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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벼리] 학생인권조례, 어떤 의미로든지 중요한 한 걸음

공현 2010. 1. 6. 18:34

[벼리] 학생인권조례, 어떤 의미로든지 중요한 한 걸음

공현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 초안이 발표되었다. 학생인권조례는 광주, 경남 등지에서 추진되었던 적이 있고, 지금도 광주, 경남 지역에서는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마련하여 이를 제정할 의지를 가지고 발표한 것은 이번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처음이다. 물론 발표하자마자 학생인권이라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자유교원조합, 조중동문 등이 학생인권조례에 반발하는 재채기를 하기 시작했다. “교육황폐화”, “반교육”, “방종”, “면학분위기 저해” 등등의 수사들은 좀 과하다 싶기도 하고, 뭐 그러면 그렇지 싶기도 하다. 어쨌든, 인권에 무개념한 그네들이 어떻게 말들을 쏟아내건 간에, 이번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추진이 청소년인권운동에서 여러 모로 의미 있는 사건임은 확실하다. 여기에서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가지고 있는 여러 의미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운동의 성과로서의 학생인권조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김상곤 교육감이 훌륭하고 개념 있어서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며, 거기에는 학생인권 운동의, 길다면 긴 역사가 녹아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로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높아져갔다. 비로소 일상적으로 존재하던 많은 학생인권 침해들이 의미 있는 문제―이슈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학생인권 운동은 2005년 이후에야 광주 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 움직임, 그리고 ‘학생인권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발의) 등으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조치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또한 이러한 움직임의 연장선상에 있다. 아니 따지고 보면 애초에 주경복 서울시 교육감 후보나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후보의 공약에 ‘학생인권조례’가 포함되었던 것도 그러한 학생인권운동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학생인권 운동은 음으로 양으로 참여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자문위원회에도 학생인권에 관련하여 활동을 해온 인권운동가들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연구용역팀에도 학생인권에 관한 활동을 해온 사람들이 참여했고, 과거에 연구되었던 학생인권 지침 등이 함께 검토되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학생참여기획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학생인권조례에 관해 생생하면서도 인권적인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학생인권 운동이 지난 세월 동안 문제제기하고 축적해온 사례와 담론들이 있었기에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그나마 튼실한 내용으로 초안이 발표될 수 있었다.

위 사진:학생인권조례 관련한 경기도교육청의 공모전에서 입상한 작품

학생인권의 공식적 기준 제시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학생인권이 제도화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 우선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은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 판례, 국제기구의 권고, 인권단체의 주장 등을 통해서 개별적으로 제시되었던 학생인권에 대한 기준을 통합된 법제의 형태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한때 국가인권위원회가 추진했었으나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던 ‘학생인권 지침(가이드라인)’과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학생인권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 개인들은 꾸준히 수많은 학생인권들을 주장해왔으나 이러한 주장들이 인권으로 제대로 인정 받지조차 못하고 있던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었다. 학생인권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조차 부실한 한국 사회 실정에서,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은 학생인권의 구체적 내용과 최소한의 기준을 공식적으로 확인시키는 효과를 지닐 것이다.

이처럼 공식 확인된 학생인권의 기준은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인권침해 문제를 제기하고 싸울 때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다. 또한 공식적인 규범의 제정은 그 자체로 사회 전체에 대한 인권교육적 효과가 있다. 학생인권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의 효력은 일단 경기도지역에만 적용되지만, 간접적으로는 이 조례에 보장된 권리들이 전국에 있는 학교들,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경기도 지역 학생들에게는 희망

