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꿈

○☆에게 - 상처, 분노, 사과

공현 2010. 2. 2. 15:20


  사회적 상황에서 비롯되는 것을 제외하고, 인간과 인간이 관계를 맺는 속에서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겠지. 고의적으로 다른 이에게 상처 입히길 원하여 상처 입히는 경우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불일치와 한계 또는 조건과 상황의 차이 때문에 상처 입히게 되는 경우. 이 두 경우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 중에서도 고의로 인간에게 상처를 입히는 행위를 유발하는 심리 상태를, 대체로 복수심, 분노, 증오, 적의 등의 감정으로 명명하지. 그렇잖아?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 누군가에게 화가 나있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을 상처 입히고 싶어 한다는 뜻이지.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난 너에게 화가 났었어."라는 말에는 익숙하지만, "난 너에게 고의적으로 상처를 입히려고 했어."라는 말에는 이해심을 보일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어제 밤에 했어. 응, 이건 내가 너에게 한 말에 대해 네가 좀 더 이해하기를 부탁하면서 하는 말이야. 아마도 너에게 좀 더 익숙할 말로 번역하면, 그날 내가 너에게 한 말은 "그건 내가 너에게 화가 나서 한 거야."라는 것과 동의어(엄밀하게는 포함관계겠으나-)라는 것을 말야.(그리고 "네가 나에게 상처 받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내가 너에게 화를 낸 것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고,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건데?"라는 행간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거기까진 굳이 읽어내지 않아도 좋아.)

  내가 그때 화가 난 것은 네가 활동에 대해 보인 무관심, 불성실, 무성의에 의해서 내가 외로움, 슬픔, 짜증을 느꼈기 때문이지. 역시 이 대화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로 번역하면 너에게 상처 받았다고 해도 큰 오류는 없을 거야. 그 결과 나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 만든 너에게 화가 난 것이고. 지금도 내가 너에게 그때 상처를 입힌 것 자체에 대해 사과할 생각은 들지 않아. 내 입장에서는 너에게 경고 또는 복수를 한 것이고, 한 발 물러나서 보더라도 너에게 그런 '의미'를 전달한 것이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일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 난 너에게 화를 냈던 것을 후회하지 않아. 모든 상처, 증오, 분노가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배척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서로를 미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지 않은 관계,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 관계라는 건 얼마나 비인간적일까?)

  다만 내가 너에게 사과하고 싶은 것, 미안해해야 할 것은 내가 의도하지도 않았으며 후회하는 부분일 거야. 내가 너와 같은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것, 내게 익숙한 방식이 너에게 익숙한 방식은 아닐 수 있으며 오히려 너에게는 더 민감하거나 원하지 않는 방식일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거지. 그리고 그저 내게 익숙한 방식(감정을 명명하기보다는 의도를 설명하는 식으로)으로 내 의미를 너에게 던졌으니까. 그것이 너에게 내가 의도하지 않은 만큼의 충격, 상처, 고통을 주었다면 그것은 내 방식의 잘못일 것이고, 따라서 나는 그것을 후회하고, 너에게 사과하고 싶어.

  너의 감정에 공감해주기를 바라지는 마. 내가 의도적으로 너에게 상처를 준 부분에 있어서는, 나는 너에게 공감할 수 있고, 또 그것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네가 아파하고, 잘못한 걸 알 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거니까. 하지만 내가 의도하지 않은 부분,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난 너의 감정을 분석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어도 동조적-공감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 그러니까 예상하지 못한 것이겠지? 하지만 네가 바란다면 공감-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거나, 공감-이해하는 척할 수는 있을 거야. 너는 그런 걸 원하는 걸까? 잘 모르겠어, 거기까지는, 여전히.


  글을 이렇게 길게 쓴 건, 내가 "내가 너에게 화를 낸 걸 잘못했다고 생각진 않지만,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해." 같은 류의 성의 없어 보이는 사과를 하게 될까봐, 우선 나를 너에게 설명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야. 너도 그런 사과를 원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 이 긴 글이 또 다른 가식으로 보이진 않으면 좋겠군.


추신 : 그리고, 네가 없는 것보다는, 내가 없는 게 공익적 관점에서 더 나은 것 같고, 따라서 정 네가 나를 보기 싫다면, 내가 나가는 게 낫지 않을까? 여하간 나는 네가 결정하는 데 있어 인권활동가대회 때 나랑 있었던 그 일이 별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라. 너에게 미안하기 때문에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