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인권오름] 청소년모의인권이사회에서 국가인권위의 ‘쩔음’을 겪다

공현 2010. 3. 11. 13:59

청소년모의인권이사회에서 국가인권위의 ‘쩔음’을 겪다

둠코


1월 26일∼ 28일 국가인권위원회는 2010년 청소년모의인권이사회(아래 모의인권이사회)를 개최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도 회의를 거쳐서 모의인권이사회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2백명 참가자를 뽑는데 1천명 이상이 신청을 해서 5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아수나로에서는 청소년 5명이 최종 참가했다.

아수나로에서 모의인권이사회에 참여하기로 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인권감수성이나 인권의식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현병철과 사무총장 김옥신에게 태클을 거는 청소년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그네들이 청소년의 인권의식을 함양한다면서 이런 걸 하기 전에 무자격 인권위원장부터 해결하시라고 피켓팅을 해서 경고해주고 싶었다. 둘째,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참가한 청소년을 만나서 인권운동을 알리고 가능하다면 인권운동에 끌어들이는 마수(?)를 뻗치기 위해서였다. 여러 인권 쟁점들에 관한 ‘결의문’을 청소년들이 직접 만들게 한다고 하니, 열심히 참여하여 최대한 인권적인 내용을 담으려는 욕심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를 포함해서 모의인권이사회에 참여했던 아수나로 청소년들은 다들 어둡고 피로에 쩔은 얼굴로 돌아왔다. 결국 피켓팅도 하지 못했고, 성과는 아무 것도 없이 다들 지치기만 했다. “다시는 모의인권이사회 같은 거 참가 안 한다”는 게 지금 청소년들의 심정이다.

모의인권이사회에 나타난 인권에 대한 무신경

2010 청소년모의인권이사회가 진행된 장소는 고려대학교 이다. 숙소는 고려대학교 기숙사 중 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 기숙사는 행사 기간 동안 엘리베이터 공사를 했고, 내부 곳곳이 추락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혹시 참가자 중 장애 청소년이 있었을 경우를 생각해서 이동권 보장을 준비했는지 알 수 없었다. 기숙사 외에도 행사 장소 전반에서, ‘만일 장애인 참가자가 있다면’ 하고 보니, 장애인 이동권 보장은 부족해 보였다. 그밖에 여러 문제들이 눈에 띄었다. 예컨대, 식단에는 ‘채식’을 위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 노트북을 가져오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였으나 사용할 수 없었고, 구체적 사안에 대한 전달이 느려져 진행에 차질이 많았다.

특히 스텝들이 청소년을 대하는 태도는 청소년을 괴롭게 만드는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모의인권이사회에 참여했으니 청소년을 ‘인권이사’처럼 대우해달라고까지 요구하진 않겠지만, 최소한 청소년의 인권과 인격에 대한 존중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스텝들은 참가한 청소년을 생활 전반에서 ‘관리’와 ‘규제’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참가자들은 첫날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하고 숙소에 들어와서야 “10시에 점호를 하니 이제부터 여기에서 나갈 수 없다”라는 통보를 받았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혹은 스텝이라는 이유로 참가자들에게 함부로 반말을 쓰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회의 도중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프로그램 이탈 우려가 있다며 스텝이 동행하는 등 감시하는 일도 있었다.



청소년들이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모의인권이사회의 목적이라면 생활의 여러 부분에서 인권이 보장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인권교육 중 가장 훌륭한 인권교육은 생활에서 직접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인권에 대해 무신경하게 만들어진 모의인권이사회에 참여하면서 참가자들은 인권에 대해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인권의식을 함양할 수 있나?

모의인권이사회에 참여하는 내내 회의가 생겼다. 이 행사는 대체 목적이 무엇일까? 그냥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청소년 2백여 명이 참여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행사는 아닐까? 이건 단지 국가기관에 대한 비정부조직(NGO) 활동가의 고질적인 편견 때문에 가진 생각만은 아니다.

실무회의는 논의해야 하는 사항에 비해 시간이 너무 부족했고, 결국 마지막에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사전 오리엔테이션이 부족하여 참가자들, 의장단들이 진행 방식에 혼란을 일으켜 버벅 거린 것도 한 몫 했다. 결국 2박3일로 짜여진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 참가자들은 비공식적으로 밤 시간을 이용해 하지 못했던 논의를 진행하고, 결의안을 작성해야 했다. 지정된 시간 안에 결론을 도출하여 결의안을 작성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정작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깊은 토론을 피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건 참가자들의 휴식권을 침해한 것이었고, 제대로 인권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하는 자리로 모의인권이사회를 준비하고 기획한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더군다나 모의인권이사회는 참가한 팀과 사람들을 ‘평가’해서 몇 명을 뽑아 상을 주는 대회였다. 그 결과 많은 참가자들이 논의 내용이나 진행 방식을 심사위원의 편의나 평가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국가기관이 주최한 장관상을 주는 행사였기에, 대학진학에 유리한 스펙을 위해서 참가한 청소년들이 상당수 존재했다. 모의국회니 토론대회니 하는 데 참여했던 적이 있는 사람들도 다수 있었다.(타 대회 참가 경력도 선발 기준 중 하나였다.) 게다가 ‘드레스코드’를 맞추어서 ‘복장규제’를 하자고 한 팀도 있었다. 주최 측도 ‘평가’에 얽매여 있긴 마찬가지였다. 평가를 하다보니 원래 유엔인권이사회와는 다르게 진행되었고, 인권에 대해 깊은 토론을 할 수 없었다.