물론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경기도 지역 학생들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는 점이 그 가장 큰 의의이다. 학생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계획 수립과 집행, 학생인권 상황에 대한 조사와 평가, 학생인권침해 구제기구 설치 등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장치들이다. 경기도 지역은 평준화 지역, 비평준화 지역, 부유층 거주 지역, 빈곤층 거주 지역 등이 뒤섞여 있으며, 두발규제, 강제적 자율학습, 체벌 등의 대표적 학생인권 문제에서도 상대적으로 심한 지역 중 하나로 꼽혀 왔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 학생들이 보여준 열렬한 환영의 분위기는 이러한 현실을 보여준다. 또한 경기도 지역에는 한국 전체 인구의 20~25% 정도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으니,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한국의 약 1/4이 그 적용을 받게 될 학생인권에 대한 법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학교를 변화시킬 계기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는 것은 변화의 완성이라기보다는 변화의 한 계기에 가깝다. 학생인권조례가 실현시키고자 하는 두발자유를 비롯하여 용의복장의 자유, 체벌금지, 강제적 자율학습, 보충수업의 금지, 학생들의 쉴 권리 보장 등은 학생들에 대한 통제와 학교 간이나 학생 간 경쟁을 강화시켜나가고 있는 교육 현실에서 유의미한 견제장치가 될 수 있다. 인권을 중심에 둔 학교,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학교와 경쟁적 학교, 통제적인 학교, 독재적․권위적인 학교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재 발표된 학생인권조례 초안을 살펴보면 학생들의 학교 운영 참여, 교육 정책 수립에 참여 등을 보장하고 있다. 이러한 통로를 통해 학생들이 일상적인 학교 운영을 비롯하여 교육 현안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교육에 변화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학생들의 참여를 내세우는 짝퉁스런 교원평가제보다는 훨씬 더!) 또한 학생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질 조직과 기구 등은 학생들의 조직화, 세력화를 촉진시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법률이 아닌 조례이기 때문에

동어반복이지만 학생인권조례는 법률이 아니라 조례이다. 그리고 조례의 가장 큰 특징은 지역적이라는 것이다. 막연하게 전국적인 법률과는 달리 학생인권조례는 경기도 지역 학생들, 경기도 지역 단체들을 인권조례의 당사자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만들고 있다. 아직 학생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외칠 만큼 전국적으로 조직화되어 있지 못한 현실에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체가 명확한 동시에 피부에 와 닿는 사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조례이기 때문에 한계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경기도지역에만 적용된다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한계이고, 무엇보다도 학생인권 보장을 강제할 권한상의 한계가 분명하다. 조례로 취할 수 있는 강제적 조치는 기껏해야 과태료인데, 학생인권 문제는 그 내용상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식도 적용하기 어렵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인권 보장을 위해 여러 복잡한 기구와 방안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학생인권조례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학생인권조례가 가지고 있는 한계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약간은 성급한 추진

김상곤 교육감의 임기 중에 학생인권조례를 발의하고 논의하여 제정하려고 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도 있다. ‘학생참여기획단’을 통해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들으려고 하고 있지만, 학생인권과 조례 제정 과정에 대해 같이 공부하고 토론하는 시간도 가지지 못하고 온라인을 통해서 학생들의 의견을 모으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연구팀도 고작 2개월밖에 안 되는 연구기간 동안에 설문조사, 면접조사, 외국사례조사를 시행하고 조례 예시안까지 만들어 내려다보니 조사 내용을 충분히 분석하고 논의하지 못했다. 자문위원회 또한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에 대한 논의는 1달도 못하고 조례안을 내놔야 하는 형편이었다.

마찬가지 이유로,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 경기도교육청이 지역 사회, 청소년단체, 교육단체 등을 충분히 잘 활용했는지도 의문이다. 김상곤 교육감은 경기도 지역의 좌파적/진보적 교육단체들과 시민사회의 지지 속에 당선되었고, 이들과의 어느 정도 공조 속에서 정책들을 추진해갈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경기도 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 청소년단체나 교육단체들의 자원을 활용하지 못했다. 일부 교육청 공무원들의 센스 없음 탓도 있겠고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이러한 한계는 이후 학생인권조례 추진 과정에서 충분한 힘을 받지 못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위 사진:경기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관련 행사 모습


학생인권조례는 제정될 수 있을 것인가?

