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시 - 사춘기?

공현 2009. 7. 28. 00:53
 

  사춘기?

  아이들이 달려서 내옆을 스쳐간다 홀쭉한 가방들 빵빵한 가방들 제각기 흔들리며 학생들의 휜등을 리드미컬하게 탁탁탁 때려가며 재촉한다 돌기둥 녹슨철문 반듯한 교문 교문을 지키고선 대머리 교사가 늦겠다 뛰어라 연거푸 소리쳐도
  나는 태연하게 걷는다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종이 운다 평소완달리운이좋네 감탄하건 말건
  걷고 싶으니까 걸었어 어쩌면 그건 주위 사람들이 뛰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여하간 난 걷고 싶어 특히 아침엔

  수업이 시작하면 우리는 끝날뿐 난 창가에서 찾는 것이 있을 따름 집중집중 선생마다 시간마다 한마디씩 난 창틀에서 찾는 것이 있어서 하나둘 시체를 헤아려 본다 딱딱딱 경쾌하게 분필이 칠판에 우는 게 거슬린다 여기봐요다죽었어 딱딱딱 몇 명이 졸고 있다 짝이 교과서에 낙서를 한다 앞자리는 필기한다 난
  무엇을 찾고 있니 그런 것도 모른 채. 여기봐요다죽었어 여기봐요다죽었어

  적자생존이라고자연도태는아니 청소년은 진화해왔다 사춘기는 도태되어 멸종돼왔다 아무도 보호지정 따위 해주지 않았다 희귀종이라 해도 모기를 보호지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일지도 모기약이 치익 뿌려진다 시대가 변했다구 칙칙 침을 뱉는

  비가 내린다 빨간 비 함박눈이 내리지 않는다 씁쓸해하지 마 나의
  은하수 밖에서도 별은 반짝인다 어라흘러내렸네
  배가 고파 저녁 식산 이미 끝이 났어 목이 말라 자판기에서 빼먹지 날 뱉어줘
  밥은 먹었으려나 아아 걱정할 필요 따위 없지 좋은 애니깐 나를 걷어차렴 사랑 사랑 달콤한 미사여구 따위 동원하기 싫어졌다 별은 때론 너무 빨리 흘러내리니까 나를 걷어차렴

  별이 흘러서 꽃이 시들었다 지는 꽃을 보고 우는 나이라지 하지만 구르는 낙엽을 보고 웃는 나이라고도 해 날씨만큼 변덕쟁이구나 구름이 꼈네 눈을 감아도 햇빛이 빨개 구름이 껴도 햇빛이 느껴져 머리가 아프게 더 따갑고 부셔
  목욕탕에서 온탕물이 열탕물보다 뜨거울 때처럼 기분이 나빠졌어 날 뱉어줘 찢어졌어 짜졌어 흘러내리고 있지 그냥 미련없이 날 뱉어줘 난 버렸어 진통을 버렸어 흰자위를 부릅뜬 아스피린이 위를 할퀴기 전에 아 토하고 싶어

  엉뚱한걸 난
  청소시간 우린 벌레 시첼 치워내야 하는 걸까 거미집도 걷어내야 하는 걸까 생일날을 축하해야 하는 걸까
  그런 거 물어봐야 하니 꼭?
  그래 그러니까 난 열등한걸








2004년인가에 초안을 썼고 뜯어고친 건 아마 2006년. 그리고 다시 중간에 한 연을 삭제한 게 2007년.
여러 버전이 있는 시다.

계획적으로 쓰기보다는 거의 손 끝에서 펜이 흘러가는 대로 쓴 시.
사실 내가 쓴 것 중에서도 상당히 좋아하는 거다. 그렇게 '잘 쓴' 거라고 생각하진 않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