해들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아랑곳않고(현병철 씨는 한 번도, 한 번도 1층에 나와보지 않았습니다. 인권위 직원들 몇 명만 나와서 보고 있었고.) 슥삭 치른 취임식이야말로 인권과 인권운동에 대한 '깽판'이었습니다.
현병철 씨가 인권위원장으로 내정 발표되고 3일만에 임명되고 취임한 게 인권과 인권위에 대한 '깽판'이었습니다.



사무실에 돌아와서 현병철 취임사를 읽어봤습니다.
뭐 별 다른 거 없이 무난하더군요. 아는 것도 없고 무난하게 낙정된 낙하산 인사인데 취임사가 무난한 건 당연하겠거니 싶습니다. -_-
근데 '독립성'에 대해서 행정, 입법, 사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것 정도로만 이해하는 것 같아서 정말 씁쓸했습니다.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 인사 절차의 문제 등 깊이 있고 적극적인 고민은 없어 보였습니다.
이 시대 우리 사회의 수많은 인권 현안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 없이 추상적인 말들로 적당히 모아놓은 것 같은 취임사였습니다.

인권단체들이 항의하고 의견을 밝히고 답변을 요구하는데도 고개 숙이고 조용히 취임사만 읽어내려가던 그 모습이
감히 인권위원장이라고 하는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정말 인권위원장이라고 부르기도 싫습니다. 그냥 현병철 씨. 아님 현병철. 더 열받을 땐 병철이.





추신. 인권위 앞에서 경찰한테 끌려나가고 들려서 던져지고 온갖 고초를 겪은 활동가들의 팔다리에 든 멍.
등이나 허리에도 멍이 심하게 들었지만 찍기가 좀 애매하여서 일단 팔다리만 찍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저 -_-;; 부끄부끄 -ㅂ-
팔 여기저기 멍이 들긴 했는데 팔 안쪽이 가장 멍이 심하게 들었습니다. 끌고 나갈 때 들고 나갈 때 정말 꽈~악 꼬집듯이 붙들고 끌어내드만요.





관련 프레시안 기사 경찰, 인권위를 접수하다?…"인권활동가는 출입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