모의인권이사회의 목적은 청소년들이 인권에 대해 생각하고 인권의식을 함양하는 것이다. 그런데 목적을 달성하는 방식으로 팀에 점수를 매겨 수상을 하는 것은 인권적인 접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참가자들 중에서는 ‘상을 받기 위해’ 자신의 솔직한 주장이 아니라 심사위원들이 좋아할 것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표현의 자유를 막으면서 집회․결사의 자유를 떠든 대회

대회 마지막 날, 결국 사건이 있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참가한 청소년들은 폐회식 때 현병철 위원장과 김옥신 사무처장의 무자격성을 비판하는 피케팅을 진행하려 했다. 그러나 피켓시위를 하기도 전에 국가인권위원회 직원이 피켓을 소지하고 있는 아수나로 회원 청소년에게 겉옷 안에 있는 물건이 뭔지 보여 달라고 했다. 이를 거부하자, 직원은 청소년의 팔을 잡아끌고 폐회식장 밖으로 나갔다. 그 후 청소년은 재 입장을 제지당했다. 다른 국가인권위원회 직원이 와서는 피켓팅을 하지 않을 것을 요구했고, 피케팅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이후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스스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놓고, 모의인권이사회에서 청소년들이 향유해야할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토론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제까지 다른 인권단체들이 위원장 취임식을 비롯해 온갖 행사에서 피켓팅을 하고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제지하지 못했으면서 청소년의 피케팅만 제지하다니! 자신들이 기획한 ‘행사’에 ‘오점’을 남기지 않으려는 관료적인 모습과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그 곳에 앉은 청소년들에게 시비를 거는 것도 아니었고, 모의인권이사회 폐회식 진행을 물리적으로 가로막고 폭력을 행사하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지금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원장, 사무총장이 인권감수성과 지식,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려던 것이다. 그런데 평화로운 피킷팅에 대해 수백 명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느니, 행사 진행이 불가능하게 하는 행위라느니 하면서 강제로 가로막은 것을 변명하는 모습에는 기가 막혔다.

모의인권이사회 참가 그 이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모의인권이사회가 끝난 이후에 진행상의 문제점들과 피케팅을 제지한 것에 관한 의견을 모아 국가인권위원회에 전달했고, 면담을 요청했다. 그 결과 정책국장, 인권교육과장 등을 비롯하여 책임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면담 결과, 국가인권위원회 측에서는 행사 진행에서 인권적인 내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이나 미비했던 점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우리의 문제제기를 수용했고, 이후 이와 같은 행사를 준비한다면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피켓팅을 제지한 것에 관해서 국가인권위원회 측은 그것이 ‘제지’가 아니었고 주최 측으로서는 당연한 ‘협조요청’이라고 완강하게 버텼다. 청소년의 팔을 붙잡고 잡아끄는 등 물리력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도 국가인권위원회는 사과하기를 거부했다.

관료화에 쩔은 국가인권위원회의 모습을 여실히 체험하고 온 기분이 든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그나마 국가인권위원회가 참가자들과 인권단체의 문제제기에 대해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이는 태도에서 “그래, 인권위도 국가기구인데, 이정도가 어디야. 다른 기관에서는 만나주지도 않을걸?” 식으로 생각하기는 너무 씁쓸하지 않은가. 인권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을 현병철 위원장이 있는 국가인권위원회이기 때문에 더더욱 믿음이 안 가고 짜증이 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피켓팅을 제지한 게 ‘협조요청’이라면서 사과하지 않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끝내 실망스럽다.

모의인권이사회는 참가자의 입장에서 너무 힘들었고, 문제제기하고 싶은 부분이 많은 행사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제2회 청소년 모의인권이사회를 개최할 계획이 있다고 한다. ‘모의인권이사회’ 같은 형식을 과감히 버리고 청소년들과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행사가 더 낫지 않을까?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말 인권적이지 않다는 생각만 잔뜩 드는, 인권조차도 스펙 쌓기, 상품의 일종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느끼게 하는, ‘보여주기’를 위한 행사는 최소한 아니어야 하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둠코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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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193 호 [기사입력] 2010년 03월 09일 23:24:43