제대로 된 내용으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될 수 있을 것인지 또한 우려스럽다. 경기도 교육위원들 다수와 경기도의회 의원 다수는 무상급식 예산 삭감, 학생인권조례 예산 삭감 등으로 김상곤 교육감의 정책을 막아설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경기도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학생인권법안, (학생회 법제화와 학생의 학교운영참여를 포함한) 학교자치법안 등도 제대로 통과시키지 않은 전력이 있다.

굳이 의회 상황을 따지지 않더라도, 학교 관리자, 교사, 보호자(학부모 등), 학생들 내부에 존재하는 학생인권에 친화적이지 못한 분위기도 문제다. 연구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학교 관리자, 교사, 보호자 등은 학생들의 학교 운영 참여에는 큰 거부감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체벌 금지나 두발자유 등에는 상당히 큰 거부감을 보이거나 반반으로 의견이 갈라졌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도 체벌금지 등에 대한 거부감이 어느 정도 있다. 무개념 반인권 일부 우파들은 어떻게든 김상곤 교육감을 까고 보려는 욕망에 ‘집회․결사의 자유’가 전교조의 음모라는 식의 어이없는 뻘타도 날리고 있긴 하지만, 일정 부분은 학생인권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보수적인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는 제정 과정에서도 많은 반발에 부딪칠 수 있으며, 설령 제정되더라도 실질적으로 집행되기에는 많은 난관을 넘어야 할 것이다.


끝내며 : 학생인권을 위한 어떤 의미로든지 중요한 한 걸음

뻔한 소리긴 하지만 조례로는 해결할 수 없는 좀 더 거시적인 문제들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입시경쟁, 학교서열화, 학벌, 교육예산 부족, 장애차별, 크게는 자본주의․국가주의 등은 ‘도 차원의 조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학생인권 개선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학생인권조례는 이러한 것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 없이는 그 한계가 뚜렷하다. 예컨대 조례가 아무리 학생들의 참여를 규정하더라도, 학생들의 참여는 공교육․사교육에서 심야까지 공부해야 하는 현실 때문에 활성화되지 못할 것이며 경제력, 성적, 장애여부 등으로 인한 차별도 그 안에 그대로 존재하기 십상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보면 이렇게 말하는 것도 가능하다.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고 통과시키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것인가? 한 지역에서 두발자유, 체벌금지를 명문화하고 제도화하는 것도 성사시킬 수 없는 사회적 조건과 운동 조건이라면 교육과 학교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학생인권조례는 이후 학생인권을 중심에 두고 학교가 변화해갈 가능성을 여러 가지 면에서 열어두고 있는 조례이며, 그렇기에 학생인권을 위해 충분히 유의미한 한 걸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다른 한편으로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걸고 있는 좀 다른 성격의 기대도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만약 통과된다면, 학생인권조례를 근거로 하여 이를 지키지 않고 학생인권침해를 일삼는 학교들에 맞선 학생들의 학교 현장에서의 저항과 행동의 불씨들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학생인권조례가 만약 통과되지 못하더라도, 학생인권조례 추진 과정과 무산은 학생들이 학생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적, 정치적 참여(학생인권조례를 무산시킨 원흉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서라도)에 나설 충분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어느 쪽이건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가능성들이 열려 있는 것이다.

사실, 내 생각에는 김상곤 교육감이나 조례제정 자문위원회도 이번에 학생인권조례를 제대로 된 내용으로 통과시킬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고 있을 것 같다. 이번에 또 무상교육 급식을 전액 삭감한 도의회의 상황 같은 걸 봐도 딱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설령 도교육위나 도의회를 거치면서 무산되더라도 학생인권조례가 완전히 좌초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공신력 있는 연구결과가 존재하고, 제대로 된 학생인권조례안이 교육청에 의해 발표되는 것만으로도, 이후의 학생인권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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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185 호 [기사입력] 2010년 01월 06일 15:2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